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여는 피아니스트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0년 3월 2일 9:00 오전

MONTHLY FOCUS

을 여는

피아니스트

3월과 4월, 봄기운을 타고 여성 피아니스트 4인이 차례로 무대를 선보인다.

그대 앞에 봄이 있다. 네 명의 피아니스트가 선사할 네 가지색의 봄!

비르살라제 ©Bonsook Koo

레온스카야 ©Marco Borggreve

리시차 ©Gilbert Fransois

문지영 ©Jino Park

 

 

 

 

 

 

 

 

 

엘리소 비르살라제

슈만 사랑과 헌신

2017년 첫 내한(2.16/금호아트홀) 이후 매년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었던 그녀가 이번에 연주하는 곡은 차이콥스키·프로코피예프·슈만의 작품들이다. 네 차례의 내한공연 프로그램을 보면 슈만의 작품이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었다. 비르살라제(1942~)는 최고의 슈만 해석가다. 일찍이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는 “엘리소 비르살라제는 최고의 슈만 피아니스트”라고 격찬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변덕스러운 거장이 무의식적으로 한 얘기”라면서도 “그의 견해에 감사한다”라고 말한 비르살라제는 “리히테르야말로 천재라고밖에 할 수 없는 슈만 해석을 남겼다. 피아노 협주곡, 교향적 연습곡, ‘서주와 알레그로 아파쇼나토’ 등 그가 연주한 모든 곡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Bosook Koo

리히테르 외에 영향을 받은 다른 피아니스트들의 슈만 연주가 있는가? 아니 피셔(1914~1995), 마리아 그린버그(1908~1978), 블라디미르 소프로니츠키(1901~1961)의 영향을 받았다. 가끔 빌헬름 바크하우스(1884~1969)를 다시 듣곤 한다. 사무엘 파인베르크(1890~1962)는 덜 알려졌지만, 그의 ‘유모레스크’는 멋지다. 디누 리파티(1917~1950)의 피아노 협주곡은 근사하고. ‘어린이 정경’은 호로비츠(1903~1989)의 연주를 좋아한다. 요즘 피아니스트 가운데는 라두 루푸(1945~)를 언급하고 싶다.

슈만 음악의 어떤 점에 매료되었나? 피아니스트가 슈만 음악에 깊숙이 빠지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는 피아노 작품을 쓴 작곡가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사람 중 하나다. 나는 일찍부터 슈만을 연주했다. 어린 시절, 이미 슈만의 독주곡과 협주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그와 아주 깊은 연결고리가 존재함을 느낀다. 정말 경이롭다. 슈만의 음악은 매 마디가 다르고, 또 장면마다 불안정하고 변하기 쉽다.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달까. 훌륭한 작곡가다.

음악을 시작한 계기는 무엇이었나? 할머니가 음대 교수셨다. 어릴 적부터 음악을 들었고, 할머니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레슨을 해 주셨다. 자주 아프셔서 음악원에 가지 못하셨기 때문에 레슨은 주로 집에서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나를 가르치길 원치 않으셨단다. 관계란 어려운 거라서 선생님이 되는 것과 손녀를 대하는 것, 그를 제자로 삼는 것을 한꺼번에 하기 힘들다고 하셨다. 할머니와의 첫 레슨은 여덟 살 때로 늦은 편이었고, 그전에는 귀로 익혔다. 할머니의 제자들이 연주한 모든 곡을 악보를 보지 않고도 칠 수 있었다.

이후의 음악적 성장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트빌리시 음악원에서 학업을 마친 후 모스크바 음악원에 들어갔다. 내 인생에서 할머니는 늘 가까이 있었으나, 미래를 정하는 데는 유명 피아니스트이자 명교수였던 네이가우스(1888~1964)의 영향이 컸다. 그의 앞에서 처음으로 연주했을 때가 아홉 살이었고, 차이콥스키 콩쿠르 전에 가르침을 받았다. 요컨대 어린 시절은 할머니와 네이가우스 교수에게, 그리고 이후 대학원 때는 야코프 자크 교수에게 배웠다.

