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가 김용걸

춤추는 자의 새로운 발걸음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12월 1일 12:00 오전

숙명처럼 지나간 김용걸댄스시어터 5년의 시간,

김용걸은 안무가로서 새로운 정체성을 탐구 중이다

김용걸이란 이름 앞에 어떤 직함을 붙여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무용가, 안무가, 교수… 이 중에서 어떤 단어가 지금의 김용걸을 가장 잘 대변할 수 있을까. 1995년부터 국립발레단에서 주역으로 활약하던 그가 2000년 국내 무대에서 돌연 자취를 감췄다. 둥지를 옮긴 곳은 파리 오페라 발레의 코르 드 발레(군무)였다. 6개월에 한정된 시즌 계약이었지만, 파리 오페라 발레 입단 소식은 한국 무용계에 찾아든 낭보였다. 새로운 세계에 몸담은 김용걸은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나아갔다. 승격 테스트를 통해 입지를 넓혔고, 마침내 명성 높은 파리 오페라 발레의 솔리스트가 됐다. 파리 오페라 발레 9년의 세월을 몸에 새긴 김용걸은 2009년에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화려한’ 귀환을 했다. 교수로 부임해 학생들을 훌륭하게 지도하는 것에 대해 많은 이가 응원을 보냈다.

현재 김용걸은 안무가로서 행보를 덧붙이고 있다. 좋은 기교를 지닌 무용가이자, 해외 발레단을 통해 다양한 레퍼토리를 체득한 경험은 안무가로서 독보적이다. 게다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의 위치에서 작품을 만들다 보니 많은 이목이 집중됐다. ‘김용걸’이란 이름에서 오는 무게감이 안무가로서 새로운 정체성을 탐구 중인 그에게 과연 약이 될까. 어쩌면 중압감에 시달릴지도 모를 일이다.

김용걸댄스시어터 5주년 기념 공연을 앞두고 김용걸을 만났다. 그는 편안해 보였다. 2000년에 파리로 떠나는 비행기를 탔을 때부터, 주변 시선을 떨쳐내고 오로지 자신을 찾기 위해 수없이 단련했다고 한다. 자신은 여전히 무용가이며, 무용가로 성장하는 과정에 안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무용가 김용걸과 나눈 일문일답.

안무에 언제부터 흥미를 느꼈는지 궁금하다.

파리 오페라 발레에서 지방 공연을 가면 한두 작품은 안무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재미를 느낀 것 같다.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 교수로 부임하고 나서다. 현실적으로 교수로서 실적이 요구됐고, 한국 대학에서는 대부분 창작 안무를 해서 실적을 올리더라. 하지만 이러한 실적과는 관계없이 학생들이 잘 따라와 주어 좋은 작품들이 나왔고, 상도 꽤 받았다. 아직은 안무를 잘 모르겠지만 즐겁다. 안무를 하며 얻는 기쁨이 크다.

김용걸에게 영감을 주는 안무가는 누구인가?

피나 바우슈에게 가장 많은 영감을 받았고, 윌리엄 포사이스와 이르지 킬리안을 좋아한다. 세 안무가의 성향은 매우 다르다. 피나 바우슈는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서 영감을 꺼내고 움직임을 만든다. 포사이스는 클래식 발레 움직임으로 사람을 놀라게 한다. 킬리안은 두 안무가의 중간쯤에 있으며, 철학과 발레 움직임이 모두 담겨 있다. 세 안무가의 작품은 파리 오페라 발레에서 많이 접했다. 안무를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이들의 성향이 나온다.

무용가로 활동하던 시절은 호평의 연속이었는데, 안무작을 올리며 비평가의 혹평을 받았을 땐 어떤 심정이었는가?

