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T GO
‘객석’이 추천하는 장르별 공연
드미트리 시시킨·윤아인 듀오 리사이틀
‘친절한 윤아인’의 러시아 음악 안내서
4월 9일 오후 7시 30분 롯데콘서트홀
2017년 고양필하모닉과의 협연 이후 국내 무대는 오랜만이다.
공연을 앞둔 지금 매 순간이 설렘으로 가득하다. 이번 무대는 모스크바 음악원 선배이자 좋은 친구인 드미트리 시시킨(1992~)과 함께 꾸민다. 솔로와 듀오(투 피아노) 음악을 준비했다.
이번 공연의 키워드라면?
‘러시아의 시간 속에서’라고 부를 수 있겠다. 차이콥스키 ‘호두까기 인형’으로 관객을 동심의 세계로 안내한다. 러시아 특유의 따스한 겨울을 느낄 수 있는 곡이다. 다음으로 연주하는 라흐마니노프 모음곡 1번은 봄·여름·가을·겨울을 어루만지는 러시아의 대자연을 연상시키는 곡이다. 각각이 ‘뱃노래’ ‘사랑의 밤’ ‘눈물’ ‘러시아의 부활’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을 만큼 서정적이고 미묘한 감정이 담긴 작품이다.
듀오 무대를 선보이는 드미트리 시시킨과는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동문수학하며 엘리소 비르살라제 교수를 사사했다.
드미트리와 내가 속한 클래스는 비르살라제 교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다. 서로의 연주와 레슨을 경청했고, 수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교수님을 배웅한 후엔 같이 밥을 먹으러가곤 했다. 서로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고 그 시간을 공유했다는 점이 공연을 준비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클래식 유튜브 채널 ‘또모’가 기획한 공연이라는 점에서도 관심을 모은다. 유튜브 영상에 직접 출연도 했는데.
작년 여름 피아니스트 임동민의 마스터클래스 영상으로 ‘또모’라는 채널을 처음 알게 됐다. 클래식 음악이 많은 대중에게 사랑받는 모습을 보면서 연주자로서 신기하면서도 기뻤다. ‘또모’와의 촬영을 마친 후, 클래식 음악에 편하게 접근할 수 있게 한 제작 방식이 대중의 호응을 끌어냈다는 생각이 든다.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에 있어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러시아에서 음악을 시작하는 어린아이를 가르치는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테크닉 전수나 바른 자세, 페달 기법 등이 아니었다. 바로 아이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잘못된 교육으로 아이가 음악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도록 매순간 조심해야 했다. 어떤 분야든 비전문가들은 아이와도 같다. 초보자들이 차근차근 그 분야에 빠져들 수 있도록 격려하고 기다려줘야 한다. 때로는 재밌게, 때로는 진지하게 음악에 대한 사랑을 심어주는 선생님이 필요한 것이다. ‘또모’ 같은 채널이 클래식 음악의 ‘첫 번째 선생님’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어떤 음악가가 되고 싶은가?
어떤 연주자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는 아직잘 모르겠다. 다만 ‘진실’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가고 싶다. 아직은 어떠한 단어로도 확정 짓지 못한 그 무언가가 인생의 매 순간 판가름하는 기준이 되었으면 한다. 음악에서도 마찬가지다. 시간이나 상황에 의해 바뀌는 결과보다, 변치 않고 차곡차곡 쌓이는 순간들을 만들고 싶다.
글 박서정 기자
제20회 서울국제즉흥춤축제
4월 20~27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외
매년 세계적인 즉흥 전문 아티스트들이 참여하는 서울국제즉흥춤축제(Simpro, 예술감독 장광열)가 20주년을 맞았다. 마리아 마브리도우(그리스), 실뱅 메럿(프랑스), 마이크 노드(미국) 등이 함께하는 ‘enjoy 즉흥 잼’으로 문을 여는 올해 축제는 이후 6개국 4개 그룹의 즉흥 공연이 펼쳐지는 ‘100분 릴레이 그룹’ 즉흥 공연, 6개국 아티스트가 함께하는 국제 협연 즉흥 공연, 야외 즉흥 공연, 콘택트 즉흥 공연, 그리고 공모를 통해 선정된 팀들이 참여하는 즉흥 난장으로 이어진다.
