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락, 이아람, 그리고 어울림
2018 여우락 페스티벌
7월 6~22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하늘극장
지금 여기, 우리 음악이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2018 여우락 페스티벌이 7월 6일부터 17일간 펼쳐졌다. 올해로 9회째를 맞은 축제의 주제는 ‘신(信), 신(新), 신(神, 신명 나다)’이었다. 시대와 장르, 연령의 경계를 넘어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동시대적 감각으로 채색된 11개 무대가 관객과 만났다. 기자는 그중 7개의 무대를 살펴보았고, 이번 지면을 통해 예술감독 원일과 함께 젊은 감각과 실험 정신으로 축제를 이끈 신임 음악감독 이아람의 무대 ‘애프터 산조’를(10일) 들여다볼까 한다.
대금 연주자인 이아람은 일찍이 전통음악에 대한 진정성과 깊은 탐구를 바탕으로 다양한 장르와 끊임없이 협업해왔다. 음악그룹 나무와 블랙스트링의 멤버로 활동 중인 그가 이번 무대를 위해 선택한 주제는 ‘산조’. 120년 전에 태어난 산조는 장구 반주에 맞춰 악기를 연주하는 한국 고유의 독주 형태이자 전통음악 중에서도 연주자의 개성과 자율성을 존중하는 연주 양식이다. 시나위는 그런 산조를 여러 악기가 함께 연주하는 것을 말한다. 주어진 장단 안에서라면 자유롭게 가락을 쌓고 변형할 수 있기에 특유의 즉흥성을 기반으로 다양한 음악적 시도와 실험을 행할 수 있다. 때문에 산조는 동시대 연주자들과 결을 함께하며 살아 숨 쉬는 음악이자 ‘평생 공부해도 부족한’ 정복하기 어려운 산이기도 하다.
호기심과 실험 정신으로 무장한 이아람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50년, 100년 뒤의 산조는 어떤 모습일까?’ 답을 구하기 위해 거침없이 도화지를 펼친 그의 곁으로 박승원(피리·기타·작곡·전자음악), 조성재(아쟁), 박혜리(아코디언·아이리쉬 음악), 이원술(재즈 베이시스트), 이소월(드럼·팀파니·비트메이커), 황민왕(장구·태평소·구음), 김보라(경기소리·정가·구음)이 모여들어 저마다의 상상을 더하며 미래의 산조, 산조의 미래를 그려나갔다(사진 왼쪽부터 위치, 이아람은 세 번째). 그렇게 완성된 한 폭의 거대한 상상화가 ‘애프터 산조’다.
대금 주자로서 독주는 물론 다양한 앙상블 활동을 통해 여럿이 하나로 모아지는 소리에도 익숙한 이아람은 그야말로 ‘멀티플레이어’다. 그는 개성 넘치는 7명의 예인들이 뿌리내린 각기 다른 소리 세계의 중심에서 모든 소리를 흡수하고 또 분리하는 경계를 자처했다.
본격적인 스케치와 채색에 앞서 자세와 악기를 정비하는 다스름으로 시작된 무대는 산조의 원리를 따라 진양을 거쳐 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를 거쳐 시나위로 마무리됐다. 전자음악·재즈· 대중음악·타국의 민속음악과 전통음악이 한데 어우러져 8명의 예인은 음악의 주인이 되었다가, 반주자가 되길 반복했다. 어스름한 조명 아래 서로 다른 옷을 입은 연주자들은 눈을 마주보는 일이 없었고, 그 누구도 의식하지 않는다는 듯 제 악기에 집중하며 소리를 풀어나갔다. 하나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 그만의 산조 같다가도, 시야를 넓혀 무대를 아울러보면 우연한 순간에 맞닿아 정신없이 얽혀드는 소리의 수많은 경우의 수가 선명해졌다. 여러 색깔의 파동이 만들어낸 화학적 반응은 고스란히 객석으로 전해져 앉은 이들의 귀를 홀리고 마음을 홀렸다.
짧지 않았을 고민과 설득의 시간이 선연했던 무대. 이아람은 연주는 물론 출연진의 동선과 연주의 흐름, 사회까지 도맡아 정신없는 가운데에서도 흔들림 없는 성음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연주자의 감정, 공연장에 흐르는 기운, 무대의 특성에 따라 변형을 가할 수 있는 산조 고유의 특성을 활용해 영민하게 무대를 이끌었다. 마이크를 잡은 그는 ‘작가주의’에 기반을 둔 무대였음을 힘주어 말했으나, 1시간 반 가량 이어진 연주를 관류하는 힘에는 ‘따로 또 같이’를 실현하고자 한 이아람의 의지와 음악적 호기심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공연명은 ‘애프터 산조’였으나 ‘애프터 이아람’, 나아가 ‘애프터 국악’을 기대하게 된 무대. 미래에서 기다리고 있을 산조를, 국악을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바지런히 시간을 달리는 예인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글 정원 기자 사진 국립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