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선스 뮤지컬의 모든 것

한국에서 재탄생하는 해외작 이야기

우수 컨텐츠 잡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8년 11월 5일 9:00 오전

ORIGINAL AND NEW _글 권하영 기자 사진 오디컴퍼니·신시컴퍼니

올 하반기 뮤지컬계는 ‘마틸다’ ‘지킬 앤 하이드’ ‘팬텀’ ‘젠틀맨스 가이드’ 등 굵직한 라이선스 공연들의 활약이 눈에 띈다.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아이다’ ‘스위니 토드’ ‘마리 앙투아네트’ ‘레베카’와 같은 라이선스 작품들이 기다리고 있다. 특히 뮤지컬 ‘그리스’와 ‘갬블러’는 새로운 대본으로 찾아올 예정이다. 이 작품들이 원작과 완전히 같은지, 다르다면 어느 정도 각색할 수 있는지, 이를 한국에서 선보이게 된 과정은 어떠한지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면을 마련했다.

 

라이선스 공연의 정의

수입 공연은 크게 오리지널(Original)과 라이선스(License)로 나뉜다. 국내에서는 주로 내한 공연으로 불리는 오리지널 공연은 해외 현지에서 공연됐거나 공연 중인 작품을 원형 그대로 보여주는 것을 말한다. 엄격한 의미에서의 오리지널 공연은 초연 당시의 제작진과 출연 배우, 무대 세트가 그대로 적용되어야 하며, 이후 하나라도 변경되어 제작되는 작품에는 리바이벌(Revival) 공연이라는 명칭을 붙이는 것이 원칙이다. 라이선스 공연은 해외 원작자에게 저작료를 지급하고 판권을 사들인 뒤 우리말로 공연하는 것을 통칭한다. 이는 다시 레플리카(Replica)와 논레플리카(Non-Replica)로 나뉘는데, 레플리카는 음악과 가사는 물론 안무·의상·무대까지 똑같이 공연하되 배우만 국내에서 캐스팅하는 공연을 뜻하며 논레플리카는 원작을 수정·각색·번안해 국내 정서에 맞도록 재구성한 작품을 말한다.

 

(뮤지컬 ‘시카고’의 다양한 프로덕션에서 록시 하트 역을 맡은 배우들. 좌측부터 인순이·최정원(2000년 한국 프로덕션), 다일리스 크로만(2017년 오리지널 내한 공연 프로덕션), 아이비(2018년 한국 프로덕션))

 

한국 라이선스 공연의 시작

‘해적판이 아니라 원작자가 인정하는 공연’이란 뜻의 라이선스 공연. 이 용어가 국내에서 처음 등장한 것은 1990년대 중반 무렵이었다. 그 이전까지는 일명 ‘해적판’ 공연들이 즐비했다. 1980~1990년대 민간 극단들이 주도하는 해외 뮤지컬의 무허가 공연들이 인기를 누렸는데, 뉴욕이나 런던 책방에서 간주나 오버추어가 빠져 있는 불완전한 악보와 대본을 사다가 번역해 공연을 올리는 경우가 많았다. ‘지적 재산권을 지켜서 공연해야 한다’는, 지금으로서는 당위적인 개념이 확립된 데는 1995~1996년 삼성에서 창단한 삼성영상사업단의 역할이 컸다. 당시 미래 성장 동력을 엔터테인먼트 사업으로 상정한 삼성은 대규모 투자를 통해 선진 공연 제작 방법을 도입했다. 이때 뮤지컬의 프로듀싱이나 제작 절차 등의 개념이 빠른 속도로 유입됐고,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의 정식 판권 계약이 이뤄졌다.