올해 축제에는 그리스·미국·네덜란드·프랑스·일본·한국 등 공모와 초청을 통해 선정된 국내외 아티스트 150여 명이 참여하며, 전문 아티스트 외에도 즉흥에 관심 있는 학생과 일반인들을 위한 무대도 마련된다. 공연 외에도 전문가와 일반인의 만남을 위한 클래스, ‘관객과 함께하는 즉흥 파티’ ‘캠퍼스 즉흥’, 워크숍, 라운드 테이블 등이 마련될 예정이다.
즉흥은 창작 주체자의 무의식으로부터 이미지를 끌어내는 작업으로, 규격화된 공연 형식에서 벗어난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몸짓을 만나볼 수 있다. 20주년을 맞아 더욱 다양한 형태의 즉흥 공연을 소개하고 있는 서울국제즉흥춤축제를 통해 새로운 체험과 신선한 자극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고양아람누리 2020 새라새ON시리즈
4~12월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
소극장은 ‘작은(小) 극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점차 새로운 시도를 더해가는 무대와 다양한 관객 사이를 잇고 소통하게 하는 ‘소(疏)극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따라서 소극장은 “예술의 타성에서 벗어나 첨단의 시대정신을 반영한 새 예술의 창조적 실험공간이자 그 대안 모색을 위한 주체적 공간”이다.
‘새롭고도 새로운’이라는 뜻을 지닌 고양문화재단 새라새극장 또한 창의적 영감으로 가득한 공간이다. 2007년 개관 당시부터 가변형 실험극장으로 주목받은 이곳은 최대 300석의 객석 배치가 가능한 일반적인 프로시니엄 무대부터 회전무대, 돌출무대, 아레나형 무대 등 16개 영역으로 구분된 객석을 위아래로 움직여 다양한 모습으로 변형할 수 있다.
“무대의 형태가 공연예술의 형식을 좌우한다”는 정재왈 고양문화재단 대표의 지론에 따라 새라새극장은 올해 다양한 장르의 옷을 입고 관객과 만난다. 가변형 극장의 장점을 최대한 살린 ‘새라새ON시리즈’를 선보이는 것. 이미 그 작품성을 검증받은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먼저 연극 부문에는 지난해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았던 작품이 오른다. 시리즈의 첫 번째 공연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4.25·26)은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초연 당시 일인다역의 캐릭터 저글링과 젠더 프리 캐스팅으로 호평받았다. 가을에는 고양아람누리 상주단체로 오랜 기간 함께한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의 ‘템플’(9.12·13·17~20)과 극공작소 마방진의 ‘낙타상자’(11.13~15)가 이어진다. 특히 한국연극 ‘2019 공연베스트7’ 선정된 ‘낙타상자’는 고선웅 연출 특유의 과감함과 웅장한 음악, 감성적 안무가 더해진 작품이다.
독보적인 팬덤을 지닌 두 현대 무용단의 인기 레퍼토리도 기대를 모은다.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는 ‘바디콘서트’(5.29·30)로, LDP무용단은 ‘몸부림 & 노 코멘트'(7.17·18)로 관객과 만난다.
개방형 소극장 무대가 제격인 판소리 무대도 마련됐다. 만정(晩汀) 김소희 선생 버전으로 선보이는 신영희 명창의 ‘춘향가-만정제’(5.9)가 바로 그것. 이날 공연은 특별히 객석을 변형하여 ON지음석(방석자리)과 일반석으로 운영된다. ON지음석은 무대와 같은 높이에서 방석을 놓고 관람하는 방식으로 그 어느 때보다 연주자를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다.
시리즈의 마지막은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재즈 피아니스트 송영주의 무대(12.4·5)로 마무리된다. 동료들과 함께 선보일 그녀의 라이브 무대를 통해 차가운 겨울을 뜨겁게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글 이미라 기자
김다미·문지영 듀오 리사이틀
4월 28일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세종문화회관의 클래식 음악 전용 공연장인 체임버홀에서 만나는 세종체임버시리즈가 올해도 다양한 무대로 찾아온다. 시리즈의 첫 번째 무대는 김다미(1988~)와 문지영(1995~)이 함께하는 브람스 소나타 전곡으로 채워진다.
