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로열 발레의 퍼스트 솔로이스트 최유희의 활동 궤적을 살펴보다
영국 로열 발레의 퍼스트 솔로이스트 최유희의 활동 궤적을 살펴보다
일본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하는 대한민국 국적자. 백인 중심의 영국 발레에서 ‘로열 스타일’을 계승하려는 이방인. 로열 발레 퍼스트 솔로이스트(first soloists) 최유희의 활동 궤적은 문화 정체성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겐 흥미로운 사례다. 2003년 로열 발레에 입단해 2008년 퍼스트 솔로이스트로 승급한 최유희는 1984년 후쿠오카 현 고쿠라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4세다. 현재 국적은 대한민국이다. 그녀가 국적을 북한에서 한국으로 바꿨다는 국내 보도는 오보다. 최유희가 우승한 2002년 로잔 콩쿠르의 NHK 방송 화면에 나온 ‘북조선’을 근거로 한 추측인데, 일본 내 ‘조선’ 국적과 여권상 ‘북한’ 국적을 혼동한 오류다. 당시 그녀는 이미 대한민국 여권을 갖고 있었다. 2002년 이후 14년째 로열 발레 단원으로 런던에 살고 있다.
현재 로열 발레의 수석무용수들은 보통 두 시즌, 길어야 5년 정도 지나면 정상에 섰다. 최유희는 로열 발레의 현역 여자 퍼스트 솔로이스트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일곱 시즌) 같은 자리에 있다. 2015/2016 시즌, 3개월의 겨울은 최유희가 입단하고 가장 바쁜 시기였다. 12월 초에는 카를로스 아코스타의 갈라 ‘클래시컬 셀렉션’을 하며 일주일을 보냈고, 12월부터 2월까지 ‘호두까기 인형’ ‘두 마리 비둘기’ ‘랩소디’에 주역과 메인 역할을 맡았다. 최유희 주역의 ‘호두까기 인형’은 로열 발레의 송년 공연 중 가장 빨리 매진되는 프로그램 중 하나다.
차분하고 굳건한 행보
입단 초기, 프레더릭 애슈턴과 케네스 맥밀런 스타일을 가르쳐준 건 발레 지도위원(ballet mistress)인 게일 탭하우스였다. 목에서 어깨를 지나 팔로 떨어지는, 하늘거리지만 단단한 포르 드 브라(팔의 연결 움직임)가 돋보였다. 1970년대 맥밀런의 클래식 발레에 자주 주역으로 오른 레슬리 콜리어는 정규 레퍼토리에서 점점 사라지는 옛 작품의 핵심을 전수했다. 10대 시절, 파리 오페라 발레를 겨냥한 최유희의 자태는 서서히 영국 스타일로 변모했다. 2004년 나탈리야 마카로바는 클래스에서 혼자 연습을 하던 최유희에게 “지금 뭐하냐”고 물었다. 발레단 최하위 등급인 아티스트(artists)였던 최유희는 “배역 연습을 한다”고 답했는데, 클래스가 끝나자 마카로바는 최유희를 ‘잠자는 숲 속의 미녀’에 캐스팅했다. 입단 후 2년 사이 영어 실력도 좋아졌고, 발레단 분위기에도 거의 적응했다.
최유희를 처음 만난 건 2005년 6월 로열 발레가 아시아 투어를 떠난 싱가포르에서였다. 예정 시간이 지났지만 최유희는 인터뷰 장소에 나오질 못했다. 군무진의 당일 출연 여부가 정해질 때까지 최유희는 기다려야 했고, 시간이 한참 흘러 에스플레네이드 앞 카페에 나타났다. 음료를 들고 머리에 선글라스를 얹고는 “오늘은 공연을 안 하게 됐다”고 환히 웃던 게 첫인상이다. 한국 발레는 유니버설발레단의 ‘심청’을 파리에서 본 게 전부라고 했다.