이후 1998년 극단 신시(현 신시컴퍼니)가 브로드웨이에서 공연 중이던 뮤지컬 ‘더 라이프’를 정식 라이선스로 들여와 국내에서 선보여 화제가 됐다. 이어 2000년 뮤지컬 ‘시카고’와 2004년 ‘맘마미아!’와 같은 레플리카 작품들이 크게 성공을 거뒀고, 같은 해 오디뮤지컬컴퍼니(현 오디컴퍼니)는 1997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되었으나 흥행하지 못했던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를 논레플리카로 선보이며 전석 매진이라는 신드롬을 일으켰다. 당시 국내에서 성행하던 쇼뮤지컬과는 다르게 어둡고 심각한 분위기의 작품이었지만, 프랭크 와일드혼의 음악과 레슬리 브리쿠스의 대본이 지닌 작품성은 한국 관객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한국 뮤지컬 제작사들은 브로드웨이로부터 신뢰를 얻었고, 이후 라이선스 획득 절차는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작품 선정 기준과 라이선스 계약 절차

제작사가 라이선스 공연을 선정하는 기준에는 필연적으로 프로듀서의 기호와 방향성이 반영된다. 신시컴퍼니는 창단부터 회사를 이끌었던 박명성 예술감독의 색깔에 따라 작품성을 가장 중요한 선정 기준으로 둔다. 극단 신시로부터 시작한 회사인 만큼 스토리가 탄탄하거나 독특한 표현 방식을 가지고 있는 작품을 우선하여 선보이는 것이다. 반면 ‘맨 오브 라만차’ ‘마이 페어 레이디’ ‘킹 앤 아이’와 같이 고전 뮤지컬을 다수 선보여 온 오디컴퍼니 신춘수 대표는 고전을 선호하는 이유로 음악과 대본의 높은 완성도를 꼽았다. 여기서 고전이란, 문학 작품에 기반을 뒀거나 아주 오래전에 만들어진 이후 여러 번 리바이벌된 작품을 뜻한다.

레플리카는 원제작사나 현 프로덕션➊의 프로듀서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는다. 현재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고 있는 작품은 다른 지역에서 공연을 전개할 수 있는 권리가 현 프로덕션의 프로듀서에게 속해 있는 것이 관례로, 이는 작가·작곡가 등 원작자와의 사전 협의를 거친 자연스러운 절차다.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영국의 영화 제작사 워킹 타이틀 필름스, 뮤지컬 ‘마틸다’는 영국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RSC)와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요즘은 온라인으로 계약 절차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으나, 다양한 버전의 작품이 공연되고 있을 경우 어떠한 버전을 한국에 들여오는 것이 좋을지 탐색하기 위해 프로듀서가 현지를 방문하기도 한다. 반면, 논레플리카는 공연권 관리 회사와 라이선스를 체결한다. 공연권 관리 회사란 원작자들로부터 공연권을 위탁받아 라이선스 과정을 관리하는 회사로, 종료된 공연의 경우 이들에게 공연권을 위탁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곳이 캐머런 매킨토시가 회장으로 있는 MTI(Music Theatre International)로, 다수의 브로드웨이·오프브로드웨이➋·웨스트엔드 작품의 공연권을 소유하고 있다. 오디컴퍼니 신춘수 대표 역시 MTI와의 라이선스 계약 절차를 거쳐 ‘아가씨와 건달들’(2003)과 ‘지킬 앤 하이드’(2004)를 한국에 선보였다. 논레플리카의 또 다른 스테디셀러인 ‘맨 오브 라만차’는 2005년 초연 시 공연권 관리 회사인 마턴 에이전시(The Marton Agency)와 라이선스 계약을 진행했으나, 현재는 작가 대리인에게 공연권이 양도된 상태다.

➊ 프로덕션: 무대·조명·음향·의상 등의 모든 하드웨어적인 요소들과 그 위에서 만들어지는 배우들의 노래·연기·춤·오케스트라의 연주 등 소프트웨어적인 요소들이 결합되어 만들어지는 뮤지컬 제작의 전 과정을 의미한다.

➋ 오프브로드웨이: 미국 연극의 중심역할을 해 온 브로드웨이 연극이 대자본을 필요로 하는 상업연극으로 변모한 데 대한 반발로 제2차 세계대전 후 일어난 소극장 또는 그 연극운동. 뉴욕시의 브로드웨이지구 외곽에 퍼져 있는 300석 미만의 객석을 가진 소극장군(群)을 가리킨다.

