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 아르스 노바의 지휘자 일란 볼코프

에너지, 정확성 그리고 푸근함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11월 1일 12:00 오전

올가을 서울시향 ‘아르스 노바’의 진취적인 레퍼토리를 모두 엮을 그가 온다

10월 30일(LG아트센터)과 11월 5일(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서울시향 ‘아르스 노바’에 공연되는 작품을 살펴보자. 라벨의 발레 ‘잔의 부채’를 위한 팡파르를 시작으로 베베른 작곡의 여섯 개 오케스트라 소품, 스트라빈스키의 ‘병사이야기’ 모음곡, 힐보리가 쓴 ‘열한 개의 문’이 선보인다. 티엔수의 ‘누스’와 생황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리게티의 목관 오중주를 위한 ‘여섯 개의 바가텔’ 도허티의 ‘시나트라 섀그’도 연주된다. 2012년 대관령 국제음악제에서 안성기의 내레이션으로 화제를 모은 스트라빈스키 ‘병사이야기’ 모음곡이 상대적으로 진부해 보일 만큼 한국 초연, 아시아 초연, 세계 초연의 연속이다.

서구 명문 악단에서도 찾아 듣기 어려운 진취적인 레퍼토리를 꿰기 위해선 일주일여의 연습 기간 동안 이 모두를 명료하게 해석할 지휘자가 절실하다.

2011년 4월 BBC 심포니도 ‘아르스 노바’ 예술감독 진은숙이 작곡한 네 개의 작품을 연주할 지휘자가 필요했다. ‘칼라’, 바이올린 협주곡, ‘로카나’ ‘수’로 이어지는 라인업이 거의 런던 초연이거나 영국 초연이었다. 지휘자를 믿고 가야 하는 상황에서 진은숙의 선택은 일란 볼코프였다. 2009년 BBC 프롬스에서 BBC 스코티시 심포니의 진은숙 첼로 협주곡(알반 게르하르트) 초연을 지휘한 것도 일란 볼코프였고, 올해 3월과 4월, 노르웨이 스타방에르 심포니와 진은숙 피아노 협주곡(김선욱)을, 영국 국립 청소년 교향악단과 ‘마네킨’을 세계 초연한 것도 역시 일란 볼코프였다. 신작을 대할 때 뿜어내는 에너지와 정확성이 진은숙이 그를 중용하는 이유다. 2011년에도 ‘아르스 노바’에 참가해 이번과 비슷한 강도로 볼프강 림·백병동·이반 페델레·존 존·페르투 호파넨 작품을 작업했다.

영국의 시스템이 육성한 지휘자의 진가

런던 음악계도 볼코프를 주시한 지 오래됐다. 서울시향·차이나 필이 로열앨버트홀에 오른 2014년 BBC 프롬스에서 영국 비평계가 주목한 데뷔 악단은 아이슬란드 심포니였다. 영국의 교육 체계와 오케스트라 시스템이 육성한 볼코프의 진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1976년 텔아비브에서 태어난 볼코프는 런던 왕립 음악원에서 지휘를 배우고 노던 신포니아 부지휘자를 시작으로 런던 필 유스 오케스트라 감독, BBC 스코티시 심포니 수석 지휘자(2003~2009)를 역임했고 지금도 같은 악단의 수석 객원 지휘자(2009~)를 맡고 있다. 2010년, 감독직에서 자유로운 볼코프를 주시한 곳이 아이슬란드 심포니였다. 2003년 첫 객원을 함께한 이래 간헐적으로 연주를 함께 하던 아이슬란드 심포니는 2011년부터 3년 조건으로 계약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시점에서 볼코프는 BBC 프롬스를 끝으로 계약을 연장하지 않았다.

