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악기 연주자·프로덕션 고금 대표 조종훈

동그라미에 국악을 담는 돈키호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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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1월 7일 9:00 오전

INTERVIEW

타악기를 든 청년, 음반제작자가 되어 해외시장을 노크하기까지

 

 

빠르고 화려한 김덕수의 장구 소리가 느려지면 그는 또다시 카세트테이프를 구매했다. 수천 번을 반복 청취하여 늘어진 부분이 곧 그가 애호하는 대목이었다. 이광수의 비나리를 들을 때도 그러했다. 학창 시절에 음반 속의 음악들은 연주자로서 성장하기 위한 원동력과 목표를 만들어 주었다. 그는 훗날 자신의 소리를 음반에 담으리라 다짐하곤 했다. 이제는 그는 성장하여 자신의 음악뿐 아니라 세상의 소리를 음반에 담고 있다.

조종훈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연희과에서 예술사(학사)와 예술전문사(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음악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국가무형문화재 제82-1호 동해안별신굿 이수자인 그는 창작그룹 호나(HONA)의 멤버이기도 하다. 호나는 김지현(피리·태평소·생황), 천진희(가야금), 고명진(타악)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던 중 2017년 6월에 음반사를 설립하고, 2018년 1월부터 본격적인 제작에 돌입하였다. 2014년에 본인이 직접 선보인 공연 ‘고금고금(古今鼓琴) 프로젝트’에서 옛(古)와 현재(今)를 뜻하는 두 글자를 따와 ‘프로덕션 고금’이라고 이름 붙였다. 지금까지 제작한 음반은 6종. 발매한 음반까지 포함하면 모두 11종이다. 그동안 타악기 연주자로 겪은 희비의 체험은 음반 제작은 물론 회사의 콘셉트를 잡는 데에 일조했다.

 

음악가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던 시절에 음반의 존재와 이를 통해 음악을 듣고 배운 경험은 어떤 의미였나? 음반만큼 좋은 스승이 없었다. 성장의 원동력이었고 가치관 형성에 도움을 주었다. 음반은 음악가가 대중을 만나는 여러 방법의 하나지만, 음악가의 존재와 실력을 알리는 데에는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매개체이다. 대중과 평론가에게서 온 피드백은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되고. 그래서 많은 음악가가 자신의 음반을 제작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닐까? 나 역시 나의 음반을 내면서 안목과 가치관의 성장을 느꼈다. 그래서 젊은 음악가들이 거침없이 음반을 내보기를 권한다.

하지만 이 동그라미 한 장(음반) 그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맞다. 첫째 제작비, 둘째는 유통이다. 동그랗게 나왔지만, 사람들 사이로 잘 굴러다니지 않으면 속상하다. 내 음반을 제작할 적에 나의 희망은 좋은 발매사를 만나는 것이었다.

‘좋은 발매사’란 무엇인가? 연주자를 상업적 기준으로 평가하지 않고, 부당한 수수료 없는 공정한 계약을 통해 이익을 배분하는 회사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힘들다. 음원서비스가 확장되면서 음반시장이 급격히 위축되었기 때문이다. 비주류음악을 담은 음반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과정과 상황을 알아가다가 내가 직접 음반을 제작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뛰어들게 되었다. 음반 녹음 시 연주자의 입장에서 가졌던 시선으로 제작-배급-유통의 판을 들여다보고 있다.