 

뮤지컬 ‘시카고’ 한국 프로덕션의 연습 현장에서 말하고 있는 박명성 예술감독


2018년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한국 프로덕션의 연출 데이비드 스완

 

 

협업을 통해 탄생하는 레플리카

레플리카는 작품의 높은 완성도를 유지해 보여주기 위한 협업 과정을 거친다. 현재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고 있는 작품을 프로덕션 그 자체로 국내에 가지고 오는 것이기 때문에 별도의 국내 프로덕션을 꾸리는 과정이 필요하지는 않다. 다만 원제작사의 오리지널 연출가가 직접 국내로 들어오는 경우는 드물고, 이들로부터 노하우를 전수받은 해외 협력 연출이 국내 협력 연출과 협업하며 작품을 만들어간다. 해외 크리에이티브 팀과의 적극적인 소통이 필요하다보니 연습 기간과 무대 설치 기간도 논레플리카 공연에 비해 긴 편이다. 최근 많은 공연이 무대 세트업과 COS➌를 1~2주 안에 끝내는 것에 비해, 뮤지컬 ‘마틸다’는 세트업만 2.5주, COS는 4주간 진행하며 상당한 극장 대관료를 지급해야 했다.

배우 캐스팅은 원제작사와 한국 제작사 측 연출가·음악감독·안무가가 함께 오디션 심사에 참여해 진행된다. 초연 작품의 경우에는 해당 구성원이 모두 심사에 참여해야 하지만, 뮤지컬 ‘아이다’나 ‘맘마미아!’처럼 여러 시즌에 걸쳐 진행된 작품이라면 원제작사에서는 연출가만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원칙적으로는 원제작사가 승인해야 캐스팅이 완료되나, 오디션 이후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며 결정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무대 디자인은 현지 공연에서 사용되는 무대를 그대로 가져오거나 원제작사로부터 도면을 받아 직접 제작하는 등 작품별로 다양하다. 오는 11월 개막하는 레플리카 연극 ‘더 플레이 댓 고우즈 롱’의 무대는 호주 공연에서 빌려왔다. 무대가 또 다른 주인공이 되는 작품이라는 점을 고려해 연극에서는 흔치 않은 레플리카로 선보인다. 공연 중 무대가 무너질 뿐 아니라 무대 위에서 불이 나는 등 각종 특수효과가 동원되는 작품으로, 도면만으로는 미처 점검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해 직접 만들어진 무대를 사용해본 후 재공연 때는 직접 제작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다고 신시컴퍼니 최은경 대표는 설명했다. 공연이 얼마 안남은 요즘은 연습실에서부터 공연 시 사용되는 무대를 설치해놓고 연습을 진행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➌ COS: Cast On Stage의 준말. 전 캐스트가 극장 무대에서 실제 공연처럼 연습을 진행하는 것을 뜻한다. 보통 연습실에서의 연습 과정을 마친 후, 개막 전까지 무대에서 최종 연습을 거친다.

 


2018년 11월 국내 개막을 앞둔 연극 ‘더 플레이 댓 고우즈 롱’의 대본 리딩 현장

2017년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공연한 연극 ‘더 플레이 댓 고우즈 롱’

 

 

논레플리카, 역동적인 재창조를 거치다

원작에 기반하여 새로운 프로덕션을 만드는 재창조 과정을 거쳐 논레플리카가 탄생한다. 공연권 관리 회사로부터 라이선스를 획득한 후 프로덕션을 꾸리는 과정은 전적으로 한국 프로듀서의 자율성에 따라 진행되는데, 작품에 어울리는 연출과 디자이너를 찾는 것이 프로덕션의 시작이다.

