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김계희

고민하는 청춘은 언제나 옳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11월 1일 12:00 오전

지난 9월, 에네스쿠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한 김계희. 더 큰 무대를 꿈꾸며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젊은 음악가를 만나다

 

1993 청주 출생
2001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예비학교 입학
2006 예원학교 입학
2008 그네신 주니어 콩쿠르 우승 및 특별상· 러시아 차이콥스키문화재단 특별상
2009 서울예술고등학교 입학·영 차이콥스키 콩쿠르 3위
2010 미국 커티스 음악원 입학
2013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입학·현 학부 4학년 재학
2014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박성용영재특별상
2016 토룬 바이올린 콩쿠르 2위 및 바흐 특별상·조르주 에네스쿠 음악 콩쿠르 우승 및 두 개의 특별상

바이올리니스트 김계희는 태어나 두 번째 걸음마를 배우듯 찬찬히, 온 진심을 다해 넓은 세상을 향한 소중한 첫걸음을 뗐다. 올해로 스물세 살. 해외 콩쿠르에 본격적으로 참가하기 시작한 그녀는 폴란드에서 열린 토룬 바이올린 콩쿠르에 참가해 2위에 올랐고, 9월에 열린 에네스쿠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김계희’란 이름을 세계무대에 우뚝 세웠다. 기쁨도 크지만 무대에 대한 책임감에 마음이 무겁다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자신만의 철학을 견고히 다지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젊은 음악가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제법 쌀쌀해진 날씨. 청담동 한 카페에서 만난 김계희는 연신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나, 김계희의 시작

부모님이 음악을 전공하진 않으셨지만, 두 분 모두 클래식 음악 애호가였어요. 덕분에 집에 명반이 많았고, 그 음반들을 들으며 자랐죠. 그러던 중 우연히 아버지 친구분 댁에 놀러갔다가 바이올린을 보았어요. 그 집에는 다양한 악기가 있었는데, 아버지 말씀으론 제가 다른 악기는 제쳐두고 유독 바이올린에만 관심을 보였대요. 그렇게 맺어진 바이올린과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네요. 네 살에 시작해 본격적으로 배운 건 여섯 살 무렵이었어요. 피아노도 잠시 배웠지만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는데, 바이올린은 희한하게도 배우는 내내 재미있었어요.

연주자로서 전환점이 된 순간

콩쿠르 우승도 제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한국에서 음대에 진학한 일이 큰 전환점이 됐다고 생각해요. 고등학생 때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했는데 그땐 음악을 하는 자체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음악에 대한 열정과 욕심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았어요. 음악이 제 삶의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하면 할수록 오히려 나 자신을 잃어간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죠. 그런 상황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대 음대에 진학했고, 비로소 설명할 수 없는 갑갑함에서 벗어나 새로운 자세로 음악을 대할 수 있었어요. 처음으로 음악 외의 분야를 공부했고, 다양한 영역의 사람들을 만났죠. 세상엔 이렇게나 재미있는 것이, 배울 것이 많은데 저는 바이올린만 바라보고 살았던 거예요. 그제야 다짐했죠. ‘바이올린이 내 삶의 전부가 되게 하지는 말자’고. 그렇게 마음먹고 난 후 오히려 편하게 음악을 즐길 수 있던 것 같아요. 한 발짝 떨어져 음악을 객관적으로 대할 수 있었고, 대학 생활도 즐길 수 있었죠.

예술가로서 삶을 위해 감내한 것

고등학생 때까지는 ‘희생’이란 단어를 모르고 살았어요. 워낙 어릴 때 이미 진로를 정했고, 애초에 다른 길을 생각해본 적도 없었거든요. 대학에 진학한 후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니 생각보다 음악가가 되기 위해 희생한 것이 꽤 있더라고요. 특히 시간적인 부분에서요. 바이올린이라는 악기는 하루라도 손에서 놓으면 연주에서 바로 티가 나거든요. 매일 연습해야 했고, 악기 잡는 시간이 많다 보니 일상생활을 즐길 시간이 없었어요. 대학생이 됐지만 동아리나 단체 활동은 꿈도 못 꿨죠. 나름대로 즐겁게 학교생활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악기 하나만 바라보며 온전히 즐기지 못한 것들이 조금은 아쉬워요.