세계 유수의 콩쿠르에서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콩쿠르를 준비하는 젊은 연주가들에게 조언해준다면?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다. 요즘 콩쿠르는 젊은 연주가들의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것이 좋든 아니든. 내가 젊었을 때는 전 세계적으로 콩쿠르가 많지 않았다. 콩쿠르도 피아니스트의 수도 지금보다 훨씬 적었다. 지금은 콩쿠르가 없다면 하늘 아래 수많은 피아니스트들을 찾기가 몹시 어려울 것이다. 이는 특히 피아니스트들에게 해당하는 바다. 바이올린 등의 현악기 주자들에게는 오케스트라라는 선택지가 있지 않나. 내 조언은 한 가지다. 음악을 진정으로 좋아하고 인생 전체를 음악과 함께하고 싶다면, 인생을 이 직업에 온전히 바쳐야 한다. 매우 어려운 일이고, 가끔은 볼품없어 보이기도 한다. 성공했다고 생각해도 그게 끝이 아니니까. 진짜 음악을 사랑한다면 그 순간에도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일찍이 이 일을 그만두고 다른 직업을 찾는 게 나을 것이다.

글 류태형(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태어나 피아니스트이자 교육자였던 할머니 아나스타샤 비르살라제에게 처음 피아노를 배웠다. 트빌리시 음악원과 모스크바 음악원을 거치며 겐리히 네이가우스와 야코프 자크를 사사했다. 스무 살에 차이콥스키 콩쿠르 3위 입상, 스물넷에 슈만 콩쿠르에서 우승했고, 1980년대에 들어서 본격적인 연주 활동을 펼치며 1989년 소련 인민예술가상을 받았다. 보리스 베레좁스키, 알렉세이 볼로딘 등을 제자로 배출했고, 차이콥스키 콩쿠르·루빈스타인 콩쿠르 등에서 심사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3월 19일 오후 8시 금호아트홀 연세

슈만 ‘노벨레텐’ 8번·환상곡 op.17 외

 

 

엘리자베트 레온스카야

베토벤 묵직한 책임감

엘리자베트 레온스카야(1945~)가 4월 11일 성남아트센터에 온다. 2018년 같은 곳에서의 첫 내한공연(3.31/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 이후 2년 만이다. 당시 그녀가 들려준 슈베르트 소나타 D894·D575·‘방랑자 환상곡’ 등은 현계와 이계의 경계선을 넘나든 명연이었다. 이번에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0·31·32번을 연주한다. 악성이 최후에 도달한 깊이를 펼쳐 보일 연주가 기대된다. 공연을 앞둔 레온스카야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2018년 성남아트센터에서 슈베르트 소나타로 구성된 리사이틀을 선보였었다. 풍부한 경험에 바탕을 둔 깊은 감정의 표현과 숭고한 해석에 감명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지난 공연을 회상해본다면? 한국 첫 방문이었다. 체류 기간이 고작 이틀로 짧았었다. 언덕 위에 위치한 좋은 호텔에서 묵었는데, 전망이 좋아서 서울이 한눈에 보였다. 반나절은 음향이 좋은 콘서트홀에서 보냈고. 어리고 젊은 청중들이 기억에 남는다. 흡족한 기억이다.

이번 공연에서 베토벤 최후의 소나타 세 곡을 연주한다. 베토벤 250주년을 맞는 안성맞춤의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는데,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에 대한 지론을 듣고 싶다. 베토벤 소나타가 음악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띠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세계 모든 음악가들이 올해 베토벤의 해를 축하하고 있다. 우리 안에서 참으로 깊게 뿌리내리고 또 가까이에 있지만, 동시에 도달할 수 없는 음악이다. 서른두 곡의 소나타 한 곡 한 곡이 새로운 풍경을 향한 기나긴 여정이다.

©Marco Borggreve

엠데게(MDG) 레이블에서 발매된 후기 소나타 앨범(2010)은 참 인상적이다. 톤 컬러가 독특했고 왼손의 악센트가 곡의 구조를 드러냈다. 파워풀하면서 시적이고 초월적인 연주였다. 녹음할 당시 청중들에게 어떤 점을 전달하려고 했나? 1897년산 스타인웨이 피아노로 연주했다. 요즘의 모던 스타인웨이와는 소리가 매우 다르다. 모던 스타인웨이에서는 원하는 만큼의 피아니시모와 피아니시시모에 이를 수 있는 반면, 그 악기는 제한이 따랐다. 따라서 아티큘레이션을 적게 가져간 녹음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연주회에서는 어떤 해석과 느낌을 기대할 수 있을까? 내게 연주회 프로그램은 청중 앞에서 완수해야 할 묵직한 책임감과 같다. 베토벤 소나타 30·31·32번은 사뭇 다른 성격을 띤다. 연주할 때마다 완전히 매료되는 작품들로, 이번 연주회에서도 ‘황홀함’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가 당신의 멘토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의 베토벤 해석 중 어떤 점이 기억나는가? 리히테르의 해석은 독일어로 표현하자면 언제나 ‘완성(Vollendung)!’이었다.

