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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바이러스와 공연 시장
국제 공연 계약 표준으로 보는 전염병 사태
세계 공연 시장에 비상이 걸렸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해외 오케스트라의 투어 일정들이 줄줄이 취소되고 있는 것. 내한공연 또한 마찬가지 신세다. 전염병으로 인한 공연 취소, ‘불가항력’인가?
보스턴 심포니(2.6·7/예술의전당 콘서트홀)와 빈 방송교향악단(3.12~14/강릉·고양·제주), 최근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3.14·15/아트센터 인천), 루체른 스트링 페스티벌(3.17/롯데콘서트홀), 홍콩필(3.10~13/대전·서울·춘천·광주)까지, 각각 2·3월로 예정된 아시아 투어를 취소하면서 입장문을 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확산에 따른 단원들의 건강염려를 취소 사유로 들었다. 보스턴 심포니가 명시한 판단 근거는 ‘문서화된 공식 뉴스(documented official news)’와 ‘국가 기관 보고서(government agency report)’였다.
빈 방송교향악단은 “총 세 곳의 중국·한국 공연장이 공연을 취소했고, 잔여 공연은 악단 의사로 진행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가 영토 내 공연장을 폐쇄한 결과, 중국 외 나머지 투어를 진행해 얻을 금전 이득이 충분치 않음을 자인한 결과다. 현재 유럽과 미주 오케스트라의 동아시아 투어가 얼마나 중국에 종속됐는지 코로나 사태가 이를 극명히 드러냈다.
무역 조건 협정서에서 대개 전염병(epidemics)은 ‘불가항력(force majeure)’에 해당한다. 그러나 국제 공연 시장에서 불가항력 적용은 조금 다르다. 지진·화산·분화·홍수와 같은 천재(天災)를 비롯해 화재·폭발 역시 불가항력에 놓는다. 개인적 사유인 연주자 질병과 친족 응급 상황은 물론, 국가의 포고령·전쟁·테러·폭동 같은 사회적 위기 역시 불가항력에 포함한다. 보스턴 심포니의 1960년 내한 불발은(당시 4.19혁명으로 인해 공연 일주일 전 취소된 바 있다) 불가항력 요건에선 민간 소요(civil commotion)로 간주해 계약자 간 비용을 상계하는 게 원칙이다. 파업과 선적 지연은 공공부문 파업이 잦은 프랑스와 브렉시트 후폭풍을 맞은 북아일랜드의 공연 기관이 불가항력 요소로 반드시 넣고자 한다.
그러나 전염병은 사정이 다르다. 전염병이 통제되는 범위를 바라보는 시각이 각각이다. 중국 정부는 강력한 행정력으로 공연장을 닫고, 홍콩 아트페스티벌을 취소했지만, 권위주의 정권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한국 정부 역시 행정력이 미치는 범위에서 선제적으로 감염 위험을 통제하고자 한다. 그러나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시장 경제 주체의 사업 영역까지 일괄적으로 통제하기 어렵다. 가령,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공연장은 자체 기획 공연을 연기하면서 시간을 벌지만, 민간 기획사가 초청하는 해외 단체 공연은 공연이 취소되면 대관료?항공료?호텔료 등 제반 비용은 고스란히 주최자 부담이다.
그래서 국제 공연 계약 표준에 전염병과 방사능도 일상적 자연재해(natural disaster)로 명문화하자는 대안이 부상한다. 전염병과 방사능을 일상적 피해로 간주해 보험 상품 개발의 여지를 넓히고, 공연 주최 측의 손실을 줄이자는 취지다. 현재는 국내 일부 보험사가 행사보험을 시판해 주로 야외 공연의 우천에 일정액을 보상한다, 그러나 전염병으로 인한 공연 연기, 단축 및 취소, 공연장 이동을 통해 가입자가 입은 손실을 보상하는 상품은 없다. 전염병을 계약서상 ‘불가항력’이나 제반 취소 사유에 명시하지 않으면, 제2의 코로나 사태가 예견될 때 보험의 힘을 빌기 어렵다.
2003년 사스, 2015년 메르스에 이어 코로나까지 동아시아에선 전염병을 곁에 두는 시대가 숙명이 됐다. “고객은 왕이다”가 사라지듯,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믿음도 공연자의 위험을 강요하는 미신이다. 팝 공연부터 플라스틱과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그린 투어’가 붐이다. 전염병 창궐에 따른 오케스트라 투어의 잇따른 취소는 궁극적으로 기후 변화 시대를 사는 이해 관계자의 행동 변화를 촉구하는 전조이다.
글 한정호(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