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크리스토프 포펜

모든 음악은 실내악을 지향한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4월 1일 12:00 오전

4월 30일, 쾰른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내한하는 그에게 연주자와 악단의 음악적 역량을 향상시키는 비결을 들었다

공연기획사 빈체로의 이창주 대표는 오래전부터 국내 악단들이 우리나라 축구대표팀의 발전 방식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외국인 지도자의 초빙은 우리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다. 축구계도 초기엔 국내 지도자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반발이 심했다. 하지만 우리 눈에 평범해 그냥 지나쳤던 장점을 발견하고, 언론의 흔들기에 좌우되지 않으며 학맥에서 자유로운 외국인 감독의 효용은 슈틸리케의 경우에서 또한 미덕을 찾을 수 있다.

클래식 음악의 변방이 외국인 지휘자를 감독으로 영입해 악단을 선진화시킨 사례는 일본에 무수하다. 2000년대 정명훈-도쿄 필 사례는 물론, 현재 대니얼 하딩이 뉴 재팬 필 고문으로, 파보 예르비가 NHK 수석 지휘자로 취임해 교항악단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이름값을 우선하는 한국 사회와 금전적 대우를 보장받아야 할 외국인 음악가 사이에 중간 항은 없을까.

한국에선 어느 날 외국인이 등장해 악단을 송두리째 고치는 드라이브는 실패한다. 기존에 국내 여러 지방에서 벌어진 외국인 지휘자와 악단 간의 갈등이 그 근거다. 실패한 외국인들은 국내 악단이 지닌 자산이 무엇인지 적극적으로 규명하지 않았다. 한국 선수들은 양발을 잘 쓴다는, 평범해서 지나쳤던 장점을 발견한 히딩크식 접근이 그들에겐 없었다. 실력뿐 아니라 인품과 주재국에 대한 헌신을 요구하는 한국 사회는 지휘자에게도 그러한 영웅상을 원한다. 그런데 정작 인격과 애정을 갖춘 음악인의 기량을 알아볼 심미안을, 과연 한국 사회는 갖추고 있는가.

온건한 리더십이 빛나는 친한파 마에스트로

4월 30일 쾰른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예술의전당에서 내한 공연을 갖는 지휘자 크리스토프 포펜(Christoph Poppen)은 평소 한국과의 인연이 남다르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인물이다. 바이올린과 실내악, 지휘에서 실력파 한국인 제자를 다수 배출하면서 한국과 정서적 거리를 좁혀왔다. 뮌헨 음대에서 클라라 주미 강을 가르쳤고 실내악 교수로 노부스 콰르텟을 양성했다. 2009년 파눌라 콩쿠르에서 만난 지휘자 아드리엘 김을 주목해 2010/2011 시즌 도이치 라디오 필하모닉(이하 DRP)의 부지휘자에 임명했다. DRP 감독 재임 기간에 그는 국립합창단의 독일 공연을 지휘했다. 한국에 왔을 땐 대전시향을 객원 지휘했고, 윤이상 콩쿠르 바이올린 부문의 심사위원장으로 활동하거나 기돈 크레머와 함께 통영국제음악제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투어를 함께 했다.

포펜이 한국 교향악단의 운영에 관심을 보인 것은 2010년 6.25 50주년 기념 월드 오케스트라 콘서트부터다. 월드 오케스트라는 6·25 참전국에서 모인 해외 단원들과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국내 단원의 임시 악단이었다. 포펜과 악단의 리허설 과정을 지켜본 당시 프라임 필 김홍기 단장은 “음악을 만드는 과정이 빼어나다”고 평가했다.

김 단장의 평가는 1995년부터 2006년까지 감독을 맡은 뮌헨 체임버 오케스트라 경험이나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음악감독을 맡은 DRP에서의 노하우와 맥을 같이한다. 포펜은 기능적으로 악단의 역량을 발전시키는 상세한 기술을 갖고 있다. 독주·4중주·체임버 오케스트라·대편성 오케스트라에서의 리더, 감독 경력으로 악단 사운드를 개량하는 최적화된 수순을 제시한다. 개별 악기로 시작해, 섹션과 파트, 앙상블에 이르는 발전 과정이 명확하다.