올해 수많은 피아노 콩쿠르가 세계 각지에서 열린다. 에네스쿠나 롱 티보 콩쿠르 등 여러 대회의 입상자로서 젊은 참가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가?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콩쿠르에 참가하더라도 생각하고, 느끼고, 음악을 믿어라. 음악만이 행복이다!

그동안 수많은 연주를 해왔는데, 연주할 때마다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 무대는 책임을 의미한다. 집중하고, 음악과 함께 가라!

무대를 떠나 쉴 때는 무엇을 하는가? 걷기도 하고, 독서도 하고, 친구들을 만나거나 영화관에 간다. 동물원에 가기도 하고.

음악과 삶의 균형을 어떻게 이루어 가는가? 음악과 삶 사이에는 경계가 없다. 음악이 삶이고, 삶이 음악이다.

끝으로 한국의 청중에게 하고 말이 있다면. 행복하고, 행복을 느끼고, 또 삶과 음악을 사랑하기를 바란다!

글 류태형(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성남문화재단

 

구소련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 태생으로, 피아노와 성악을 전공한 유대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18세에 에네스쿠 콩쿠르에서 우승. 모스크바 음악원 재학 중에는 롱티보 콩쿠르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입상했다. 1974년 빈에서 데뷔했고, 1978년 고국을 떠나 빈에 정착했다. 빈 콘체르트하우스의 명예회원이며, 2006년 오스트리아 십자가 훈장을 수상한 바 있다.

 

4월 11일 오후 5시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

베토벤 소나타 30·31·32번

 

 

발렌티나 리시차

베토벤 일상이 되는 순간

©Gilbert Francois

좋든 싫든 하루 한 번 이상 습관처럼, 혹은 세심하게 자신을 비추는 거울을 응시하게 된다. 대게는 심드렁하게 지나치는 그 잠깐의 시간 동안 우리는 반대편의 나를 보고 놀라거나 기뻐하고, 또 슬퍼한다. 그 변화가 크건 작건, 그 또한 내일 또 마주쳐야 할 우리의 일상이다. 베토벤은 대부분의 음악가에게 그런 일상이 된 지 오래다. 늘 다루고 때로는 무심하게 지나치지만 어느 순간 바뀌어버린 자신을 이 음악가의 악보를 보며 발견한다.

발렌티나 리시차(1973~)에게도 베토벤은 일상이 분명하다. 낭만과 현대 레퍼토리를 넘나드는 보기 드문 비르투오소이자, 한국에서는 ‘건반 위의 검투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테크닉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큰 노력이 필요없다는 사실은 내게 감사하면서도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기교는 화가의 붓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그 도구들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 문제는 비르투오소적 능력과 별개다. 베토벤은 그런 면에서 연주와 해석이 가장 어려운 작곡가에 속한다. 테크닉적인 얘기만 해볼까? 만약 정확한 리듬감이 부족하다면 완벽한 베토벤의 연주는 불가능하다. 또 베토벤의 음표들은 티끌 하나 없는 맑은 음색을 요구하기 때문에 페달로 단점을 가리기가 어렵다.”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했고 현재는 모스크바에서 거주하는 그녀를 러시안 피아니즘의 카테고리에 넣는 것이 경솔할지 모르지만, 그간 무대 위에서 경험한 리시차의 베토벤은 자유로움과 스케일 큰 상상력, 응집력 있는 감성의 폭발이라는 면에서 러시아 피아니스트들의 전형적인 스타일을 합리적으로 따르고 진화시키는 모습이었다.

