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연출가_9우리 시대의 연출가_9‘오늘’의 연극을 행하는 연출가와 극단을 만나다
—2002년 ‘페르소나’(극작)2002년 ‘개그맨과 수상’(극작)2002년 ‘체크메이트’(극작·연출)2003년 ‘샹그릴라의 시계공’(극작·연출)2003년 ‘아홉개의 모래시계’(극작·연출)2003년 ‘웃지 않는 공주를 위하여’(극작·연출)2004년 ‘서바이벌 캘린더’(극작·연출)2004년 ‘맨버거, 그 속엔 누가 들어 있나?’(극작)2005년 ‘유령을 기다리며’(극작·연출)2005년 ‘아주 이상한 기차’(극작·연출)2005년 ‘Come&Go’(연출)2006년 ‘오늘의 책은 어디로 사라졌을까?’(극작·연출)2007년 ‘조선형사 홍윤식’(연출)2008년 ‘누가 대한민국 20대를 구원할 것인가?’(극작·연출)2009년 ‘꿈의 연극’(번역·연출)2010년 ‘타인의 고통’(극작·연출)2011년 ‘장석조네 사람들’(각색·연출)2011년 ‘여기, 사람이 있다’(극작·연출)2011년 ‘마호로바’(연출)2012년 ‘풍찬노숙’(연출)2012년 ‘죽음의 춤’(연출)2013년 ‘알리바이연대기’(극작·연출)2014년 ‘배수의 고도’(연출)2014년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극작·연출)2016년 ‘검열언어의 정치학: 두 개의 국민’(극작·연출)2016년 ‘국가 없는 나라: 사라진 기억들’(공동창작·연출)2016년 ‘가족병-혼자라도 괜찮을까?’(극작·연출)2017년 ‘생각은 자유’(극작·연출)2017년 ‘병동소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극작·연출)2017년 ‘검열언어의 정치학 시즌 2: 김똘똘의 비망록’(극작·연출)2018년 ‘애도하는 사람’(연출)2018년 ‘자본’(극작·연출, 공연 예정)2018년 ‘록앤롤’(연출, 공연 예정) —
“도취한 연기, 화려한 연출로 관객을 압도하는 연극만이 과연 좋은 연극일까? 현시대의 연극 작가는 끊임없이 커뮤니케이션하는 사람이라고 본다. 배우들과 지치지 않고 소통해나가는 것, 관객들과 서로 속이지 않고 소통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조곤조곤 말을 걸고, 차근차근 대화하는 연극을 하고 싶다.”
극작가·연출가이자 드림플레이 테제21의 대표인 김재엽은 최근 몇 년간 ‘알리바이연대기’(2013)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2014) ‘생각은 자유’(2017) ‘병동소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2017) 등 ‘재엽’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연극을 선보였다. 2000년대 초반 ‘드림플레이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판타지 소재의 연극을 짓기 시작한 이후 ‘극단 드림플레이’로서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무대 위에 펼쳐 보였다. 창단 10주년의 경계에서 ‘드림플레이 테제21’로 다시 이름을 바꿔 자전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대한민국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에 따른 것이라 김재엽은 설명한다.
현재 두산인문극장 2018 시리즈 ‘애도하는 사람’(7월 7일까지)으로 관객과 만나고 있는 김재엽과 함께 극단의 역사를 되짚어보았다. 2002년 프로 무대에 데뷔한 이후 ‘김재엽 스타일’은 많은 변화를 거친 듯 보이지만, 무대를 대하는 그의 솔직한 태도는 늘 한결같다.
‘애도하는 사람’이 건네는 말
연극 ‘애도하는 사람’의 주인공인 애도하는 사람(시즈토, 김동원 분)은 좀 이상하다. 아무런 연고도, 한번 마주친 적도 없는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온 지역을 떠돌아다닌다. 죽음을 맞이한 이유나 정황보다는, 생전에 얼마나, 어떻게 사랑받았는지 기억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슬퍼한다. 그러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파하는 한 여인(유키요, 김소진 분)을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기억하는 행위, 상실이라는 감정에 대해 서로 묻고 답하며 특별한 관계를 맺는다.