‘좋은 것이 좋다’며 단원들과 타협하며 역할을 이어가는 음악감독이 있는 반면, 좀처럼 타협의 여지를 주지 않는 소신파 감독들도 있다. 볼코프는 쾌활한 외양과 달리 음악을 만들 때는 자신의 주관을 악단에 주입하는 스타일이다. 지휘자가 음악을 잘 만드는 것과 음악감독직을 수행하는 건 분명 다른 역량이다. 비교 준거가 별로 없는 현대음악에서 볼코프는 조너선 하비·마크 앤서니 터니지·진은숙뿐 아니라 이치야나기 도시 연구에 관심을 이어왔다. 이미 도쿄 메트로폴리탄 심포니와 나고야 필이 객원 지휘를 청했고, 도쿄의 여러 악단이 볼코프의 최근 움직임을 주시 중이다.

어느 지휘자에게 현대음악 전문가라는 프레임이 씌워졌을 때, 그렇다면 그들의 고전 해석은 어떨 것이냐 하는 의문이 생긴다. 피에르 불레즈와 에사 페카 살로넨 외에 우리가 기억할 만한 현대음악 스페셜리스트가 있는가? 볼코프의 진면목을 서울에서 확인하려면 ‘아르스 노바’뿐 아니라 고전과 낭만에서의 역량 역시 정기연주회를 통해 확인할 필요가 있다. 하이페리언 레이블의 레코딩을 기준으로 BBC 스코티시 심포니와 함께한 스트라빈스키와 야나체크는 2009년 그라모폰상 수상으로 검증됐지만, 2014년 BBC 프롬스에서 아이슬란드 심포니와 같이 한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은 “사무적인 해석”이라는 일간지 비평이 주를 이뤘다.

10월 초, BBC 심포니 공연을 위해 런던을 방문한 일란 볼코프를 만났다. 런던 도심을 윈드 재킷에 스니커즈를 신고 걷는 모습은 영락없는 ‘동네 형’이었다. “허름한 카페에서 커피나 하자”는 푸근함에선 마에스트로나 음악감독의 권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다음은 볼코프와의 일문일답.

한국인 음악가들과 인연은 어떠한가.

진은숙과는 거의 10년 동안 10곡 정도의 작품을 지휘했고, 여러 작품을 초연했다. 신작인 클라리넷 협주곡도 기대된다. 파리에서 백건우를 10여 년 전에 만났고 올해 초 스타방에르에서 김선욱과 만나서 음악과 육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서울 방문에선 즉흥음악 연주 공간 닻올림 연주회에 참가해 즉흥도 함께 했다. 이번에도 만나길 기대한다.

당시 바이올린을 직접 연주했는데, 지금도 꾸준히 악기 연습을 하나.

어릴 때 배운 바이올린이 집에 있지만 시간을 내어 연습하진 않고, 공연이 끝나거나 술 한잔하러 클럽에 갈 때 기회가 되면 연주한다. 즉흥에 대한 관심은 클래식 음악 활동과 하나다. 일렉트릭 바이올린을 따로 배우진 않았다.

진은숙의 어떤 면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가.

유럽 관객의 감성에 아주 잘 맞는다. 클래식 음악 경험이 많은 청중이라면 리게티의 영향을 금방 떠올릴 수 있고.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처럼 문학을 음악으로 새롭게 안내하는 방식에 새로운 청중은 흥미를 보인다. 이런 방식으로 양쪽 관객을 유인하는 작곡가는 드물고 귀하다. 지휘자 관점에선 오케스트레이션이 아주 훌륭하고 하모니와 구조 모두 매력적이다.

공연 때 지휘자와 작곡가로 갈등한 적은 없나.

진은숙은 악보 밖에다가 자신의 해설을 자세하게 병기하는 작곡가가 아니다. 극적 표현이 아주 직접적이며 실수가 없다. 대부분의 초연 때는 리허설 전에 작곡가와 만날 기회가 있고, 그때 많은 부분을 해결한다. 진은숙의 경우, 커뮤니케이션에서 전하는 내용이 정확하기 때문에 공연 후 작곡가가 원하는 방향과 어긋났다고 후회하는 경우는 없었다. 지난해 포르투갈의 카사 다 무지카에서 진은숙 바이올린 협주곡을 지휘할 때, 이전까지 진은숙의 작품을 연주한 적이 없는 단원들을 다독이는 그녀의 모습이 자연스러웠고 연륜이 넘쳤다.

