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이예찬

한 편의 영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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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9월 2일 11:19 오전

INTERVIEW

 

40회 독주회를 갖는 그녀가 말하는 ‘연주하는 기쁨’에 대하여

 

현대음악과 무반주 바이올린 작품, 그리고 버르토크와 모차르트에 남다른 관심을 지속적으로 쏟아온 이예찬(대구가톨릭대 관현악과 교수)의 독주 무대가 올해로 40회를 맞는다. 바로크시대에서 초현대에 이르기까지 매번 다양한 시대와 색다른 프로그램으로 신선함을 선사했던 그녀는 무대에서 연주한 세계초연과 한국 초연한 작품만 해도 총 122여곡에 이른다.

9월 3일 오후 7시 30분 대구콘서트하우스 챔버홀에서 펼쳐지는 독주회에서는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E장조, K261, 이혜성의 ‘기도 Ⅱ’(2019), 슈니트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콩그레츄레토리 론도(congratulatory rondo)’, 아르보 패르트의 ‘형제들’(1980), 쇼송의 ‘포엠’을 연주한다. 독주회를 앞둔 이예찬과 음악하는 삶, 기도하는 삶 속에서 얻는 기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독주회 레퍼토리가 하나의 이야기처럼 이어지는 느낌입니다. 모차르트, 이혜성, 슈니티케, 쇼송, 아르보 패르트까지요. 40회 독주회를 하는 동안 유난히 모차르트 음악을 빠트리지 않고 연주해 왔는데 모차르트 음악의 어떤 면이 마음을 움직인 건가요?

모차르트를 연주할 때마다 “어떻게 이런 표현을, 어떻게 이런 소리를, 어떻게 이런 느낌을 그 어린나이에 작곡 할 수 있었을까?” 하며 매번 놀라고 수없이 감탄합니다. 모차르트는 누구나 다 인정하듯 천재입니다. ‘천재’ 하면 독일어 단어 ‘jahrhunderttalent’가 떠오릅니다. 100년, 한 세기의 아주 특별한 재능, 또는 그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지요. 그러니 천재란 하늘이 내려준 특별함을 가진 사람이겠지요. 신의 배려로 우리 사는 세상에 보내진 천재들 덕분에 우리는 삶을 위로받고 풍요롭게 살 수 있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특별한 재능을 선물로 받은 천재들은 혹독한 삶을 치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비슷하지만 하나도 같은 게 없습니다. 매번 그 놀라운 색채와 표현의 다양함에 감탄하지요. 특히 느린 악장을 연주하다 보면 우리의 마음 속 깊은 곳(orignal, 원초적인 곳)을 건드리는 느낌을 받습니다. 우리가 아기를 보면 아기의 맑음에 내가 선해지는 느낌을 강하게 받듯이, 모차르트의 음악은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안의 선한 마음을 다시 찾게 합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늘 우리 곁에 공기처럼 존재하고 있는 것 같지요.

쌍둥이 언니인 작곡가 이혜성 교수가 헌정한 ‘기도’는 어떤 작품이고 이 작품을 어떻게 표현해서 청중과 나누고 싶은가요?

작곡가 이혜성의 작품들이 치유시리즈를 지나서 위로와 기도를 향하고 있습니다. 이번 초연되는 그의 작품도 기도연작의 두 번째 작품입니다. 저에게 기도란 ‘듣기’입니다. 이때 포커스는 기도를 올리는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기도를 듣고 계시는 신(하나님)에게 있습니다. 기도의 시간은 신의 이야기를 듣는 아주 특별한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상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기가 참으로 쉽지 않음을 겪습니다. 그러니 신의 이야기를 들으려면 얼마만큼 나를 내려놓아야 가능할까요?

이번 작품의 악보는 심플합니다. 그러나 그 담고 있는 뉘앙스들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습니다. 작품 후반부에는 제 마음을 설레게 하는 멜로디가 나옵니다. 그 부분을 연주할 때마다 저는 기도를 제대로 한다는 것은 신(하나님)과 대화한다는 것이고 그렇게 소통을 할 때 우리 마음이 얼마나 기쁘고 설레는지를 음악으로 느끼게 됩니다. 음악회에 오신 모든 사람들이 세상에서 처음 연주되는 이 귀한 작품을 들을 때 각자 신의 음성을 듣는 기도의 시간이 되고 기쁨이 차오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아르보 패르트의 ‘형제들’, 이혜성의 ‘기도’ 등 음악회에서 느껴지는 신앙심에서 음악으로 추구하는 가치와 아름다움을 떠올리게 됩니다.

