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윤홍천

방랑자의 화려한 모험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11월 1일 12:00 오전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곡 녹음과 ‘8인의 피아니스트’ 음악감독.

모험하는 그에게, 문은 열린다

스스로 ‘방랑자’라 칭하는 피아니스트 윤홍천. ‘방랑자’는 올해 초 그의 리사이틀 제목이기도 했다. 그는 ‘방랑자’를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늘 변화를 꿈꾸며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모험가’로 정의한다.

윤홍천은 현재 내면 깊숙한 곳과 바깥세상을 자유롭게 방랑하며 두 가지 ‘모험’을 즐기는 중이다. 그중 하나는 2013년부터 욈스 클래식스와 진행하는 모차르트 소나타 전곡 녹음 프로젝트다. 5년 간 총 다섯 개의 음반을 녹음하는 일정으로, 지난 10월에는 세 번째 음반을 발매했다.

다른 하나는 ‘8인의 피아니스트’ 음악감독으로서의 모험이다. ‘8인의 피아니스트’는 여덟 명의 피아니스트가 두 명씩 피아노에 앉아 연주하며 다양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공연으로, 지난 2013년에 이어 두 번째를 맞이한 올해도 윤홍천이 음악감독을 맡았다. 이번 ‘8인의 피아니스트’에는 김태형·벤킴·박종해·선우예권·폴 시비스·안종도·허재원 등 젊은 피아니스트들이 모였다. 이들은 28일 갈라 콘서트에서 ‘춤’을 주제로 한 다양한 연탄곡을 연주하며, 22일 프리뷰 콘서트에는 윤홍천·김태형·벤킴 세 명의 피아니스트가 무대에 올라 서로 파트너를 바꿔가며 드뷔시·라흐마니노프·브람스의 연탄곡을 선보인다.

끊임없는 변화와 새로운 도전을 추구하는 윤홍천과 그의 두 ‘모험’에 대해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그와 주고받은 일문일답.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곡 녹음 중 세 번째 음반이 발매됐습니다. 먼저 발매한 두 장의 음반은 유럽에서 호평을 받았는데요. 독일의 ‘포노 포럼’지는 글렌 굴드의 음반과 비견하기도 했죠.

첫 음반을 발매하며 어떤 반응이 나올지 궁금했습니다. 그동안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기대하는 모차르트 연주 스타일과 제가 원하는 스타일에 다소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글렌 굴드의 음반이 언급된 것을 보고 놀랐어요. 제가 추구하는 음악 세계가 굴드의 색깔과는 많이 다르니까요. 하지만 신선하다는 표현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모차르트 소나타 전곡을 녹음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언젠가부터 ‘모차르트는 깔끔하고 투명하게 연주해야 한다’는 일종의 고정관념이 식상하게 느껴졌습니다. 모차르트를 공부하다보면 그가 얼마나 인간적이었는지 알 수 있어요. 하지만 모차르트의 천재성에 겁을 먹고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을 주저하는 경우가 많죠. 지난 몇 년 동안 연주회 프로그램에 모차르트의 곡을 여러 차례 넣었어요. 이를 통해 모차르트 연주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고, 레코딩을 시작하게 됐죠.

이번 음반에 수록된 소나타 11번 K331은 작년 9월 헝가리에서 3악장 ‘터키행진곡’을 제외한 1·2악장의 원본이 발견됐는데요. 음반에는 이 원전 악보를 보고 연주했죠.

이 소나타의 자필 악보가 그동안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을 작년에 신문기사를 보고 알았어요. 이 소나타를 녹음하기 열흘 전 헨레출판사를 통해 악보를 전달받았어요. 세계 최초 녹음인 셈이죠. 언뜻 들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미묘한 변화지만 차이가 나는 부분이 있어요. 기존 악보와 비교했을 때 몇 개의 새로운 음을 찾을 수 있고, 프레이징·다이내믹·리듬에도 변화가 있었죠.

어린 시절에 느낀 모차르트와 현재 느끼는 모차르트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합니다.

한국에서는 어릴 때 모차르트의 작품을 많이 연주하지는 않아요. 웬만큼 수준이 되면 쇼팽·리스트 같은 낭만주의 작곡가의 작품을 배우죠. 스케일이 큰 작품을 연주하다가 모차르트의 작품을 연주하면 싱겁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모차르트의 음악 안에 깊은 드라마와 표현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모차르트의 작품은 연주할수록 어려운 것 같아요. 세 번째 음반에 수록한 K533의 2악장에서 모차르트는 어떤 다이내믹도 표기하지 않았어요. 마치 추리소설을 읽듯이 그가 원하던 바를 상상하고 고민해야 하죠.