국악음반의 시장성… 그것이 가능한가? 온 몸으로 가능성을 시험 중이다. 해외 진출을 위해 북미, 유럽, 일본의 아마존에 입점하고, 일본 츠타야 서점 내 음반매장을 통해 지속적으로 노출 중이다. 현재 해외 주요 매장에 입점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음반 재킷 디자인의 차별화는 물론 CD뿐만 아니라 LP도 제작 중이다. 음반 마니아들에게 LP는 좋은 ‘먹거리’이자 ‘멋거리’라 생각한다. 음반의 크기만큼 ‘넓은 시험지’인 셈이다. 그리고 그 시험지는 ‘음악을 들어보니 어떤가? 좋은가? 별로인가?’ 등의 다양한 문제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무모하다… 주변에 말리는 사람이 없었나? 아니다. 작은 시작이지만 지속해서 LP를 제작하다 보면 이 매체를 통해 국악에 다가오는 발걸음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예전에 국악방송 PD와 인터뷰하면서 ‘소수의 음악인 국악’과 ‘대중을 위한 방송’ 사이의 거리감과 한계를 느낀다고 들은 바 있다. 국악음반 역시 ‘소수의 음악’과 ‘대중매체’의 거리감과 한계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음반이란 국악이 지닌 아날로그적 감성과 정서를 사람들이 잘 느끼도록 전달하는 도구와도 같다. 음악가는 음반에 담을 좋은 음악을 많이 만들고, 나는 여러 사람이 그 음반을 소장하고 싶게끔 포장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한마디로 ‘살면서 저 음악은 알고 있어야 한다’라는 생각이 들도록 현혹하는 것이지.(웃음) 현혹이라는 말이 너무 직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지금의 내게는 중요한 말이다. 그래서 그런 전략과 마케팅을 잘 하는 국내 클래식음악 시장이 부럽고 배울 점도 많다고 생각한다. 현혹? 쉽지 않다. 대중을 홀리는 뛰어난 음악과 연주자가 지속해서 배출돼야 하고, 연주자의 층위도 두터워야 한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은 그런 이들을 찾아 부지런히 뛰어다녀야 하고. 결국 그러다 보면 소수의 음악과 대중의 거리는 가까워지리라 본다.

 

‘고금’스러운 음반이란

첫 음반이 곧 음반사의 선언문이었다. 프로덕션 고금 설립 후, 그가 처음으로 내놓은 음반은 ‘김석출 제 호적 산조’. 젊은 태평소 연주자 김지현, 보라색과 남빛이 뒤섞인 진한 푸른색의 표지가 인상적이다. 알매이인 LP판도 투명한 보랏빛이 감돈다. 음반을 걸자 김지현의 호적(태평소) 소리가 날카롭게 스피커를 찢고 나온다. 음반을 만든 조종훈은, 음반 속에서 동해안별신굿 장구를 직접 연주하여 음반의 내면도 채워 넣었다.

김석출 제 호적 산조 음반 재킷

첫 시작을 알리는 이 음반에 담은 의미가 궁금하다. 고금이 추구할 가치관이다. 김석출(1922~2005) 명인은 동해안별신굿 예능보유자였고 영남을 대표한 예인이었다. 호적은 소리가 크고 실내감상에 적합하지 않은 악기인데, 이러한 단점을 역으로 이용하여 ‘시원한 산조’를 연출하고 싶었다. 그래서 가야금·대금·거문고 산조와는 분명 다른 맛이 있다. 이 산조는 김석출이 고인이 되면서 점점 사라져만 갔다. 그 명맥을 잇고자 김지현 씨에게 제안해 음반에 담았다. 젊은 연주자로 하여금 음악에 덮인 잠을 털어내고 싶었다.

무인도에 갈 때, 하나 더 들고 갈 음반을 고른다면? 정음회의 ‘현악영산회상’ LP다. 1977년에 설립된 정농악회가 1982년 성음사에서 출반한 ‘영산회상’은 4장의 LP로 구성된, 한마디로 명반이다. 이후 LP로 처음 발매한 것이 정음회의 녹음이다.

도쿄 츠타야 T-Site에 진열된 김덕수 장구산조 음반

김덕수의 장고산조가 담긴 음반은 진정 ‘최초’다. 출반과 동시에 화제가 되었다. 많은 이들이 ‘김덕수’는 알지만 그의 단독앨범을 접한 이는 없을 것이다. 대부분 사물놀이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여 여러 장의 음반을 냈을 뿐이다. 작년이 김덕수의 예인 인생 60주년, 사물놀이 40주년인 해였다. 그래서 그의 장구 소리만 온전히 담아보았다(CD·LP). 이쯤 되면 고금이 추구하는 가치관이 보일 것이다.