김다미는 하노버 콩쿠르 우승, 루체른 페스티벌 데뷔 무대 전석 매진 등 화제를 일으키며 클래식 음악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제네바 콩쿠르와 부소니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하며 한국 음악계에 새로운 역사를 쓴 문지영은 이번 듀오 연주 이전에 브람스 피아노 소나타 전곡 무대(4.2/예술의전당 IBK챔버홀)를 선보이며 작곡가에 대한 해석의 깊이를 더할 예정이다.
브람스는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성공을 맛본 이후 바이올린 소나타 1번부터 3번까지를 단숨에 써 내려갔다. 독일을 대표하는 낭만주의 작곡가로서 작품 곳곳에 동경, 그리움 등 그 시대를 풍미했던 어법들로 가득하다. 40대 중반을 막 넘긴 브람스의 비전 또한 담겨있다.
봄의 문을 여는 세종문화회관 체임버시리즈는 가을에도 계속된다. 10월 16일과 17일, 두 번에 걸쳐 진행될 노부스 콰르텟의 멘델스존 전곡 무대 또한 기대해 보자.
월간객석 & 또모 ‘음악도들’
“음악인들의 고민을 해결해드립니다!” 클래식 음악과 예능을 결합해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는 또모(TOWMOO)가 월간객석과 함께 새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클래식 음악세계를 살아가는 수많은 음악인들의 고민과 갈증을 해소하고자 만든 ‘음악도들’은 전문 연주자와 음대생의 만남을 주선, 하나의 주제를 다양한 시각으로 풀어낸다.
그 첫 번째 에피소드의 주제는 바로 ‘음악해서 뭐 먹고 살까?’
클래식 색소포니스트 브랜든 최의 진행으로 첼리스트 심준호, 피아니스트 김재원, 클라리네티스트 김우연과 음대생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만나 보자.
본편은 ‘또모’ 유튜브 채널에서, 비하인드 영상은 ‘월간객석’ 유튜브 채널에서 감상할 수 있다.
크리스텔 리·조너선 루제만 듀오 리사이틀
4월 21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유럽과 북미에서 라이징 스타로 주목받는 두 연주자, 크리스텔 리(1990~)와 조너선 루제만(1997~)이 만났다. 세계무대에서 빛나는 신예들의 무대로 마련된 ‘슈퍼노바 시리즈’의 첫 순서로 이자이·라벨·카사도·코다이 등의 20세기 근현대 작품으로 꾸며진다. 특히 이번 공연은 현악기군에서 고음과 저음을 담당하는 바이올린과 첼로의 앙상블로, 6옥타브를 넘나드는 넓은 음역 위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테크닉과 섬세한 음색을 만나볼 수 있다.
한국계 미국인인 크리스텔 리는 2013년 ARD 콩쿠르에서 바이올린 부문 1위 없는 2위와 청중상을 받았고, 이어 2015년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북미 출신 최초로 1위를 차지했다. 같은 해 시벨리우스 탄생 150주년 기념음악회에서 헬싱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데뷔했으며, 이후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밴쿠버 심포니·도쿄 필 등과 협연하며 유럽과 북미, 아시아를 오가고 있다. 핀란드계 네덜란드인인 루제만은 2015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17세의 나이로 최연소 입상하며 화제를 모았다. 헬싱키 시벨리우스 음악원을 졸업하고 현재 크론베르크 아카데미에서 수학하고 있으며, 발레리 게르기예프·에사 페카 살로넨·오스모 벤스케 등 세계 유수의 지휘자들과 함께하고 있다. 크리스텔 리의 듀오 파트너로서 한국에 첫 내한한다.
MUST HAVE
소리로 기록된 추억 장은호 작품집 ‘만화경’
젊은 작곡가 장은호(1983~)가 오스트리아의 레이블 카이로스(Kairos)에서 독집 음반을 내놓았다. 카이로스는 정상급 작곡가 베아트 푸러가 설립한 유력한 현대음악 전문 레이블로, 이러한 현대음악 전문 레이블에서 독집을 낸 한국인 작곡가는 1968년 윤이상(Wergo), 1994년 박영희(Auvidis), 2011년 진은숙(Kairos) 등이 있었다. 그리고 2018년에 장은호가 이 대열에 합류했다. 그는 쇼팽 국립음대에서 작곡과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모교에서 수년간 강의했으며, 파데레프스키 콩쿠르 1위, 동아 콩쿠르 1위, 에네스쿠 콩쿠르 심포니 작곡 부문 우승, 퀸 소피아 작곡상 우승, 시마노프스키 콩쿠르 3위 등의 괄목할 성적을 거두었다. 아르디티 콰르텟 등 세계 유수의 현대음악 단체와 작업하고 있으며, 네 개의 작품을 담은 이번 음반 역시 그들의 뛰어난 연주로 채워져 있다.
