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필하모닉의 오보에 수석주자 조너선 켈리, 당대연주 실내악 단체 베를린 바로크 졸리스텐과 함께 내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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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rliner Philharmoniker
오케스트라의 A(라)음을 지키는 것은 오보에 수석주자의 몫이다. 오보에가 먼저 A음을 내면 모든 악기가 오보에 피치에 맞춰 튜닝하기 때문이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기본음’을 13년간 묵묵히 지키고 있는 오보이스트 조너선 켈리(Jonathan Kelly)가 내한한다.
현재 베를린 필에는 두 명의 오보에 수석이 있다. 1992년에 먼저 입단한 알브레히트 마이어는 솔리스트로서도 워낙 유명하다. 2013년 내한하여 코리안심포니를 지휘한 경력도 있다. 2003년에 입단한 조너선 켈리는 11세에 당시 베를린 필 오보에 수석이던 로타어 코흐(Lothar Koch)의 음반을 듣고 오보에를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변함없던 그의 꿈은 베를린 필에서 오보에를 연주하는 것이었다. 조너선 켈리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런던왕립음악원과 파리국립고등음악원을 거쳐 1993년 영국 버밍엄 시립교향악단에서 오보에 수석으로 10년간 활동했다. 이후 베를린 필로 둥지를 옮기며 마침내 소망하던 꿈을 이뤘다.
조너선 켈리와 함께 내한하는 베를린 바로크 졸리스텐(Berliner Barock Solisten)은 베를린 필의 주요 단원으로 구성된 바로크 음악 전문 단체다. 2014년 플루티스트 에마뉘엘 파위(Emmanuel Pahud)와 함께 내한하며 이목이 집중된 바 있다.
다음은 조너선 켈리와의 일문일답.
2013년 내한하여 진주유스오케스트라와 함께 공연했다. 베를린 필의 클라리넷 수석주자 벤첼 푹스와도 함께한 무대였는데, 당시 한국의 어린 음악학도들을 보며 어떤 느낌이 들었나?
진주유스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학생들은 매우 어렸다. 의자에 앉으면 발이 바닥에 닿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음악적으로는 크게 터치할 부분이 없을 만한 수준이었다. 무엇보다 음악을 사랑하는 학생들의 마음이 전달됐고, 클래식 음악을 애호하는 한국인들의 진심이 느껴졌다. 젊은 세대가 클래식 음악을 흡수하도록 격려하는 한국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열한 살 때 베를린 필의 오보에 수석 로타어 코흐의 음반을 듣고 오보에를 시작했다고 들었다. 무엇에 매료된 것인가?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 3악장을 듣고, 신비롭고 향수로 가득한 오보에 사운드에 끌렸다. 오보에의 스토리텔링적인 소리는 큰 충격이었다. 오케스트라 한가운데 있는 보물이라고 생각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역사를 수학한 이력이 독특하다. 역사를 공부한 점이 당신의 음악적인 부분에 어떠한 영향을 줬나?
(어릴 적부터 오보에를 했지만) 음악을 전공하려면 더 높은 수준이 요구된다고 생각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입학해 역사를 공부하면서, 많은 연주와 다양한 경험을 했다. 아마도 나는 훌륭한 역사학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오보에를 다시 생각하게 된 좋은 기회였다. 이후 런던왕립음악원에서 셀리아 니클린을, 파리국립고등음악원에서 모리스 부르그를 사사했다. 셀리아 니클린은 선율을 서정적이고 길게 만드는 것을, 모리스 부르그는 음악 뒤에 숨어 있는 에너지를 강조했다. 테크닉에 관한 질문을 하면 두 분 모두 명확한 답을 주지 않고, 음악성에 초점을 맞췄다. 테크닉에 대한 해결책은 스스로 찾을 수 있게 격려하신 분들이다.
2003년부터 베를린 필에서 오보에 수석으로 활동 중이다. 베를린 필 수석이던 로타어 코흐의 연주를 듣고 오보에를 시작했으니, 베를린 필 입단이 확정됐을 때 감회가 새로웠을 것 같다.
베를린 필에 입단하기 전 버밍엄 시립교향악단에서 10년간 연주했다. 즐거운 기억이었다. 버밍엄 시립교향악단과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항상 베를린 필에서 연주하는 꿈이 있었다. 베를린 필 오디션을 볼 때는 부모님께도 알리지 않을 정도로 조심스러웠다. 부모님께 합격 소식을 전하니 오랜 꿈을 이룬 것을 매우 기뻐하셨다. ‘과연 내가 베를린 필의 오보에 수석이 될 만한가’에 대해 많은 걱정을 했지만, 모든 연주자가 하는 자연스러운 고민 아닐까. ‘부족하다’는 생각은 쉬지 않고 노력하도록 만든다.
베를린 필은 매우 민주적인 방식으로 단원을 선발한다. 신입 단원 오디션 때, 당신과 동료들이 눈여겨보는 점은 무엇인가?
동료가 될 단원을 직접 뽑는다는 것은 큰 책임감을 준다. 모든 오디션을 주의 깊게 들으려고 노력한다. 딱히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단원이 될 지원자의 연주는 시작하자마자 마법같이 끌리는 어떤 요소가 있는 것 같다.
베를린 필에는 단원들이 주도적으로 구성한 40여 개의 실내악단이 있다. 당신 역시 여러 실내악단에 소속되어 활동 중이다.
나는 해마다 샤로운 앙상블과 체르마트 페스티벌에 참가하고 있다. 또한 블레저 베를린 필, 베를린 바로크 졸리스텐과도 함께 실내악을 한다. 한스외르크 셸렌베르거의 뒤를 이어 앙상블 빈 베를린의 멤버가 된 것은 정말 큰 영광이다.
이번에 함께 내한하는 베를린 바로크 졸리스텐은 당대연주 단체다. 당대연주에 애정 있나보다.
바로크 음악 연주를 정말 좋아한다. 바로크 음악은 순수한 형태라고 생각한다. 올바른 시대 스타일로 연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바로크 시대의 감성을 풍부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바로크 레퍼토리 전문 성악가들의 노래를 들으며 공부하는 편이다.
버밍엄 컨템퍼러리 뮤직 그룹에서도 활동했다. 토마스 아데스의 ‘소나타 다 카차’를 초연했는데, 당대연주와 현대음악까지 소화하는 레퍼토리 폭이 매우 넓어 보인다.
오보이스트들은 대부분 바로크 음악과 현대음악을 함께 연주한다. 그래야 연주하는 레퍼토리가 풍요로워진다. 오보에로 한 시대의 음악만 연주한다면, 연주할 수 있는 곡이 한정된다. 오보에 솔로를 위한 곡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다행히 많은 낭만주의 작곡가가 교향곡 안에 훌륭한 오보에 파트를 남겼다. 덕분에 오보이스트들은 오케스트라 악기 중 가장 멋진 선율을 ‘자주’ 연주한다.
성악을 취미로 배우고 있다고 들었다. 현재도 계속 성악 연습을 하고 있나?
성악을 몇 년간 꾸준히 배웠다. 성악 테크닉은 오보에를 연주할 때도 많은 도움이 된다. 휴식을 취할 때나 기분을 전환하고 싶을 때는 꼭 성악곡을 듣는다. 연주할 때도 ‘노래 부르는 것’처럼 연주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사진 Berliner Philhamoni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