서울로 넘어와 명동 거리에서 만난 최유희는 자신의 롤 모델을 알리나 코조카루로 밝혔다. 1997년 로잔 콩쿠르를 우승하고 로열 발레 견습을 거쳐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채로 런던에 정착한 건 코조카루와 최유희가 판박이다. 다만 동유럽에서 주역을 경험한 탄력이 붙어 코조카루는 이내 런던에서 고정 관객층을 구축했다. 최유희는 2009년 1월 ‘라 바야데르’ 니키야로 전막 데뷔하기까지 입단 후 7년이 걸렸다. 2010년 국립발레단 ‘백조의 호수’ 객원무용수 때나, 2015년 서울에서의 갈라 공연 때나 최유희가 밝힌 목표는 한결같이 ‘로열 발레 수석무용수’다.
지금도 한국이나 일본 발레단의 영국 작품 상연에 귀를 기울이지만, 주역이 아닌 날에도 코번트가든에 있어야 감독의 시야에 든다. 도쿄 아오야마 극장에서 로잔 콩쿠르 입상자 갈라나 오차드 발레 갈라를 여름 휴가철에 올랐던 게 극동 활동의 범례였다. 일본 K 발레 컴퍼니의 단장인 테츠야 구마카와가 도쿄 공연 때면 화환을 보내 격려했다. 2013년 7월 로열 발레의 일본 투어에 로런 커스버트슨을 대신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주역에 오른 게 아시아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이다.
공연 후 최유희의 상기된 모습이 선명하다. 그녀가 도쿄문화회관 극장 뒷문을 나서자, 팬들은 사인을 받으며 “이제 시작”이라 했다. 하지만 2016년 로열 발레의 일본 투어 ‘로미오와 줄리엣’ ‘지젤’ 주역은 수석무용수에게만 주어졌다. 런던에서도 웨인 맥그레거, 리엄 스칼릿의 컨템퍼러리 작품에서 각광받은 만큼 발레 블랑에서는 기회를 잡지 못했다. 2016/2017 시즌 스케줄이 발표될 4월과 승급이 발표될 6월은 서른을 넘긴 최유희에게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간이다.
현 로열 발레 감독(2012~) 케빈 오헤어에게 최유희는 어떤 무용수인가. ‘두 마리 비둘기’에서 쓸쓸함과 발랄함을 오가며 애슈턴식 발레 유머에 능란한 최유희를 유력 일간지들은 별점 네 개를 주었다. 지난 1월, 스케줄에 바쁜 그녀를 코번트가든 무용수 휴게실에서 만났다.
2014/2015 시즌에 몇 번 정도 무대에 올랐나?
100여 회 가량이다. 이번 2015/2016 시즌에도 비슷한 횟수로 오를 것 같다.
12월 카를로스 아코스타의 갈라는 어떻게 함께했나?
2013년 여름에 같은 콘셉트로 공연했고, 이번 런던은 두 번째 공연이다. 아코스타는 내가 입단할 때 객원 수석무용수였는데, 나와 아주 잘 지냈다. 다른 나라에서 열리는 갈라에도 나를 데려갔다.
‘두 마리 비둘기’는 2004년 쿠라 켄타와 로잔 콩쿠르 갈라에서 베리에이션을 추었다.
그러고 보니 소품을 한 지도 벌써 10년이 지났다. 2004년 로잔 콩쿠르 갈라가 개인적으로는 첫 갈라여서 ‘두 마리 비둘기’가 특별하다. 로열 발레에 들어오니 모니카 메이슨 감독이 이걸 집중적으로 연습하라고 지시했고, 레슬리 콜리어가 나를 가르쳤다. 이번엔 30여 년 넘게 로열 발레가 전막으로 안 하던 작품이라 고증이 필요했다.
전막은 어떻게 달랐나?
이번에 지도한 크리스토퍼 카는 30여년 넘게 로열 발레 마스터를 했고, 지금은 객원 마스터다. 1960~1970년대 로열 발레의 춤이 어땠는지를 내가 군무 시절부터 잘 가르쳐준 분이다. 최근 들어 애슈턴 작품에 주역을 더 많이 맡으면서 궁금할 때 그를 찾았다. 로열 발레와 버밍엄 로열 발레의 예전 작이 어땠는지, 처음 보는 영상과 자신의 시범으로 레슨해주었다. 심지어 2015년 버전의 개정 부분이 어땠는지도 알려줬다. 어디서도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다.
다른 단체의 ‘두 마리 비둘기’를 보는 것도 도움이 되나?
