쇤베르크 음악에 21세기를 담은 실험적인 무대. 바스티유 오페라의 새 시대를 열다
20세기 음악 혁명을 이끈 작곡가, 쇤베르크의 오페라 ‘모세와 아론’이 바스티유 오페라에서 초연됐다. 10월 20일부터 11월 9일까지 공연된 ‘모세와 아론’은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장으로 부임한 스테판 리스너의 첫 제작 작품. 연출은 이탈리아 연출가 로메오 카스텔루치가 맡았다. 필리프 조르당의 수려한 지휘 아래 파리 오페라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담당했고, 파리 오페라 합창단·어린이 합창단, 오드센 성가대로 구성된 100여 명의 대규모 코러스가 눈부신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젊은 청년으로 분한 한국의 바리톤 임채욱의 연기 또한 인상적이었다.
파리 시민의 마음을 사로잡은 연출
고전이라 부를 만큼 이름난 텍스트를 재해석하는 실험은 실패 확률이 높다. 얼마 전 토머스 햄프슨·로베르토 알라냐·소피 코슈 같은 호화 캐스팅으로 바스티유 무대에 올랐던 에르네스트 쇼송의 ‘아서왕’이 그중 하나다. 영웅 아서왕의 전설을 해체한 그레이엄 빅의 혁신적인 연출은 언론과 청중 모두에게 악평을 받았다. 그만큼 신화의 재해석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모세와 아론의 이야기를 성경적 컨텍스트를 떠나 카스텔루치 특유의 미학으로 재해석한 것은 또 하나 모험이었다.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10월 20일 오프닝 공연이 있었던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은 연출을 향한 야유보다는 뜨거운 갈채로 가득했다.
스테판 리스너가 이 작품을 첫 부임작으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또 연기 지도가 전무했다는 비평에도 로메오 카스텔루치의 연출이 바스티유의 보수적인 청중마저 매료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스테판 리스너로서는 그의 시기가 도래했음을 선포할 초석 같은 작품이 필요했고, 모든 청중에게 어필할 유니버설한 주제가 절실했다. 이때 그의 머리에 떠오른 것이 이스라엘인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한 모세 이야기다. 리스너는 수천 년 전 출애굽 신화를 요즘 유럽을 강타하고 있는 난민 현상에 대입했다.
또한 쇤베르크가 ‘모세와 아론’에서 보여주는 말의 힘과 허상 그리고 대화의 불가능성을, 마호메트를 캐리커처했다는 이유로 프랑스 신문사 ‘샤를리 헤브도’ 테러를 자행한 극이슬람주의자들의 눈먼 행동과 매치시켰다. 이 지점에서 리스너는 구약 시대를 배경으로 한 ‘모세와 아론’이 현대적 시사성이 넘치는 작품임을 역설했다.
카스텔루치는 ‘신이란 말로 형상화될 수 없다’는 모세의 번뇌를 현대적인 언어로 그려냈다. 그리고 휴대폰, 인터넷 등 매스커뮤니케이션의 한가운데 살고 있는 요즘 현대인이 실제로는 소통하지 못한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주목했다. 현실을 문제의식으로까지 승화시킨 점이 성공의 비결인 셈이다. 또한 현대인으로 각색된 모세의 캐릭터는 성경에 나오는 모세와는 다르다. 쇤베르크의 모세는 자신의 임무를 다하지 못한 인물이기에 연출가는 모세의 고독과 좌절에 중점을 두어 작품을 형상화했다. 파리 시민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이상과 현실 사이, 신과 인간 사이
1막은 ‘신은 영원하고 도처에 존재하며 눈에 보이지 않고 형상화될 수 없는 것’이란 모세의 기도로 시작한다. 무대 앞으로 하얀 베일이 드리워져 있고 그 뒤로는 유리 상자에 갇힌 하얀 소가 보인다. 이때 공중에서 내려오는 릴 테이프 녹음기.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라는 성경의 첫 구절처럼 모세는 베일 밖에서 내려오는 테이프를 손으로 받는다. 신의 말씀을 상징하는 테이프를 손에 들고 의미를 형상화하려다 실패한 모세는 좌절한다.