일본의 인기 소설가 텐도 아라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2012년 도쿄에서 초연(각본 오오모리 스미오)한 작품이다. 이번 한국 무대는 여성을 대상화하는 장면들을 걷어내고, 동시대 한국 관객의 정서에 맞게 고치고 다듬는 작업을 통해 이루어졌다. 시즈토와 유키요는 사방이 객석으로 둘러싸인 중앙 무대를 뱅글뱅글 돌며 여행하는데, 덕분에 관객들은 등장인물의 뒤편에서, 또 다른 관객을 마주한 채로 이들을 지켜보게 된다. 죽음을 맞닥뜨리는 순간의 불편하고 어려운 감정을 관객이 가까운 거리에서 경험하도록 의도한 연출이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혼자 있어서 생기는 것 같다. 고립된 사람들, 홀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 곁에 그 존재를 인정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본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른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는 강하지만, 사랑을 주고받는 행위에 대해서는 무덤덤하지 않나. 상대방을 사랑하는 행위를 통해 ‘나’라는 존재를 인정받을 수도 있을 텐데, 우린 항상 그걸 어려워한다. 극중에서 시즈토는 유키요라는 인물을 만나 생(生)의 감각을 되찾고, 유키요는 시즈토를 통해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알게 된다. 원작 소설은 마치 삶과 죽음에 대한 에세이 같은, 사색하게 만드는 인문학책 같은 매력이 있는데, 소설에 담긴 메시지를 최대한 드러내려 노력했다.”
잃고 싶지 않은 아마추어리즘
‘애도하는 사람’은 지난해 두 편의 창작극 ‘생각은 자유’ ‘병동소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을 선보인 김재엽이 희곡 집필을 잠시 멈추고, 연출의 영역에 집중한 작품이다. ‘생각은 자유’와 ‘병동소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모두 ‘재엽’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 사실주의 연극인데, 이는 김재엽의 초기 연극 활동과는 큰 차이가 있다.
1973년생인 김재엽은 연세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공부하던 시절, 교내 극예술연구회라는 비교적 큰 규모의 연극 동아리가 있었지만, 서양의 희곡을 치열하게 파고들며 무대를 만드는 작업이 “그리 즐거워 보이지 않아서” 같은 학과 한 살 터울의 후배 성기웅(극작·연출가)와 소규모 동아리를 꾸렸다. 거대한 담론을 그럴듯하게 보여주는 기성의 연극 대신, 황지우의 시를 바탕으로 주인석 작가가 각색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를 1990년대 버전으로 재창작하는 등 현대사회 속 일상과 밀접한 이야기를 써 내려가며 재미를 느꼈다. 한양대학원 연극영화학과에 진학한 이후에는 홍대 부근에서 인디 문화를 새롭게 만들어가던 동료들과 함께 클럽 및 카페에서 아마추어로서 즐거운 작업을 이어갔다.
신춘문예 희곡 부문 당선을 계기로 故 박광정을 만나 극작·연출가로서 정식 데뷔를 치르고, 극단 파크의 창단을 함께 준비했지만, 장기 공연 패턴에 적응하고 흥행 여부에 불안해하는 생활에 답답함을 느낀 김재엽은 극단 차이무의 민복기 대표를 비롯한 많은 선배들의 만류에도 대학로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연극에 관심에 있는 젊은이들을 모아 아마추어팀 ‘드림플레이프로젝트’를 꾸려 신촌·홍대 부근에서 아마추어리즘을 표방한 ‘아홉개의 모래시계’(2003) ‘샹그릴라의 시계공’(2003) ‘서바이벌 캘린더’(2005) ‘유령을 기다리며’(2005) 등을 만들었다. ‘유령의 기다리며’가 거창국제연극제에서 대상·연출상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극단 드림플레이가 정식 창단했다.
시대를 직시하는 법
정치적으로 불안정했던 과거로부터 표피적인 민주화의 변화를 겪던 X세대의 이야기 ‘오늘의 책은 어디로 사라졌을까?’(2006)로 흥행에 성공한 극단 드림플레이는, 이후 마치 개그콘서트처럼 13개의 에피소드가 속도감 있게 펼쳐지는,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연극 ‘누가 대한민국 20대를 구원할 것인가?’(2008), 용산 참사를 소재로 2029년의 서울 풍경을 그린 ‘여기, 사람이 있다’(2011)로 평단과 관객의 인정을 받았다. ‘여기, 사람이 있다’는 서울연극제에서 희곡상을 받기도 했지만, 김재엽은 이 시기에 글쓰기에 큰 한계를 느꼈다고 고백한다.