장은호는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를 ‘아름다움’이라고 말한다. 이는 플라톤 시대부터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지만, 그는 이를 철학적이고 난해한 설명보다는 자신이 느낀 바를 솔직하게 말한다. “자연의 경이와 거대한 힘!” 그는 주변에 존재하는 자연의 소리 속에서, 소리와 소리 사이에서 형성되는 공간과 그 공간을 진동시키는 공명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이것을 악기로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데에 집중한다. 일곱 악기를 위한 ‘파노라마’(2015)의 경우는 빛과 태양이 가진 에너지와 이로 인한 현상들을 그린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는 극적인 서사보다는 빛이 주는 인상을 그린 서정이 압도한다. 그런 점에서 온화하게 펼쳐지는 음색이 명상적이기도 하고 신비롭기도 하다.
음반의 해설을 쓴 폴란드 출신의 작곡가 다리우스 프지빌스키는 이를 악기의 조합으로 새로운 음색을 만든다는 의미로 “간(間)악기(inter-instrumental)”의 연주라고 독특하게 표현했으며, “음색적 최면”을 일으킨다고 말한다. 다소 어려운 표현들이지만, 그의 음악을 이탈리아 작곡가 지아친토 셀시(1905~1988)에 비교한 것은 충분히 이해되며, 또한 작곡가 자신이 붙인 음반의 타이틀 ‘만화경’과도 연결된다.
빛에 관한 관심은 ‘백색 그림자’(2012)에서도 나타난다. 작곡가는 빛을 받지 못해 생기는 어두운 그림자가 아닌, 빛을 내뿜는 그림자를 상상했다. 이것은 자연에 대한 역발상이자, 빛에 대한 시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여섯 명의 타악기 연주자를 위한 이 작품은 일반적으로 타악기에서 기대하는 소음과 리듬이 아닌, 각 악기의 고유한 음색이 발현되도록 한다. 그래서 마치 자연에서 들려오는 다양한 소리와 같이 귓가에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이러한 특징은 다섯 악기를 위한 ‘고혹’(2013)에서도 감지된다. 숲속에 있으면 어디선가 들려올 것 같은 바람 소리, 나뭇잎 소리, 동물들이 움직이는 소리 등 자연의 소리가 떠오른다. 플루트 독주는 그 가운데 태연히 앉아 시조를 읊는 선비와 같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자연의 소리를 모방한 것은 아니며, 작곡가가 바라본 어떠한 매혹적인 대상으로부터 느낀 느낌에 아름다움에 대한 고결한 이상이 더해진 결과이다.
그런데 ‘고혹’을 듣고 있으면, 독주 플루트로부터 대금이 연상된다. 한국인만이 감지할 수 있는 이 특수성은 장은호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이다.
거친 바람 소리, 긴 음정, 국악기의 농현을 연상시키는 비브라토·플러터링·글리산도·짧은 꾸밈음 등, 플루트의 첫 동기에서 한국 음악적인 제스처를 바로 눈치챌 수 있으며, 이 작품에 붙여진 한국어 제목과도 잘 어울린다. 그리고는 곧 다양하게 변화되며 앙상블에 대응한다.
고전적인 제목을 가진 현악 4중주 2번(2011)은 한국 음악적 제스처가 표면에 드러나 있지는 않다. 그러나 산수화가 그 모델이 되었다는 점에서 한국 전통예술과 연결된다. 기운차게 굽은 능선과 세밀한 부분들을 섬세하게 그리는 붓놀림이 소리로 변환된 작품으로, 이후에 작곡된 작품보다는 서사적이다. 그림이 다 그려지면 그림은 사라지고 만다! 이러한 역설은 인간의 삶과 닮은 데가 있다. 그래서 작곡가가 자신의 작품은 “삶에 대한 기록이자 음악적 일기이며 소리로 기록된 추억”이라는 데에 수긍하게 된다.
글 송주호(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