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바스티유의 베를리오즈 ‘파우스트의 저주’ 제작 초연

야유와 환호가 점철된 무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2월 1일 12:00 오전

베를리오즈 ‘파우스트의 저주’가 오페라 바스티유에서 새롭게 제작·초연됐다. 알비스 헤르마니스 연출, 필리프 조르당 지휘 그리고 요나스 카우프만(파우스트), 브린 터펠(메피스토펠레스), 소피 코흐(마르그리트)로 구성된 황금 캐스팅으로 파리의 청중과 언론이 주목했지만, 이날 객석에서는 야유와 환호가 동시에 쏟아졌다.

1부(1·2막)는 호기심 속에 무사히 끝났지만, 2부(3·4막)의 막이 오르자 여기저기서 야유가 터지기 시작했다. 직접적인 동기는 자막으로 처리된 천문학자 스티븐 호킹의 저술에서 따온 인용문이었다. 베를리오즈의 파우스트와 스티븐 호킹 간의 연관성은 무엇일까?

알비스 헤르마니스는 ‘파우스트의 저주’를 공상과학적으로 풀어냈다. 프롤로그는 화성에 정착할 우주인 선발 현장으로 시작했다. 선정된 우주인 100명과 그들의 프로필이 영상을 통해 소개됐고, 그 가운데 뒤틀린 자세로 휠체어에 앉은 신사 스티븐 호킹이 있었다. 그는 이번 연출에서 21세기의 파우스트로 묘사됐다.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우리는 왜 다른 곳을 향해 떠나야 하는가? 철학은 죽었다. 이제는 과학자들이 문제의식을 짊어질 때다.“

프롤로그 속 호킹의 독백은 호기심을 가지고 진화해온 인류가 우주로 떠나야 하는 당위성을 요약했다. 2시간 20분간 경직된 자세를 연기해야 하는 호킹 역은 피나 바우슈 댄스 컴퍼니의 스타였던 도미니크 메르시가 맡았다.

막이 오르고 무대에 평온한 자연의 이미지가 투사됐다. 평상복 차림의 파우스트가 자연의 생명력을 경탄하는 첫 아리아를 노래했고, 동반된 발레는 우주인들이 무중력 상태의 동선을 연습하는 안무로 구성됐다. 우주선에 실릴 실험용 동물과 식물, 그리고 사람들이 이리저리 오가는 모습은 노아의 방주를 연상케 했다.

1막은 ‘호킹이 파우스트의 꿈을 꾸는가, 파우스트가 호킹의 꿈을 꾸는가?’라는 물음을 던졌다. 헤르마니스는 “음악은 오래전 작곡됐으나 청중은 오늘을 살고 있다. 그래서 작품을 일종의 동화처럼, 호킹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로 연출했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청중은 프로그램 북을 읽은 후에야 두 캐릭터가 하나임을 깨달았다. 과연 연출이 의도한 대로 스티븐 호킹은 21세기의 파우스트인가? 단번에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극이 전개될수록 영원을 사랑한 두 학자 파우스트와 호킹의 캐릭터는 묘하게 점철됐다.

메피스토펠레스는 우주선에 실을 실험용 자료를 담당하는 과학자로 그려졌으며, 마르그리트는 파우스트를 사랑하는 처녀이자 호킹의 부인으로 등장한다. 연출은 4막 초에서 마르그리트가 휠체어 곁에 앉아 그를 돌보는 장면을 특별히 삽입했다.

에필로그는 휠체어에서 떨어진 호킹을 조명했다. 비틀거리는 호킹을 우주인들이 받쳐 들어 그가 마치 무중력 상태로 걷는 느낌을 줬다. 파우스트는 휠체어에 다가가 서서히 앉고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호킹과 파우스트가 동일시되는 순간이었다. 연약한 인간으로서 육체적 한계가 무한한 우주에서 해결되는 듯한 카타르시스가 있었다. 물론 ‘이해할 수 없다’를 외치를 청중도 많았다.

대부분의 동작을 발작처럼 몸을 뒤틀어 표현한 알라 시갈로바의 안무는 혹평을 받았다. 우주의 신비를 생명의 원천에 은유한 영상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달팽이의 교미 장면은 청중의 폭소를 사 필리프 조르당이 장내가 조용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일부 언론은 ‘넘치게 야유받은!’이라는 타이틀로 작품을 비평했고, 나머지는 헤르마니스의 연출이 ‘억지만은 아니다’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1846년 초연된 ‘파우스트의 저주’는 여러 이야기가 들쑥날쑥하게 전개되기 때문에 카테고리화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때문에 제작과 연기 지도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2012년 치머만의 ‘병사들’과 2014년 야나체크 ‘예누파’ 등으로 동시대의 창의적 오페라 연출가로 인정받은 알비스 헤르마니스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다.

사진 Felipe Sanguinet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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