에네스쿠 콩쿠르에서 우승하기까지

아직까지도 에네스쿠 콩쿠르에서 우승한 일이 믿기지 않아요. 해외 콩쿠르를 제대로 준비해 참가한 건 올해 들어서의 일이라 결과에 대한 기대를 전혀 하지 않았거든요. 오로지 참가에 의의를 두고, 준비하는 과정 자체에 집중했죠. 에네스쿠 콩쿠르는 다른 경연과 달리 총 4차에 걸쳐 10곡을 소화해야 하는 일정이라 결선 직전에는 체력적 한계에 부딪혔어요. 3차까지는 비교적 즐긴 것 같은데, 4차에선 체력이 완전히 바닥나 만족스러운 무대를 보여드리지 못했죠. 아쉬운 마음으로 무대에서 내려왔는데 우승을 하게 되어 내가 이 상을 받아도 되는 건가, 싶었어요. 그러면서도 무척 감사하더라고요.

무대에 대한 갈망

콩쿠르는 제 또래 연주자들에게는 필수불가결한 조건이에요. 제가 콩쿠르에 참가하는 이유는 이름을 알리기 위해, 또 개인적인 커리어를 쌓기 위함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무대에 설 기회를 한 번이라도 더 얻기 위해서죠. 연주할 수 있는 레퍼토리도 넓혀나갈 수 있고요. 우리나라는 음악가를 위한 무대가 많은 나라가 아니고, 어느 정도 커리어가 쌓이지 않으면 기회조차 얻기 어렵잖아요. 그래서인지 무대에 대한 갈망이 커요. 당장이라도 무대에 서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요. 더 많은 무대에서 다양한 연주자와 함께하며 이전에 몰랐던 새로운 것들을 많이 익히고 싶어요.

카메라를 든 바이올리니스트

연주나 연습 외에 대부분의 시간은 사진을 찍으러 다녀요. 사진전이나 전시를 보러 다니기도 하고요. 잘 찍지는 못하지만 워낙 혼자 있는 걸 즐기는 편이라 카메라와 둘이 있는 순간이 행복해요. (직접 찍은 사진이라며 수줍게 건넨 것을 받아보니 실력이 수준급이다.) 렌즈를 통해 온 세상을 둘러봐요. 사람도, 풍경도. 간혹 혼자 있는 시간을 못 견뎌 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그 친구들은 홀로 연습하는 것도 힘들어 하더라고요. 하지만 전 혼자 여행을 다닌다거나, 오롯이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즐겁고 좋아요.

평단과 대중에게 듣고 싶지 않은 말

진실성이 없다는 말은 정말 듣고 싶지 않아요. 저 또한 청중에게 가벼운 음악을 들려주고 싶지 않고, 내실 없는 연주를 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거든요. 진중하고 깊이 있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그리고 음악 안에서 놓쳐서 안 될 부분은 확실하게 챙기면서도 나만의 음악, 김계희만의 소리를 내고 싶어요.

청춘의 고민, 젊음의 행진

아직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있지만 내년에 졸업할 생각을 하면 설레기도 하고 걱정도 돼요.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진로가 정해져 있지만, 그 이름을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선 갈 길이 아주 멀거든요. 앞으로 치러야 할 콩쿠르들도 그렇고, 지금 당장은 내후년에 유학을 어디로 갈지도 고민이에요. 먼 미래에 대한 추상적인 목표를 세우기보단 앞에 놓인 일에 최선을 다하며 오늘보다 내일 더 발전하는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 아직은 꿈이라는 존재가 막연하고 불안하게 느껴지지만, 이렇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제 길이, 또 제가 음악을 하는 목표가 뚜렷이 보이지 않을까요?

사진 박진호(studio B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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