작품 초반에 평론가들에게 상을 많이 받은 이유는 안무를 잘해서라기보다 격려 차원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나도 어떤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2011년부터 안무를 시작했으니 안무가로 활동한 지 5년차가 됐다. 5년 동안 통념을 확 뒤집는 작품이 없었기에 주변의 기대감이 낮아진 것 같다. 하지만 주변의 시선 때문에 조급하게 가고 싶진 않다. 안무는 자신과의 싸움이니 스스로 솔직해야 한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자리를 버리고 파리 오페라 발레의 코르 드 발레에 입단했을 때부터 외부 시선을 차단하는 단련을 하지 않았나?

맞다. 파리에 가기 전에는 다른 사람을 많이 의식했다. 파리로 떠나는 비행기에 앉은 순간부터 내 안에 있는 나를 찾은 것 같다.

무용가로 살아가는 데 가장 어려운 점이 인간관계라고 말한 인터뷰 기사를 봤다.

인간관계에서 자유로워지면 이 세상은 천국일 것이다. 나는 아직도 구속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다. 이러한 고민들이 작품을 구상할 때 많은 도움이 된다. 햇빛만 비치는 세상이라면 나의 안무작이 누구에게도 영감을 줄 수 없겠지. 괴로운 형상이 생기면 이것마저도 내가 작품을 풀어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예술가는 정말 행복한 것 같다. 일반인은 꾹꾹 누르며 참아야 하는데, 예술가는 작품을 통해 괴로움을 분출할 수 있으니까.

그렇다. 그래서 사람은 취미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나 보다. 나에게는 안무가 취미다. 사람들이 내 작품을 보고 공감했을 때 느끼는 희열은 무용가로 전막 공연을 하고 받는 박수 이상으로 기쁘다. 안무가 나에게 이렇게 강하게 다가올 줄 몰랐다.

안무가로서 보낸 5년의 깨달음

김용걸댄스시어터의 5년은 안무에 대해 어떤 점을 고민한 시간이었는가?

작업하는 방식이 변했다. 5년 전에는 경험이 부족해서 열심히만 했다. 지금은 작업 과정이 자연스러워지고, 집요해진 것 같다. 예전에 안무할 때는 ‘이 동작을 하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유치하지는 않나?’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스스로 나를 못 믿겠더라. 지금은 어떤 동작에 이유가 있다면 표현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이번 5주년 기념 공연의 작품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나?

공연 1부는 갈라 작품으로 구성했고, 2부는 전막을 선보인다. 처음에는 원하는 순서로 프로그램을 배열했는데, 출연 무용가가 겹쳤다. 앞뒤로 무용가들을 다르게 분배하며 최적의 상태를 찾았다. 내가 추구하는 춤을 추는 남성무용가가 아직은 두 명 정도다. 여전히 남학생들은 대학을 가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무용을 선택한 경우가 많다. 반대로 여학생들은 대부분 어릴 때부터 전공을 목표로 공부하여 기본이 탄탄하다. 그래서 주로 여학생들 위주로 작품을 구성하게 된다. 마린스키 발레의 수석무용수가 된 김기민의 발전상을 보고 한국 발레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기민이 같은 무용가가 나온 것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이번 공연에 올리는 작품 중 특별히 애착 있는 작품은 무엇인가?

선보이는 작품 중 ‘오블리비아테(Obliviate)’가 신작이다. ‘상대방의 기억을 지우는 주문’이라는 느낌으로 음악과 동작을 매치해 안무했다.

보통 제자들과 작업하는 편이다. 학생들에게 컨템퍼러리 발레 어법과 작품에 담긴 해석을 어떻게 이해시키는가?

이야기를 많이 한다. 잠깐의 움직임을 두고도 왜 이 동작을 하는지, 이 움직임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확실하게 이야기한다. 아직 클래식 발레가 더 익숙한 학생들이라 내가 하는 이야기가 완전히 스며들지 않는다는 것이 느껴질 때도 있다.

학생들이 졸업할 때 꼭 습득했으면 하는 것이 있다면?

