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루 로이드 웨버, 성공적인 뮤지컬의 표본을 만든 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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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8년 4월 1일 12:00 오전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70세 기념 갈라 콘서트가 2018년 한국·영국·미국·호주 등 세계 곳곳에서 열린다

영국의 뮤지컬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역사상 가장 성공한 상업 작곡가’(‘뉴욕 타임스’지)로 불린다. ‘오페라의 유령’ ‘캣츠’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로 자신의 흥행 기록을 갈아치웠고, 토니상·올리비에상 등을 석권했으며, 1992년에는 문화예술 발전에 공헌한 것을 인정받아 영국 왕실로부터 작위를 받았다. 여기까지는 앤드루 로이드 웨버에 대해 잘 알려진 내용이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레퀴엠’을 작곡해 그래미상 컨템퍼러리 작곡 부문(1986)에서 수상한 바 있다. 파가니니의 ‘24개의 카프리스’를 자신의 스타일로 편곡한 앨범으로 영국 팝 차트의 상위권에 오르기도 했다. 학창 시절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마리아 칼라스와 음악적으로 교류했던 것을 강조하고, 때때로 상업 음악가로 불리는 것에 대해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을 의식하기도 한다. 음악적으로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였던 천재 작곡가는 이제 TV쇼에 출연해 스토리텔링을 만드는 엔터테이너이자 런던 예술계를 움직이는 사업가 겸 정치가가 됐다.

오는 5월 2일과 4~6일, 한국에서 그의 70번째 생일을 기념하는 콘서트가 개최된다. 웨버 사단의 뮤지컬 배우 라민 카림루(팬텀 역)와 애나 오번(크리스틴 역)이 콘서트 버전의 ‘오페라의 유령’을 선보인다. 친한(親韓) 브로드웨이 배우 브래드 리틀과 한국어 버전 ‘오페라의 유령’ ‘에비타’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서 각각 활약한 바 있는 김소현·정선아·마이클 리가 갈라 콘서트에 출연해 웨버의 14개 작품 속 히트곡과 숨은 명곡을 들려준다.

 


‘오페라의 유령’, 웨버의 찬란한 성공작

 

: 2012년 ‘오페라의 유령’에서 팬텀을 연기한 브래드 리틀

 

 

 

 

 

 

 

 

 

 

 

 

 

 

 

 

 

 

 

 

 

 

 

 

 

 

지난 3월,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회고록 ‘언마스크드(Un masked)’가 영국에서 출간됐다. 책의 앞머리에 웨버는 ‘원래는 자서전을 아주 얇고 간단하게 쓰려고 했지만, ‘오페라의 유령’을 처음 무대에 올린 날을 시작으로 내 인생 전체에 얼마나 많은 경탄할 만한 일들이 있었는지 떠올리다 보니 500페이지가 돼버렸다’고 적었다.

‘오페라의 유령’은 웨버의 인생에 빼놓을 수 없는, 전 세계 공연예술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1986년에 영국에서 초연된 이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런던과 뉴욕에서 공연되고 있으며, 총 27개국 145개 도시에서 번안·공연됐다. 2011년 로열 앨버트홀에서 열린 25주년 특별 공연은 유럽과 미국·캐나다·일본에 생중계되었고, 영상물로도 만들어져 한국의 극장에 걸렸다. 이날 커튼콜에는 웨버와 제작자 캐머론 매킨토시, 웨버의 전 부인이자 초연 배우인 세라 브라이트먼, 초대 팬텀 마이클 크로퍼드 등이 올라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뮤지컬평론가 원종원은 ‘독일 함부르크 버전의 팬텀은 게르만 남성 특유의 우직함이 짙게 배어있는, 무뚝뚝하고 절제된 느낌인 반면, 미국 브로드웨이 무대 위 팬텀은 섹시한 이미지의 환상적인 느낌이 강조된 경우가 흔하며, 웨스트엔드에서는 음악적 영감이 가득한 기괴한 천재의 이미지를 강조하는 편’이라고 비교했다. 현재에도 런던의 프로덕션은 여러 번 관람한 애호가들을 다시 한 번 극장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처음 봤던 때를 기억하십니까?’라는 문구를 도시 곳곳에 붙여 두었다. 그야말로 새로운 공연 문화를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무명 가수인 크리스틴과 그녀에게 음악적 영감을 선사하는 팬텀의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에는 ‘한니발’ ‘돈 주앙의 승리’라는 제목의 오페라가 등장하는데, 공연 초기에는 일부 관객이 원래 있던 오페라를 삽입한 것으로 착각하는 일도 있었다(이는 웨버가 만들어낸 가짜(?) 오페라다). 일부 공연평론가는 ‘연극이면 말도 안 되는, 외국어로 질러대는 소리’ ‘최고 높은 음만 찾아 부르면 그것이 바로 좋은 작품이라 생각하는 것’ 등 오페라를 비꼬는 대사가 등장하는 것을 이유로 들며 웨버가 클래식 음악계에 화두를 던진 것이라 분석하기도 했지만, 웨버가 딱히 그런 의도를 드러낸 적은 없다.

