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다산초당 ‘다산 정약용이 즐기던 고요한 풍류’

꽃별의 ‘거기서 들려오는 소리’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12월 1일 12:00 오전

그리던 강진으로

가물었던 올가을, 산야는 너무 붉지도 노랗지도 않았다. 은근한 주홍과 미약한 노랑은 눈부시지 않아 좋았다. 부시지 않은 눈으로 오래 바라볼수록, 눈이 아니라 마음이 시렸다. 예뻐서 유독 눈에 띄는 나무가 없는 산은 오히려 조용하고 기품이 있었다.

남해로 가는 내내 비가 왔다. 반가운 비였다. 나무에서 떨어지기 직전의 마른 잎들도 빗속에서 오랜만에 생기가 돌았다. 네 시간 반 동안 빗속에서 차를 몰았지만 창밖의 세상은 느긋하고 아름다웠다.

중학교 때였던가, 소설로 나온 목민심서를 읽었다. 소설 속 정약용은 실제 인물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파란만장한 삶을 산 천재였고, 인정스러우면서도 반듯했다. 그러니까 나에게 다산 정약용은, 역사 속의 어떤 인물이라기보다는 소설 속의 대단한 주인공이었다. 그리고 한참 지난 대학 때, 인문학 수업을 들으면서 다시 정약용에 대해 공부했다.

‘벼슬살이의 요체는 두려워할 외(畏), 한 자뿐’이라는 대목은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백성이 주인이니 백성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산이 말하는 두려움이 벼슬살이를 하는 이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닐 터였다. 그렇다면 벼슬을 살지 않는 내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나의 음악을 듣는 모든 존재일 것이고, 그것은 나 자신이기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나는 세상을 향해 거칠 것 없이 나아가고 있었는데 사실 마음 깊숙이에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두려움을 마주하면서 더 단단한 사람이 되었다. 스스로의 ‘작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많은 애를 썼다. 하지만 그 ‘작음’을 인정하는 순간, 더 커질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목민심서’는 ‘목민: 백성을 잘 보살피는 일’과, ‘심서: 그런 마음은 있으되 몸소 실행하기는 너무 어려운 일’이라는 뜻의 제목이다.

그때의 나에게 ‘목민심서’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작음’을 인정하게 하는, 그래서 결국 나를 잘 보살피게 만든 책이었다.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음악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지침이 되어주기도 했다.

느리게 흐르는 다산초당의 시간

호남 땅은 부드러웠다. 비가 와서 땅이 부풀어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국도 옆으로 펼쳐진 넉넉한 평야, 덩치가 크지만 위세부리지 않는 봉우리들, 그리고 자그마한 길로 이어져 있는 집들은 이 땅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곳인지 새삼 느끼게 해주었다. 강진에 들어서면서 창을 열자 비릿한 바다 냄새가 느껴졌다. 보이지 않아도 저 나지막한 곳 어딘가에 바다가 있겠구나 싶었다. 땅 끝에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음에서 오는 안도감과 망망대해가 주는 막막함이 공존했다.

다산초당에 가는 길로 들어서면서 여기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작은 마을은 오랫동안 변하지 않은 것 같았다. 변하지 않는 것은 좋은 것이다. 지금은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변한다. 자꾸 새로운 것에 적응해야 하고, 그것이 나에게 맞는 것인지를 생각해볼 겨를이 없다. 여기에서라면 세상의 속도와는 다르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산초당으로 올라가는 길에 소나무 뿌리로 만들어진 계단이 있었다. 뿌리는 아무렇게나 뻗어 있었고 울퉁불퉁 땅 위로 튀어나와 있었는데도, 소나무는 건강해 보였다. 숲의 모든 생명을 일으키는 핏줄 같아 보이기도 했다. 흙을 움켜쥐고 나무를 자라게 하는 뿌리를 조심스럽게 밟으며 마음이 경건해졌다. 조용한 산에는 새소리, 물소리, 빗소리, 그리고 나의 발자국소리만 들렸다. 다산도 적막한 곳에서 스스로의 발자국 소리를 들었으리라. 그리고 그 발자국이 세상으로 이어지기를 바랐을 것이다. 얼마 걷지 않아 다산초당에 이르렀다. 수백 권의 책을 집필하고, 훌륭한 제자들을 길러낸 장소. 18년의 유배 기간 동안 10년을 기거하던 곳이다.

