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첼로와 청초한 피아노의 행복한 그 속삭임
따뜻하게 감싸 안는 첼로 선율과 투명하게 내려앉는 피아노 선율. 첼리스트 이강호와 피아니스트 이민영은 자신의 악기와 참 어울리는 모습을 지녔다. 자상한 미소와 여성스러운 눈빛은 이 부부의 앙상블이 어떤 조화를 이루어 자신들만의 색깔을 선사할지 가늠케 한다. 이강호·이민영 부부를 인터뷰하며 내내 느낀 건 편안함이었다. 물처럼 잔잔하게 서로가 서로를 향해 흐르고 있는 자연스러운 분위기는 열정적인 이강호와 지적인 이민영의 음악을 조용히 품고 있는 듯했다.
얼마 전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 연주 프로젝트를 마친 이들 부부는 요즘 한참 학교의 학기말 정리를 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강호는 2015년과 2016년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 시리즈를 통해 첼로 레퍼토리에서 음악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베토벤 작품을 아내와 함께 완성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이민영에게도 베토벤은 오래전부터 연구하고 도전하고 싶었던 레퍼토리다.
“베토벤 첼로 소나타를 남편과 함께 연주하면서 첼로라는 악기를 통해 음악을 표현하고자했던 베토벤을 새롭게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베토벤 첼로 소나타에서 피아노의 역할은 무척 중요하죠. 하지만 무엇보다 첼로와 조화를 이루어 두 악기가 서로를 살릴 수 있는 무대가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음악의 주제를 교환할 때도 서로 배려해 서포트해주려고 했고요. 남편과 두오연주를 할 때 그야말로 앙상블이라는 장르에 가장 잘 어울리는 조합이란 생각이 들어요. 특히 베토벤 전곡 연주때는 시간적으로도 함께할 수 있는 부분이 다른 연주자들보다 많다 보니 서로 음악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고민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았고요. 확실히 깊이에 있어 다른 연주 때와는 달랐던 것 같아요.”(이민영)
이강호 역시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 연주는 그동안 각자 쌓아온 음악적인 히스토리를 모아 정리할 수 있었던 시간이어서 더 의미 있었다고 말한다.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을 연주하면서 베토벤의 음악적 변화를 디테일하게 느끼고 전체적인 음악세계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내의 연주도 객관적으로 듣게 되었고요. 아내가 누구보다 아카데믹하고 섬세한 연주자라는 걸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다른 연주자와 실내악을 할 때는 아무래도 각각 악기주자로서 연주에 집중하게 되는 반면, 아내와 연주할 때는 둘이 하나가 되는 팀으로서의 성공을 더 추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이강호)
그는 연습하는 과정에서는 서로 솔직하고 치열하게 고민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훌륭한 무대를 보여줄 수 있는 것 같다며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 연주를 통해 학생들을 가르치며 함께 나눌 이야기들도 많아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강호·이민영은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와 동덕여대 교수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먼저 한예종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건 이강호. 교육자로서는 선배다.
“남편이 여러 가지로 많이 도와주죠.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어려운 점을 공유하면서 격려도 해주고요. 동덕여대에서 교수로 재직한 지 3년째인데, 교수님들이 모두 학구적이고 가족적인 분위기에요. 학생들의 수업 태도도 정말 좋고 배우려는 의지도 강하죠. 모두들 새로운 분야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학생들이 저를 믿고 의지한다는 걸 느끼기에 더 책임감이 느껴지고 열심히 하고 싶어요.”(이민영)
“한예종 학생들은 워낙 어린 시절부터 음악 하나만을 하면서 자란 친구가 많아서 그런지 자신의 연주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이 좀 강한 편이죠. 전공이니 잘해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대학은 다른 측면에서 보면 사회에 나가기 전, 마지막 단계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사회 일원으로서 어떤 사명감을 갖고 나아가야 할지, 어떤 리더가 될지 그 훈련을 받는 것도 아주 중요한 부분이죠. 얼마 전 읽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라는 책에 인간이 인류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훌륭한 신체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서로 함께 일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이라고 쓰여 있더군요. 사회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합의를 이뤄내어 국가를 만들고, 민족이 탄생하는 과정은 결국 사회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죠. 예술의 사회적 역할이 많이 중요한 이 시점에서 예술을 전공한 학생들의 시선 역시 넓고 깊어져야 하리라 봅니다. 그런 면에서 사회와 예술을 연결하는 것에 대한 방법을 많이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이강호)
인내가 맺어준 인연
이강호와 이민영은 예일대 음대 석사 과정 중에 만났다. 이강호는 스와스모어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예일대 대학원에서 첼로를 공부할 때였고, 이민영 역시 서울대를 졸업하고 예일대 대학원에서 계속 심도 있는 음악에 빠져 있을 때다.
“예일대 석사과정을 마치려면 다른 악기도 함께 공부하는 코스를 마쳐야 하는데 그때 아내를 만났어요. 처음에는 연주 파트너로 친하게 지내다 제가 무작정 쫓아다녔죠.(웃음) 그런 제가 부담스러웠는지 아내는 제가 멀리서만 보여도 다른 길로 돌아갔어요. 그래도 계속 쫓아다닌 끝에 결혼까지 하게 되었죠.”(이강호)
“남편을 피해 다닌 건 아니고 제 성격이 워낙 내성적이에요. 남편은 선하고 한결같은 사람이었어요. 인간적인 매력이 있었죠. 그리고 무엇보다 남편의 음악이 좋았어요. 함께할 땐 잘 모르다가 관객이 되어 앉아 듣고 있으면 남편 음악의 깊이가 마음에 와 닿더라고요. 같은 음악가로서 남편을 무척 존경해요.”(이민영)
아들, 딸을 둔 이 부부는 함께 공연 가고 또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도 다니며 가족애를 다지고 있다. 워낙 예술을 좋아하는 가족들 덕에 가족끼리 음악회장도 자주 찾는다.