“이상적인 베토벤 연주자로는 가장 먼저 아르투르 슈나벨(1882~1951)이 떠오른다. 편집 기술이 없던 당시의 오래된 음반을 들으며 기계적인 정확도를 논한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꼼꼼한 연구와 식견으로 만들어진 슈나벨의 녹음 다음으로는 빌헬름 박크하우스(1884~1969)의 모노 음반을 좋아한다. 그 외에 굴다·켐프·폴리니의 베토벤을 좋아하고. 러시아 연주자 중에서는 마리아 유디나(1899~1970), 마리아 그린버그(1908~1978), 타티야나 니콜라예바(1924~1993) 등 뛰어난 여성 피아니스트들이 떠오른다. 물론 베토벤 해석의 최고의 권위자인 에밀 길렐스(1916~1985)와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1915~1997)의 유산도 큰 의미로 남아있다.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길렐스와 리히테르가 남긴 수많은 베토벤 녹음(실황 포함) 중 서구의 애호가들이 열광하는 연주는 그들의 베스트가 아닌 경우도 많았다. ‘철의 장막’이 너무 길어진 탓에 벌어졌던 비극이다.”

역사적인 최초의 리코딩 외에도, 슈나벨은 매우 개성적이면서 치밀한 분석이 인상적인 에디션을 남긴 인물이기도 하다. 리시차가 선호하는 베토벤의 에디션은 어떤 것일지 궁금했다.

“이른바 ‘원전판(Urtext)’은 말 그대로 베토벤의 의도가 가장 깨끗하고 순수하게 담겨있다는 뜻이지만, 이 에디션을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순간 실수에 빠지기 쉽다. 어떤 악보든 잘못된 부분은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소나타 30번 op.109의 필사본과 첫 번째 에디션에는 지웠다가 다시 들어간 음표가 있다. 첫 출판 직전 편집자의 실수를 발견하고 베토벤 자신이 “이 음표는 반드시 여기 있어야 한다!”고 지적해 첨가한 것이 발견된다. 이렇게 수정된 악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에 나온 악보들에는 문제의 이 음이 계속 빠져 있다. 베토벤의 바람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셈이다. 슈나벨의 뛰어난 에디션 외에 오이겐 달베르트의 편집본에는 무대에서 이루어지는 ‘실전 베토벤’에 대한 통찰력 있는 힌트가 돋보인다. 모두 대문자 ‘M’을 붙여야 하는 위대한 음악가(Musician)다.”

러닝타임 3시간의 독주 무대가 드물지 않고, 기분에 따라 30분 이상 앙코르를 들려주기도 하는 슈퍼 피아니스트의 일상은 온통 연습과 음악으로 가득 차 있을 듯하다. 일견 특별할 것 없는 그녀의 일상 속 베토벤을, 특별한 해를 맞아 특별하게 감상하는 방법은 없을까.

“일 년에 하나의 프로그램만으로 투어하기 싫어서 하루 10~12시간을 연습한다. 남는 시간에는 모스크바 시내를 산책하고 음악을 들으면서 연주를 위한 영감이 떠오르길 기다린다. 피아노는 흥미롭게도 인간의 소리, 즉 노래하고 말하고 속삭이는 것을 가장 잘 흉내 낼 수 있는 위대한 악기다. 나는 이중 ‘말하기’에 집중한다. 이른바 ‘클래식’이란 의미는 단어 그 자체에 특정한 유행을 떠나 있다는 매력적인 의미가 숨어있고, 베토벤도 예외는 아니다. 이 걸작들에게 250년은 아주 짧은 시간이다. 클래식 음악은 고통스러운 시간을 맞이하는 불안한 영혼 모두를 위해 영원해야 하는 존재이다.”

글 김주영(피아니스트) 사진 오푸스

 

우크라이나 태생으로 유튜브를 통해 더욱 유명해진 아티스트이다. 쇼팽 연습곡이나 베토벤 ‘월광’ 소나타 영상 등은 조회수 천만을 넘길 정도로 인기이다. 쇼팽 24개 연습곡 연주 영상이 담긴 DVD는 2007년 아마존 클래식 분야 최다 수량 판매로 기록됐다. 3세에 피아노를 시작한 뒤 키예프 음악원을 졸업하고 1991년 알렉세이 쿠즈네초프와 함께 머레이 드라노프 듀오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미국 주요 29개 주에서 듀오 콘서트를 열었다. 현재 IMG아티스트 소속으로 아시아와 유럽, 미주를 넘나든다.