2004년에 새들러스 웰스에 버밍엄 로열 발레의 작품을 보러 갔다. 그때는 젊은 소녀 역의 감정 처리가 혼란스러웠다. 콜리어는 그 당시 베리에이션을 가르쳐줄 때 연적 집시 소녀에 대한 나의 감정이 어떤지 물었다. 그때는 이해가 불완전했는데 이번엔 명확했다. 사랑을 바라지만 질투하지 않는 것. 젊은 소녀는 화를 낼 상황에도 절대로 연인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이런 모순적인 감정을 나타내는 작품이 고전에는 드물다. 이제는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알게 됐다.
노인 관객들은 잘 이해하지만, 우리 시대에 그렇게 행동하는 젊은 여자는 거의 없다.
요즘 관객의 보편적인 호응을 얻는 게 1960년대 애슈턴 작품의 재생에 가장 중요한 과제다. 로열 발레가 잊힌 작품을 되살릴 때 무엇을 지향해야 하고, 누가 이끌고 따라갈지, 그 가운데 내가 할 일이 있다. 리허설의 모든 순간이 소중했다. 지시받지 않은 세부적인 부분에서 내가 해석해낸 모습에서 크리스토퍼 카가 눈물지으며 행복해하던 게 가장 기뻤다.
최유희의 애슈턴 해석에 대해 오헤어 감독은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가?
‘두 마리 비둘기’의 경우, 캐스팅이 정해지기 전에 나에게 출 수 있냐고 먼저 물어봤다.
파트너의 경우, 여성 주역이 상대방을 추천하기도 하나?
오헤어는 그런 걸 받아준 적이 없다. 그래서 나도 추천한 적은 없다. 알렉산더 캠벨과 나는 서로 오래 아는 사이여서 문제없었다.
파트너십을 볼 때 중요하게 보는 요소는 무엇인가?
인격과 신체적 특징이다.
전막에서 신체적 조건을 조율하는 방법이 있는가?
가능한 모든 것에 대해 다 이야기를 한다. 불만이 있으면 있는 대로, 아쉬운 걸 담아두지 않는다. 솔로에서는 개인의 음악성이 모두 다른데, 파트너링에서 서로 음악성이 일치하기는 쉽지 않다. 서로가 즐기는 스텝과 템포를 맞춰야 나와 상대의 장점이 살아난다.
2016/2017 시즌엔 애슈턴과 맥밀런에 강한 최유희의 강점이 더 드러날까?
애슈턴의 ‘고집쟁이 딸’이 올라가는 것 말고는 정해진 레퍼토리가 무엇인지 무용수들도 잘 모른다.
2016년 일본 투어에서 최유희는 어떤 배역을 하는가?
아직 전달받은 게 없다. 많은 게 바뀌고 있는데 어떤 이유인진 잘 모르겠다.
‘호두까기 인형’처럼 여러 무용수가 오르는 작품에선 악단 리허설이 충분치 않기도 하다.
여러 비상 상황을 겪었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1회 공연이 끝나면 다음 공연 전에 지휘자와 이야기를 해서 조절한다. 발레 지휘자의 특성을 대충 알고 있다.
아코스타 갈라의 ‘라 실피드’처럼 오귀스트 부르농빌 스타일은 로열 발레에서 배울 수 없는데.
여가 시간을 쪼개어 연습해야 한다. 요한 코보르가 로열 발레에 있을 때 가끔씩 가르쳐줬고, ‘나폴리’에 나를 캐스팅했다. 2007년에 익힌 느낌인데, 오랜만에 꺼내니까 어색하지만 또 재밌다. 갈라는 몸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좋은 기회다.
발레를 하면서 언제가 가장 힘든가?
발레단 생활에 관해 힘든 걸 다 이야기할 순 없고, 작품을 예로 들면 박자가 이해되지 않을 때 가장 어렵다. 컨템퍼러리 작품이면 직접 안무가와 소통하면서 풀면 되는데 클래식 작품에서 가끔 너무 복잡하기만 하고 코치의 레슨이 불명확할 때가 있다. 그때 난처하다.
한국 무대에는 언제 다시 설 수 있을까?
로열 발레가 서울을 간다는 이야기는 없다. 한국의 발레단이 좋은 작품에 불러주면 좋겠다.
사진 Rick Guest·Royal Ball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