“작품을 관람하기 위해 용산 참사 유가족들이 왔다. 제작진과 배우들을 격려해주고, 막걸리까지 사주며 서로 많은 얘기를 나눴다. 이분들은 사건을 겪은 지 1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아직 해결되지도 않은 사건을 바탕으로 20년 후에도 세상이 엉망일 거라는 얘기를 하는 게 과연 옳은가 고민하게 되더라. 현재진행형인 사회적 문제를 가지고 극적인 연출을 고민하고, 장면을 만들어내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행위에 대해 근본적으로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후 2년 정도 극작을 쉬면서 ‘드림플레이 테제21’이라는 이름으로, 21세기의 테제를 고민하며 새로운 작업 방식을 취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재엽’과 ‘재엽 아버지’가 실명으로 등장하는 ‘알리바이연대기’(2013)가 탄생했고, 그해 동아연극상 작품상·희곡상, 대산문학상 희곡 부문을 수상했다. 연극평론가 김옥란은 ‘김재엽은 새로운 관점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새로운 판을 짤 줄 아는 능력을 지녔다’고 평했다. 이후 재엽과 동료들이 시인 김수영의 작품세계를 탐닉하는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2014), 베를린 여행기를 바탕으로 한 ‘생각은 자유’(2017), ‘병동소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2017)까지, 김재엽이 이끄는 드림플레이 테제21은 시대를 직시하고, 그 안에서 의미와 가치를 찾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몇 년간 다큐멘터리 형식의 연극을 연속적으로 내놓고 있는데, 동시대 연극의 의미를 사실주의에서 찾고 있는 것인가?
몇 년간 다큐멘터리 형식의 연극을 연속적으로 내놓고 있는데, 동시대 연극의 의미를 사실주의에서 찾고 있는 것인가? 최근 10년 동안 한국 사회에 좋지 않은 일이 너무나 많이 일어났다. 드라마를 만들고 관극할 만큼 여유로운 시대를 살지 못했다. 사회를 정밀하게 들여다보고, 정확하게 마주하는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 사람이 있다’ 이후 내 안에서 일어난 사실들을 솔직하게 정리하고, 소박한 일상의 풍경으로부터 시작하는 글쓰기를 하게 됐다.
‘재엽’이라는 인물이 등장하고, 관객들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거는 방식인데, 이러한 연극이 관객에게 어떠한 감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어린 시절 접했던 연극을 떠올려보면, 훌륭한 미장센과 극적인 감정 표현 같은 것들이 멋있어 보이긴 했지만, 그게 과연 관객을 위한 건지 의심이 들었다. 연출가는 완벽한 그림을 만들기 위해, 배우들은 연출가를 만족시키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것 같았다. 관객은 소외시킨 채 말이다. 오늘날의 관객은 이미 생각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뭔가를 강요하거나 부담을 주는 방식보다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시·안내하고, 질문을 거는 편이 내게는 훨씬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극단이 창단한 지 16년이 되었다. 드림플레이 테제21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가?
최초에 함께 했던 인원은 열 명 남짓인데, 현재 단체 대화방에는 50명 정도 있다. 물론 이 인원이 모두 활동하는 건 아니고, 일종의 정신적 준거집단처럼 연대하고 있다. 2016년에 베를린에 다녀온 이후 창고처럼 사용하던 연습실을 개조했다. 칠도 새로 하고 조명도 달아서 작은 공연장 겸 아지트로 사용하고 있다. 이곳에서 함께 영화 보면서 토론도 하고, 친목도모도 하면서 여러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있다. 나의 연출 방식은, 모든 작업 과정을 공유하고, 끊임없이 대화하며 작품을 만들어내는 편이다. 이 시대의 연극작가는 어떤 분야의 마스터라기보다는, 커뮤니케이션을 계속 창조해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스태프·배우들과 함께 풀리지 않는 실타래를 풀어가는 행위에 보람을 느낀다.
올해 극단 작업으로 ‘자본’(9월 예정), 국립극단 제작 공연으로 ‘록앤롤’(11월 예정)을 올린다. 이를 포함한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 달라.
그동안 자전적인 이야기를 통해 ‘역사’에 대해 들여다보았다면 앞으로는 ‘경제’를 또 하나의 테마로 삼고 작품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카를 마르크스 ‘자본론’을 읽으며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아마도 첫 장면은, 배우들이 연습 및 공연 일정을 최저임금으로 계산해보는 행위로 시작하게 될 것 같다. 상품이 돼야만 예술로 인정받는 시대에서 연기하는 행위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록앤롤’은 1차 번역 이후 초기 구상 단계라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 당분간 ‘재엽’이 등장하는 작품은 없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모습부터 최근의 경험까지 다 보여드렸기 때문에 내 안에 이야기를 더 채울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관객들도 좀 지겨워하는 것 같고.(웃음) 재엽 전담 배우인 정원조에게도 한동안은 없을 것이라 못 박아 두었다!
글 김호경(공연 칼럼니스트) 사진 두산아트센터·드림플레이 테제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