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객석’ 기자들이 꼽은 화제의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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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3월 4일 9:27 오전

©Bonsook Koo

마이 밸런타인

로런스 파워 & 사이먼 크로퍼드필립스 듀오 리사이틀

2월 14일 | 금호아트홀

많은 사람이 ‘마이 밸런타인(My Valentine)’을 찾은 이 날, 나의 밸런타인은 금호아트홀 무대 위에 선 두 남자였다. 영국에서 온 아름다운 두 남자가 만든 무대는 아름다운 목요일 밤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금호아트홀 인터내셔널 마스터즈 시리즈의 올해 첫 무대는 비올리스트 로런스 파워와 피아니스트 사이먼 크로퍼드필립스가 열었다. 첫 내한이기도 했던 두 사람의 무대는 공연 전의 기대와 설렘을 넘어 그 이상의 감동과 여운을 남겼다.

이번 무대를 위해 두 사람이 준비한 작품은 쇼스타코비치와 파야, 브람스, 그리고 베를리오즈와 프로코피예프였다. 브람스 비올라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1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비올라를 위해 편곡된 작품이었다. 편곡 작품이 아닌 비올라를 위해 만든 작품을 더 많이 들어보고 싶은 아쉬움을 무너뜨리듯, 이날의 프로그램은 비올라가 지닌 다채로운 음색을 보여주며 악기가 지닌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해 주었다.

객석의 불이 미처 다 꺼지기도 전부터 관객들은 두 연주자를 맞이할 준비를 끝낸 듯했다. 그렇게 고요한 기대 속에서 로런스 파워와 사이먼 크로퍼드필립스가 무대 위로 등장했다. 쇼스타코비치 피아노를 위한 24개의 전주곡 중 일곱 곡을 선보인 이들은 이어 파야의 ‘성악과 피아노를 위한 7개의 에스파냐 민요’를 연주했다. 부드러우면서도 유연한 소리와 정확한 아티큘레이션으로 빚어내는 다양한 감각들이 마치 풍성한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연상시키는 듯했다. 비올라 특유의 울림 있는 음색은 브람스 소나타 1번을 통해 더 깊이 만나볼 수 있었다.

2부 무대는 더욱 감각적으로 꾸며졌다. 어두운 조명 아래 펼쳐진 비올라와 피아노 버전의 베를리오즈 ‘소프라노와 피아노를 위한 오필리아의 죽음’은 서서히 스며들며 공간의 분위기를 바꾸어놓았다. 곡의 분위기 전환과 함께 조명 또한 단번에 밝아졌고, 프로코피예프 ‘로미오와 줄리엣 모음곡’이 연이어 흘러나왔다. 기교와 드라마가 모두 포함된 이 작품에서 두 연주자의 음색과 호흡은 더욱 빛났다. 그렇게 마지막 ‘줄리엣의 죽음(Death of Juliet)’을 끝으로 조명은 다시 어두워졌다. 연주자의 마지막 숨소리 하나, 소리의 마지막 울림과 그 잔향까지 놓치지 않으려는 관객은 숨죽였고, 마지막 잔향이 다 사라지고 나서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오랜 시간 함께 음반과 공연으로 호흡을 맞춰 온 두 사람의 연주는 서로에게 딱 맞는, 흠 잡을 곳 없이 잘 만들어진 맞춤 정장 같았다. 때때로 스타 플레이어들의 만남으로 이루어진 앙상블 무대에서 다가왔던 왠지 모를 아쉬움이 이곳에는 없었다. 로런스 파워와 사이먼 크로퍼드필립스, 두 사람 모두 개성 있는 색깔로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아티스트이지만, 함께하는 이 무대에서는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한 곳을 향해 가고 있었다. 이미라

 

시벨리우스의 눈보라가 치는 밤

오스모 벤스케/서울시향 연주회(협연 양인모)

2월 14·15일 |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겨울가뭄이라고 말할 정도로 눈이 드물었던 중 오랜만에 눈이 내린 날이었다. 시벨리우스를 듣기에 더없이 좋은 날이 아닌가. 온종일 내리는 눈을 맞으며 예술의전당으로 향했다.

