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3월 22일~5월 12일 정동극장
올해 정동극장의 첫 작품은 더욱 탄탄하게 다듬어져 돌아온 판소리 뮤지컬 ‘적벽’이다. 전통예술에 기반하고 있으면서도 현대적인 뮤지컬의 요소를 효과적으로 조합하여 공연예술의 경계를 확장한 ‘적벽’의 성장이 반갑다.
판소리 뮤지컬 ‘적벽’은 완성도 높은 전통공연의 제작을 목표로 다양한 장르의 무대를 선보이는 정동극장의 ‘창작 ing 시리즈’로 2017년 첫선을 보였다. 이듬해 레퍼토리 공연으로 선정, 더욱 탄탄하고 세련된 작품으로 거듭나면서 평단과 관객들에게 큰 관심과 사랑을 받았고, 제7회 예그린뮤지컬어워드에서 안무상·앙상블상·신인여우상 등을 받으며 판소리에 기반을 둔 창작 뮤지컬로서의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미덕은 장르적 융합이 적절하게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의 소리꾼 유미리가 작창과 소리 지도를 맡았으며, 현대무용가 김봉순이 안무를, 연극 연출가 정호붕이 연출을 담당해 소리·안무·무대 부문의 긴밀한 협업을 통해 장르별 장점을 극대화했다. 이렇듯 전통의 틀을 벗어나 판소리에 현대적인 감성을 가미하여 재해석한 점은 ‘적벽’이 더 많은 관객에게 한 걸음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
‘적벽’은 판소리 전승 다섯 바탕 중 하나인 ‘적벽가’에 기반을 둔 것으로, 중국 ‘삼국지연의’의 주인공인 유비·관우·장비와 조조가 벌인 ‘적벽대전’이 중심 서사다. 섬세하고 서정적인 감성보다는 장중하고 묵직한 울림을 선사하는 작품인 만큼 ‘적벽가’는 특히 동편제 계열의 소리꾼들이 즐겨 불렀다. 한 명의 소리꾼이 이끌어가는 판소리와 달리 19명의 배우가 참여한 ‘적벽’은 합창과 군무, 라이브 밴드의 연주를 통해 호탕한 작품 본연의 매력을 살리면서도 함축적이고 역동적인 전개를 선보인다. 남성 캐릭터인 공명·조자룡·주유를 여성 배우가 연기하며 성별의 경계를 넘어선 점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전쟁 장면을 주로 다루는 작품이지만, 무대 장치 자체는 미니멀하다. 무대·조명·의상에서는 흰색·검은색·붉은색 정도가 사용되며, 영상이나 소품도 반드시 필요한 몇몇 장면에서만 등장할 뿐 대부분은 맨발로 열연하는 배우들의 움직임과 소리로 채워진다. 날것의 무대에 힘을 더하는 것은 바로 소리꾼에게는 신체의 일부와도 같은 부채다. 배우들은 부채를 창이나 방패로 사용하기도 하고, 안무에 자연스럽게 녹여내어 절도 있는 움직임을 선보이는 등 부채를 통해 서사의 틈을 촘촘하게 메운다. 여러 개의 부채를 시원스레 펼치고 접으며 일사불란하게 연기하는 배우들의 꼿꼿함은 관객들의 몰입감을 배가한다.
새로운 시도와 노력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은 작품이지만, 대사 전달이 원활하지 않은 점은 안타깝다. 이는 초연 당시에도 지적된 문제점이었다. 전통 소리에 고어와 한자어가 다수 포함되어 있는 데다가 여러 배우들의 목소리가 어우러져야 하는 상황에서 움직임에 중심을 두는 장면이 많다 보니, 대사 하나하나가 정확하게 표현되지 못하는 것이다. 무대 양옆으로 국문·영문 자막기가 설치되어 있긴 하나, 자막을 읽다 보면 무대를 놓치게 될세라 빠르게 읽고서 서둘러 무대로 눈을 돌리게 되는 장면이 적지 않다.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기에 극을 따라가는 데 있어 큰 장애로 작용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 소리의 해학과 풍류를 충분히 즐기기 어려운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글 지혜원(공연 칼럼니스트) 사진 정동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