 


공연계의 역사를 수놓은 작품들

 

‘요셉 어메이징’

 

 

 

 

 

 

 

 

 

 

 

 

‘오페라의 유령’ 외 웨버가 만든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요셉 어메이징’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에비타’ ‘선셋대로’를 통해 웨버의 음악적 특징과 인간적 면모를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한국에서는 낯선 작품인 ‘요셉 어메이징’(1967)은 웨버가 열아홉 살에 런던의 한 초등학교 합창단을 위해 만든 팝 스타일의 짧은 칸타타로,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1971)의 기반이 되었고, 후에 장편 뮤지컬로 정식 공연돼 런던에서 인기를 얻었다. 음악적으로는 로큰롤·칼립소·컨트리 뮤직 등 여러 음악 장르를 유머러스하게 뒤섞은 것이 특징이다. 아일랜드 사회개혁가 토머스 존 바나도(Thomas John Barnardo)의 실화를 그린 1965년의 첫 작품 ‘우리들의 유사함(The Likes of Us)’이 1940~1950년대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흐름을 그대로 좇고 있다면, 이 작품으로 웨버는 음악적 개성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다른 작품에 비해 그리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웨버가 여러 인터뷰에서 끊임없이 이 작품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보면 작곡가 스스로 큰 의미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명의 청년 작곡가 시절, 처음으로 카네기홀에서 이 작품을 공연할 때 음향효과가 완벽하지 않았던 사실을 홀로 기억하며 “아직도 잠이 오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다. 2007년에 웨버는 BBC 채널에서 ‘조셉 앤 어메이징 테크니컬러 드림코트’의 주인공을 찾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추진해 출연했고, 리 미드(Lee Mead)가 우승한 파이널 무대는 BBC 연례 자선 행사에 사용될 전화 모금액을 수억 원을 기록할 만큼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이런 부가적인 설명을 차치하고서라도, 웨버의 초기 음악 스타일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2015년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서 지저스 역을 맡은 마이클 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1971)와 ‘에비타’(1978)는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작사가 팀 라이스, 두 사람의 호흡이 절정에 올랐을 때 탄생한 명작이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가 초연된 1971년의 브로드웨이에서는 기독교도들의 시위가 크게 일었다. 우유부단한 예수, 불쌍한 유다라는 설정을 용납할 수 없고, 예수를 수퍼스타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신성모독이라는 주장이었다. 한편 유대인들은 극중 이스라엘 사회의 풍경이 편견을 만들기 쉽다는 이유로 시위에 가담했다. 이러한 논란은 작품의 매력과 진정한 메시지가 알려지며 금세 잦아들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저항의 상징이었던 록 음악을 과감하게 뮤지컬 장르에 가져와 화려하면서도 낭만적인 넘버를 만들어냈을 때 웨버의 나이 스물셋, 라이스의 나이는 스물일곱이었다. 유다의 시선에서 예수에게 질문을 던지는 파격적인 주제를 섬세한 감정 묘사를 통해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시원스럽게 내지르는 창법의 멜로디로 뮤지컬의 재미를 극대화시킨 웨버와 라이스는 과연 영리한 음악적 혁명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에비타’

 

 

 

 

 

 

 

 

 

 

