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기자들이 꼽은 화제의 무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7년 2월 1일 12:00 오전

❶자기 확신, 그로 인한 자유로움

조성진 피아노 독주회 

1월 4일
롯데콘서트홀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독주회가 끝난 직후 다수의 일간지에 리뷰 기사가 실렸고, 본지 124페이지에도 피아니스트 조은아의 자세하고 친절한 글로 연주회 당일의 공기를 느낄 수 있지만, 대부분 첫날 연주의 내용만을 담고 있어 이곳에 4일의 연주회를 기록한다. 조성진은 3일 베르크 피아노 소나타 Op.1,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19번 D958, 쇼팽 발라드 전곡을 연주했고, 다음 날에는 마지막 프로그램만 쇼팽 ‘24개의 전주곡’으로 바꿔 관객과 만났다.

2015년 쇼팽 콩쿠르 우승 이후 한국에서 처음 개최한 독주회에서 그가 보여준 독자적 해석과 과감한, 흥미진진한 진행은 많은 이를 놀라게 했다. 특히 기자는 젊은 연주자의 직관적 표현에 완전히 반해버렸다. 곡에 대한 기술적·정서적인 이해와 테크닉의 높은 완성도, 여기에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더해진 연주자만이 자유로운 연주를 펼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조성진은 그야말로 음악을 누리고 있었다.

쇼팽 ‘24개의 전주곡’의 첫 곡부터 장악력을 보여준 조성진은 4번에서의 섬세한 터치로 청중을 더욱 몰입하게 만들었다. 화음을 꾹꾹 눌러나가는 왼손은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다이내믹을 촘촘하게 끌어올렸고,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가는 오른손의 멜로디는 그 안에서 스토리를 만들었다. 이는 6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5번과 8번, 10번에서는 젊은 연주자의 면모를 과감하게 보여줬다. 거칠고 뜨거운, 이 시대의 이야기를 그대로 들려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9번에서 조성진은 화음의 울림을 통한 여운을 관객이 자연스럽게 느끼도록 조절했다. 12번에서는 곡에 담긴 감정을 꾸밈없이 꺼내놓아 음악에 대한 경외심이 들도록 했다.

15번 ‘빗방울 전주곡’에서는 곡 전체 구조에 대한 혜안을 보여주며 감정을 효과적으로 끌어올렸다. 동음을 반복하는 가운데 비장하고도 구슬픈, 흥미로운 스토리가 펼쳐졌다. 16번의 빠르게 휘몰아치는 노트들로 관객을 압도한 조성진은 이후 시종 거친 페달링으로 귓가를 자극했다. 마지막 24번 D단조는 15번에 이어 또 한 번의 압권이었다. 왼손의 격렬한 움직임으로 청중을 무아지경으로 몰아넣은 그는, 이와는 대조되는 빠르고 명확한 멜로디로 감정의 최고조를 이끌었다. 온몸으로 마지막 음을 세 번 누른 그 순간에는 진정 짜릿했다.

이번 리사이틀은 조성진을 둘러싼 각기 다른 시선이 아무런 의미가 없을 만큼 연주자 스스로 자신을 증명해낸 자리였다. 스물셋 나이의 조성진은, 이제 막 인생의 전주를 마쳤다. 김호경

❷인류는 살아남을 가치가 있는가

연극 ‘인간’

2016년 12월 16일~2017년 3월 5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인류는 살아남아야 할 가치가 있는가?’에 대한 주제를 다룬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연극 ‘인간’은 한 여자와 한 남자가 우주 어딘가에 있는 유리 감옥에 갇히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라울과 사만타. 어둠 속에서 이들은 자신들이 왜 이곳에 갇혔는지 서로 답답해하며 고통스러워한다. 천국인지 리얼리티 쇼에 참여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무대는 일반적인 프로시니엄 무대에서 벗어나 2면 무대를 활용해 객석에서 유리 감옥에 갇혀 있는 이들을 보는 것 같은 효과를 내며 긴장감과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그리고 같은 인간으로서 이들과 함께 고민하며 이중적 위치에서 이들의 문제를 바라보고 퍼즐을 맞추게 된다.

화장품의 부작용을 알아보기 위해 동물실험도 마다않는 소심하고 고지식한 과학자 라울 역은 전병욱이, 동물을 조련하는 활달하고 상상력 풍부한 사만타 역은 안유진이 맡았다. 지구가 멸망했고 자신들이 최후의 인류라는 사실이 드러나자 그들은 ‘인류가 과연 살아남아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인가’에 대해 격렬히 토론하기 시작한다. 인간을 잔인하고 이기적인 존재로 바라보는 라울과 인간을 선하고 사랑과 관용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사만다는 선과 악을 넘나드는 인간의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잘 보여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인간이 우주 속에서 먼지처럼 작은 존재임도 실감하게도 한다.