서울시향은 양일간 ‘올-시벨리우스’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핀란디아’와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를 1부에, 교향곡 6번과 7번을 2부 무대에 올렸다. 핀란드 출신의 탁월한 시벨리우스 해석자 오스모 벤스케는 이미 BIS 레이블에서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집을 발매하며 자국의 작곡가에 대한 깊은 이해를 드러낸 바 있다. 벤스케가 음악감독으로 있는 미네소타 오케스트라의 악장이자 벤스케의 부인인 에린 키프가 이번 공연의 객원 악장을 맡았고, 포트웨인 필하모닉 팀파니 수석 에릭 슈바이커트도 객원으로 참여했다.

양인모가 협연한 바이올린 협주곡은 아쉬움이 남았다. 그 자신이 훌륭한 바이올린 주자였던 시벨리우스는 바이올린의 다양한 기교와 매력 포인트를 협주곡 안에 심어두었다. 양인모의 기교는 흠잡을 데 없었지만, 악단과 협연자 간의 밸런스는 다소 아쉬웠다.

벤스케의 에너지는 2부에서 꽃을 피웠다. 선율을 리드하는 악장과 골조를 구성하는 팀파니로 진영을 갖춘 벤스케는 자신의 메시지를 악단에 적극적으로 투영했다. 도리안 선법을 바탕으로 작곡된 교향곡 6번은 국내에서 자주 연주되지 않는 작품이라 애호가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1~3악장에서는 주제선율이 단순하게 다뤄지다가 4악장에서 각 성부의 음계가 중첩되고 충돌하는데, 벤스케는 1~3악장에서 쌓아올린 에너지를 4악장에서 강렬하게 표현해냈다.

교향곡 7번은 이날의 백미였다. 단악장 구성으로 환상곡에 가까운 교향곡인 7번은 그만큼 다채로운 표현을 품고 있는 작품이다. 벤스케는 아다지오로 흐르는 서두에서부터 꼼꼼히 공들여서 악상의 산을 쌓아갔다. 마치 눈덩이를 굴리면서 크기를 키우듯이 악상을 하나로 집중시켜, 온 힘을 다해 그 공을 던지는 듯했다. 그 ‘빌드업’의 과정이 구조적으로 설득력을 가지면서 벤스케가 선보인 해석에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이정은

 

OEDIPUS_SEM COMPANY

‘자유’라는 인간의 숙명

연극 ‘오이디푸스’

1월 29일~2월 24일 |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오이디푸스’는 고대 그리스의 비극작가 소포클레스에 의해 탄생한 희곡이다. 테베의 3대 왕인 라이오스와 이오카스테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라는 저주의 신탁을 피하기 위해 태어나자마자 발을 묶인 채 산에 버려진 오이디푸스. 그는 그 후 코린토스의 플뤼보스왕의 양자로 길러졌지만, 또 다시 저주의 신탁을 받고는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콜린토스를 떠나고 우연히 스핑크스로부터 위협을 받던 테베를 구해 왕으로 추대된다. 왕비 이오카스테와 결혼해서 자식까지 낳는 행복이 이어지지만, 세월이 흘러 그가 다스리는 테베는 다시 전염병과 가뭄으로 인해 큰 고난을 겪게 된다. 이 모든 재앙의 원인이 선왕 라이오스의 죽음에 얽힌 죄에 있음을 알게 된 오이디푸스는 그를 살해한 범인을 찾아내기 위해 눈 먼 예언자 테레시아스를 찾는다. 그런데 뜻밖에 그는 오이디푸스를 가리키며 라이오스 왕의 살인자라고 외친다. 큰 긴장감을 몰고 온 이 사건 후 오이디푸스의 선택은 이 연극의 중요한 주제이자 묵직한 메시지를 남긴다.

연기는 완성도가 돋보였다. 오이디푸스 역의 황정민은 그 이름에 걸맞는 연기로 처절한 운명 앞에 선 인간의 고뇌와 절규를 잘 표현했고 오이디푸스의 어머니 이오카스테 역의 배혜선 역시 폭넓은 스펙트럼의 연기를 통해 진실에 절망하는 심정을 실감나게 연기했다. 극의 전반을 이끄는 역의 코러스 장으로 변신한 배우 박은석과 오이디푸스의 신탁과 운명을 확인시키는 예언자 역의 정은혜의 치밀한 연기도 돋보였다.

