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국내외 음악 페스티벌 총정리
SPECIAL 1
더 뜨겁게, 더 가까이
조심스러운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개최 소식을 알려온 국내외 클래식 음악 축제들로, 잠시 접어두었던 베토벤 탄생 250주년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다시 떠오른다. 매년 여름 국악의 새로운 길을 보여 온 여우락 페스티벌도 새 수장과 함께 관객을 맞을 준비를 마쳤다. 지난 반 년 간의 갈증을 시원하게 해결해 줄, 올여름 음악 축제들을 총정리했다. 우리는 지금, 눈 앞의 음악이 필요하다
클래식 레볼루션 | 예술감독 크리스토프 포펜
줄라이 페스티벌 | 예술감독 박창수
여우락 페스티벌 | 예술감독 유경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 대표 헬가 라블 슈타들러
그라페넥 페스티벌 | 예술감독 루돌프 브후빈더 & 대표 필리프 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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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레볼루션
8월 17~30일 롯데콘서트홀
오는 8월, 롯데콘서트홀이 새로운 클래식 음악 축제의 시작을 알린다. ‘클래식 레볼루션’이라는 타이틀로 약 열흘 간 개최될 축제는 리사이틀·실내악·협주곡·교향곡에 이르는 다양한 형식의 프로그램으로 채워진다. 올해는 탄생 250주년을 맞은 ‘베토벤’이 그 중심축으로 세워졌다. 예술감독 크리스토프 포펜을 필두로, 총 8개 국내 교향악단(부산시향·성남시향·KBS교향악단·카메라타 안티콰 서울·부천필하모닉·대전시향·인천시향·서울시향)과 5개의 실내악팀(양성원&엔리코 파체·에스메 콰르텟·룩스 트리오·TIMF 앙상블·트리오 가온), 그리고 십여 명의 솔리스트가 베토벤의 음악세계를 항해한다. 국내 클래식 음악 축제의 ‘혁명’을 꿈꾸는 클래식 레볼루션에서, 놓쳐서는 안 될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글 박찬미 기자 사진 롯데콘서트홀
예술감독 크리스토프 포펜 인터뷰
클래식 레볼루션과 어떻게 함께 하게 되었는가.
롯데문화재단 측에서 축제에 관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내게 연락해왔다. 한국 클래식 음악계와 쌓은 그간의 인연으로, 제안을 받아들이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번 축제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아티스트를 선정하는 책임을 맡았다. 올해 축제는 특히 베토벤에게 헌정되어 특별한 도전이었다. 이 위대한 작곡가의 가장 중요한 작품을 선별하고 그의 깊은 내면에 다가갈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것까지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클래식 레볼루션이 여타 클래식 음악 축제와 차별화된 지점이 있다면.
여러 해 동안 음악감독을 역임하고 있는 포르투갈의 마르방 페스티벌과 비교할 수 있겠다. 이 축제는 여러 지점에서 클래식 레볼루션과 정반대에 있다. 도시의 여러 작은 공간에서 굉장히 많은 횟수의 공연을 진행한다. 황량한 길 한복판에서도 공연한다. 반면에 클래식 레볼루션은 세계적으로 빼어난 음향을 가진 롯데콘서트홀에서 모든 공연이 이루어진다. 포르투갈의 축제와는 전혀 다른 프로그램 구조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기다. 기획 중 가장 난항을 겪은 지점은.
많은 국가가 이동제한령을 시행하면서 몇몇 해외 아티스트들이 한국에 올 수 없게 됐다. 그들과 연계되었던 축제 프로그램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국에는 훌륭한 연주자들이 많아 이런 문제를 빠르게 해결할 수 있었다.
이번 축제에서 KBS교향악단, 서울튜티챔버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피아니스트 김태형과 듀오 무대에 선다. 가장 기대하는 공연은.
피아니스트 김태형과의 연주. 내 제자이기도 했던 그는 젊은 세대의 많은 피아니스트 가운데 가장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인물이다.
이외에도 축제에 많은 젊은 연주자들이 참여할 예정이다.
젊은 연주자와 함께 작업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특히 한국의 젊은 세대는 큰 잠재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이번 축제에 세우는 것은 당연하고도 특별한 일이었다.
