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사랑하는 클라라,
나는 항상 외로운 곳에서, 혼자, 아마도 내 방에 있는 몇 명의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아주 조용히 축제를 즐깁니다. 왜냐하면 내 주변 모든 사람이 죽거나 멀리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한 사람의 가슴에 얼마나 큰 존재인지를 기억하는 것은 저에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릅니다. 결국 저는 외부 세계, 즉 우리가 살고 있는 허황된 세계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 웃음소리를 허황된 목소리에 덧붙이지도 않고, 거짓말의 합창에 참여하지도 않습니다. 마치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스스로 입을 다무는 것이며, 그들 중 오직 절반 정도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고 느낍니다.
당신이 얼마나 운이 좋은지, 아니 얼마나 아름다운지, 얼마나 좋은지, 얼마나 옳은지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당신이 의식적인 소유물로서 자신의 마음을 굳게 품는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는 매 순간 우리의 것을 숨길 의무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너무나 따뜻하게, 너무나 아름다운 평온으로, 마치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것 같이; 그리고 평온한 마음으로 각자 자신의 정당한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것이죠. 이 모든 것이 너무 바보같이 들리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을 더는 말할 수 없습니다; 비록 백합과 천사를 말하고 나서 당신과 당신의 달콤한 본성을 반추하는 것은 더욱 어리석은 일일 것입니다.
My beloved Clara,
I always enjoy festivals in solitude, quite alone, with perhaps just a few dear ones in my room, and very quietly ― for are not all my people either dead or far away? But what a joy it is to me then to remember how big with love is a certain human breast. For, after all, I am dependent upon the outside world ― the hurly-burly in which we live. I do not add my laughter to its medley of voices, nor do I join its chorus of lies, ― but it is as if the best in man could shut itself up, and only half of him sallied forth dreaming.
How fortunate you are, or, I should say, how beautiful, how good, how right! I mean that you bear your heart as a conscious possession, securely; whereas we are obliged every minute to conceal ours. You see everything so warmly, with such beautiful serenity, just like a reflection of yourself; and then with the same serenity you give unto each his due. All this sounds so stupid, and I cannot say what I think; although it would be even more stupid to speak of lilies and angels, and then to come back to you and your sweet nature.
1872년, 클라라와 브람스가 만난 지 거의 20년이 되는 부활절 월요일. 브람스는 클라라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녀를 향한 연정이 절제되면서도 절절한 언어로 표현된 편지다.
이들의 만남이 시작된 건 1853년 9월 30일. 브람스는 동경하던 음악가 슈만을 찾아간다. 그때 브람스는 20세, 슈만은 43세였다. 브람스는 슈만 앞에서 자신의 첫 번째 피아노 소나타 C장조 Op.1을 연주한다. 34세의 클라라는 슈만의 아내였고, 당대 최고의 여류 피아니스트였다. 그날 밤 슈만은 일기에 이렇게 쓴다.
“브람스, 천재가 방문했다.”
이듬해 슈만이 ‘라인강 자살 미수 사건’으로 엔데니히 병원에 입원하면서부터 브람스는 클라라에게 점점 더 가깝게 다가간다. 브람스는 클라라를 잠시 떠나있을 때 오히려 클라라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러한 브람스의 사랑 편지는 슈만이 죽기 직전까지 계속된다.
클라라가 슈만을 마지막으로 만나러 갈 때에도 브람스가 동행했다. 슈만이 유언처럼 남긴 말, “Ich weiß(알고 있어)”는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는 뜻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나 1856년 슈만이 죽고 난 후, 브람스와 클라라의 관계는 더는 발전되지 않는다. 클라라의 가슴 속엔 여전히 슈만이 살아 있었고, 브람스 또한 스승 슈만에 대한 신의를 저버리지 않았다.
1895년, 63세의 브람스는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예고 없이 77세의 클라라를 찾아간다. 그는 클라라에게 연주를 부탁한다. 클라라는 계속 거절하다 결국 브람스의 피아노 작품 Op.118을 들려줬다. 클라라는 오직 그를 위해 연주했고, 브람스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지켜봤다. 이것이 그들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글 권하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