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6일~7월 24일
광림아트센터 BBCH홀
배경 지식은 필수! 알고 봐야 재밌는 뮤지컬
1970~1980년대 록 음반 중에는 스토리를 지니고 있는 경우가 꽤 있다. 사회 비판이나 철학적 고뇌를 기승전결의 이야기에 담아 하나의 음반으로 제작하는 방식이다. 핑크 플로이드의 ‘더 월(The Wall)’이나 더 후의 ‘토미(Tommy)’ 등이 대표적이다. 음악을 듣다 보면 뮤지컬이 떠오르고, 무대를 보다 보면 음반이 다시 그리워지는 재미난 사례들이다.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의 멤버 겸 작곡가였던 에릭 울프슨의 작품들도 그렇다. 대중에겐 ‘타임(Time)’이나 ‘아이 인 더 스카이(Eye in The Sky)’로 사랑받았는데, 열 장의 음반을 제작한 후 팀은 해체됐다. 이후 에릭 울프슨은 뮤지컬 제작자로 활동을 이어갔는데, 우리나라에서도 공연된 ‘갬블러’나 창작 뮤지컬 ‘댄싱 섀도우’가 그의 손길을 거쳐 완성된 작품들이다. 그리고 현재 우리말 버전으로 공연 중인 ‘에드거 앨런 포’는 얼마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난 그의 유작이다.
뮤지컬에 대한 구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1975년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가 발표한 첫 음반 제목이 ‘미스터리와 상상의 이야기들’로, 바로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들을 모티브로 만든 음악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수백만 장 이상 팔려나간 이들의 대표적인 명반 중 하나다. 팀 해체 후 에릭 울프슨은 다시 ‘포: 미스터리와 상상의 더 많은 이야기들’을 발표했는데, 이 음반의 수록곡들이 뮤지컬에 등장하는 넘버들이다.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를 보며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 특유의 음악적 향기에 심취하게 되는 이유다.
에드거 앨런 포(1809~1849)는 ‘저주받은 시인’ ‘신이 시기한 천재’ 등의 별칭으로도 불리던 미국 작가다. 강렬한 영감으로 가득하던 자신의 작품들과 달리, 정작 그는 비극적이고 암울했던 생애를 보낸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세상을 떠난 것은 마흔도 채 되기 전이었는데, 알코올과 마약 중독에 빠져 몇몇 정신병원을 전전하다 행려병자의 모습으로 최후를 맞았다. 훗날 ‘셜록 홈즈’ 탄생의 단초를 제공하고 샤를 보들레르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천재 작가의 삶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말 그대로의 비극이었다.
에드거 앨런 포의 극적인 삶은 그의 죽음을 둘러싼 수많은 가설을 낳았는데,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에서는 그중 경쟁자이자 비평가·목사였던 그리즈월드와의 대립을 전면에 내세웠다. 마치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의 삶을 극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살리에리를 등장시킨 것과 비슷한 구도다. 극의 마지막 부분에서 새로운 인생의 출발을 준비하던 에드거 앨런 포에게 폭력배를 보내 강제로 술을 먹이며 다시 알코올중독에 빠지게 하는 그의 잔혹함은 마음 한편을 울리는 애잔함으로 오랜 잔상을 남긴다.
작품의 상징적 이미지는 검은색 깃털이 달린 펜이다. 마치 까마귀의 깃털 같은 모양으로, 퇴폐적이고 비극적이던 포의 일생을 상징한다. 무대에서는 대형 날개 모양의 비주얼 효과로도 재현되어 몽환적 이미지를 그린다. 그의 시 ‘갈가마귀’를 읽고 본 공연을 감상하면 더욱 강렬한 인상을 받을 수 있다.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의 몽환적인 음악을 좋아한다면 꼭 경험해볼 만하다.
사진 (주)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