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창지휘자 윤의중&작곡가 이영조, 목소리 그리는 지휘봉과 악보

합창지휘자 윤의중&작곡가 이영조, 목소리 그리는 지휘봉과 악보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0년 3월 9일 9:00 오전

FOCUS

목소리 그리는

지휘봉과 악보

합창지휘자 윤의중·작곡가 이영조

국립합창단과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새로운 무대가 펼쳐질, 3월

 

이영조(1943~)는 합창 ‘작품’을 만들고, 윤의중(1963~)은 합창 ‘연주’를 빚는다. 국립국악관현악단(예술감독 김성진)은 관현악 시리즈의 세 번째 무대로 이영조의 ‘시조 칸타타’를 택했다. 합창과 국악관현악이 만나 한국의 ‘자연’을 노래한다. 국립합창단은 안중근을 기리고, 250주년의 베토벤을 노래한다.

 

이영조, 합창에 국악과 자연을 담다
이영조에 대한 여러 논문을 엮어 ‘이영조 음악’(2012)을 펴낸 홍정수 전 장로회신학대 교수는 이영조의 음악이 청중과 가까울 수 있는 이유에 대해 “한국 작곡가들에게 자주 보이는 세 가지 미학적 관점-친근성·민족성·현대성-중 친근성이 포기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이영조는 조성음악, 한국의 전통음악, 20세기 아방가르드 음악을 모두 포용해 왔다. 장르도 기악부터 성악까지 폭이 넓다. 다시 홍정수의 말을 인용한다. “그는 과거와 현재는 시간적으로 떨어져 있으나 감성적으로는 공존, 공유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음악은 인간과 자연의 접목지대이기도 하다. 이번 ‘시조 칸타타’도 그렇다.
1975년 국립합창단 ‘승려의 노래’를 시작으로 여러 합창음악을, 1985년 ‘광야에 세운 십자가’를 시작으로 다양한 칸타타를 다작했다. 기억을 떠올려, ‘시조 칸타타’와 연결되는 작품을 꼽는다면? ‘경(經)-승려의 노래’(1975) ‘소요유’(1983) ‘월정명’(1983)이다. ‘시조 칸타타’도 그렇고 모두 자연을 주제로 한 곡이다. 우리는 권세, 명예, 돈, 죽음 등이 제약 속에 살아간다. 이로부터 해방될 때는 자연의 한 부속물 살아갈 때이다. 장자(壯子)의 소요유(逍邀遊) 사상이다. 한편으론 ‘우리스러운 음악’의 바탕을 이룰 수 있는 소재라고 생각한다.
‘시조 칸타타’는 어떤 구성과 내용인가? 평소에 즐겨 읽던 옛 시조들을 가사로 삼았다. 연결구에는 내가 지은 가사들을 살짝 넣었고. 이유라(소프라노), 신동원(테너), 하윤주(정가), 창원시립합창단(예술감독 공기태)가 노래를 맡았다. 고시조는 초·중·종장으로 된 짧은 시다. 하지만 그 안에는 무한한 주제가 존재한다. 이번에는 ‘자연’ ‘사랑’ ‘효’를 꼽았다. 합창 속에 사계절, 만남과 이별, 부모에 대한 존경이 흐른다.
자연주의 작곡가라고 해도 될까? 산 고양이들이 우리 집으로 내려와 음식을 먹어도 싸갖고 가진 않더라. 마당의 코스모스한테 큰 밤나무가 너는 왜 열매도 못 맺느냐 하지도 않고, 코스모스는 그런 밤나무한테 꽃도 예쁘지 않으면서 뭐 그리 크냐고 놀리지도 않는다.(웃음)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 때 가장 행복하고 순수해진다. ‘시조 칸타타’는 이를 경험한 나의 고백이다.
합창과 칸타타 작곡의 매력이라면? 가사와 시상! 명곡은 깊이와 사색할 수 있는 시에서 나온다. 그래서 우리말임에도 불구하고 알아들을 수 없게 노래하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성악곡 작곡과 기악곡 작곡의 차이가 있다면? 성악곡을 쓸 때, 영감의 절반 이상은 시가 준다. 시인에게 고맙다. 작곡료의 반은 그의 것이다.(웃음) 한편 기악작품은 소리와 소리가 얽혀 만든 세계이다. 때로는 무한한 공상과 방만한 소리로 끝나기에 어느 부분에서는 펜을 놓는 절제가 필요하다. 그래서 다 쓰고 상당 부분을 잘라 내는 속상한 일도 종종 있다.
