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 카를루스 파드리사, 하이든의 천지창조 파드리사의 무대창조

그룹 라 푸라 델스 바우스와 함께 하는 놀라운 연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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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3월 4일 9:00 오전

WELCOME INTERVIEW

빛의 기술력은 예나 지금이나 무대라는 한정된 공간을 새롭게 기술(記述)하는 신세기적 기술(技術)이다. 카를루스 파드리사(1959~)가 구현하는 빛의 테크놀로지도 이와 같다. ‘들으라!’며 작곡한 선조들의 음악은 그로 인하여 ‘보라!’고 외치는 작품으로 다시 태어나고, ‘시간예술’로서의 음악은 ‘시각예술’이 되어버린다.

작년 11월에 개관공연을 가진 아트센터 인천에 파트리사가 연출한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가 오른다. 2017년 3월 14일 엑상프로방스에서의 초연을 시작으로 파리 라 센 뮤지칼, 테아터 안 데르 빈, 함부르크 엘프필하모니 등에 오른 작품으로 파드리사가 빛의 예술가임을 증명해주는 테크놀로지와 시그니처로 가득 차있는 작품이다. 2018년 서울거리예술축제의 개막을 담당하며 서울의 하늘을 수놓았던 공중 퍼포먼스 ‘휴먼 넷’으로 인해 그의 무대를 다시 찾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의 작업에는 그룹 라 푸라 델스 바우스가 분신처럼 함께 한다. 파트리사와 이메일을 통해 ‘천지창조’에 대해 묻고 들었다.

 

©STEPHANIE BERGER

아트센터 인천은 무대에 많은 장비의 설치가 여의치 않은 빈야드 형식의 콘서트홀이다. ‘천지창조’ 무대를 이루는 환경 구현에 있어서 한계가 있을 것 같다.

콘서트 전용홀에서는 완벽한 암전, 오케스트라의 위치, 조명 세팅 등이 오페라극장의 환경과 달라서 프로덕션을 올리기 위한 제약이 굉장히 많은 편이다. 그런 점들을 감안하여 애초부터 관객석이 무대를 둥글게 감싸는 빈야드 형식의 음악회장을 위해 제작되었다. 빈야드 형태의 공연장들은 대부분 관객들에게 최상의 사운드를 전달하기 위한 목재를 많이 활용하는데 ‘천지창조’는 이러한 공연장의 형태와 목적을 기본으로 한다. 음악의 도입부인 C장조의 느린 서곡으로부터 ‘천지창조’라는 제목에 걸맞게 창조의 카오스를 구현해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음악적 요소들에도 당연히 신경을 많이 쓰게 되는데 아트센터 인천은 이런 요소들을 음악적으로 풀어내기에 적합한 훌륭한 공연장이라 생각된다.

음악에 중점을 두거나 실험적인 오페라 연출을 싫어하는 관객 중에는 당신의 ‘천지창조’에 반감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여러 장치와 소품들이 지닌 상징성도 강해 원작의 메시지가 잘 전달되지 않는다는 시선도 있다.

이러한 생각이나 의견과 달리 우리는 음악을 절대 방해하거나 해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천지창조’는 말 그대로 우주의 탄생기를 음악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우주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빛과 생명은 물론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창조됨을 뜻한다. 작은 원소에서 거대한 우주가 만들어지듯, 어둠에서 빛이 창조되듯 말이다. 이러한 창조의 과정을 여러 개의 거대한 풍선으로 구현한다. 합창단원들을 난민으로 설정하고 스토리를 이어 나가는데, 이들은 전쟁이나 재해로 인한 난민이 아니라 낙원에서 쫓겨난 자들이다. 철학자 데이비드 루이스는 그의 철학서 ‘다수(多數)적 우주’에서 우주에는 무한대의 세계가 존재하고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그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이론을 펼치는데, 이런 사상도 이 음악에 접목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므로 나의 연출은 화려함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음악과 철학에 근거한 연출이다.

영감의 원천이 남다를 것 같다.

생각해보면 현대적인 무대 기술과 고전적이고 감미로운 음악이 접목되면 형용할 수 없는 강력한 무엇인가가 창조된다. 잘 알다시피 라 푸라 델스 바우스는 항상 새로운 기술을 접목시키려는 노력을 시도한다. 물론 굉장히 어렵고 이루어내기 쉽지 않은 고행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예술가의 이런 고행이야말로 가짜뉴스가 남발되고 진실이 가려지고 뒤틀리는 이 시대를 이겨내는 에너지라 생각한다. 한마디로 시대에 널려 있는 혼란과 혼돈이 내 영감이고,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사명감이 내 작품을 만들게 하는 원동력인 셈이다.

한국은 전쟁의 상처가 있는 분단국가이며, 삶과 정보의 속도가 빠르며, 자극적인 문화가 도처에 널려 있다. 이번 ‘천지창조’를 계기로 한국에 다시 올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무엇을 선보이고 싶은가.

최근에 제작하고 연출한 오페라 ‘세계라는 구체(具體)’이다. 한 척의 배와 선원들의 체험을 통해 이 세계는 돌고 돌며 우리의 삶과 우주는 이런 체험이 쌓여 만들어진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바다는 대륙과 섬, 그 안의 사람들, 자연과 생산품, 철학과 지식을 아우르고 연결하는 거대한 고리와도 같다. 그래서 그곳을 항해하는 우리는 결국 하나로 이어져 있으며 하나의 세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의 관점으로 보면 우리는 거대한 하나의 배 안에 살고 있는 셈이다.

당신과 함께 작업하는 그룹 라 푸라 델스 바우스는 공중 묘기와 예술을 결합한 퍼포먼스로도 유명하며, 서울거리예술축제의 개막작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음악회장에서 무대의 허공을 채우는 주인공은 소리뿐인데, 당신은 그곳을 이용하고 점령하고자 하는 듯 보인다. 그래서 당신의 예술에서 허공과 공중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로 다가올 듯 하다.

나는 이 세계의 우주와 공간이 비어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안에 너무나 많은 물리적·철학적 요소들이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아인슈타인에 의하면 보이지 않는 허공의 미립자들은 빛을 우회시키고 비가시적인 힘인 중력은 시간의 곡률을 형성한다고 한다. 중력의 조건에 놓인 시계는 중력이 없는 환경의 시계보다 느리게 가며 그 보이지 않는 힘을 증명하는 게 아닌가. 우리는 기중기를 통해 배우와 성악가들을 공중으로 들어 올려 중력을 거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주와 공간이 이러한 힘들로 가득 차 있음을 증명하려는 것이다.

글 송현민(음악평론가)

 

하이든-파드리사 ‘천지창조’

3월 1·2일 오후 5시 아트센터 인천

김성진(지휘), 임선혜(소프라노) 토마스 타츨(베이스바리톤) 로빈 트리췰러(테너),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 그란데 오페라 합창단, 그룹 라 푸라 델스 바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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