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객석’ 기자들이 직접 뛰어다닌 공연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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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8년 7월 4일 4:12 오후

스코틀랜드 국립발레 ‘헨젤과 그레텔’ &  볼쇼이 발레 ‘백조의 호수’

오랜만에 찾아온 두 유명 발레단이 남긴 의미

 

해외 유명 발레단 두 단체가 연이어 한국을 찾았다. 영국 4대 발레단 중 하나인 스코틀랜드 국립발레가 1992년 첫 내한 이후 26년 만에 한국을 찾았고(5월 23~27일 LG아트센터), 뒤이어 러시아를 대표하는 볼쇼이 발레가 다섯 번째 내한공연을 했다(5월 28~29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볼쇼이 발레는 2005년 이후 13년 만이었으며, 더욱이 볼쇼이 오케스트라와 합동 내한한 것은 23년 만이었다.

두 공연 모두 객석의 열기는 무척 뜨거웠다. 스코틀랜드 국립발레가 선보인 ‘헨젤과 그레텔’은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관객들이 많았던 반면, 볼쇼이 발레는 발레의 고전 ‘백조의 호수’를 선보여 2천석 가까운 4층 객석을 각양 각층의 관객으로 가득 채우는 기염을 토했다. 스코틀랜드 국립발레와 볼쇼이 발레는 역사나 규모, 레퍼토리 면에서 성격이 확연하게 달라 하나의 잣대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둘 다 세계적인 발레단이라는 점, 오랜만의 내한공연이고 이번 초청을 위해 각각 LG와 삼성 등 대기업이 후원했다는 점, 그리고 열광적인 관객호응 등 여러 공통점이 눈에 띄었다.

 

‘헨젤과 그레텔’

‘헨젤과 그레텔’, 탁월한 각색과 눈부신 무대

마녀의 집에 잡힌 헨젤과 그레텔은 ‘호랑이 굴에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속담대로 긴장을 늦추지 않고 빠르게 움직이며 빠져나갈 궁리를 한다. 이때 미녀 선생님으로 변장했던 마녀가 등장하고, 가발과 옷을 벗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순식간에 하는 변신은 마치 마법을 보는 듯하다. 과자집의 화려한 음식에 현혹되지 않고 꾀를 부려 마녀를 처치하는 남매의 지혜가 이미 익숙하게 알고 있는 결말임에도 새삼 통쾌하다. 화로 안, 불길 속으로 사라지는 마녀의 연기는 매우 사실적이라 섬뜩할 정도다.

‘헨젤과 그레텔’

스코틀랜드 국립발레의 ‘헨젤과 그레텔’은 발레극으로서 필요한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었다. 우선 각색에 성공했다. 발레단의 예술감독이자 안무를 맡은 크리스토퍼 햄슨은 그림 형제의 원작소설을 집요하게 분석하고 연구했다. 2013년 초연에 앞서 어린이와 어른을 대상으로 수차례의 커뮤니티 워크숍을 가지면서 심리분석에 근거해 각색했다. 아버지와 의붓엄마가 숲속에 헨젤과 그레텔을 버리는 대신 마을에 새로 부임한 여선생으로 가장한 마녀가 아이들을 괴롭히는 설정이 탁월했다. 교육적일 뿐 아니라 발레극으로서 필요한 마법과 환상 등의 요소를 제공했으며, 각 인물의 성격을 묘사하는데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한편 원색적이면서도 입체감이 뛰어난 무대와 의상은 동화가 주는 환상을 담기에 손색이 없었다. 특히 과자집 앞에 서 있는 롤리팝 나무가 매우 인상적이다. 현실에서는 단점이 많은 부모지만 환상의 세계에서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등장해 아이들을 보호한다는 설정도 가족 간의 신뢰와 사랑을 표현하기에 매우 적합한 연출이었다. 발레극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촘촘한 동작 구성이 가미되면서 어느 순간엔 ‘호두까기 인형’을 보는 듯한 착각을 할 정도로 춤의 세계에 빠져들게 했다. 아빠와 엄마가 추는 파드되, 연회 장면의 군무, 롤리팝을 연상하게 하는 튀튀를 입은 발레리나 춤이 무용극은 결국 춤에 승부를 걸어야한다는 진리를 확인하게 해주었다.