서양음악을 전공했는데, 국악 작품을 창작하게 된 이유는? 국악은 계기와 필요에 따라 공부했다. 젊은 시절에는 일본 마이니치홀에서 피리로 상령산을 연주하기도 했다. 정재국 선생에게 열심히 배운 결과다. 작곡가로 입성한 뒤에는 비올라나 첼로로 해금·아쟁·거문고의 이미지를 표현하고자 했다. 첼로와 장구를 위한 ‘도드리’ 이후 국악인들에게 위촉이 많이 들어왔다.
국악인들이 ‘서양음악 작곡가 이영조’를 찾은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새로움에 목말랐던 게 아닐까. 김성진 예술감독도 그러한 목마름에 나를 찾은 것일 거다.
그동안 쓴 국악곡을 꼽는다면? 대금·피리·해금·가야금·징을 위한 ‘류(流)-I’(1981), ‘현악 앙상블과 국악 오케스트라의 만남-I’(1988), 국악관현악 ‘대하지곡’(2007) 등이 있다.
‘시조 칸타타’를 통해 국악관현악단에 특별한 기능이나 실험을 하고 싶은 게 있을 것 같다. 예전에 해금 파트 전원이 하나의 선율을 연주했다면 ‘시조 칸타타’는 한 파트가 세 개로 나뉘어 합창 선율과 함께 입체적인 흐름을 만든다. 국악기 외에 넉 대의 첼로와 두 대의 더블베이스도 추가하여 음역을 넓혔다.”
국악과 서양악의 교두보에 선 자로서 어떤 생각이 드는가?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타문화의 유입이 많았고, 그 융합을 슬기롭게 잘 일구어왔다. 융합은 자신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토대로 이어지는 발전적 변화와 성장이다. 그래서 정체성을 잃으면 안 된다. 국악곡 쓰기를 통해 한국음악의 정체성을 확인해볼 수 있다.
이 시대에 국악관현악단이 해야 할 일이 있다면? 한국의 서양음악가들이 해외 음악가들과 대등한 입장에서 활약할 정도로 수준이 높아졌다. 이렇게 되는 데 130여 년이 걸렸다. 이젠 그들이 한국음악에 대해 궁금해 한다. 국악관현악이 그 궁금증을 해소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국악관현악단은 연주만 하는 단체가 아니다. 작품을 생산하며, 이러한 먼 장래까지 챙겨야 한다. 그런 시대에 우리가 와 있다.
작곡가로서 필요한 자세는? 지금의 작곡가들은 모두 실력이 좋다. 하지만 자신이 만든 구두에 억지로 맞춰 신으라고 한다. 일종의 강요라 생각한다. 그 구두도 남과 비슷하게 생긴 경우도 많고. 작곡은 일종의 주문생산이다. 위촉자나 청중의 음악적 관심과 방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윤의중, 목소리가 만드는 합(合)의 미학
10년과 2년의 시간을 각각 창원시립합창단과 수원시립합창단에서 보낸 윤의중은 2017년부터 제10대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으로 국립합창단을 이끌고 있다. 국립합창단은 바쁘다. 정기연주회를 통해 관객과 만나고, 국립오페라단이나 여러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추기도 한다. 인터뷰를 진행한 날도 국립합창단은 서울시교향악단에 취임한 오스모 베스케의 첫 공연에 함께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어느 단체보다도 고유 레퍼토리 생산과 합창의 정통 레퍼토리를 오간다. 3월에는 창작공연 ‘아리’와 베토벤 ‘장엄미사’를 선보일 예정이다.