당신은 어떻게 다양한 사조의 현대음악에 모두 정통할 수 있는가.

대학에서 받은 교육이 아주 좋았다. 일찍부터 영국 오케스트라에서 일하면서 런던과 그 밖의 악단들이 수행하는 다양한 현대음악의 경향을 공부할 기회가 많았다. 연습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에 지휘자가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공연이 공허해진다. 개인적으로는 1900년대 후반의 경향들이 세대가 이어지면서 어떻게 진화하고 사멸하는지 확인할 수 있어서 ‘아르스 노바’를 할 때면 즐겁다.

객원을 맡았던 도쿄 메트로폴리탄 심포니에 비해 서울시향은 어땠나.

서울시향은 한 번밖에 하지 못해 평가하기가 조심스럽지만, 단원들이 현대음악을 전달한다는 데 일종의 책임감을 갖고 있었다. 그것도 물론 진은숙의 영향이었으리라 본다. 경험상 새로운 음악을 접할 때 서울시향처럼 배운다는 자세로 임하는 악단이 별로 없다. 지휘자를 따라온다는 느낌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함께하자는 자세가 인상적이었다. 앞으로도 계속할 수 있으면 좋겠다.

BBC 스코티시 심포니에선 15년에 걸쳐 객원 지휘자-음악감독-수석 객원 지휘자로 위상이 올랐다가 내려갔다. 이유가 있었는지.

한 지휘자가 영원히 한 악단과 함께할 순 없다. 단원들이 계속 바뀌고, 감독의 철학을 받아들이는 것에 정도 차이가 발생한다. 나를 객원으로 원할 때와 음악감독으로 고용할 때, 내 음악적 주관이 바뀌는 건 없다. 지휘 통솔의 문제와 관련한 복잡한 일들에 개입되기보다, 내 음악을 꾸준히 아는 이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게 지금의 위치를 받아들인 이유다. 외부적 요인이지만, 오케스트라는 홀이 개조되거나 새로운 홀로 근거지를 옮길 때 음악적 리더십에도 변화가 있는 게 좋다.

아이슬란드 심포니에서 음악감독 경험은 어떤 유익을 남겼나.

아이슬란드에서만 연주할 수 있는 매력적인 현대음악들과 대륙에선 만날 수 없는 음악인들과 교류할 수 있어서 매 시즌 즐거웠다. 연주 작품들이 거의 모두 생존 작곡가의 작품이었다. 일 년에 두 달을 레이캬비크에 머물러야 했는데, 그 자체만으로 본토와 거리를 둘 수 있고 고전을 객관화하여 바라볼 수 있었다. 즉흥음악 축제인 텍토닉스 페스티벌을 주재한 것이 최대 수확이고, 텔아비브의 가족과 떨어져 있던 게 큰 아픔이었다.

텍토닉스 페스티벌을 운영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기금 조성이다. 오케스트라에선 단장이 대신 맡을 수 있지만 페스티벌을 지속하려면 내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레이캬비크를 떠나 이스라엘과 호주 애들레이드 축제에 가는 비행기에서도 스카이프나 화상 통화로 언제든 관련 회의를 해야 했다. 인터넷의 과다 사용이 인성을 파괴한다고 생각해 개인 홈페이지도 만들지 않았는데, 텍토닉스 페스티벌을 위해 메신저를 어쩔 수 없이 사용하게 됐다.

앞으로 다른 오케스트라 감독이 되는 일에 적극적일지 궁금하다.

단원 중에 가장 어려운 역할을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오보에 주자다. 그가 기준 음을 제대로 잡지 못하면 조율이 엉망인 채로 연주할 수밖에 없다. 음악감독이 해야 할 일은, 음악과 함께 사람을 다룰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단원 한 명, 한 명과 그들의 갈등을 조율하느라 음악에 대한 호기심이 줄어들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다. 음악으로 영감을 주는 지휘자가 된다면 단원들도 쉽게 타협하지 않을까 싶다.

사진 Simon Butterwo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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