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출신의 저명한 저술가 헬레나 마테오플로스는 23명의 지휘자를 소개한 자신의 첫 번째 책 ‘마에스트로’에서 제임스 러바인(James Levine)을 ‘메트의 지휘자’라고 적었다. 다른 표현이 필요 없을 만큼 제임스 러바인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상징이다.
28세에 메트와 인연을 맺은 제임스 러바인이 지난 5월 7일, 모차르트 ‘후궁 탈출’로 메트 음악감독으로서 마지막 무대를 치렀다. 그의 2557번째 연주였다. 이날 소프라노 캐슬린 김은 블론트헨 역으로 출연했다. 연주를 마치자 메트 오페라 오케스트라 악장 데이비드 천이 휠체어에 몸을 기댄 러바인에게 꽃다발을 전했다. 관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내며 40년 동안 무대를 지켜온 노장을 향한 존경을 표했다.
제임스 러바인은 열 살 때 신시내티 심포니와 협연 데뷔를 치를 만큼 빛나는 재능을 지닌 피아노 신동이었다. 그는 열세 살 때, 루돌프 제르킨과 공부하기 위해 말보러 페스티벌을 찾았다가 우연히 ‘코지 판 투테’를 지휘하게 되며 자신의 커리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했다.
의류업에 종사하던 전직 바이올리니스트 아버지와 배우 활동을 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러바인은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유대교 회당의 성가대를 이끌던 음악가였다. 어린 시절, 러바인은 말더듬증을 앓았다. 어머니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도 아들의 증상이 나아지지 않자 병원을 찾았다. 주치의는 러바인이 좋아하는 피아노를 제대로 가르쳐보라고 조언했고,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러바인은 음악에 집중하며 언어장애를 완전히 치료했다.
음악가의 집안에서 태어난 것도 행운이었지만 그의 내면 역시 음악으로 다스려질 만큼 음악은 어린 러바인에게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는 레코드판을 축음기에 걸어 음악을 들을 때면, 종종 뜨개바늘을 오른손에 쥐고 엉터리 지휘를 했다고 한다. 아홉 살 때에는 아예 집 안에 작은 오페라 무대를 꾸며놓고 연출과 노래까지 해야 직성이 풀릴 정도였다.
LA필하모닉 전 수석 비올리스트 앨런 드 베리치는 자신의 죽마고우인 러바인을 “수십 편의 오페라를 원어 가사까지 완벽하게 외우는 친구”라고 회상한다. 고등학생이던 러바인은 애스펀 음악제에서 자신의 전공 악기 외에 여러 음악을 접했고,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본격적으로 음악 수업을 받았다. 졸업 후 볼티모어 심포니를 거쳐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부지휘자로 활동했다. 고전 레퍼토리 명장이던 조지 셀과 함께 6년 간 일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미국의 거의 대부분의 주요 악단을 지휘하며 지휘자로서 커리어를 쌓았다.
메트는 다음 시즌, 명예 음악감독으로서 러바인이 이끄는 세 편의 작품을 선보일 것이라 발표했다. 그의 고질적인 허리 통증과 파킨슨병이 더 이상 그를 괴롭히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