현의 미묘한 뉘앙스를 투티 전체에 조탁하는 능력이나 금관과 스트링을 대비하면서 악곡에 표정을 만드는 기술을 보면 ECM 레이블 시절, 힐리어드 앙상블과의 협업에서 보였던 실내악적 재능이 만개한 느낌이다. DRP 음악감독 시절에는 현악 단원들에게 현악 4중주단 멤버에게 요구되는 수준의 청력을 요구하며 곡의 디테일을 살려냈다. 잔 동작이 없는 간결한 비팅은 거친 사운드들도 일관되게 모양을 갖춰 나오게 하는 원천 기술로 작용한다.

포펜이 커버하는 사조는 광범위하다. 바로크부터 현대음악까지, 종교음악과 독일‐러시아의 고전, 오페라와 성악곡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에서 공히 유능한 평가를 받는다. 시대와 장르에 관계없이 곡에 숨어 있는 정서를 추출해 자신만의 음색과 화성으로 풀어내는 과정이 청년 시절 리카르도 샤이의 색채감을 연상케 한다. 차가운 현대음악에서도 온화함이 감도는 배경이다.

포펜의 온건한 리더십을 유럽 음악계가 주목한 시점은 2006년이었다. DRP 초대 감독에 부임한 포펜 앞의 최대 난관은 DRP로 통합을 앞둔, 자르브뤼켄 방송교향악단과 카이저스라우테른 방송교향악단의 인원 감축이었다. 포펜은 그 어떤 단원에게도 나가라고 종용하지 않았다. 어려운 사정에도 절대 ‘해고’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지 않았고, 단원들이 자진해 거취를 정했다.

그렇게 시작된 신뢰를 기반으로 2008년부터 DRP와의 케미스트리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욈스 레이블에서 녹음한 멘델스존, 차이콥스키 교향곡 전곡은 포펜과 DRP의 성취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기록물이다. 현재는 쾰른 체임버 오케스트라 감독과 아울러 2015년부터 홍콩 신포니에타 수석 객원 지휘자로 활동 중이며 포르투갈 마르방 페스티벌의 예술감독도 맡고 있다. 내한을 앞두고 포펜을 뮌헨 음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 2014·2015 마르바오 페스티벌에서 노부스 콰르텟·클라라 주미 강과 함께

클라라 주미 강, 노부스 콰르텟의 스승

지금까지 한국에 얼마나 자주 갔나?
세본 적은 없는데 늘 많았던 것처럼 느낀다. 너무 많은 한국인 음악가들과 연계해 음악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연주와 심사로 다섯 차례 한국에 갔다.

쾰른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함께 내한하는 클라라 주미 강과는 오랜 인연을 맺고 있다.
베를린에서 교수를 하고 있을 때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클라라를 만났다. 아주 잠시 그녀의 음악을 들었는데 진정한 신동이 무엇인지 보여줬다. 우리는 서로 베를린을 떠나야 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만나진 못했는데 그녀가 성장하고 뮌헨으로 나를 찾아와 진짜 놀랐다.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 우승자를 다시 가르치는 건 아직 성장이 필요했기 때문인가?
클라라는 더 배우고 싶다고 했다. 그녀를 처음 봤을 때보다 나도 더 나이가 들었고 지혜가 쌓였다. 그것을 공유하고픈 마음이 나에게도 있었다. 한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클라라에게 필요한 건 자신의 문화적 자양분인 유럽 문화에 대한 근원을 찾는 일이었다. 유럽 음악이 무엇인지 토론하면서 점점 더 아티스트가 되어갔다. 모차르트와 차이콥스키, 베르크에 이르는 광범위한 레퍼토리에서 최고 수준의 해석력을 보이고 있다.

