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목소리를 타고 흐르는 이탈리아 감성
음악 하는 사람들 사이에 이런 말이 있다. 하루를 연습하지 않으면 내가 알고, 이틀을 연습하지 않으면 선생님이 알고, 사흘을 연습하지 않으면 관객이 안다. 그만큼 매일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고, 자신을 채찍질하며 치열하게 살아야 이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살아생전은 물론 세상을 떠난 후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는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도 이와 비슷한 말을 한 걸 보니, 배움에 대한 노력은 나이와 시대, 서 있는 위치와 실력에 상관없이 계속되는 것 같다.
여기, 계속해서 자신의 음악에 질문을 던지며 음악의 길을 걸어가는 성악가가 있다. 바리톤 김주택. 그는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5년 뒤 10년 뒤의 모습을 상상하며 자신의 음악 세계를 확장하고 있다. 열아홉에 아무 연고도 없이 이탈리아 유학길에 올랐고, 5년 만에 오페라 무대에 데뷔했다. 이후 이탈리아 오페라 무대를 종횡무진 하던 김주택은 2017년 ‘팬텀싱어2’에 출연하며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오디션 무대이기에 어쩌면 득보다 실이 많을 수도 있었지만, 그는 ‘더 많은 사람과 음악을 나누고 싶다’는 마음 하나만을 가지고 이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이로 인해 김주택의 음악 세계에는 크로스오버 남성 4중창 ‘미라클라스’라는 새로운 색깔이 더해졌다. 정통 오페라와 크로스오버 무대 모두에서 빛을 내는 김주택이 오는 6월, 첫 솔로 음반 발매와 함께 리사이틀을 선보인다. 음반과 공연의 타이틀은 모두 ‘이탈리아나’, 바리톤 김주택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말이다.
음반과 공연에 모두 ‘이탈리아나’라는 제목을 달았다. ‘이탈리아나’는 ‘이탈리아적’이라는 뜻으로, 이탈리아의 분위기를 나타내는 말이다. 20대를 이탈리아와 함께했고, 올해로 이탈리아 오페라 무대에 데뷔한지도 10년이 되었다. 이를 기념하면서 어떻게 하면 바리톤 김주택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 보니 이탈리아 노래들이 떠올랐다. 칸초네나 가곡, 특히 이탈리아 가곡을 대표하는 작곡가 토스티의 노래들을 담아보고 싶었다. 음반에 담긴 곡 모두 내가 좋아하고 즐겨듣고 즐겨 부르는 노래다. 그만큼 내가 잘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첫 솔로 음반인데, 준비하며 어려운 부분은 없었는지. 이탈리아 노래를 부르는 것이 한국 노래만큼 편해졌음을 느꼈다. 마치 내 집에서 편한 차림으로 TV를 보는 것처럼. 그만큼 이 나라에 익숙해져 있고, 가까워졌다는 느낌이 든다.
어느 순간 이런 편안함을 가장 크게 느꼈나. ‘냉정과 열정사이’처럼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면서, 영화 속 장소가 익숙하게 다가오고, 그 말이 편하게 들릴 때다. 이탈리아에서 오페라 공연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탈리아 오페라 전문 기자들이 눈을 감고 내 노래를 들으면 이탈리아 사람이 부르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말을 해주거나 공연장을 찾은 현지 관객들이 무대가 끝나고 건내는 좋은 피드백들은 내가 가는 길에 더 확신을 가지게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면.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 벨코레 역으로 올랐을 때 이런 기사가 났다. ‘이탈리아 사람이 동양인에 대해 갖는 편견이 있다. 바로 동양인들은 이탈리아 말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리톤 김주택은 이런 편견을 깼다.’ 정말 기분 좋은 순간이었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순간은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에서다. 오페라 구성상 레치타티보(낭독하듯 노래하는 부분으로 대사내용에 중점을 둔다)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에서 관객들이 내 연기를 보며 웃더라. 가사를 보지 않고, 오롯이 내 입으로 전달하는 것만으로 그들을 이해시켰다고 생각하니 정말 뿌듯했다. 게다가 공연을 마치고 오른 커튼콜 무대에서 이탈리아 사람들이 ‘그란데, 줄리안!(grande, Julian)’을 외치며 기립박수를 보내줬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
외부에서 평가하는 모습이 아닌, 스스로 바라보는 김주택은 어떤 사람인가? 아직 미완성이고 한없이 부족하다. 그러나 나는 이 부족함에 대해 결코 절망하지 않는다. 부족하다는 것은 그만큼 쌓을 것이 있고 배워서 채워나갈 수 있다는 말이니까. 그렇게 긍정적으로 즐겁게 생각하고 있다. 내가 보는 나는 아직도 채울 것이 많은 미완성의 존재다. 그래서 행복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주택이 사랑받는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소리에 묻어나오는 진심 때문이 아닐까. 나는 노래 한소절한소절에 담긴 뜻을 생각하면서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함께 사는 동생(베이스 한태인)도 이런 말을 하더라. “형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남들과 공유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보인다”고. 그런 모습이 무대에서도 많이 보이는 것 같다. 진심이 통하기까지는 매우 힘들지만, 한번 통했을 때 나오는 힘은 말할 수 없이 크다. 그래서 항상 내 노래에 진심을 담으려 노력하는데, 팬들도 그 진심을 느껴주시는 것 같아 감사하다.