독특했던 무대와 음악, 장치, 그리고 섬세한 연출 덕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인간’은 베르나르 특유의 유머와 독특한 상상력, 서스펜스가 가득 찬 연극으로 새롭게 탄생할 수 있었다. 연극은 희곡을 바탕으로 해 전체적인 내용과 구조에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무대로 옮겨지는 과정은 국내 제작진의 의도에 따라 연출되었고 무대장치와 음악도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각색을 맡은 문삼화 연출은 2인극 특유의 친밀감을 극대화하여 외국어 대사가 어색하지 않도록 우리말로 매끄럽게 수정해 집중력을 높였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이 작품을 통해, 과연 우리는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그 인간은 우주에서 어떤 존재일지 우리에게 사색의 공간을 넓혀주고 있는 듯하다. 때로는 경쟁과 치열한 투쟁을 즐기면서도 서로를 돕고 아끼고 상생하는 인간의 모습은 유리 공간 너머 있는 또 다른 인간인 우리들에게 존재의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했다. 곳곳에 해학과 웃음, 긴장이 숨어 있어 몰입도도 높았다. 특히 다른 시선으로 인간을 바라보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독특한 작가적 시점이 돋보였다. 국지연

❸ ‌그로테스크 창극을 만나다

창극 ‘레이디 맥베스’

2016년 12월 21~30일
국립국악원 우면당

어두운 무대 어디선가 구음(口音)이 들렸다. 그것은 신음 같기도, 혹은 웃음 같기도 했다. 극은 시종 그로테스크했다. 환상에서 현실로, 다시 환상으로,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들며 괴기스러움을 토해냈다. 음악, 빛, 오브제, 몸짓, 모든 것이 그녀를 휘저었다. 피아(彼我)의 파멸을 이끈 레이디 맥베스를.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서 맥베스 부인에 집중한 작품인 한태숙의 연극 ‘레이디 맥베스’가 창극으로 새롭게 선보였다. 물체극을 기반으로 국악적 요소를 곳곳에 지닌 원작 연극에 ‘소리’를 비롯한 전통적 사운드를 더욱 적극적으로 사용한 것이 새로움의 포인트였다. 국립국악원 우면당의 자연음향 공간으로의 재개관 기념이라는 것도 기대치에 한몫을 더했다. 연습 현장 취재를 통해 창극으로 태동하는 과정을 지켜본 기자의 입장에서는 감회가 남달랐다. 더불어 ‘창극으로의 변신이 과연 옳은 선택이었나?’라는 의문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다.

어쩌면 이 작품에게 ‘창극’이라는 이름은 다소 무거웠을지도 모른다. 기존의 익숙한 창극을 기대한 이라면 다소 실망했을 수도. 창이 넉넉히 흐르거나 음악적 흐름이 우세한 극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게 창극이 맞느냐”고 의아해하는 평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창극’ 대신 조금 더 넓은 의미를 수용하는 장르명을 붙였다면, 또는 ‘연극의 새 버전’이라고 내걸었다면 조금 달랐을까 싶기도 하다.

다만 이런 대답을 내놓고 싶다. “이것도 창극이다”라고. 연출가 한태숙은 “오브제 대신 창이 지닌 장악력이 무대를 채울 것”이라고 제작 과정에서 밝힌 바 있다. 말마따나 음악은 철저히 도구로 쓰였다. 작곡가 계성원은 가야금, 생황, 타악기, 더블베이스의 네 가지 악기로 최대한 간결하고 경제적인 구성의 음악을 선보였다. 이러한 기조 아래 배우들은 자신의 몫을 십분 해냈다. 정은혜는 신경질적인 정신의 극한에 도달하는 레이디 맥베스를 보여주었고, 수년간 전의 겸 맥베스 역을 맡아온 정동환은 역시나 안정적인 연기를 펼쳤다. 도창(염경애)과 소리시종(박진희)은 극에서 전통적 색채를 가장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였다. 여기에 ‘자연음향’ 공간인 우면당의 진가가 더해져, 배우의 작은 속삭임과 현의 떨림까지 객석에 그대로 전달되었다.

극이 진행되는 동안 배우들이 무대 오른쪽 벽에 검은 점토를 던지고 바르는 것은 곧 레이디 맥베스의 피폐한 마음의 표상이었을 터. 동시에 이는 물체극으로서 원작의 정체성을 이어받았다는 증거와도 같았다. 오브제뿐 아니라 조명도 효과적으로 쓰였다. 우면당이 국악 무대뿐 아니라 연극 공간으로도 적극적으로 활용되면 어떨까 싶을 정도로 효율적인 세팅이었다. 물론 이 또한 한정된 공간을 영리하게 활용하는 한태숙의 연출력에서 비롯됐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물체극 기반의 어두운 정서 가득한 기존의 연출에 국악이 더해진 이번 변신에 박수를 보낸다. 이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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