 

3월 22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베토벤 소나타 17·23·29번

 

 

문지영

브람스 청춘이 만난 청년

©Anne-Laure Lechat

소위 ‘만능’이라는 표현이 요즘 매체들에서 자주 보이지 않는다. ‘무엇이든 잘 한다’는 것이 늘 최고의 미덕은 아니겠지만, 따지고 보면 어떤 주제나 내용을 주던 그것에 대해 보통 이상의 결과를 내놓을 수 있는 예술가로의 능력은 타고남과 노력이 이상적으로 결합할 때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 ‘만능 피아니스트’라는 표현의 많은 부분은 레퍼토리의 폭이 넓고 풍부하다는 의미인데, 거기에 ‘만능’ 연주자가 젊다면 호기심과 의욕도 차고 넘치리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요즘 들어 리사이틀 프로그래밍을 하는 게 얼마나 까다롭고 어려운 일인지 절실하게 느낀다. 여러 곡을 찾아 듣고 고민하다가도 막상 연주하게 되는 것은 예상치 못한 때에 다가온 곡이나, 오랫동안 공부하고 싶었던 작품인 것 같다. 누구에게나 잘 맞지 않는 곡이 있겠지만, 그래도 두려움을 극복하고 시도해보는 편이다. 공부하면서 오히려 잘 맞는다는 걸 알게 되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지금은 독일과 오스트리아 음악이 조금 더 가깝게 느껴지고, 상대적으로 러시아 음악에는 관심이 적다. 앞으로 더 많이 시도해보면서 자연스럽게 애정이 늘길 바라고 있다.”

잦은 무대로 친숙한 문지영(1995~)이지만, 그래도 새로운 시즌의 독주회란 피아니스트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자리다. 선호하는 독일계통의 레퍼토리라지만 브람스의 작품, 그것도 긴 시간이 요구되는 소나타 1~3번을 한자리에 모은 것은 꽤 파격적이다. 원숙기의 걸작들과는 달리 브람스의 청춘이 여과 없이 드러난 피아노 소나타는 해석하는 이에게 작곡가의 열정을 필요로 한다.

“사실 브람스 전곡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던 건 아닌데, 이번 리사이틀 프로그램으로 브람스 소나타 1번을 고려하고 있던 차에 김대진 선생님이 전곡을 추천하셨다. 어릴 적부터 많이 좋아한 작곡가이고, 협주곡·실내악곡들은 연주해 보았지만 내내 마음속으로 아껴 둔 솔로는 이번이 처음이라 매우 설렌다. 이런 걸작들을 18~20세에 작곡했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울 정도다. 완벽주의자의 치밀한 솜씨로 맨 먼저 작곡한 소나타 2번, 그 후에 작곡했지만 op.1로 발표한 소나타 1번, 그리고 후기작이라 해도 믿을 법한 3번 소나타까지, 어떠한 곡을 보아도 10대 후반의 브람스는 이미 원숙한 음악 세계를 가졌다고 느껴진다. 우리에게 익숙한 긴 수염의 고독해 보이는 사진과는 너무 다른 1850년대의 젊은 브람스의 사진들을 보며, 로베르트와 클라라 슈만 앞에서 브람스가 어떻게 자신의 소나타 1번을 연주했을지 상상해보기도 하고 옛 작곡가들에 대한 그의 존경에 그의 색깔이 어떻게 입혀져 나왔는지 살펴보고 있다. 훗날 후기의 주옥같은 op.116~119 작품들을 공부하고 나서 다시 이 초기 소나타들을 돌아볼 때 어떤 것을 배우고 느낄지 궁금하다.”

연주자의 생각이 연주에 묻어나오려면 결국 발휘해야 할 것은 논리와 스마트함을 동시에 지녀야 하는 집중력이다. 문지영의 무대에서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은 특유의 집중에서 나오는 에너지다.

“연주를 막 시작한 10대 후반 무렵에는 무대로 나가는 순간 정신이 아득해져서 끝나고 내려올 때면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 후로 끝난 후 연주를 녹음한 걸 들어보면서 다음 연주 때마다 정신 집중에 노력했던 시기가 있었고, 너무 많은 긴장도, 너무 긴장을 안 한 상태도 위험하다는 걸 깨달았다. 연주 전 조용히 명상하듯 마음을 비워내고, 음악이 새롭게 시작될 수 있게 준비하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어떠한 상황에서든 주어진 환경과 자신을 온전히 믿을 때 좀 더 수월해지는 것 같다.”

한없이 많은 경험을 음악과 연주를 통해, 그리고 다양한 음악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나아가야 하는 20대 피아니스트의 무대는 팬들과 자신 모두에게 매 순간이 특별하다. 크고 작은 계획과 길고 짧은 호흡으로 조절해야 하는 연주자의 삶은 그래서 더욱 흥미롭다.