또 하나의 발걸음, ‘음악감독’

2013년에 이어 다시 한 번 ‘8인의 피아니스트’의 음악감독을 맡았습니다. 지난 공연을 마치고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궁금합니다. 또 이번 공연은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었나요.

재작년에 공연을 마치고 가장 뿌듯했던 것은 저를 비롯해 함께한 피아니스트 모두가 즐거워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 점이 청중에게도 전해진 것 같고요. ‘춤’을 주제로 하는 이번 공연에서는 레퍼토리 선정에 많은 중점을 두었어요. 피아노 연탄곡에 대해 더 공부했고, 출연하는 피아니스트들 각자에게 어떤 곡이 잘 어울릴지 고민했죠.

이번 공연의 주제를 ‘춤’으로 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바흐의 무반주 모음곡이 전주곡부터 시작해 알망드·쿠랑트·사라방드·지그 등 여러 가지 형식의 춤곡으로 구성된 점에 착안해 ‘이런 방식으로 하나의 공연을 꾸며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무용수 마이야 플리세츠카야가 출연한 ‘볼레로’도 영감을 주었죠.

피아니스트들을 섭외할 때 특별한 기준이 있었나요. 음악감독으로서 당신이 생각하는 각 연주자들의 개성이나 특징을 간단하게 소개해주세요.

앙상블은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적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간적으로도 잘 맞아야 하죠. 종해는 지난번 공연에도 함께했는데, 그의 색깔과 카푸스틴의 화려한 곡이 잘 맞을 것 같았어요. 태형이의 신중한 면은 브람스의 곡과 어울린다고 생각했죠. 이번 공연에서 저는 피아졸라의 작품을 연주하는데, 이 곡은 섬세한 종도와 함께 연주하면 좋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백지에 피아니스트들의 이름을 적어놓고 많이 고민했어요. 일종의 퍼즐게임 같았죠.

8인의 피아니스트를 위한 피아노 협주곡은 이번 공연을 위해 작곡가 마르코 헤르텐슈타인에게 의뢰한 작품이죠.

마르코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작곡가입니다. 제 음반 ‘앙코르’를 위해 ‘음과 양’이라는 작품을 작곡하기도 했죠. 여덟 명의 피아니스트를 위한 작품을 작곡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마르코라면 신뢰가 갔습니다. 네 대의 피아노를 여덟 명의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이 곡은 ‘탱고’ ‘왈츠’ ‘타란텔라’ 등의 타이틀을 지닌 악장마다 한 대의 피아노에 앉은 두 명의 피아니스트가 솔로를 연주하죠. 오로지 피아노를 위한 피아노 협주곡. 멋진 것 같아요.

프리뷰 콘서트 프로그램의 선곡은 어떻게 이뤄졌나요.

연탄곡으로 편곡된 작품이 대부분인 갈라 콘서트와 달리, 프리뷰 콘서트는 원래부터 피아노 연탄곡 형식으로 작곡된 작품들로 구성했습니다. 드뷔시의 네 손을 위한 작은 모음곡과 라흐마니노프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 1번, 브람스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Op.34b를 연주하는데요. 브람스의 곡 같은 경우 피아노 5중주 버전으로 많이 연주되지만, 브람스가 이 곡을 원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편성으로 썼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죠. 원래 작곡된 편성으로 연주하는 이 곡은 색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내년 7월, 베를린 도이치 심포니와 현지에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7번을 협연할 예정인데요. 그 외 앞으로의 계획을 알려주세요.

메클렌부르크 포어포메른 페스티벌에서 한누 린투의 지휘로 연주하게 되었습니다. 지난번 이 페스티벌에서 모차르트 실내악 곡을 연주했는데 주최 측에서 인상 깊게 본 것 같아요. 꼭 모차르트 협주곡을 연주해달라고 요청을 받았죠. 벌써부터 기대되는 공연입니다. 그 외에는 지난 10월을 시작으로 하이델베르크 필하모닉에서 두 시즌 동안 상주 피아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12월에 독일로 돌아가면 클라리네티스트 자비네 마이어, 바이올리니스트 율리아 피셔, 비올리스트 닐스 묀케마이어와 함께 내년 소니 클래식스에서 발매되는 모차르트 음반을 바이에른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녹음할 예정입니다. 어려울 것 같았던 문들이 이제 서서히 열리는 것 같네요.

사진 강태욱·스톰프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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