‘아리’는 어떤 공연인가? 작년이 3·1운동 100주년인 해였고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당시 민족의 해방을 부르짖으며 죽은 이들을 위한 진혼곡이다. 우효원(국립합창단 전속작곡가)의 작품으로, 단원들이 역사 속 인물인 안중근, 유관순, 이봉창, 남자현 등의 역할을 맡아 낭송과 대사를 주고 받기도 한다. 강혜정(소프라노), 김종표(바리톤), 고영열(판소리), 조의선(정가)와 국악기가 함께 한다.
창원, 수원시립합창단을 이끌 때와 지금을 비교한다면? 시립합창단 재직 시에는 정통 르네상스 작품부터 재즈까지 오가며 나만의 음악적 잡식성으로 마구 뿜어냈다. 국립합창단에선 ‘국가대표=정통 클래식’이라는 생각 하에 움직인다. 헨델, 모차르트, 베르디의 대작들을 시리즈화하여 진행한 이유다. 한쪽에선 전통(정통)을 고수하고, 한쪽에선 미래를 위한 진화의 발걸음으로 가고 있다. 특히 후자에서 중요한 것은 창작곡이다.
한국 창작합창곡의 경쟁력을 평가한다면? 강하다. 외래어 가사라고 예전만큼 이질감을 갖지 않는 시대다. 그래서 가사 번역에만 의존하던 과거와 달리 퍼포먼스로 힌트를 주면 국경 너머의 그들도 합창곡의 내용과 분위기에 공감한다. 그래서 국립합창단은 전임 작곡가 제도를 두어 꾸준히 작품을 생산 중이다. 더욱 놀라운 건 창작품들을 외국 관계자들이 보고 연락을 해온다는 것. ‘괜찮은데?’라면서. 그럴 때마다 나 역시 놀란다.
대학원까지 바이올린까지 전공했고 전문연주자로 활동하다 합창지휘로 방향을 바꾸었다. 바이올린이 전공이었지만 노래와 합창은 늘 곁에 있었다. 서울예고 재학 시절에 교내 합창대회에서 지휘를 맡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어린 남학생들은 뭔가를 이끌어보는, 한마디로 지휘자를 한 두어 번 꿈꾸었던 것 같다. 나 역시 그러했고. 대학시절에도 동아리합창단(서울대혼성합창단)을 지휘하기도 했다.
아버지(윤학원)의 영향도 컸을 것 같다. 집에는 아버지의 수많은 LP와 악보가 가득 했다. 지금보다 악보가 훨씬 귀할 때였다. 그로 많은 음악들을 듣고, 읽으면서 자랐다. 아주 유리한 고지에서 공부를 한 셈이다.
지휘를 선택할 때 오케스트라 포디엄에 오를 생각도 해보았을 텐데. 합창과 기악, 거리가 먼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기악에 대한 체험이 아주 큰 도움이 된다. 특히 노래와 악기가 동일한 선율을 연주하는 오블리가토에선 ‘노래를 향한 귀’와 ‘악기를 위한 귀’가 동시에 열린다. 아버지가 이끄시던 서울레이디스싱어즈의 미국 순회공연을 따라 갔는데, 우연히 신시내티 음악원에서 들리게 되었다. 그곳의 교수와 만나 대화를 나누던 중 지휘에 대한 관심을 밝히니 문하로 받아주었다. 운이 좋아 장학금 혜택도 있었고.
목소리를 통한 음악하기의 매력은 무엇인가? 목소리에는 고정된 소리가 없다. 하지만 변용력이 있다. 합창은 공간과의 분위기가 매우 중요한 장르다. 첨단 공연장에서 조율이 반듯한 피아노에 음정을 맞출 때도 있고, 유럽 시골의 고성당에서 굉장히 낡은 오르간에 맞출 때도 있다. 그 때 그것과 맞아 떨어지는 음 하나가 작품과 그날의 분위기 전체를 좌우한다. 한편, 자신의 음정을 명확히 해야 하지만 때론 ‘부드러운 고집’도 필요하다. 옆 사람의 음정이 떨어지면 나 역시 같이 낮아져야 한다.
헨델 ‘메시야’나 베토벤 ‘장엄미사’ 등 합창과 오케스트라가 합세한 대군을 거느리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마다 합창 지휘와 오케스트라 지휘의 차이점을 느낄 텐데. 오케스트라 단원은 지휘자가 주는 예비박을 악보 너머로 흘겨보고 악보를 주시한다 . 반면, 합창은 지휘자와 단원이 거의 마주보고 연주한다. 대부분 악보도 암보하는 겨우가 많다. 오랜 시간 마주하다보면 그만큼 인간관계가 가까워진다. 그래서 합창은 ‘정’로 하고, 오케스트라는 비즈니스 관계인 것 같다.
베토벤 2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베토벤 시리즈를 준비했다. ‘장엄미사’(3.27)와 C장조 미사(10.15)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선보인다. 베토벤 합창곡의 매력을 말한다면? ‘장엄미사’는 80~90분의 대작이다. 한편의 마라톤인 셈이다. 교향곡 9번 ‘합창’도 그렇고 베토벤의 합창곡에는 지속적인 고음이 많이 나와서 어렵기도 하다. 합창은 언어를 전달하는 매체역할을 넘어, 오케스트라의 한 파트를 이루는 인성(人聲)의 악기와도 같다. 오케스트라도 합창의 반주로만 국한되지 않고 독립된 선율이 있다. 결론적으로 합창과 오케스트라가 각자의 역할과 노선이 있기에 합을 맞추기가 힘들다. 거대한 음향 속에서 미묘한 지점의 합이 맞는 과정이 빛을 발하는 순간에 베토벤의 작품은 더욱 값지게 느껴진다.
국립합창단의 발전을 위해 남은 과제는? 연말에 ‘국립발레단’이라고 했을 적에 많은 이들이 ‘호두까기 인형’을 떠올리는 것처럼 국립합창단만의 고유한 레퍼토리가 있으면 한다. 일단 헨델 ‘메시아’가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데, 우리의 창작합창곡으로 그러한 역할을 했으면 하다.
글 송현민(편집장·음악평론가) 사진 강태욱(Workroom K)

 

국립합창단 3·1절 기념연주회 ‘아리’ 3월 3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국립국악관현악단-이영조 ‘시조 칸타타’ 3월 26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
국립합창단 베토벤 시리즈Ⅰ-장엄미사 3월 27일 오후 7시 30분 롯데콘서트홀


국립합창단 2020시즌 주요 일정 바흐 B단조 미사(5.7/예술의전당 콘서트홀/카메라타 안티콰 서울), 국립극장 창설 70주년 기념-베스트 콜렉션(5.15·16/명동예술극장), 창작합창의 밤(6.16/예술의전당 IBK챔버홀), 베토벤 시리즈Ⅱ-합창환상곡·C장조 미사(10.15/예술의전당 콘서트홀/한경필하모닉·안산시립합창단), 헨델 ‘메시아’(12.1/예술의전당 콘서트홀/카메라타 안티콰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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