“작년은 무대에서 행복했던 기억이 많은 해였다. 황홀한 음향의 위그모어홀에 압도됐고, 부다페스트의 아름다운 리스트 아카데미 그랜드홀에서 연주한 쇼팽 협주곡도 기억에 남는다. 서울스프링페스티벌에서는 최고의 음악가들과 슈베르트·브람스 등의 실내악 작품을 연주했고, 여름에는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을 연주했다. 지휘자였던 로베르토 벨트란-자발라는 오케스트라와 피아노 사이에 굉장히 친밀하고 정교한 소통, 상호작용이 필요하다며 아주 꼼꼼하게 리허설을 진행시켰다.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먼 미래에 대한 생각보다는 현재에 더 집중하고 싶다. 하루하루 충실하면서 삶이 주는 행운과 시련을 모두 담담하게 받아들이려 노력해왔다. 미래의 내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안 되지만, 음악가로서 끊임없이 고찰하고 발전해나가고 그 결과를 연주로 옮길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글 김주영(피아니스트) 사진 더브릿지컴퍼니

 

2014년 스위스 제네바 콩쿠르와 2015년 부소니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한 문지영은 1957년 두 콩쿠르에서 모두 우승한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행보를 닮았다. 여수에서 태어나 일곱 살에 피아노를 시작,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김대진을 사사했고,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등 국내외 유수의 무대에서 독주와 협연으로 주목받고 있다. 2018년 하이든 오케스트라 이탈리아 투어, 2019년 코리안심포니 아시아 투어에 함께했고, 2019년 위그모어홀 데뷔 리사이틀과 더불어 스페인 데뷔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4월 2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브람스 소나타 1~3번

 

 

HISTORY

20세기

여성 피아니스트 열전

귀요마 노바예스 ©guiomar-novaes

마르그리트 롱

아니 피셔

이본느 르페브르

21세기를 살면서 유튜브의 신세를 지지 않고 살 수는 없겠지만, 개인적으로 제일 고마움을 느끼는 순간은 희귀한 녹음이나 아주 오래된 자료를 접할 때다. 굳이 오디오 앞에 가지 않아도 우리가 체험할 수 있는 ‘19세기 피아니스트’들이 적지 않지만, 여성 피아니스트들의 기록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못내 아쉽다.

이 가운데 벨테 미뇽 피아노 롤의 소리로 안나 에시포바(1851~1914)의 소중한 기록이 남아있어 반갑다. 리스트와 피아노 선생님으로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던 테오도르 레셰티츠키의 제자이자 부인이었던 그는 동문수학한 알렉산더 골든바이저(1875~1961)와 함께 러시아 피아니즘의 눈부신 전성기를 이끌어 냈다. 1893년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의 교수였던 예시포바의 가장 유명한 제자는 다름 아닌 프로코피예프였다.

마르타 아르헤리치(1941~)의 이야기를 담은 올리비에 벨라미의 책 ‘마르타 아르헤리치-삶과 사랑, 그리고 피아노’(현암사/2018) 속에서 브라질의 전설 기오마르 노바에스(1895~1979)를 만나는 장면은 흥미롭다. 친구이자 노바에스의 제자였던 넬손 프레이레(1944~)와 함께 한 자리에서 노바예스는 마르타에게 자신의 연주를 들어봤는지 묻는다. 음반을 듣고 감동받았다고 대답하자 노바예스는 단호하게 대답한다. “음반은 빼고!”

낯을 가리기로 유명한 아르헤리치가 ‘친구들’이라는 폭넓은 개념으로 늘려가는 후배 음악인군 가운데 다채로운 재능으로는 가브리엘라 몬테로(1970~)를 맨 처음 들어야 할 것이다. 베네수엘라 태생으로 8세에 ‘엘 시스테마’의 창시자 호세 아브레우의 지휘로 데뷔한 그의 장기는 즉흥연주다. 베르비에 등의 페스티벌에서 보여준 실내악도 훌륭하지만, 쇼팽·라흐마니노프 등의 솔로 음반에서는 특유의 자유분방함을 잘 다스린 제어능력도 보여준다.