두 사람의 빛나는 아이디어는 1940년대 아르헨티나의 영부인이었던 에바 페론의 일대기를 그린 ‘에비타’로 이어졌다. 개막 전 뮤지컬넘버 ‘돈 크라이 포 미 아르헨티나(Don’t Cry For Me Argentina)’를 먼저 공개했는데, 단 한 곡만으로도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록·탱고·레퀴엠 등 여러 장르를 망라한 송스루 뮤지컬 ‘에비타’는 각종 시상식을 석권하고, 후에 마돈나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질 만큼 큰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에비타’의 브로드웨이 버전 초연을 맡아 큰 인기를 누린 여주인공 패티 루폰(Patti LuPone)은 수십 년이 흐른 뒤 어느 인터뷰에서 “내 생애 가장 끔찍한 경험”이었다고 말하며 명성에 오점을 남겼다. 삼류 배우가 아르헨티나의 퍼스트레이디가 되고, 파격적인 복지정책을 내놓아 국민적 영웅이 된 한편 아르헨티나 몰락의 단초를 만든 여성 캐릭터를 묘사한 이 작품에 대해 “여성을 싫어하는 남자가 쓴 작품을 해나가는 일에 매일 비명을 지르고 싶었을 정도”라고 말한 것이다. 이 작품을 끝으로 웨버-라이스 콤비도 사이가 틀어져 각자의 길을 걸었으니, 창작자도 배우도 흥행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지는 못했던 것 같다.

 


거장의 꺼지지 않는 열정

‘봄베이 드림스’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1977년에 공연 제작사 리얼리 유스풀 그룹(Really Useful Group)을 설립해 현재까지 대표로서 기업을 이끌고 있다. 런던의 공연 제작사 중 가장 큰 규모로 알려져 있으며, 한때는 연간 매출이 수조원에 달해 남미 국가인 볼리비아의 연간 GDP에 육박한다는 기사가 난 적도 있다.

1993년에 초연한 뮤지컬 ‘선셋대로’(Sunset Boulevard)는 웨버의 지나친 욕심이 화를 부른 작품이다. 어느 날 우연히 빌리 와일더 감독의 1950년 영화 ‘선셋대로’를 보고 영감을 받은 웨버는 이 작품을 뮤지컬로 제작하겠다는 의지를 품지만 10년이 지나도록 판권을 얻지 못해 고전한다. 1988년 마침내 법적 허가를 받고 제작 소식을 공포했을 때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의 수많은 여배우들은 독창적인 캐릭터 노마 역을 잡기 위해 대놓고 추파를 보내기도 했다.

무대는 그야말로 웅대했다. 노마의 거실인 화려한 대규모 무대 세트가 통째로 객석을 향해 움직여 관객은 영화의 클로즈업 효과를 목격할 수 있었다. 무대 세트 제작비만 425만 달러(약 45억 원)가 소요됐고, 영국에서 공연한 2년간의 진행비만 해도 115억 원에 이르렀다. 객석은 연일 매진되고 평단의 호평도 받았지만, 서둘러 막을 내려야 했다. 투자비 중 130억 여 원은 결국 회수하지 못했다. 원종원 뮤지컬평론가는 ‘선셋대로’의 실패가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의 대작 중심 제작 패턴을 소극장 중심으로 바꾸어 놓았다고 분석한다.

2000년대에 들어 웨버는 ‘우리들만의 비밀(Whistle Down the Wind)’ ‘흰 옷을 입은 여인(The Woman in White)’ ‘사운드 오브 뮤직’ ‘스쿨 오브 락’ 등 새로운 작품을 꾸준히 작곡하는 한편 인도 뮤지컬 ‘봄베이 드림스’ 런던 공연의 프로듀서로 나서기도 했다. 전작의 신화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다양화된 웨스트엔드의 중심을 지키며 정력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무엇보다 BBC 채널에서 자신의 작품의 주인공을 찾는 프로그램에 꾸준히 출연해 전 세대를 아우르는 대중적 인기를 얻는 한편 공연 흥행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오랫동안 영국 보수당의 열렬한 후원자로, 당 홍보 영상에 자신의 곡 ‘Take That Look Off Your face’을 사용하는 것까지 허용하며 지지를 표했지만, 최근에는 거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부터는 런던 예술학교(Arts Educational School London)의 교장으로 교육사업 외 여러 자선사업을 벌이고 있다. 공연예술계 거장의 말년은 여전히 뜨겁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 기념 콘서트
5월 2~6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라민 카림루, 애나 오번, 브래드 리틀, 마이클 리 등 출연


 

글 김호경(공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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