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ge of the soul
리스트와 쇼팽이 빚어낸 보석 같이 빛나는 첼로 작품들
첼리스트 양성원과 피아니스트 엔리코 파체 듀오 연주회가 10월 26일 경기도 문화의전당 소극장, 27일 인천 엘림아트센터, 30일 여수 GS 예울마루, 11월 5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펼쳐진다. 리스트와 쇼팽으로 물들 이날 무대는 피아노의 비루트오소 리스트와 피아노의 시인 쇼팽 두 작곡가의 음악을 첼로와 어우러진 선율로 색다르게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작년 바흐 무반주 첼로 전곡 연주를 진행하면서 바흐의 깊은 내면의 세계를 성찰했던 양성원은 이번 무대에서 오랜 시간 음악적 우정을 쌓아온 피아니스트 엔리코 파체와 함께 로맨틱한 첼로 앙상블을 선사한다. 특히 무대에서 연주할 작품들은 지난 3월 통영 콘서트홀에서 음반 녹음을 진행한 작품들로, 9월 ‘사랑의 찬가’라는 타이틀의 앨범으로 발매되어 관심을 모았다.
1부 레퍼토리는 리스트의 ‘엘레지’ 1번, ‘위안’ 1·4번, ‘잊혀진 로망스’ S132, ‘위안’ 6번, ‘슬픔의 곤돌라’ S134, ‘노넨베르트의 작은 방’ S382, ‘사랑의 찬가’ 등이다. 특히 ‘사랑의 찬가’는 양성원과 엔리코 파체가 첼로와 피아노를 위해 직접 편곡한 버전 작품으로 국내에서는 처음 연주된다.
“리스트와 쇼팽의 곡들은 음악을 통해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정서와 감정을 깊은 내면에서 끌어내 영적으로 느끼게 하는 작품들이죠.”
바흐 전곡 연주를 비롯해 양성원의 그동안의 음악적인 도전들은 클래식 음악계에 의미있는 이정표를 남긴 바 있다. 리스트와 쇼팽 연주에 앞서 그는 이미 브람스와 슈만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작품 전곡을 연주하며 음악적 상상력과 깊이를 보여주었고 다양한 실내악 공연에서도 신선한 무대를 선사했다.
“오랜 시간 집중해서 연주를 준비하고 무대에서 마치고 나면 힘들고 지칠 때도 많지요. 하지만 연주를 하며 청중과 함께 공감하고 느끼는 감동은 그 힘듦을 잊게 하는 충분한 에너지가 있습니다. 얼마전엔 연주 차 헝가리에 다녀왔는데 그곳에서 만난 리스트의 숨결이 이번 연주를 준비하는데 큰 영감이 되었습니다. 리스트만의 언어를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그렇게 음악 속에 자신의 영혼을 쏟았던 음악가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연주로 표현하고 싶은 제 마음과 닿게 되지요.”
그는 특히 리스트의 후기 음악은 그 여운이 깊고 마음에 더 남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음과 음 사이의 생명을 살리고, 그 연결고리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음미하며 만든 음악. 양성원은 리스트의 언어를 그 안에 담아낼 생각이다. 2부를 장식할 쇼팽의 작품 역시 여운이 깊은 곡으로 말년에 그가 작곡한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Op.65와 초창기에 작곡한 서주와 화려한 폴로네이즈 Op.3을 감상할 수 있다. 순수하고 싱그러웠던 초창기 쇼팽의 음악 언어와 점점 풍부하고 다양한 화성이 시도되는 말년의 음악 언어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무대이기도 하다.
“평생을 피아노 음악에 열정을 쏟았던 쇼팽이 피아노와 함께 특별히 사랑했던 악기인 첼로를 통해 어떤 감성과 화성으로 실내악 작품을 썼는지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특히 쇼팽이 이 첼로 소나타를 작곡한 자필 악보를 보면 그가 그동안 많이 쓰지 않았던 화성들로 작곡해보기도 하고 지우며 다시 그리기를 여러 번 했던 흔적이 드러나 있지요. 첼로 소나타 3악장만 해도 쇼팽만이 쓸 수 있는 음악의 시편이 펼쳐지지만 4악장은 그동안 알고 있던 쇼팽의 화성과는 다른 차원의 음색을 만들어 보려고 했던 노력이 엿보입니다. 천재 음악가도 고뇌하며 새로운 음악을 창조하기 위해 갈망했다는 것이 오히려 인간적으로 와 닿더군요. 손끝에서 그려진 그의 음악 속에서 쇼팽만의 뿌리가 느껴졌습니다.”
