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마시모 자네티, 오페라 지휘로 다져진 스토리텔링

뜨거운 피의 이탈리아인, 경기필의 새 상임지휘자로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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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8년 9월 4일 12: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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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peractive Studios

1997년 창단, 짧은 역사치고는 놀라운 약진이다. 서울시향·KBS교향악단과 더불어 한국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 중 하나인 경기필하모닉 얘기다. 제5대 상임지휘자 성시연 단장 부임 시절 활발한 연주로 이름을 각인시켰고, 해외 투어와 음반 발매로 세계 음악계에 존재감을 알렸다. 그 뒤를 이어 첫 외국인 상임지휘자인 마시모 자네티(Massimo Zanetti, 1962~)가 경기필에 부임한다. 임기는 올해 9월부터 2년이다. 9월 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9월 10일 경기도문화의전당 대극장에서 열리는 취임연주회를 시작으로 연중 약 십여 차례 경기필을 지휘한다. 그동안 리카르도 무티를 위시해 얍 판 즈베덴·핀커스 주커만 등 세계적인 지휘자들의 객원지휘를 경험한 경기필이 새로운 상임지휘자 마시모 자네티와 어떤 케미스트리를 보여줄지 기대를 모은다.

 

오페라 지휘로부터 다져진 밑거름

1962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난 마시모 자네티는 밀라노 음악원에서 피아노와 작곡을 공부했다. 본격적인 오케스트라 지휘 공부는 알체오 갈리에라와 가브리엘레 벨리니 밑에서 시작했다. 페스카라 고등음악원에서 도나토 렌제티를 사사하며 최고 성적으로 디플롬을 받았다.

유럽에서 지휘자로 활동하려면 오페라 지휘는 필수다. 이는 전통이자 20세기 거장들에게도 통과의례였다. 오페라를 지휘해야 작품의 극적 흐름과 강약의 뉘앙스를 파악하고, 전체의 균형과 통합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는 25세에 뤼벡 오페라에서, 브루노 발터는 18세에 쾰른 오페라에서 지휘자로 데뷔했다. 조지 셸 역시 18세에 베를린 국립 오페라의 부지휘자가 됐다. 자네티는 지난 십수 년 동안 드레스덴 젬퍼오퍼·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베를린 슈타츠카펠레 등 세계 유수의 극장에서 ‘오텔로’ ‘카르멘’ ‘피가로의 결혼’ ‘노르마’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라 보엠’ ‘사랑의 묘약’ ‘라 트라비아타’ ‘돈 카를로’ ‘돈 조반니’ 등의 오페라를 지휘했다. 자부심이 높기로 유명한 취리히 오페라에 2008년 데뷔한 이후, 지속적으로 초청받고 있다는 사실에서 그의 진가를 짐작할 수 있다. 2007년 베르디의 ‘루이자 밀러’로 데뷔한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에서도 꾸준히 초청받고 있으며, 파르마 레지오 극장의 베르디 페스티벌 초청으로 ‘리골레토’ ‘나부코’ ‘시칠리아섬의 저녁기도’ ‘가면무도회’를 공연하기도 했다.

최근 연주도 활발하다. 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와 모스크바 로스트로포비치 페스티벌에서 데뷔했고, 바르셀로나 리세우 극장에서 플라시도 도밍고 주연으로 베르디의 ‘포스카리가의 두 사람’과 ‘시몬 보카네그라’를 공연했다. 플라비오 테스티의 오페라 음반 ‘사울’에서는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을 지휘하며 난해한 현대 오페라를 현란한 음향 효과를 잘 살려 해석했다. 올해 초엔 불가리아 소프라노 소냐 욘체바의 베르디 앨범에 참여했으며, 뮌헨 방송관현악단을 지휘하며 이탈리아인의 뜨거운 피를 표출했다.

자네티의 강점은 오페라에서만 발휘되는 것이 아니다. 여러 악단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은 그는 체코 필하모닉·바이마르 슈타츠카펠레·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밤베르크 심포니·슈투트가르트 방송교향악단·함부르크 북독일 방송 엘프필하모니·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버밍엄 심포니 등 세계 각국 악단의 초청을 받고 있다.

 

고전주의 레퍼토리와 오페라의 투 트랙

자네티는 지난 3월 경기도 성남시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자신이 지휘할 경기필하모닉의 청사진을 밝혔다. 향후 다양한 레퍼토리 선정으로 연주 폭을 넓히고, 오페라의 형식을 도입한 오케스트라 공연도 적극적으로 선보이겠다고 했다. 자네티는 최근 유럽 오케스트라의 경향을 고전주의부터 후기 낭만주의, 20세기와 동시대 음악 등 여러 시대를 아우른다고 설명하며 경기필에도 이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오페라가 장기인 지휘자답게 콘서트홀에서 공연할 수 있는 오페라 콘체르탄테 공연을 무대에 올리겠다는 복안도 내비쳤다.

오는 9월 자네티의 취임 연주회에는 독일과 러시아 레퍼토리가 섞여 있다. 그는 매회 모차르트와 하이든 등 18세기 고전주의 시대 레퍼토리를 연주하겠다고 밝혔다. 자네티가 독일·오스트리아 고전주의 레퍼토리를 강조하는 것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좋은 시도다.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작품들을 연주할 때마다 국내 오케스트라의 취약점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들 레퍼토리는 점층적으로 구조를 쌓아 올려야 하고, 탄탄하고 치밀한 직조가 필요하다. 스포츠로 따지면 전술 훈련이 아니라 체질을 바꾸는 훈련과도 같다. 장기적으로는 좋은 훈련이 되겠지만 단기간에 이들 곡으로 효과를 보기는 힘들다. 고전주의 작품들의 해석이 중장기 계획이라면 단기 계획으로는 자네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작품들을 연주해야 한다. 이탈리아 레퍼토리와 라틴 계열의 작품들이 그것이다. 이탈리아·프랑스·스페인 작곡가들의 교향곡과 관현악곡을 연주하면서 음의 색채감을 끄집어낼 수 있다면 성공이다. 우리 정서와 잘 맞는 슬라브 계열 작품들도 추천할 만하다.

자네티는 경기필을 ‘21년의 짧은 역사에도 성장이 빠르고 유연한 자세를 가지고 있으며, 상황에 맞춰 변화할 수 있는 강점을 지닌 오케스트라’라고 파악했다. 그가 경기필의 잠재력을 어떻게 키워나갈지 앞으로의 2년이 궁금해진다. 자네티와 경기필은 9월 8일 소프라노 박혜상과 함께 모차르트와 프로코피예프의 곡을 연주한다. 9월 10일 역시 두 음악가의 곡을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연, 첼리스트 송영훈과의 협연으로 선보인다. 두 무대의 결과는 자네티와 경기필의 다음 공연이 열리는 11월까지 음악팬들에게 화제가 될 것이다.

글 류태형(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음악 칼럼니스트)

 

마시모 자네티/경기필하모닉 취임연주회

9월 8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9월 10일 오후 8시 경기도문화의전당 대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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