처음에 유배를 왔을 때는 성문 밖 노파의 집에서 살았다고 한다. 지혜로운 노파는 다산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봤고, 제자를 모아준다. 그곳에 생각·용모·언어·행동을 올바르게 하도록 하는 집, ‘사의재’라 이름 붙인 다산. 거기서 공부하고 제자를 가르치면서 마음의 병을 치유했을 것이다.


▲ 다산이 유배 초년 지내던 사의재

유배 8년 만인 1808년 봄,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기고, 주변의 물·돌·나무들에게 정성을 들이며 살았다. 다산초당에는 미안한 마음이 들 만큼 볼 것이 없었다. 대학자이자 큰 스승은 이렇게 작은 곳에서 그 모든 일들을 해낸 것이다. 초당 오른쪽에 작은 연못을 만들고, 그 안에 바닷가에서 주워 온 돌로 산을 만들었다. 연못 곁에는 동백나무가 있었는데, 가지 끝에 때 아닌 동백꽃이 한 송이 피어 있었다. 꽃이 질 때 꽃잎을 따로 따로 떨어뜨리지 않고, 꽃송이 전체가 뚝 떨어지는 동백. 동백꽃은 늘 왠지 슬퍼 보인다. 오른쪽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가면 천일각이 있다. ‘하늘 끝 한 모퉁이’라는 뜻이란다. 다산은 하늘 끝 한 모퉁이에 서서 바다 건너 어딘가 즈음에 있을 형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그 수많은 날들 중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도 있었겠지. 묵직하게 비를 뿌리는 하늘은 낮았고, 먼 바다는 안개 색이었다. 하늘과 바다가 멀리서 뒤섞여 그 끝을 알 수가 없었다. 그 끝을 헤아리고 있자니 아픈 그리움이 밀려왔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얼마나 더디게 갔을까.

선비의 풍류, 고요함을 즐기다

松壇白石牀(송단백석상)

是我彈琴處(시아탄금처)

山客掛琴歸(산객괘금귀)

風來時自語(풍래시자어)

 

소나무 단에 하얀 돌 평상은/ 바로 나의 거문고 타는 곳/ 산객은 거문고를 걸어두고 가버렸지만/ 바람이 불면 절로 소리를 내네

-윤정기의 시문집 ‘방산유고’에 실린 다산의 시

젊을 적 다산은 풍류를 즐겼다. 이 시대의 풍류와는 사뭇 달랐을 그 시절, 무엇을 어떻게 즐겼을까. 뜻 맞는 친구들과 ‘죽란시사’라는 풍류계를 맺고, 함께 어울렸다. 그 핑계가 참으로 어여쁘다.

‘살구꽃이 처음 필 때와 복사꽃이 처음 필 때, 한 여름 참외가 익을 때, 가을 서련지에 연꽃이 필 때, 국화꽃이 필 때, 첫 눈이 내릴 때 모이고, 한 해가 저물 무렵 매화가 피면 다시 한 번 모인다.’

