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먼 래틀/베를린 필의 베토벤 교향곡 사이클

파리 필하모니에서 펼쳐진 5일간의 대장정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1월 1일 12:00 오전


▲ ©Priska Ketterer

사이먼 래틀이 이끄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파리 필하모니에서 베토벤 교향곡 전곡 사이클을 가졌다. 지난 11월 3~7일, 다섯 번의 무대에 걸쳐 선보인 이번 사이클은 독일 음악의 전통을 대변하는 베를린 필이 독일 음악의 본질을 상징하는 베토벤의 교향곡 전곡을 프랑스에서 선보였다는 점에 있어 특별했다. 그렇기에 프랑스의 유수 언론과 많은 시민은 파리 필하모니를 기꺼이 찾아 5일간의 마라톤을 함께했다.

필자는 11월 3일과 5일 두 공연에 참석했다. 11월 3일은 교향곡 1번과 3번으로 꾸며졌다. 래틀은 교향곡 1번 연주를 위해 오케스트라 편성을 축소했는데, 카라얀/베를린 필의 거대한 4관 편성의 베토벤 교향곡을 기억하던 파리의 청중은 다소 의아해하기도 했다. 교향곡 1번은 하이든 영향의 고전주의 형식미가 눈에 띄는 작품이다. 연주는 베토벤의 웅장함보다는 각 악기의 대화를 섬세한 비단처럼 직조한 해석이 돋보였다. 반면 3번 ‘영웅’은 축소 편성에도 불구하고 빠른 템포와 에너지 넘치는 비르투오소적 면모를 보였다. 래틀은 뛰어난 프레이징으로 큰 멜로디 라인을 끌어가며 화성·리듬적인 대조를 긴장과 이완의 미학으로 표현했다. 그 결과 청중은 솔리스트의 개별 파트를 명료하게 들으면서도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내는 다이내믹한 흐름에 빠져들 수 있었다. 래틀만의 미시적이면서도 거시적인 구성 감각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다.

11월 5일은 교향곡 8번으로 시작해 6번 ‘전원’으로 끝났다. 8번은 우아한 살롱 속 귀부인의 대화처럼 주고받던 1악장의 두 주제부터 이를 갈며 으르렁거리는 듯한 바이올린의 트레몰로까지 유머 넘치는 무대를 선사했다. 일부 비평가는 너무 과장했다고 꼬집기도 했지만, 베토벤 교향곡 연주 중 이번처럼 청중의 웃음을 자아낸 해석은 없으리라!

반면 6번 ‘전원’은 다소 아쉬웠다. 자연의 새 소리를 모방한 목관 솔리스트의 연주는 비르투오소 그 자체였다. 폭풍 장면에서는 베를린 필의 테크닉과 래틀의 풍부한 감성을 느낄 수 있었고, 농민의 춤 장면의 극단적으로 가세된 강박 리듬은 함께 일어나 춤을 추고 싶은 충동마저 주었다. 그러나 근본적인 면에서, 몇 년 전 리카르도 샤이/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가 보였던 색감 넘치는 ‘전원’과는 아주 달랐다. 개인적으로 샤이의 해석에서 베토벤의 휴머니티가 더 돋보이지 않았나 생각한다. 문제는 그 베토벤적 휴머니티가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모든 마에스트로가 ‘베토벤’이라는 명제 아래 그 답을 추구해왔다. 래틀의 답은 ‘전투’였다. 그만큼 11월 7일 연주된 교향곡 7번은 속도감이나 테크닉에 있어 상상한 초월한 연주였다는 평단의 극찬을 샀다. 그러나 베토벤 교향곡은 테크닉 저편에 자리 잡은, 청중에게 어필하는 근원적인 감정을 담았기 때문에 위대하다고들 한다.

결론적으로 이번 베토벤 교향곡 사이클은 카라얀의 무거운 베토벤과 예르비가 신선하게 조명한 베토벤의 중간쯤에 자리한 래틀만의 새로운 베토벤이었다. 그러나 베토벤 교향곡 사이클의 레퍼런스로 남을 만한 해석은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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