올 한해는 학교에서 학과장으로 처리해야 할 일들도 많아 좀 바쁘고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방학 중에도 학교 일로 거의 아침 8시 반이면 출근합니다. 그런데 출근할 때마다 나보다 더 일찍 나와 계시는 총장 신부님의 차를 보면서 ‘누군가의 헌신이 없다면 이렇게 거대한 공동체가 제대로 굴러갈 수 없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오늘도 어김없이 우리들을 위해 묵묵히 헌신하고 계신 누군가가 있기에 우리 삶은 평화로운 것이겠지요. 그럴 때마다 무의식중에 스스로 판단하고 비교하고 싶은 다른 사람에 대한 시선을 거두게 됩니다. 이번 마흔 번째 독주회 역시 제가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님을 느끼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 연주회가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사랑하는 그분의 거룩한 뜻에 조금이라도 기여가 됐으면 하는 것이 저의 소박한 바람입니다.

많은 음악적인 도전 속에서 새로운 것들을 추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빈 유학시절 바흐와 모차르트의 음악을 기초를 견고히 다져주셨던 스승들의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국제적인 마스터클래스를 통해 다양한 레퍼토리를 듣게 되고 연주하게 된 것도 좋은 경험이 되었고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들의 연주와 인터뷰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양함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연주자들의 지적인 열정에 매료되어 그들을 닮고자 하는 마음이 제 안에 늘 깊게 자리 잡고 있었거든요. 그러니 그 모든 분들이 다 제 스승이었고 저의 롤 모델이었던 셈이고, 저를 이끌어 온 음악의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저마다 평안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마음의 안식을 주는 작곡가와 작품은 무엇인가요.

한동안은 긴 여행 중에 비행기 안에서나 잠자리에서 늘 슈베르트의 ‘밤의 노래’를 들었습니다. 마음이 너무 편안해 지는 것을 즐겼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매번 마음에 넣는 작곡가가 바뀝니다. 한 작품에 머물러 있지 않으려고 합니다.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이나 커피나 내가 너무 좋아하는 것에만 머물러 있지 않으려고 노력하지요.

자연, 기도, 사람. 이런 것들이 음악을 연주할 때, 혹은 해석할 때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자연을 보면 아무 대가 없이 베푸는 풍경에 늘 감동하게 됩니다. 나무 한 그루를 봐도 받는 것이 참 많습니다. 받는 것은 상대적으로 참 쉬운 일이지요. 그런데 기쁘게 주는 것은 주는 것이 시간이든 사랑이든 물질이든 에너지이든 상황에 따라 몹시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이 기쁘게 주는 것을 조금 더 잘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사랑이 조금 더 자라게 되고 그렇게 조금씩 내가 변화될 때 기도가 달라지고 사람이 달라 보이지요. 그러면 몇 년 전에 연주했던 악보가 달리보이고 작곡가와 더 깊이 만나는 순간이 기적처럼 옵니다. 그런 특별한 체험을 하고나면 제 연주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다르게 보이게 되고요. 제가 겪는 모든 일들이 제 음악에 영향을 끼치고 제가 변화됨으로써만 이 세상이 살만해 진다는 것을 매번 깨닫게 되니 일상의 크고 작은 모든 사건들도 모두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구체적으로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작년에 러시아로 돌아간 피아니스트 니콜라이 교수와 죽음에 대해 애기하던 중에 러시아에서는 한 노인이 죽으면 작은 도서관이 없어졌다고 마을 전체가 애석해 한다고 하더군요. 제가 제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을 품을 수 있는, 특히 나를 몹시 힘들게 하는 그런 사람에게도 온유한 태도를 잃지 않는 그런 겸손한 사람, 영적 의미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음악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지요.

‘감사’라는 단어를 이번 독주회에 붙이고 싶습니다. 음악의 길을 갈 수 있도록 공부시켜주신 부모님과 이 길에서 만난 모든 스승들과 작곡가들, 그리고 함께 작업했던 많은 음악가와 동료 교수님들. 그리고도 수없이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으니 정말 감사하지요. 그래서 욕심 부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사랑 안에서 준비한 음악회가 청중에게 한편의 아름다운 영화를 본 것처럼 마음에 오래 남아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글 국지연 기자

 

이예찬 바이올린 독주회

9월 1일 오후 7시 30분

대구콘서트하우스 챔버홀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E장조 K261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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