특히 서련지에서 어떻게 연꽃을 즐겼는가를 들으면 애틋한 마음까지 든다. 서련지에는 연꽃이 많기도 했지만 꽃이 컸단다. 그래서 동트기 전 모여서 배를 타고 연꽃 틈에서 눈을 감고 숨을 죽인 채 기다린다. 무엇을? 연꽃이 피는 소리를! 아… 대체 연꽃이 필 때 어떤 소리를 낸단 말인가? 그 장면을 상상해봤다. 삼십대 즈음의 선비들이 정갈한 차림으로 배에 모여 앉아 있다. 눈을 감고, 손을 모으고, 온 감각을 집중시킨 귀는 움찔거린다. 그렇게 얼마간 가만히 기다린다. 그러다 연꽃이 봉오리를 터뜨리면, 모두 눈을 빛내며 소리 없는 탄성을 지른다. 은은하고, 향기로웠을 것이다. 한시도 진정한 고요를 맛볼 수 없는 지금의 세상에서, 그 순간을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정화되는 것 같았다.

카덴차나 솔로 부분을 연주할 때, 늘 그 시간을 어떻게 화려하게 채울까 고민하고 연습한다. 그 부분이 강렬한 자극이 되어, 나의 연주를 듣는 사람들에게 나를 각인시키고 싶다고 생각한다. 어느 공연에서였다. 해금 솔로 차례가 왔고, 어려운 기교들을 쏟아냈다. 그러다 아주 작은 소리로 높은음을 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왠지 다른 선율을 연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그 음을 계속 유지하고 싶었다. 아주 여린 생명인 듯 조심스럽지만 강인하게 소리를 이어나갔다. 다른 악기들은 소리를 낮추고 여린 소리를 감싸 안았다. 청중은 숨을 죽여 나의 호흡을 따라와 주었다. 한동안 지속되던 그 소리는 가만히 사라졌다. 깃털처럼. 그리고 잠시 음악 속에 정적이 흘렀고, 다시 숨을 몰아쉬고 음악은 이어졌다.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모두가 숨을 멈춘 순간.

그들을 닮은 악기, 거문고

거문고는 선비들에게 가장 사랑받던 악기다. 거문고 소리는 기품이 있다. 한 음만 내어도 묵직한 울림이 퍼진다. 그리고 그 잔향은 길지 않다. 소리가 꼬리를 물지 않고 단호하게 떨어져 버린다. 치렁치렁하지 않고, 단정하다. 그래서 마음을 요동치게 하지 않는다. 정리되지 않는 생각의 찌꺼기를 저 멀리 몰아내듯 술대로 내리쳐 내는 음은, 명징하다. 그러면서도 거문고는 따뜻하다. 골무를 껴야 누르고 흔들 수 있는 두꺼운 줄과, 부드러운 다섯 손가락이 아닌 짧고 단단한 나무 막대 하나로 찍어내고 밀쳐내는 주법을 지닌 거문고. 가까이서 거문고 연주를 보면 틀림없이 반하게 된다. 우리 음악에는 현악영산회상이라는 악곡이 있는데 상령산에서 시작해 군악까지 9개의 소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홉 곡이 차례대로 조금씩 빨라지는데, 여섯 번째 곡 하현도드리의 시작 부분이 거문고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전 곡에 비해 뚝 떨어진 낮은 음정에서 시작하는데 그 흐름이 매우 도도하고 아정하다. 현악영산회상은 거문고 중심의 음악인데, 그렇다고 거문고가 모든 것을 지배하지는 않는다. 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물처럼 겸손하고, 다른 음을 품어준다. 어찌 선비들이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이리도 그들을 닮은 악기를.

견고하지만 빡빡하지 않고 단호하지만 너그러운, 그런 품이 그립다. 백련사로 이어진 숲길을 걸으며 떠올린 선비의 마음과 거문고 소리는 한없이 깊고 너그러웠다. (다음 편에서는 강진의 백운동에서 이야기를 전합니다.)

 

글 꽃별

해금 연주자 꽃별은 경계를 허무는 평화로운 음악을 꿈꾼다. 해금으로 세상의 수많은 삶과 이야기를 노래하는 한편, 국악방송 ‘꽃별의 맛있는 라디오’를 통해 우리 음악을 전하고 있다.

사진 더 트래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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