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0일, 파리고등음악원 내 마르셀 렌도우스키 오디토리엄에서 연주회가 열렸다.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현대음악 전문 앙상블 중 하나인 ‘앙상블 2e2m’의 연주였다. 그동안 앙상블 2e2m은 프랑스 작곡가들뿐 아니라 윤이상을 비롯한 전 세계의 작곡가들의 작품 600여 곡을 초연으로 소개해왔다.
이날 필자는 연주회 직전 앙상블 2e2m 측의 요청으로 작곡가와 관객의 대화 시간에 한·불 통역을 맡았다. 이를 통해 작품과 작곡가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작품은 현재 베를린에서 거주하고 있는 작곡가 김동명의 ‘흔들리며 피는 꽃(Flower blossom with waving)’으로 도종환의 동명의 시를 바탕으로 했다. 김동명은 오늘날 대부분의 젊은 작곡가들이 그렇듯, 작곡가로서 자신의 정체성과 생존을 고민하는 한 사람이다. 작곡가 본인이 직접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밝힌 것처럼, 이번 작품을 만들 무렵 바로 이러한 생각을 심각하게 하고 있었고, 그러다 우연히 읽은 도종환의 시에서 위안을 얻으며 곡을 쓸 생각을 했다고 한다.
소프라노와 13개 악기의 앙상블을 위한 이 곡은 현재 파리고등음악원에 재학 중인 김유미가 소프라노로 노래하며 큰 갈채를 받았다. 사실 파리와 스트라스부르의 무지카 페스티벌 등에서 다수의 현대음악과 초연을 접해왔지만, 그 가운데 감동이나 다시 듣고 싶은 욕구를 주는 작품은 정말로 극소수였다. 그러나 김동명의 작품은 일종의 주요음기법이 사용되었고, 즉흥적인 음악적 제스처와 여백이 조화를 이루며 강렬한 감흥을 남겼다. 물론 단 한 번 듣는 것으로 작곡 언어가 복잡한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매우 어렵다. 하지만 좋은 곡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자극을 주거나 마음을 움직인다고 믿는다.
오늘날에는 수많은 현대음악 작곡가가 너무나 지적인 방식으로만 작품을 쓰기에 감동 없는 차가운 음악이 난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들 작곡가 중에는 작곡을 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음악가가 아닌 사람들도 있다. 반면 작곡가 김동명은 내면에 음악을 지니고 있다. 그는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서, 작품을 형식과 구조의 틀에 넣기보다는 순차적으로 음들을 선택하면서 작품을 써 나간다고 설명했다. 거기에 그의 작품의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본능과 직관의 힘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가 자신의 작품이 연주된 뒤 무대에 올라 인사하면서 기뻐했던 모습, 그리고 그 기쁨이 연주자들 전체에 전달돼 그들마저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볼 때 작곡가 김동명의 미래가 보였다. 사실 프랑스 음악가들이 무대에서 그렇게 웃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하지만 김동명의 순수한 기쁨의 울림은 매우 강렬한 진폭을 만들어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고 다스리는 프랑스 사람들의 마음까지 움직일 정도였다. 그는 연주자들과 청중이 기뻐하는 작품을 앞으로도 많이 작곡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인간적·내면적 힘을 지닌 사람은 다른 방식으로는 곡을 쓸 수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