“작년 첼리스트 스티븐 이설리스가 내한했을 때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모시고 공연을 보러 갔었어요. 장인어른이 여든이 넘으셨지만 지금도 아침마다 세계의 주요 신문을 다 읽으시고 중요한 기사를 스크랩하시거든요. 첼리스트 스티븐 이설리스에 대한 기사를 캡처해 제게 보내주시는 바람에, 마침 예정되어 있었던 내한 공연을 함께 모시고 가게 되었죠. 듣기 어려울 수도 있는 작품들이었는데 무척 좋아하셨어요.”(이강호)
이강호와 이민영의 아들과 딸은 현재 모두 첼로를 배우고 있다. 피아노는 너무 어려운 악기여서 이민영이 반대했다고. 옆에서 ‘첼로는 그럼 배우기 쉬운 악기인가?’라고 이강호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피아노는 워낙 혼자 해야 해서 그런지 어려서부터 외로움을 많이 느꼈어요. 누군가와도 함께 연주하고 또 모여서도 할 수 있는 악기를 배우게 하고 싶었어요. 물론 아이들이 계속하고 싶다 하면 전공도 하면 좋겠지만, 우리 부부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걸 시키자는 데에서는 생각이 같아요. 하지만 어느 분야든 좋아해서 그걸 즐길 수 있기까지는 인내가 필요하잖아요. 때로는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훈련도 필요하고요. 아이들에게 그런 부분의 중요성도 함께 가르치고 있어요. 음악은 전공이 아니어도 사고를 깊게 하고 아름다운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힘을 갖고 있죠. 그래서 아이들이 계속 음악을 떠나지 않고 좋아했으면 좋겠어요.”(이민영)
따뜻하고 자상한 성품을 지닌 이강호는 가정에서도 백점짜리 남편이고 아빠다. 물론 한국에서 교수와 연주 활동을 하면서 미국에 있을 때만큼은 가정 일을 도와주지 못하지만, 아내와 아이들에게 언제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고 있다. 가족들에게 종종 새로운 아이디어와 유머로 깜짝 선물과 웃음을 전하기도 한다.
“남편도 조용한 성격이지만 저보다는 사람들과 더 잘 어울리는 편이에요. 긍정적인 성격이라 친구도 많고 학생들도 잘 따르고요. 낯을 좀 가리는 저에게 그런 면에서 남편은 많은 도움과 조언을 해줘요.”(이민영)
“아내는 아이들과 양가 부모님들에게 무척 헌신적인 사람이에요. 그래서 남편인 저에게 더 관심을 가져달라 투정할 때도 가끔 있지만요.(웃음) 워낙 어린 시절부터 가정에서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서 그런지 성품이 따뜻하고 다정해요. 자매와 남매끼리도 굉장히 서로 아끼고 친하죠. 반면 음악적으로는 굉장히 학구적이고 철저해요. 한만디로 모범생과죠. 사실 연애할 때도 얼마나 연습을 많이 하던지 제대로 데이트할 시간조차 없었어요.(웃음) 어느새 학생들을 훌륭히 가르치며 학교 행정 일도 완벽하게 해내는 모습을 보면 옆에서 흐뭇하고 자랑스러워요.”(이강호)
자녀들에게는 ‘배려’의 덕목을 가장 중요하게 가르치고 싶다는 이들은 아이들이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찾을 때까지 따뜻하고 편안한 보호막이 되어주고 싶다고 말한다.
“사회가 아무리 각박하다해도 가족 안에서는 믿음이 꼭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가족끼리는 그래서 더 정직하고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하고 서로를 위로해 주고 보듬을 수 있었으면 해요.”(이강호)
이민영은 엄마가 되고 나서 달라진 점이 많다고 한다.
“세상을 좀 더 넓고 너그럽게 바라보게 되었어요. 삶의 작은 기쁨, 감사의 소중함을 더 느끼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양가 부모님들이 더 애틋하게 느껴지고 함께 계실 때 좋은 것을 많이 나누고 싶어요. 연주자로서도 시간이 지나면서 하루하루 성장하는, 더 깊고 진지하게 청중과 소통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이민영)
“각자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정이 행복하려면 가족 구성원에 대한 배려가 반드시 필요하죠. 그리고 그 희생을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받아들일 때 진짜 가족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가정에서는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교단과 무대에서 꾸준히 노력하며 지금까지 무대에서 연주하지 못한 작품에 새롭게 도전하고 발전하는, 그런 음악가가 되고 싶어요.”(이강호)
반 고흐는 ‘부부란 둘이 서로 반씩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서 전체가 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첼로의 우아한 감성이 피아노의 청초한 선율과 만나 펼치는 하모니. 누군가에게 꽃이 되는 과정은 이토록 아름답다.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 되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이들의 음악처럼.
사진 박진호(studio B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