이탈리아 작곡가 프란체스코 칠레아(Francesco Cilea)의 오페라 ‘아드리아나 르쿠브뢰르’가 바스티유 오페라 무대에 올랐다. 이번 공연은 지난 2010년 런던 코번트 가든 로열 오페라하우스에서 선보였던 작품으로, 데이비드 맥비커(David McVicar)가 또다시 연출을 맡았다. 아드리아나 르쿠브뢰르 역에는 2010년과 마찬가지로 루마니아의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Angela Gheorghiu)가 분했고, 마우리치오에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테너 마르셀로 알바레스(Marcelo Álvarez), 부용 공작부인에는 이탈리아의 메조 소프라노 루치아나 딘티노(Luciana D’Intino)가 캐스팅돼 명연기를 선보였다. 지휘는 오페라의 거장 다니엘 오렌(Daniel Oren)이 맡았다.
외젠 스크리브의 연극 ‘아드리아나 르쿠브뢰르’를 원작으로 한 이 오페라는, 18세기 실존했던 동명 여배우의 삶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 아드리아나 르쿠브뢰르(1692~1730)는 18세기 초 프랑스의 권위 있는 극장 코메디 프랑세즈를 대표하는 여배우였다. 그녀는 루이 15세 재위기간에 코메디 프랑세즈에 입단해 비극 배우로서 명성을 얻었고, 볼테르를 비롯한 문인들과 친분을 쌓으며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다. 그러던 중 1730년 볼테르의 작품 ‘오이디푸스’에서 카스트 역을 연기하다 쓰러진 후 3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급작스러운 죽음은 무성한 소문을 낳았는데 모리스 드 삭스를 사이에 두고 연적이었던 부용 공작부인이 독살했다는 풍문이 그것. 소문의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 실제 그녀의 시신을 해부했지만 독살의 증거는 찾지 못했단다.
4막의 오페라 ‘아드리아나 르쿠브뢰르’는 실존하던 인물 아드리아나와 마우리치오(모리스의 극중 이름) 그리고 부용의 삼각관계를 중심 플롯으로 픽션을 가미한 작품이다. 출세를 위해 부용 공작부인과 불륜을 맺고 있던 마우리치오는 아드리아나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 징표로 제비꽃을 건넨다. 이후 별장의 밀실에서 마주친 아드리아나와 부용은 서로가 연적임을 알아채고 밀고 당기는 기 싸움을 이어간다. 그러던 중 부용은 급기야 독가스를 넣은 제비꽃을 아드리아나에게 보내고 꽃향기를 맡은 아드리아나는 의식을 잃어간다. 이때 달려온 마우리치오는 용서를 빌며 청혼하지만 기쁨을 나눌 새도 없이 아드리아나는 마우리치오 품에서 숨을 거둔다.
작품의 히로인 안젤라 게오르규는 예년에 비해 볼륨 면에서 현저하게 떨어지는 목소리로 아쉬움을 남겼지만 연기에서만은 마치 아드리아나의 분신인 듯했다. 또한 1막의 아름다운 아리아 ‘저는 창조주의 비천한 종일 뿐입니다(Io son l’umile ancella)’의 감동은 황홀하기까지 했다.
작품에 품격을 더한 것은 연출가 데이비드 맥비커와 그의 제작팀이 선보인 의상과 무대장식이었다. 각도에 따라 입체적으로 설치된 세트와 두 여배우의 화려한 드레스는 루이 15세 당시의 호화스런 생활은 물론이고 한 편의 연극처럼 생을 살다 간 아드리아나의 삶을 인상적으로 조명했다.
사진 Vincent Pont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