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인 더 하이츠’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11월 1일 12:00 오전

9월 4일~11월 22일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

스타 캐스팅의 이면

새로운 뮤지컬을 관람하기 위해 브로드웨이에 들를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소재 못지않게 참신한 형식의 무대를 어떻게 구상했을까 하는, 발상의 전환과 창의력에 대한 감탄이다. 세계 공연가의 메카라 불리는 이면에는 거대한 시장 규모에 못지않은, 파격과 실험에 대한 도전 정신이 있다.

‘인 더 하이츠’도 그래서 돋보이는 작품이다. 인종의 용광로라 불리는 뉴욕 맨해튼, 주로 남미 스페인계 이민자들이 모인 워싱턴 하이츠가 배경이다. 무대는 도미니카공화국·칠레·쿠바·푸에르토리코 등 다양한 남미 출신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풍경으로 꾸며진다. 인종은 다양하고 피부색도 천차만별이지만, 사람 사는 곳이 늘 그렇듯 사랑하고 갈등하며 감동하고 용서하는 이야기들이 차분히 전개된다.

첫 시작은 학교였다. 원작자 린 마누엘 미란다가 1999년 대학 시절 만든 스쿨 프로덕션이 처음이다. 색다른 아이디어와 절묘한 음악적 재미를 담은 이 작품은 수정과 보완을 거쳐 2007년 오프브로드웨이에서 막을 올렸고, 2008년 리처드 로저스 극장에서 브로드웨이로 진입해 그해 토니 어워즈 최우수 작품상·작곡상·안무상·편곡상을 거머쥐며 흥행가도를 걷게 됐다. 오늘날까지 필리핀·브라질·영국·호주·캐나다 등 주로 영어권 국가에서 막을 올렸다. 비영어권으로는 우리나라의 라이선스 공연이 첫 시도다.

우리말 버전의 가장 큰 특징은 스타 캐스팅이다. 에스엠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인 에스엠컬처앤콘텐츠가 제작사로 나서며 아이돌 가수들이 대거 무대에 등장한다. 양동근, 인피니트 장동우·김성규, 샤이니 키, 엑소 첸, 에프엑스 루나 등 일일이 호명하기조차 바쁠 정도로 많은 아이돌 스타가 등장한다. 주요 캐릭터는 서너 명의 배우가 번갈아 나오는 것이 예사여서, 특정 스타를 만나려면 캐스트 조합과 일정을 면밀히 분석해보는 정성도 기울여야 한다. 원 캐스트로 작품의 완성도를 우선시하는 영미권 뮤지컬 공연장과는 다른 우리나라만의 별난 현상이다.

원작의 매력을 고스란히 재연했다고 보긴 어렵다. 아무리 무대 매너가 뛰어나고 힙합이나 랩이 익숙한 아이돌 스타라 하더라도 남미풍 선율과 리듬, 언어유희를 그네들만큼 자연스럽게 표현하기란 불가능하다. 다만 국내 라이선스 뮤지컬이 지닐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문화의 이질성을 감안하고 무대를 찾는다면, 나름 즐길 만한 매력이 분명 존재한다. 파워풀한 군무가 어우러지는 장면이나 커튼콜의 열정 등은 말 그대로 에너지가 넘치고 역동적이다.

공연 내내 무대의 좌우측에 설치된 스크린에선 중국어와 일본어 자막이 흘러나온다. 공항에서부터 트렁크를 들고 바로 찾은 K팝 열혈 마니아들도 있다는 후문이다. 아이돌이 익숙해하거나 잘할 수 있는 콘텐츠를 찾아 문화산업의 부가가치를 극대화하는 마케팅 전략 측면에서 보면 분명 절묘한 수다. 물론 이 무대가 언젠가 만날 수 있는, 그들의 ‘진짜’ 이야기를 담은 작품의 전주곡이라면 더욱 환호를 보낼 용의도 있다. 마치 ‘인 더 하이츠’가 이민자들의 삶을 모습을 그대로 보여줘 단출한 무대임에도 그 진정성으로 사랑받았던 것처럼 말이다. 앞으로 행보가 더 궁금해지는 이유다.

사진 에스엠컬처앤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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