그가 아날로그를 사랑하는 이유
2000년대 흔히 들을 수 없었던 졸탄 코다이 첼로 소나타를 음반으로 발매하면서 클래식 음악 마니아들의 지지를 받았던 양성원은 시대를 앞서 리드하면서도 아날로그 방식의 정서를 간직하고 지켜 온 음악가다. 그는 디지털로 자신의 음악적 변화들을 기록해오는 동시에 클래식 음악 무대 현장에서 청중과 끊임없이 대화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요즘 젊은 층에서는 음악을 LP로 들으려는 경향이 늘었다고 들었습니다. 좀더 아날로그적으로 사람의 손길이 닿은 정성이 가치를 발휘하는 시대가 된 것이지요. 결국 무대에서 연주를 한다는 건 음 하나 하나의 의미를 살리고 표현하려는 연주자의 노력이 드러나는 순간과도 같은 것입니다. 음악은 어느 한 순간도 같을 수 없지요. 매일 매일 최선을 다해 연주에 영혼을 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자신이 켜는 첼로도 4개의 현 중 두 줄을 거트현으로 쓸 만큼 자연스러운 것을 중요시 하고 있다. 자연스러움이야말로 인간의 마음, 목소리와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자연이 참 소중한 것 같아요. 자연에서 멀어지면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몸과 마음에 병을 얻게 되지요. 조화로움은 아름다움을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전 힘든 상황이 올 때면 조용히 제 자신에게 물어보곤 했어요. ‘만약 자연이었다면 어땠을까?’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그러면 한결 마음이 평안해지고 본질적인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되지요.”
음 하나 하나에 혼을 담아 음색을 만들어 가고 작곡가가 표현하려했던 의도를 생각하고, 그 안에서 하나가 되어가는 작업. 지극히 아날로그적일 수밖에 없는 끝없는 작업 속에서 그는 세상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와 기쁨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그의 음악 여정은 올해도 내년에도 쉬지 않고 펼쳐질 것이다.
“내년엔 차이콥스키와 쇼스타코비치, 바인베르크 등 러시아 음악들을 연주할 예정입니다. 인간이 억압과 통제 앞에서 예술을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느낄 수 있는 무대가 되리라 기대합니다. 이번 연주를 마치면 다시 러시아 음악 속으로 들어가 보려고요.(웃음)”
그는 오랜 시간 함께 호흡을 맞췄던 엔리코 파체와의 앙상블이 이제는 물처럼 자연스러워졌다며 피아니스트의 역할이 더없이 중요한 이번 무대가 무척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좋은 연주자와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건 행운이고 축복이지요. 이제는 후배들이 많아졌고 교육자로서의 사명감이 더 커졌기 때문에 한번 서는 무대여도 의미있는 공연을 하고 싶습니다. 어느덧 이렇게 오랜 시간 연주를 하다 보니 음악만큼 하면 할수록 어렵고 모르는게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음악은 내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깨닫게 하는 동시에 그 음악을 통해 얼마나 아름다운 것들을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지 알려주지요. 음악이 주는 그 영감들이 저를 자유케 합니다.”
세상에 우리의 영혼을 움직이게 하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그는 말한다. 겸허한 마음으로 온전히 자신을 바친 음악은 우리가 어느 길로 가야할 것인지 알려줄 수 있을 거라고.
글 국지연 기자
양성원 & 엔리코 파체 듀오 리사이틀
10월 26일 오후 8시 경기도문화의전당 소극장
10월 27일 오후 7시 30분 엘림아트센터
10월 30일 오후 7시 30분 GS 예울마루 대극장
11월 5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
피아니스트 엔리코 파체
첼리스트 양성원과 함께 하는 이번 무대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한국에서 많은 연주를 했다. 청자와 한글 같은 훌륭한 문화를 갖고 있는 한국 사람들은 예술을 사랑하는 이탈리아 사람들과 매우 비슷한 느낌이다. 나의 오랜 음악 친구인 양성원 교수와 좋은 음악으로 즐거움을 선사하고 싶다.
이번에 연주할 리스트와 쇼팽의 음악의 해석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리스트와 쇼팽은 19세기 피아노 음악 발전의 선두주자이다. 그들은 둘 다 파리에 살았고 서로를 잘 알고 있었으며 리스트는 쇼팽에 관한 책을 쓸 만큼 관심이 높았다. 리스트의 음악은 처음에는 굉장히 외향적인 면이 강했지만 인생의 후반부에는 그야말로 내적인 영성이 빛나는 음악들을 많이 작곡했다. 이날 연주할 ‘슬픔의 곤돌라’ 작품 속에는 그가 삶 속에서 얼마나 인간의 욕망과 영성의 부름 사이에서 고뇌했는지 잘 담겨져 있다. 쇼팽의 음악은 강렬하면서도 굉장히 연약하다. 심리적으로 복잡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모든 감각을 집중하고 섬세하게 내면의 변화에 귀 기울이고 반응해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새롭게 다가오는 레퍼토리가 있나? 악기에서 나오는 각각의 소리와 색채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베토벤과 슈베르트, 리스트의 후기 작품, 드뷔시와 라벨의 음악을 좋아하고 늘 연주하고 싶다.
진정한 예술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가능한 한 가장 간결한 방법으로 숙련된 장인정신을 통해 삶에 대해 이해하고 완벽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연주자로서 나의 목표는 청중에게 그 작품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청중의 마음에 투사하여 그들과 그 아름다움을 공유하는 감동을 경험하는 것이다.
음악 외에는 무엇을 좋아하며 영감은 어디에서 얻나? 책 읽는 것을 좋아하며 산책하며 걷는 것을 즐긴다. 책과 자연은 내 영감의 원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