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임동혁

완벽함을 채우는 사람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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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7월 8일 9:00 오전

INTERVIEW

가장 자연스러운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하다

©SangWook Lee

잘 걸어 다니던 사람이 갑자기 자신이 어떻게 걷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면? 의식의 과정을 거치는 순간, 걷는 자세는 부자연스러워지기 마련이다. 지금 제대로 걷고 있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생각까지 미치게 되면 불안한 마음마저 깃든다.

피아니스트 임동혁이 정규 5집이자 최초의 협주곡 녹음인 ‘라흐마니노프’ 앨범을 발매했다. 알렉산더 베데르니코프/BBC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이번 음반에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과 ‘교향적 무곡’이 수록됐다.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임동혁이 두 대의 피아노로 함께 연주한 ‘교향적 무곡’은 지난 5월 7일 내한 공연으로 펼쳐지기도 했다.

앨범 발매를 기념하는 자리에서 만난 임동혁은 이전보다 편해 보인다는 기자들의 질문에 지금이 가장 힘들다고 답했다. 예전엔 무의식적으로 즐길 수 있었던 음악에 의식적으로 다가가기 시작하면서부터 되는 부분도 안 될 때까지 친단다. 혹시라도 무대에서 실수할까 하는 염려 때문. 마치 잘 걷던 사람이 자신의 걸음새를 돌아보는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 그가 라흐마니노프를 선택한 이유는 협주곡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다.

“전부터 두 개의 협주곡을 하고 싶었는데, 그건 조금 무리가 있을 것 같았다. 쇼팽 피아노 협주곡 1·2번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콘체르토를 하나만 한다고 가정했을 때 쇼팽만 하고 싶진 않았다. 차이콥스키와 라흐마니노프 중에서 차이콥스키는 너무 많이 닳았다고 느꼈다. 그동안 많이 연주하기도 했고, 차이콥스키로 콩쿠르를 준비했던 좋지 않은 기억들이 있기 때문이다.(웃음)”

그는 1994년 10살 때 러시아로 유학을 떠났고, 2년 뒤 모스크바 청소년 쇼팽 콩쿠르에서 2위로 입상했다. 이후 러시아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수학한 그는 무려 110년이라는 차이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라흐마니노프와 동창생이기도 하다.

“러시아는 보고 듣고 자란 곳이라 라흐마니노프의 곡은 이질감이 없고 편안하다. 특히 이번에 수록된 두 곡은 라흐마니노프의 전형적인 특징을 담은 곡들로, 러시아적이라고 할 수 있는 넓고 가슴 벅찬 멜로디가 펼쳐진다. 이번 앨범에서는 가장 자연스러운 라흐마니노프를 선보이고자 했다. 어떠한 무리한 해석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개성을 위한 개성을 많이 싫어한다.”

전 세계적으로는 9월에 발매될 예정인 이번 앨범은 지난 5월 7일 아르헤리치와의 협연 공연을 기념해 한국에서만 먼저 발매됐다. 43살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건반 위 우정을 보여주고 있는 임동혁과 아르헤리치는 1999년 처음 만났다. 아르헤리치는 EMI(현재 워너클래식) 음반사에 임동혁을 추천해 데뷔 음반을 낼 기회를 마련했고, 그가 주관하는 페스티벌에 임동혁을 초청하기도 했다.

“아르헤리치에게 협연을 제의하자 흔쾌히 제안을 수락했다. 많은 이들이 오해하는 것만큼 무섭지 않고 반대로 거의 모든 것에 ‘노(no)’를 하지 못하는 분이다. 이번 한국 공연을 앞두고는 아르헤리치가 나에게 조금 다르게 연주할 것 같은데, 너무 상스럽게 느껴지면(웃음) 말해달라고 하더라. 그러나 둘이서 이 곡을 어떻게 치자고 상의하거나 이런 건 전혀 없었다.”

임동혁의 답변에는 오래 함께한 사람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느껴졌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답변 역시 그러했다.

지난 5월 발매한
‘라흐마니노프’ 앨범

“내 이름을 딴 음악제가 있으면 좋겠다. 내가 좋아하고 음악적으로도 뛰어난 한국 친구들을 중심으로 모여서 함께 연주하고, 끝난 후에는 같이 술 마시고 해장하면 너무 좋을 것 같다.”

고독한 음악가인 동시에 사람 냄새까지 갖춰가는 그를 보며, 앞으로 선보일 음악들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짙어졌다.

 

권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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