음반 케이스, 재킷, 속지의 디자인과 스타일이 제각각이다. 쭉 진열해놓고 보니 같은 음반사에서 나온 것 같지 않다. 사실 통일된 디자인이 제작비, 작업량, 마케팅 전략에서는 편하다. 하지만 음악과 음악가의 개성이 각 음반의 스타일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통일된 디자인의 음반들을 볼 때마다 음악가보다 음반사가 우위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대중을 현혹하는 음반이 아니라, 음반을 내고 싶어 하는 음악가를 현혹하는 것과도 같다. 음반을 처음 접했을 때 음반사보다 음악가가 먼저 보이기를 원한다.

전통과 모던의 균형을 잡아가는 디자인 작업과정과 최종 재킷

 

 

 

 

최근 국립국악원의 우면당, 서울 돈화문국악당 등이 ‘자연음향’을 통해 국악기 본질의 음향과 새로운 감상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이 같은 개념은 국악음반에서도 생각해봐야 할 문제일 텐데, 국악음반만의 녹음기술이나 음향의 결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현악기는 특유의 윙윙거리는 버징(buzzing)이 많이 일어난다. 서양의 현악기도 이는 마찬가지지만 녹음에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며 기술적으로도 제어할 수 있다. 반면 전통악기는 그렇지 못해 오늘의 녹음 방식에 적합한 악기가 아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머금은 악기는 공연장이든 녹음실이든 본연의 울림을 보여준다. 국악음반을 위한 녹음기술과 음향의 결이 따로 있다기보다는 이런 악기와 연주자를 만나는 게 복이라 생각한다.

 

세상은 넓고, 음반은 그곳으로 간다

워멕스(WOMEX)는 세계적 규모의 월드뮤직 엑스포이다. 조종훈은 2017년 폴란드 카토비체에서 열린 워멕스에서 고금의 음반과 호나의 음악을 소개했고, 이듬해 스페인령 라스팔마스에서 개최된 워멕스에는 단독부스로 참가하여 7종의 음반을 소개했다. 오늘날 워멕스는 젊은 국악인들의 월드플랫폼이다. 타악그룹 공명, 노름마치, 잠비나이, 블랙스트링 등이 이를 통해 세계로 나아갔다.

2018년 워멕스의 고금 단독부스

 

2018년, 사물놀이 40주년을 기념하는 시즈오카현 콘서트홀 공연(11월 7일) 후의 사인회

이렇게 낸 음반들이 해외에서는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가? 공연을 하면 창작국악보다 전통음악에 더 관심을 보이는데, 이는 음반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의 반응 중 독특한 점이 있다면? 워멕스에는 방송국의 음악 PD부터 극장 관련 프리젠터, 프로모터, 프로듀서들이 델리게이트로 참여한다. 이들은 특정 장르를 선호하기보다는 극장이나 축제의 콘셉트와 맞는 음악들을 찾아 다닌다. 그래서 처음 접하는 음악과 음반을 놓고 어떤 음악인지, 악기 구성은 어떻게 되는지, 연주만 하는지 퍼포먼스가 함께 하는지 등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숙소에서 밤새 듣고 좋으면 바로 다음 날 부스로 직접 찾아오거나, 워멕스가 끝나고 잊을 때 즈음 연락하기도 한다. 현재 그룹 4인놀이의 캐나다 투어 일정이 잡혀가고 있다.

고금은 올해부터 클래식음악과 재즈까지 확장할 예정이다. 해외시장 판로와 유럽지사도 모색 주이다. 인터뷰를 끝날 때마다 인터뷰이들은 내게 하나씩의 글자를 안겨준다. 조종훈을 만나고 나서 떠오른 글자는 ‘망’이었다. 망망대해의 망(茫), 아득하다는 뜻이다. 망각의 망(忘), 잊힌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물 망(網)과 희망의 망(望)이 떠올랐다. 그는 지금 잊혀진(忘) 음악을 음반이라는 그물(網)로 낚아 올려, 희망(望)을 품고 망망대해(茫)를 항해하는 중이다.

송현민(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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