‘진심을 다한다’는 말이 조금은 추상적으로 다가온다. 한국 관객에게 이탈리아어로 노래를 불러주었을 때, 단어 하나하나의 뜻은 모른다 할지라도 그 안에 담긴 감정과 스토리를 느낄 수 있다면 진심이 전해진 것이라고 본다. 무언가 다른 감정을 표현할 때면 숨소리부터 달라지지 않나. 이런 숨소리 하나와 음색을 통해서도 상황을 이해하고 느낄 수 있다는 거다. 그건 다시 말해 내가 그 가사의 뜻을 생각하고, 진심으로 표현했을 때 전해지는 것 같다. 언어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서로 통하는 순간이다.
음악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처럼, 일상에서도 배려와 나눔이 넘친다고. 아버지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네가 사야 한다. 그것이 바로 마음을 사는 것이다.” 아버지는 돈이든 노력이든 어떤 귀중한 것이 되었든지 항상 베풀면서 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항상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대하다 보면 내가 정말 필요한 순간에 도움을 주는 손길이 많아질 거라고. 인간관계에서는 계산하며 살고 싶지 않다. 그냥 자연스럽게, 꾸미지 않은 모습 그대로 베풀면서 사는 게 나다.
무르익는 시간 속에
김주택에게 ‘팬텀싱어’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미라클라스와 오페라 무대를 병행하면서 가장 즐거운 점은 무엇인가. 바쁜 게 가장 즐겁다.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 그리고 그 기회를 통해 내 부족함을 더 채워나가며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 좋다. 솔직히 이탈리아와 한국을 몇 번씩 오가는 일이 쉽지는 않다. 그때마다 시차 적응도 해야 하고, 음식, 언어 등 주변 환경도 달라지고. 하지만 이렇게 두 나라를 오가며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제껏 해왔던 것들에 갇혀서 그것만을 계속 반복하며 소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배우며 나 자신을 채찍질할 기회들이 만들어지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다.
‘팬텀싱어’에 참여했던 계기가 음악을 하는 이유 – 더 많은 사람과 음악을 나누기 위해 – 를 찾기 위해서라고 했다. 오디션에 참여하고, 그룹 활동을 이어오며 이 물음에 대한 답이 채워졌는가? 팬텀싱어를 통해 만난 팬들이 내게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해준다. 클래식 음악이, 오페라가 이렇게 좋은지 모르고 살았다고, 알게 해주어 감사하다고. 내 오페라 무대를 보기 위해 이탈리아를 직접 방문하는 분들도 계신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하지 않나. 아직 클래식 음악을 잘 모르는 분들이 더 많을 거라 생각한다. 그분들을 조금 더 찾아보고 싶다.
이런 활동을 통해 음악가로서 가졌던 하나의 질문에 대한 답은 찾은 것 같다. 그렇다면 그 이후에 생긴 또 다른 물음이 있는가. 오페라 가수로서 바리톤으로서 어느덧 30대 중반이 된 시점에서 ‘지금으로부터 10년 후의 내 모습은 어떨까’에 대한 물음을 던져보면, ‘역할’에 대한 변화가 아닐까 싶다. 오페라 속 내 역할들이 이제는 바뀌어야 할 시기가 왔다. 바리톤은 어린 나이에 맡을 수 있는 역할이 많지 않다. 중후한 음색의 아버지 역할이 많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사십 대가 바리톤의 전성기라 생각한다. 지금이 서른넷이니, 5년 반 정도가 남은 셈이다. 그때까지 스스로 발전해가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한다. 레퍼토리 면에서도 조금 더 무거운 작품들, 바리톤의 중후한 목소리와 표현을 할 수 있는 역할들을 공부하며 준비하고 있다.
지금 본인에게 가장 필요한 말은 무엇인가. “만족하지 마라.” 이 정도면 됐겠지 하고 만족할 때 떨어지는 것은 정말 한순간이다. 항상 간절한 마음을 가져야 하고, 노래나 삶에 있어 거만하거나 나태해져서는 안 된다. 예술은 계속해서 새로움을 창조해가는 것인데, 그동안 해온 것에 만족해 반복만 한다면 결국 고여서 썩게 된다. 흐르는 물이 되어야지 고인 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독주회 이후, 또 어떤 무대에서 김주택을 만날 수 있을까? 7월 마드리드 극장에서 선보이는 오페라 ‘잔 다르크’에 자코모 역할로 출연하는 플라시도 도밍고의 커버로 가게 되었다. 이후 잠깐 한국에 돌아와 8월 8일 대구 오페라 축제 ‘디 오페라 콘서트’에 서고,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가 8월 말~10월 초까지 총 13번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를 공연한다. 11월에는 중요한 작품에 데뷔를 하게 되는데, 바로 오페라 ‘돈 카를로’다. 베니스에서 정명훈 지휘자와 함께 총 다섯 번을 공연할 예정이다. 이 무대가 다음을 준비하는 내게 또 하나의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글 이미라 기자 사진 박진호(studio BoB)·아트앤아티스트
바리톤 김주택 리사이틀
6월 9일 오후 6시 LG아트센터
토스티 ‘이상(Ideale)’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