논레플리카는 음악과 대본에 대해서만 로열티를 지급하고, 연출 의도는 물론 무대·조명·음향까지 국내 프로덕션이 추구하는 방향으로 새롭게 해석하여 진행한다. 그러나 음악과 대본에 관해서도 작가·작곡가 등 원작자(원작자가 죽은 경우, 변호사나 대리인)의 동의가 있다면 현 한국 정서에 맞게 각색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오디컴퍼니가 2014년에 선보였던 뮤지컬 ‘드라큘라’이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서부터 오디컴퍼니와 상호 신뢰를 쌓은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이 2004년 브로드웨이 초연부터 참여했던 작품으로, 한국 프로덕션에서는 작곡가와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곡들을 선보인 바 있다. 지난 2월 선보였던 ‘닥터 지바고’ 역시 2012년 호주 오리지널 프로덕션과는 다르게 등장인물의 감정선을 드러내는 곡을 추가해 극의 설득력을 높였다. 뮤지컬 ‘갬블러’는 대본을 대폭 수정해 오는 2019년 새롭게 선보일 예정이다. 1999년 초연 이후 2002, 2005, 2008년에 공연되었지만, 음악은 크게 호평받았던 데 반해 구태의연한 스토리로 지적을 받았다. 내년의 재공연을 앞두고 현시대에 맞게 대본을 각색하는 것을 원작자와 협의하고 있는 단계이다.

 


2004년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한국 프로덕션의 초연부터 함께해온 조승우

2014년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서 지킬·하이드 역을 맡은 박은태


2017년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월드 투어에서 지킬·하이드 역을 맡은 카일 딘 매시

 

 

한국 라이선스 뮤지컬의 현재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오늘날 크게 성장한 한국 라이선스 뮤지컬 시장에서는 ‘한국 초연’ ‘아시아 초연’ 작품이 다수 올라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을 국내 뮤지컬 시장의 높아진 위상 때문에 원제작사에서 한국 제작사 측에 초연 작품의 라이선스를 부여했다고 보는 관점은 무리가 있다. 영국·호주·캐나다·일본 다음으로 한국을 꼽을 수 있을 정도로 한국이 세계적으로 꽤 규모 있는 뮤지컬 시장인 것은 맞지만, 한국은 오픈 런➍ 공연을 진행하지 않을 뿐 아니라 현재 관객 수가 정체되어 있는 상황으로 수익성을 보장할 수 없다. 따라서 이는 프로듀서가 해당 작품을 한국 또는 아시아에서 첫선을 보이려는 열망을 갖고, 전투적으로 라이선스 계약을 맺은 것이라고 보는 관점이 보다 적합하다. 브로드웨이에서도 현지 외에 다른 시장의 개척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는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이들이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시장에서 뮤지컬에 대한 수요가 꽤 크다고 인식하게 된 시점을 2010년 이후로 보는데, 여기에는 그동안 한국 제작사들이 양질의 라이선스 공연을 통해 신뢰를 심어준 것이 큰 역할을 했다.

그동안 다양한 사례의 한국 라이선스 공연 또한 국내 뮤지컬 시장의 성장을 이끌어 왔다.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는 2010년 국내 초연 시 2인극이 선사하는 신선한 호흡으로 흥행에 성공했다. 한국에 앞서 진행됐던 2009년 브로드웨이 공연에서는 혹평받은 바 있는데, 지나치게 간결한 무대·연출뿐 아니라 감정선이 없는 건조한 극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작품 개발에 함께 참여했던 오디컴퍼니 신춘수 대표는 브로드웨이 극장에서 작품이 내려가자마자 공연권 관리 회사 MTI로부터 작품의 라이선스를 획득했고, 직접 연출을 맡아 작품을 각색해 선보임으로써 성공을 거두었다.

지난 2월 막을 내린 뮤지컬 ‘타이타닉’은 처음부터 브로드웨이에서 리바이벌 프로덕션을 꾸릴 것을 염두에 두고 계약을 진행한 작품이다. 브로드웨이에서의 공연을 목표로 해당 프로덕션을 한국에서 먼저 선보인 것이다. 현재 브로드웨이에서 배우 오디션 과정을 거치고 있고, 12월 초 최종 오디션을 위해 신 대표가 직접 현지를 방문할 예정이다. 미국은 공연이 오픈 런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아직 극장은 받지 못한 상황이나, 배우 오디션을 진행한 이후에도 펀딩에 성공하지 못하면 공연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브로드웨이의 냉혹한 비즈니스 현실이기 때문에 현재 자연스러운 진행 준비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➍ 오픈 런: 공연이 끝나는 날짜를 지정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공연하는 것을 뜻하는 용어로, 상연 기간을 미리 확정해놓는 리미티드 런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한국에서는 리미티드 런으로 공연을 올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Leave a reply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