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기자들이 직접 뛰어다닌 공연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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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8년 7월 4일 3:21 오후

베토벤의 시간

김두민·김태형 듀오 리사이틀

5월 31일 | 금호아트홀

“오늘도 베토벤과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5월의 마지막 날, 김두민의 첼로가 뿜어내는 베토벤의 선율이 금호아트홀을 가득 채웠다. 이번 공연은 금호아트홀이 베토벤 서거 190주년을 맞는 지난해부터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 되는 2020년까지, 4년에 걸쳐 선보이는 베토벤의 시간 ‘17‘20 기획 공연 중 하나였다. 피아니스트 김태형과 함께한 이번 연주는 5월 24일과 31일, 두 번의 무대로 진행됐고, 총 8곡의 베토벤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를 연주했다.

연주를 듣는 내내, 뻔한 소리로 들릴 수도 있지만, 결코 그저 가볍게 내놓을 수도 없는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지금 연주하는 이 곡들이 베토벤이 김두민을 위해 만든 작품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첫 곡,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1번 Op.5/1에서는 피아노 소리가 조금 큰 듯했다. 약간의 건조함도 이런 느낌을 더 배가시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가운데에서도 흔들림 없는 첼로 소리가 관객의 집중력을 모았다. 그리고 이내 서로 밸런스를 찾아가며 더욱 깊은 감정 속으로 이끌었다. 활의 끝에서 끝으로 흐르는 길고 깊은 호흡은 첼로 솔로로 시작하는 두 번째 곡, 소나타 4번 Op.102/1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첼로와 피아노 모두 이전 곡보다 온전히 작품에 젖어 들었고, 덩달아 관객도 숨죽여 집중했다. 2부에서 연주한 두 곡은 김두민과 김태형, 이 두 연주자가 가진 강점이 잘 어우러지는 작품이었다. 특히 헨델 ‘보아라, 용사가 돌아온다’ 주제에 의한 변주곡 G장조에서 김태형의 맑고 깔끔한 소리가 빛났다.

공연의 시작부터 앙코르로 생상스의 ‘백조’를 연주하며 무대를 마치는 순간까지, 흔들림 없이 대가의 면모를 보여준 김두민의 연주는 텍스트가 없어도 음악이 얼마나 크고 울림 있는 전달력을 가지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프로그램북 속에 열거된 작품에 대한 소개들이 무색해질 만큼.

빈자리들이 너무나 아까웠다. 그리고 올해의 마지막 봄을 그 어느 음악도 아닌 김두민이 연주한 베토벤과 함께한 것에 감사했다. 이미라

 

쇼스타코비치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음악극 ‘쇼스타코비치와 검은 수사: 러시안 판타지’

6월 1일 | 롯데콘서트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뜨거운 요즘이다. ‘시대의 소음’ ‘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 등 쇼스타코비치의 생애와 음악에 대한 도서가 최근 연이어 번역 출간됐고, 그의 작품을 연주하는 공연도 많아졌다. 올해 롯데콘서트홀이 기획한 ‘쇼스타코비치 시리즈’도 그중 하나다. ‘탄생 100주년’ 따위의 기념해가 아님에도 이 작곡가에게 많은 이들이 집중하는 이유는, 스탈린 치하 소비에트 체제의 정치권력에 철저히 이용당한 쇼스타코비치의 뒤틀린 삶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지대함을 의미한다.

지난 6월 1일 공연된 음악극 ‘쇼스타코비치와 검은 수사: 러시안 판타지’는 롯데콘서트홀 ‘쇼스타코비치 시리즈’의 두 번째 공연이자, 1976년 창단된 미국의 현악 4중주단인 에머슨 스트링 콰르텟의 창단 40주년 기념 창작물이었다. 극작가 겸 연출가 제임스 글로스먼이 대본을 쓰고, 콰르텟의 바이올리니스트 필립 세처가 음악감독을 맡아 공동제작해 2017년 6월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초연을 올렸고, 이번 서울 공연은 이 작품의 아시아 초연 무대였다.

세처와 글로스먼은 쇼스타코비치가 생전에 안톤 체호프의 단편소설 ‘검은 수사’를 오페라로 만들고 싶어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소설 속 주인공 코브린은 검은 수사의 환영을 보며 현실과 환상을 고통스럽게 오가는데, 이는 곧 쇼스타코비치를 향한 스탈린의 압제와 작곡가 자신의 예술적 열망 간의 괴리와 겹쳐진다.

1인 다역을 맡은 배우들은 두 개의 차원을 분주하게 넘나들었다. 특히 젊은 스트라빈스키와 소설 속 코브린 역을 맡은 알렉스 글로스먼은 억압과 광기를 오가는 두 인물을 열정적으로 연기했다. 음악과 대사와 영상이 뒤엉킨 혼란스러운 분위기는 쇼스타코비치의 암울한 현실과 코브린의 망상을 그대로 드러냈다.