여기서 모세는 이상을 동경하는 플라톤주의자이고 아론은 살아 있는 생명력에 침착하는 물질주의자다. 때문에 쇤베르크는 모세에게 ‘슈프레히게장’이라고 불리는 말하는 듯한 노래 스타일을, 아론에게는 서정적인 멜로디를 부여했다. “오 형제여! 신이 너를 보냈는가! 백성들에게 전할 신의 계명은 무엇인가?”라고 말하는 아론과 “다른 신들은 이미지로 형상화할 수 있지만 우리의 신은 형상화할 수 없다”는 모세의 듀오는 두 캐릭터가 지닌 음악적 스타일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모세는 낭송조로 운율에 찬 텍스트를 노래하고 아론은 긴 프레이즈로 연결되는 멜로디 라인을 선보였다. 물론 모세 역의 베이스바리톤 토마스 요하네스 마이어의 놀라운 퍼포먼스와 아론 역의 테너 존 그레이엄홀의 음색은 매우 강렬했다.
이어서 카스텔루치 특유의 탐미적인 세노그라피가 등장한다. 라이트모티프처럼 반복되는 ‘신은 독보적이고 형상화될 수 없는…’이란 패시지를 모세가 부를 때 공중에서 수족관 두 개가 내려오며 이리저리 움직인다. 각도는 변해도 물은 변함없이 180도 수평을 이루는데, 신은 영원하고 진실하다는 의미를 상징한다. 이때 연출은 ‘수평선’이란 단어를 자막 위로 투사한다. 모세와 아론의 듀오에 등장하는 주제어에 따라 비디오에 이미지를 투사한 것이다.
구름처럼 뭉글거리는 백색 의상을 입은 백성들이 등장하는 패시지에서는 빠른 플롯과 파곳의 운율 가운데 ‘백성’이란 단어가 보인다. 텍스트에 따라 이 단어들은 점점 빠르게 대량으로 쉬지 않고 등장한다.
신을 증명하라는 백성과의 몸싸움에 지친 모세는 “나의 사고는 아론의 말에 비해 힘이 없다”고 고백한다. 이어서 아론은 손을 들고 신의 계시를 받은 듯 전달한다. 공중에서는 거대한 레이저가 내려온다. 신의 말씀을 토해내는 인쇄기다. 공상과학 영화에 나올 법한 이 소도구는 현대적인 언어가 어떻게 구약시대 신화와 매치될 수 있는지 잘 보여준 예다.
아론이 지팡이를 던지며 뱀으로 변하는 가짜 기적을 행할 때 거대한 레이저 인쇄기는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같은 시각 자막으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뱀들의 이름이 무수히 오가는데, 뱀을 보여주기보다는 단어를 통해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방법이다. 레이저 인쇄기는 한센병 같은 질병뿐 아니라 백성들이 믿고 싶어 하는 모든 것을 이미지로 그려낸다. 마치 신앙의 힘이 무섭고도 부조리한 것임을 증명하듯이.
다음 장면에서 아론은 릴 테이프를 끄집어내 나일 강의 물을 담은 유리 튜브를 꺼낸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음식과 과일이 떨어지는 사막으로 가자고 인도한다. 나일 강의 물은 백성들의 피로 붉어졌다가 다시 투명해진다. 아론은 ‘지금이 파라오를 떠나 독립할 순간’이라는 신의 계시를 전한다. 베일 앞에서 이를 관조하는 모세는 무기력함을 느끼며 좌절한다. 무대 뒷벽이 마치 천국과 지옥의 결별처럼 상하로 열리고 나체의 남녀가 엉켜 뒹구는 장면이 연출된다. 그중 한 여자가 틈 사이에서 백성들 사이로 떨어진다. 추락 혹은 죄악의 시작일까? 하얀 베일이 올라가고 침묵 가운데 코러스는 하얀 깃발을 흔든다. 자막에는 27부터 40까지의 숫자가 투사된다. 숫자는 모세가 사라진 후 시간의 흐름을 상징한다. 40일째 행방을 알 수 없는 모세를 떠올리며 백성들은 나지막한 유니슨으로 그가 어디에 있는지 반문한다. 스타카토로 연속되는 동적인 남성 오스티나토에 여성 합창이 대주된다. 역광 아래 긴장과 흥분이 고조되는 패시지였다.