특히 피하려 할수록 다가오는 비극의 그림자를 표현한 그리스 시대를 연상시키는 무대와 그동안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서 뛰어난 연출을 선보였던 서재형의 연출, 차범석희곡상에 당선된 한아름 작가의 콤비는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며 극의 완성도를 높였다. 조명, 소품, 의상, 분장 등 섬세하고 정교한 무대도 빛났다.

인간은 어느 때 가장 인간다워질 수 있을까? 운명이 아무리 고통스럽다 해도 인생의 항해를 자신의 의지로 끝까지 해내고 마는 것. 어쩌면 오이디푸스는 이 모든 고통의 결과를 예측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가 모든 짊을 내려놓고 무대에서 내려와 자신의 길을 다시 걷는 모습은 쓸쓸하고 고통스러워 보이지만 연극의 시선은 결코 그를 인생의 패배자로 비추지 않았다. 마지막 장면에서 가뭄으로 고통스러웠던 테베의 대지에 쏟아지던 장대비는 그가 마주해야 했던 고통의 무게만큼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원하던 축복이었다. 연극 ‘오이디푸스’는 사랑과 자유에 대한 한 인간의 숭고한 선택과 결과에 대한 숙명을 말하는 작품이었다. 국지연

 

Joan Marcus ©Disney

아날로그는 죽지 않는다

뮤지컬 ‘라이온 킹’

1월 9일~3월 28일|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뮤지컬 ‘라이온 킹’은 1997년 브로드웨이 초연 이후 총 25개 프로덕션에서 약 1만 명의 관객이 관람한 스테디셀러다. 이번 한국 공연은 20주년을 기념해 성사된 최초의 인터내셔널 투어다. 극의 핵심은 인간이면서 동물이고, 동물이면서 인간인 그들이다. 손 등 신체 일부를 넣어 조종할 수 있는 인형인 퍼펫(puppet)을 이용하여 인간과 동물의 신체적 특성을 결합했다. 일부 사자들의 탈은 배우의 얼굴을 보였다 가렸다 하며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인간의 상체가 고스란히 드러날 뿐 아니라 배우의 팔을 통해 움직이는 치타의 앞발은 백미다. 그저 그런 탈을 뒤집어쓴 동물들이었다면 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나, 반인반수의 그들이었기에 우리들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생명의 순환이라는 근원적인 주제를 전하려고 해서인지 자연 그대로를 재현하려고 해서인지, 무대와 소품의 사용은 아날로그 방식에 가깝다. 암사자들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 흩날리는 흰 천들은 실소를 자아내지만, 영상이나 LED 패널이 일반화된 오늘날 손수 움직이는 방식이 주는 여운은 꽤 진하다. 심바가 아버지를 회상하는 장면에서 무대 뒤의 별들이 사라지며 떠오르는 거대한 무파사의 얼굴은 각 사람이 들고 있는 가면 조각들이 하나로 맞춰지며 완성된다. 아날로그 방식으로도 이토록 세련되게 무대를 연출해내는 줄리 테이머의 역량이 엿보이는 장면이다. 그는 이 작품으로 브로드웨이 역사상 최초로 토니 어워즈 연출상을 받은 여성 연출가가 된다.

다만 전율을 일으킨다고 정평이 나 있는 첫 곡 ‘생명의 순환(Circle of life)’은 기대에 미치진 못했다. 각양각색의 동물이 객석 통로를 통해 등장하는 모습에서 설렘은 정점에 달하지만, 오히려 이들이 무대 위로 모두 등장하고 나서부터는 감동이 조금씩 식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무대를 더욱 깊이 사용하여 포용력 있는 자연을 표현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심바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여정을 함께해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각양각색의 퍼펫을 보는 재미만 해도 아깝지는 않을 테지만, 아프리카 밀림을 떠오르게 하는 레보 엠의 소울풀한 음악은 기존 뮤지컬과는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배우들이 표현하는 사자 특유의 몸짓은 공연장을 나서면서부터 당장 그르렁대는 웨이브를 따라 하게 만드는 묘한 중독성이 있다. 권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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