 

‘쇼스타코비치와 검은 수사: 러시안 판타지’는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주재료로 삼은, 진정한 의미의 ‘음악극’이었다. 쇼스타코비치의 삶과 ‘검은 수사’의 이야기들이 씨줄과 날줄처럼 겹쳐서 진행되며, 그것을 엮어내는 베틀은 중간중간 연주되는 쇼스타코비치의 현악 4중주 작품들이었다. 하지만 다소 낯선 형식에 적응하지 못한 몇몇 관객은 공연 도중 자리를 뜨기도 했다. 공연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조금 더 있었다면 좋았다면 보다 넓은 층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었을 듯하다. 아울러 국내 음악계에서도 음악을 활용한 이러한 참신하고 깊이 있는 실험이 활발히 이루어지길 기대해본다. 이정은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

카운터테너 안드레아스 숄과 잉글리시 콘서트

6월 15일 |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들이 참 많다.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음성을 무대에서 감상할 수 있었던 행운은 오랜만에 한국을 찾은 카운터테너 안드레아스 숄을 통해 찾아 왔다. 영국의 명문 고음악 앙상블 잉글리시 콘서트 역시 그 명성에 걸 맞는 앙상블로 이날 공연의 품위를 드높였다.

음악 칼럼니스트 한정호의 말처럼 그는 녹슨 카운터테너가 아닌 진짜 음악가로 고음과 중음, 저음의 영역 사이를 매끄럽게 이끌어 냈고 기교적인 선율과 정교한 해석 사이에서 자연스러운 음악을 만들어 내며 전체 작품의 밸런스를 맞추어 나갔다.

전반부의 찰스 에이비슨의 합주 협주곡 9번 ‘도메니코 스칼르라티 풍으로’를 시작으로 잘 알려진 헨델의 오페라 ‘세르세’ 중 ‘그리운 나무 그늘이여’에서는 마치 편안하고 단정한 음성이 초여름 밤의 평화를 노래하는 듯했고, 이어진 합주 협주곡 Op.3에서는 현악과 목관의 비르투오소적인 요소를 음악적으로 잘 담아내 최상의 무대로 이끌었다.

사랑의 감성이 가득 담긴 헨델의 오페라 ‘줄리오 체사레’ 중 ‘아름답게 꽃피는 들에서’와 토렐리의 트럼펫 소나타의 우아하고 평온한 아름다움까지 객석은 복잡한 세상과 잠시 차단된 것처럼 놀라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헨델의 오페라 ‘줄리오 체사레’ 중 ‘나는 말하리라’, 비발디의 현을 위한 협주곡 G단조에서는 화려한 최상급 기교와 바로크 음악의 풍요로움이 빛났고 시편에 곡을 붙인 작품 중에서도 가장 음악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비발디의 ‘주께서 세우지 아니하시면’에서는 섬세한 앙상블과 다채로운 화성이 빛나며 경건하고 장엄한 감동을 선사했다.

음악과 음악 사이에 깃든 고요한 여백 역시 귀한 경험이었다. 그것은 수많은 복잡하고 시끄러운 세상에서는 듣기 힘든 내면의 소리이자 자유의 메시지였으며 동시에 마음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위로였다. 국지연

나라를 떠받친 예악의 기운

‘세종: 하늘의 소리를 듣다-세종조 회례연’

5월 23~26일 | 국립국악원 예악당

‘음악이란 인격을 완성하고 사회와 풍습을 순화시키며 정치를 고르게 하여 국가를 잘 다스리는 데 있어 더없이 좋은 수단이요, 좋은 음악의 실천은 곧 유교 이념의 궁극적 실천이다.’

1418년에 즉위해 위와 같이 예(禮)와 악(樂)을 중시한 유교 사상을 바탕으로 조선 초 왕조의 기틀을 닦고 문화 융성을 꾀한 세종.

지난 5월 말,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사랑받고 존경받는 인물인 세종대왕의 즉위 600주년을 기념하고 세종이 정비한 악가무(樂歌舞)를 한 자리에서 만나보는 국립국악원의 대표공연 ‘세종: 하늘의 소리를 듣다-세종조 회례연’이 23일부터 26일까지 3일간 예악당에서 관객과 만났다.

 

이날 공연은 세종 15년(1433년) 임금과 신하가 우의를 다지기 위해 열렸던 연회, 회례연을 재현하는 자리였다. 국립국악원은 세종실록을 토대로 세밀한 고증을 거쳐 경연(經筵) 장면과 세종이 정비한 악기와 궁중음악, 정재를 한 무대에서 선보였다.

경연의 경우 세종 역을 맡은 강신일을 비롯한 배우들이 무대에 올라 세종과 신하들이 실제로 나눴을 법한 대사를 주고받으며 한 편의 연극처럼 생동감을 더했다. 공연 사이사이에 추가한 경연 재연을 통해 15세기 초의 시대상과 세종의 고충, 예악 정치의 의의와 음악, 춤에 대한 이야기를 고도로 압축시켜 전달함으로써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정보를 전달하고 흥미를 유도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복원에 성공한 악기 의물인 ‘요’ ‘탁’ ‘순’ ‘탁’ ‘응’ ‘아’ ‘상’ ‘독’을 공개하는 뜻깊은 시간을 마련해 그야말로 세종의 문화업적과 예술을 향한 깊은 마음을 한 무대에 집대성해냈다.

흔히 세종을 떠올리면 한글 창제, 측우기, 해시계와 물시계, 농사직설 반포를 먼저 떠올리게 되지만, 실제로 세종은 ‘절대음감’을 바탕으로 천재적인 음악성을 발산하며 빛나는 문화 업적을 남긴 예악의 군주이기도 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발전해나가는 국립국악원의 대표공연 ‘세종조 회례연’ 무대를 통해 더 많은 이들이 융숭했던 문화 조선을 되새기고, 세종의 업적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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