간혹 원작에 충실한 나머지 극의 완성도를 떨어트리는 경우를 보곤 한다. 그런 점에서 크리스토퍼 햄슨의 ‘헨젤과 그레텔’은 원작을 과감하게 수정하고, 발레극으로서 필요한 요소를 적절하게 삽입하는 각색이 성공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였다고 하겠다.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인물묘사, 줄거리를 암시하는 화려한 동작으로 ‘헨젤과 그레텔’은 훌륭한 발레 동화로 재탄생했다.

 

‘백조의 호수’

‘백조의 호수’, 허술한 캐스팅이 남긴 아쉬움

볼쇼이 발레의 여러 내한공연 중에서도 특히 2005년 ‘스파르타쿠스’를 기억한다. 민족발레가 무엇인지, 세계무대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인정받기 위해서 러시아의 어떤 성격을 표현해야 하는지 증명했던 공연이었다. 무용수의 열정적인 연기보다 유리 그리고로비치의 연출력을 거듭 확인했던 무대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내한에서도 비슷한 감상이 남았다. ‘크다’는 의미를 자랑하는 위대한 볼쇼이의 조직과 규모에 비해 무용수의 춤과 연기에는 빈틈이 엿보였다. 러시아 본토가 아닌 투어공연이기 때문에 드러나는 허점이라고 이해하기엔 반복적이어서 씁쓸함이 가시지 않았다.

전체 3회 공연 모두 캐스팅이 달랐는데, 첫 회 공연은 협찬사 삼성카드의 단독 마케팅으로 진행되었고(올가 스미르노바·시묜 추진 출연), 공식 프로그램에는 출연진 기록도 없었다. 필자가 관람한 마지막 회 공연(5월 29일)에서는 솔리스트 알료나 코발료바의 첫 주역 무대로 꾸며졌는데, 최근 볼쇼이 발레에 입단한 라 스칼라 발레 출신의 자코포 티시가 상대역을 맡았다. 신인이라고 해서 감동의 무대를 만들지 못하리란 법은 없다. 그러나 코발료바는 긴장하고 있었고, 볼쇼이의 명성에 걸맞은 실력 또한 발휘하지 못했다. 티시와의 파트너십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유리 그리고로비치 안무를 꼼꼼하게 감상하기엔 주역의 미진한 연기가 발목을 잡았다. 볼쇼이 오케스트라의 아름다운 연주가 무색했다.

‘백조의 호수’

캐스팅과 관련한 단체의 속사정까지 알 필요는 없다.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볼쇼이 발레만이 가지고 있는 장엄한 무대와 웅장한 군무, 월등한 체격의 무용수들에 감탄을 연발하는데, 너무 고차원적으로 완성도를 비판할 이유도 없다. 홈그라운드를 벗어나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대부분의 단체에서 신인에게 기회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열광적인 환호에 비해 아쉬움이 많이 남은 공연이었다.

 

내한공연의 흐름, 그리고…

1990년대까지 해외단체의 내한공연은 주로 방송국이나 신문사의 문화사업국에서 기획했다. 무용은 지금보다도 관객층이 두텁지 못했기 때문에 주로 세계적 명성의 발레단을 초청했고, 대규모의 투자유치와 홍보 등이 가능했던 주최는 언론사뿐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국제교류가 활발해지자, 예술의전당·LG아트센터 등 극장 단위뿐 아니라 국내에 굵직한 무용축제들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초청대상도 점차 전막 발레를 올리는 대형발레단에서 소규모 컨템퍼러리댄스 단체들로 폭을 넓혔고, 양적으로 많이 늘어나면서 세계적인 트렌드를 시차 없이 국내에서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더욱이 인터넷을 통해 쉽게 영상을 접하게 되었고, 다양한 작품과 단체에 대한 정보가 풍부해지자 꼭 전막 발레가 아니더라도 전 세계의 유명작을 만나고 싶어 하는 관객층이 생겨났다. 그런 배경에서 해외 유명발레단의 내한공연이 뜸할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두 유명발레단의 공연을 맞이하면서 결국 공연의 완성은 캐스팅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좋은 연출도 결국 춤과 연기가 그 진가를 발휘하게 해준다는 너무나도 근원적인 진리를 재확인했다.

글 장인주(무용평론가) 사진 LG아트센터·빈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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