되도록 많은 경험을 해야 한다. 발레의 움직임은 체계적이고 과학적이다. 몸의 기본을 잡아주기 때문에 클래식 발레를 했던 사람은 다른 춤을 추더라도 소화를 잘한다. 발레를 전공한 학생들이 직업 무용단으로 가기 전에 학교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 한다. 졸업생들은 새로운 세계에서 새 그림을 그릴 것이다. 4년 동안 김용걸댄스시어터를 하면서 몸에 익힌 것들이 앞으로 활동할 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본인의 컴퍼니를 따로 만들고 싶은 욕심은 없나?

컴퍼니는 현실과 부딪치는 부분이 많다. 재정적인 문제가 가장 크다. 아직은 학교에서 맡은 일이 많아서, 따로 재정을 구하러 다니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장기적인 꿈은 다섯 명에서 열 명 정도의 무용가로 컴퍼니를 꾸려 지속적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싶다.

무용가로 성장하던 시기와 비교하면 안무가로서는 어느 지점이라고 생각하나?

지금도 무용가로 가는 길 위에 서 있다. 그 과정에서 안무를 시작한 것이다. 무대에서 나의 움직임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내가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클래식 발레 무대가 그립지는 않나?

정말 그립다.

1998년 파리 무용 콩쿠르 2인무 부문에서 함께 입상한 김지영은 국립발레단에서 아직도 왕성하게 춤추고 있다. 그리고 강수진은 ‘오네긴’으로 한국 은퇴 무대를 가졌다. 객석에 앉아 동시대 춤추던 무용가들을 바라보면 어떤 기분이 드나?

김지영은 왕년에 파트너였는데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한평생을 무용에 희생한 강수진은 화려한 은퇴 공연으로 그 삶을 보상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이번 ‘오네긴’은 발레리나 강수진의 고별 무대였고, 모두가 강수진의 연기를 보려고 모였다. 내가 현재 춤만 추는 무용가였다면, 춤추는 사람 입장에서 그의 무대를 바라봤을 것이다. 안무가 입장에서 바라본 존 크랭코의 ‘오네긴’은 색달랐다. 안무·군무의 구도·연출·조명·무대 세팅까지 완벽한 무대였다. ‘오네긴’의 안무와 구성을 꿰찬다면, 위대한 안무 교과서 한 권을 외우는 것이다. 이번 ‘오네긴’ 공연을 보면서 강수진에 대한 존경심 이전에 존 크랭코에 대한 존경심이 먼저 들었다. 이처럼 전막 발레를 보면서 좋은 구도와 연출을 많이 배운다.

현재 해외 발레단에서 활동하는 무용가가 늘었다. 앞으로 한국 발레계를 어떻게 예측하나?

지금 한국 발레는 기본이 없다. 발레 학교가 시급하다. 전 세계 유명 발레단을 보면 여지없이 발레 학교가 있다. 나무로 비유하면, 한국은 보기에는 풍성한데 뿌리가 없는 나무다. 다른 곳에서 뽑아다가 그냥 박아놓은 셈이다. 바람이 불면 금방 쓰러질 텐데, 다른 사람들은 이 정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정책적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한국 발레의 전망은 밝을 수 없다.

안무가로서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

국립발레단이나 유니버설발레단과 작업해보고 싶다. 연륜 있는 무용가들과 함께하면 어떤 작품이 나올지 궁금하다. 학생들과 하는 작업도 즐겁지만, 교육적인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어느 선을 넘기가 어렵다. 나에게 어떤 제안이 올 때, 바로 할 수 있도록 조금씩 준비하고 있다. 올해 국립발레단 강수진 단장이 안무를 의뢰하여 ‘여행자들(Les Voyageurs)’을 만들었다. 이 작품은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이영철·박슬기와 함께 이번 공연에서도 선보인다. 무용가들의 기량도 뛰어나고, 나 역시 선을 넘어서 만든 안무이니 새로운 인상을 줄 것이다.

사진 박진호(Studio B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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