모세의 좌절, 감동의 피날레
이어서 2막은 ‘40일!’이란 노인들의 감탄사로 시작한다. 한 남자가 추락한 나체 여자를 끌고 무대를 가로지르자 아론이 법을 선포한다. 문명의 시작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이후 아론을 선두로 백성들은 검은 잉크로 온몸을 더럽힌다. 아론의 지팡이에서 나오는 잉크는 물질적인 몸의 상징. 따라서 이 장면은 백성들이 모세의 이상 세계를 떠나 물질적인 생명력에 집착함을 의미한다. 무대에 등장한 무시무시한 근육질의 하얀 소는 바로 이 생명감의 상징이다. 우상과 자본주의의 상징인 황금 소 대신 하얀 소를 등장시킨 것도 재기 넘치지만, 음란한 섹스 장면과 함께 희생 제단에서 종종 등장하는 붉은 피 대신 검은 잉크를 쓴 것도 형이상학적이었다. 백성들은 검은 잉크 가득한 수조에 들어가 새까맣게 칠을 한다. 무대 바닥도 붓으로 칠한 것처럼 온통 검다. 아직도 이상 세계에 사는 젊은 청년 하나만 제외하고 말이다. 기하학적이고 미니멀한 신디 반 아커의 안무도 카스텔루치의 미학과 잘 매치됐다.
이후 아론은 풀어진 녹음테이프를 가운처럼 몸에 걸치는데, 신의 말씀을 구체화했음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이때 아론 뒤로 산봉우리가 등장한다. 제작에만 3개월이 걸린 이 무대장치는 사막의 분위기를 고취하는 이미지이자 이상향을 꿈꾸는 모세의 내면을 투영한 것이다. 소뿔을 양손에 들고 등장한 모세는 그것을 바닥에 던지며 “무한대로 반영되는 이미지, 말의 허상 속에 빠지지 말고 정신을 차리라!”고 외친다.
‘금색 광선이 비친다’라는 코러스의 가사처럼 뿔 속에는 금색 액체가 들어 있다. 모세의 선언 같은 외침에 테이프 뭉치 속에서 벗어난 아론은 “법을 제정했는가?”라고 묻는다. 모세는 “말한 적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바닥을 기며 소뿔을 집어 든 아론은 뿔을 머리에 대고 “영원한 이데아를 증명하려 했다”고 말한다. 여기서 백성을 위해 사는 아론과 자신의 이상을 위해 사는 모세는 충돌한다. 아론이 “십계명 판 또한 이미지의 한 조각에 불과하다”고 진실을 말하자 모세는 “그 판을 깨련다”라고 말하며 물이 담긴 하얀 물동이를 바닥에 던진다. 아론은 모세에게 자신의 입을 통해 말하라고 외친다. 불기둥을 신의 가호라고 보는 아론, 구름 기둥을 우상 숭배라고 되받는 모세. 교묘한 언변으로 백성에게 거짓을 전하는 아론을 보며 모세는 절망한다. 산 그림은 바닥에 떨어지고 모세는 검은 베일 아래서 “오! 말이 그리울 뿐이다”라고 탄식하며 무대는 막을 내린다. 복잡하면서도 갈등과 감성이 넘치는 패시지 후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박수, 카타르시스의 현장이었다. 오페라 작곡 후 무대 상연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등진 쇤베르크의 탄식이 들리는 듯했다.
사진 Bernd Uhli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