21세기 들어 본격적인 감상을 시작한 클래식 음악팬이라면 마르그리트 롱(1874~1966)의 위상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생각할지 궁금하다. 포레의 음악적 후계자, 라벨의 친구이자 조력자, 롱 티보 콩쿠르의 기원, 상송 프랑수아의 선생님 등이 그녀의 업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세련된 뉘앙스를 지닌 피아니스트로서의 위상도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 다만 롱의 스타일을 프랑스 여성 피아니스트의 전형으로 볼 수는 없다. 선생이자 연주자로 좀 더 기억해주어야 할 인물은 이본느 르페브르(1899~1986)다. 알프레드 코르토 문하에서 천재 소녀로 교육받은 그는 폭넓은 악상과 과감한 해석으로 동시대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푸르트벵글러가 선택한 드문 프랑스 피아니스트로도 알려진 그는 역시 푸르트벵글러를 통해 베토벤의 세계에 새롭게 눈을 떴다고 고백했다. 여성이 남긴 베토벤의 인상적인 해석으로 동시대 독일의 피아니스트 엘리 나이(1882~1968)와 헝가리의 대가 아니 피셔(1914~1995)를 빼놓을 수 없다. 엘리 나이는 리스트의 피아니즘을 이어받은 당당함과 힘 있는 해석으로, 아니 피셔 역시 개성 있는 감각과 짙은 감성으로 멋진 베토벤을 만들어낸 연주자였다. 베토벤 탄생 200주년 기념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주목받은 마리아 주앙 피르스(1944~)는 모차르트 해석에도 탁월하다.

20세기 초·중반 프랑스 피아니즘의 계승자로는 모니크 아스(1909~1987)가 떠오른다. 풀랑크와 뒤티외의 칭송을 받은 그는 쿠프랭·라모·드뷔시·라벨의 진정한 수호자였다. 파리 음악원에서 자크 루비에를 사사하며 15세에 센세이셔널한 데뷔를 했던 엘렌 그리모(1969~)는 프로필과 다르게 슈만· 라흐마니노프에 강점을 보이며 소위 ‘프랑스의 적자’ 개념과는 다른 노선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아르헤리치의 친구’ 중 하나인 릴리아 질베르시테인(1965~)은 모스크바 그네신 음악학교를 졸업하고 무소르그스키·라흐마니노프 등의 레퍼토리에서 성과를 거두었지만 일찍이 함부르크로 이주했고 현재는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어 ‘러시아적’이라는 이미지가 덜하다. 하지만 농염한 색채감과 힘있게 밀어붙이는 감성, 과감한 아고긱은 러시아 여성들의 공통된 에너지다. 20세기 중반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직관과 창의성으로 첫손가락에 꼽히곤 했던 마리아 유디나(1899~1970), 단단한 논리와 구축력으로 인상적인 베토벤 해석을 보였던 마리아 그린버그(1908~1978)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연주자다. 지난 세기 바흐 연주의 많은 부분을 대표하고 쇼스타코비치의 수호자였던 타티아나 니콜라예바(1924~1993)가 미국에서 연주 도중 쓰러진 사건은 지금도 안타까운 퇴장이었다. 네이가우스의 마지막 숨결을 전하고 있는 엘리소 비르살라제(1942~)가 건재해 다행스럽다. 러시아 피아니스트의 세계는 거구의 남성 피아니스트들이 근육질이 동반된 사운드로 ‘지배’해온 감이 있다. 오히려 눈에 띄는 30대 여성 피아니스트 중 내가 주목하는 인물은 안나 비니츠카야(1983~)다. 1968년 예카테리나 노비츠카야(1951~) 이후 2007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두 번째 여성 챔피언이었다. 자연스러운 테크닉과 외향적인 악상, 러시아인 특유의 음울한 서정성 등은 그의 음악적 크기를 짐작하게 한다. 2010년 쇼팽 콩쿠르 우승자인 율리아나 아브제예바(1985~)는 낭만보다 20세기 프로그램에 더 많은 강점을 보인다. 쇼팽에서 벗어나야 성공한다는 우승자들의 법칙을 적절히 적용하는 듯하다.

재빠르고 탄력 있는 손놀림, 감각적인 악상, 패셔너블한 풍모. 유자 왕(1987~)과 카티야 부니아티쉬빌리(1987~)가 대표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여성 피아니스트들의 면모는 위와 같은 이미지 안에서 흥미롭게 변형되고 있는 듯하다. 어떤 쪽이든 팬들이 원하는 다양한 이미지와 자신의 예술적 욕구를 고루 채울 수 있다면 21세기의 여성 파워는 건반 위에서도 긴 상승 곡선을 그리리라 확신한다.

글 김주영(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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