어느 정도 이름값을 가진 신인이 더 큰 경연을 지망할 때 얻는 장단점은 무엇인가?
마치 카지노처럼, 콩쿠르는 결과와 무관하게 자신이 얻는 게 무엇인지 관조할 수 있어야 한다. 대중에 이름을 알리는 효과보다 음악계 유력자들이 대회 과정을 여러 플랫폼으로 주목하면서 신인의 실력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클라라의 경우, 게르기예프나 크레머와 지금처럼 연주를 주고받는 상황을 만든 건 대회 덕이다. 단점이라면 결과가 늘 실력 순서가 아님을 받아들여야 할 때 수반되는 정신적 외상이다.

많은 한국인 제자들과 연계되고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나는 지휘와 바이올린, 실내악의 교육 현장에 오래 있었는데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가 성악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어떻게 재능 있는 인재를 집중적으로 배출할 수 있는지 놀랍다. 교육적 시각에선 경이적인 일이다. 한국을 비롯해 태국·타이완·홍콩 같은 아시아인들의 사고와 정서에 친밀함을 갖고 있어서 제자도 많고 객원 지휘도 아시아로 자주 갔다.

노부스 콰르텟이 다음 단계의 도약을 위해 넘어야 할 과제를 어떻게 보는지?
20년간 나와 함께한 케루비니 현악 4중주단도 그랬듯, 항상 같이 모여야 한다는 마음을 갖고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 갖는 불안함을 잘 조절해야 한다. 넷이서 함께해야 한다는 마음이 강박으로 작용할 때 음악 면에선 어떤 점이 취약해지는지 잘 찾아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정신적인 성장이 함께할 때 그것이 가능하다.

현재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쾰른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과거 책임을 맡은 뮌헨 체임버와 어떻게 다른가?
각 체임버 오케스트라마다 고유의 체계를 갖고 있다. 뮌헨 체임버는 풀타임 악단이었다. 연중 상시 연주가 가능한 조직으로 독일에선 예외적인 사례다. 쾰른 체임버는 대다수 독일권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그렇듯 프리랜서 구조다. 정기적인 스케줄에 따라 만나서 연주하고 헤어진다. 잠시 동안의 만남이라고 음악적 수준이 떨어지는 게 아니다. 실내악에 대한 소명을 갖고 스케줄을 일부러 만든 사람들의 열의를 실력으로 집약하는 일이 내 역할이다. 자발성이라는 큰 무기를 우리가 어떻게 닦았는지 서울 관객들이 평가해주길 기대한다.

대편성 오케스트라를 책임지다가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맡는 게 경력 면에선 부정적일 수 있을 텐데.
쾰른 체임버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제안 받았을 때, 우선 콘서트홀이 좋았다. 쾰른 필하모니의 음향이라면 좋은 실내악이 가능할 거란 기대가 있었다. 협연자의 질도 좋고 단원들의 열정도 훌륭했다. 쾰른의 관객 수준이 높음을 잘 알고 있었다. 어려서 공부한 지역이 쾰른 근처 뒤셀도르프여서 쾰른 필하모니의 초창기도 잘 알고 이 지역 정서에 친근하다.

대편성 오케스트라와 체임버 오케스트라 중 당신의 철학을 옮기기에 적합한 편성은?
모든 음악은 실내악을 지향한다는 신조를 갖고 있다. 실내악적 울림이 연주자들의 귀를 열고 청중의 가슴을 일렁이게 한다는 믿음을 케루비니 현악 4중주단 시절부터 도이치 라디오 필하모닉 때까지 이어왔다. 그 믿음은 쾰른 체임버를 맡으면서 더욱 굳건해졌다. 개인적 선호로만 보자면, 최적의 소리는 체임버 규모에서 절정을 보일 수 있다.

만약 유럽에서 멀리 떨어진 곳의 감독직을 제안받는다면, 가족들은 반대할 수도 있겠다.
아내(소프라노 율리아네 반제)는 내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고 아이들도 성장해서 이제는 항상 같이 있지 않아도 된다. 내가 사랑하는 연주가들의 나라에서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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