한국인 제자도 많이 배출했다. 한국의 젊은 클래식 음악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한국이 전 세계 클래식 음악계를 이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외 콩쿠르 입상 결과를 보더라도 한국의 연주자가 결선에 진출하지 않은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다. 독일에는 음악을 공부하러 온 한국의 유학생이 정말 많다. 이는 독일과 한국 두 나라 사이 관계를 매우 가깝게 만든 요인이며, 나는 그들을 가르치거나 협업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 같다.
올해 1회를 맞은 클래식 레볼루션이 앞으로도 꾸준히 개최되길 바란다. 지속적인 축제 개최를 위해 필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관객이다. 이 어려운 시기가 지나고 나면, 모든 음악 애호가가 클래식 레볼루션과 함께 용기를 되찾기를 바란다. 이번 축제를 통해, 그 어느 때보다도 베토벤의 음악을 깊이 있게 즐길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롯데콘서트홀에서 만날 날을 너무나 고대하고 있다.
크리스토프 포펜(1956~)은 자르브뤼켄 방송교향악단에 이어 현재 쾰른 체임버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뮌헨 음대에서 바이올린과 실내악을 가르치고 있으며 클라라 주미 강, 노부스 콰르텟 등 다수의 한국인 제자를 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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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라이 페스티벌
7월 1~31일 대학로 예술가의집
하우스콘서트는 음악 예술의 가장 내밀한 곳까지 다가설 수 있는 방법이다. 연주자의 호흡과 그를 둘러싼 긴장감까지 가까이에서 느껴볼 수 있기 때문. 하우스콘서트의 메카가 된 대학로 예술가의집이 7월 한 달 간 베토벤 음악으로 채워진다. 그간 원먼스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으로 개최되어온 축제가 ‘줄라이 페스티벌’이라는 새 이름을 입고 찾아올 예정. 클래식 음악의 정통을 맛볼 수 있는 무대는 물론 국악과 재즈, 현대무용이 서로 어우러진 뜨거운 화합의 장도 펼쳐진다.
글 박찬미 기자 사진 더하우스콘서트
예술감독 박창수 인터뷰
새로운 이름의 줄라이 페스티벌을 개최하는 소감.
대학로 예술가의집을 비롯해 지방의 학교나 몇 군데 홀에서도 공연을 개최할 계획이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지방 공연이 어려워져 결국 예술가의집에서만 진행하게 됐다. 아쉬움은 남지만 준비한 프로그램에 대해 기대가 크다.
이전에는 학교에서 연주자들이 악기를 가르치는 프로그램도 진행했었는데.
매년 대략 40여 개 초등학교를 찾아가 공연하고, 악기를 가르치는 시간을 마련했다. 이런 프로그램도 축제 사무국이 먼저 학교에 제안하고 연주자를 섭외해 이루어진다. 올해는 아무래도 학교 측에서 이런 행사를 개최하는 것을 불편해 하더라. 지방 학교들을 찾아가는 데 쓰였을 경비를 올해에는 유튜브 중계를 위한 촬영에 투자했다.
오늘날의 줄라이페스티벌이 되기까지, 여러 형태의 축제가 있었는데.
더하우스콘서트가 시작한 지 10년 째 되는 해, 처음으로 원 데이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한 날 한시에 전국 65개의 공연장에서 연주를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같은 축제를 한국과 중국, 일본 3개국에서 진행했다. 곧 우리의 시선은 세계로 확장됐다. 한 달 간의 축제를 전 세계에서 펼쳐보겠다는 포부로 원 먼스 페스티벌을 시작한 것이다. 다른 누군가는 시도하지 못한 대규모 프로젝트다. 좋은 기획은 이슈를 제시하고, 어떤 흐름을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연주자들이 참여하냐는 것보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어떤 변화를 만들었느냐 하는 것이다.
그 중심을 대학로에 둔 이유는 무엇인가.
대학로는 우리나라 예술의 중심지 역할을 하던 곳인데 상업화된 작품들에 매몰되어버린 것 같아 안타까웠다. 대학로에 순수예술의 생기를 되살려보자는 취지였다.
여러 형식의 공연을 올리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
더하우스콘서트 초창기 땐 연주자 섭외 요청이 거절되기 일쑤였다. 이젠 연주자들이 지방 공연이더라도 참여 의지를 내보인다. 하우스콘서트의 진정성을 알아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 우리가 객석과 무대 사이의 경계를 없앤 선례를 만들어, 하우스콘서트가 하나의 유행이 되기도 했었다는 것.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기획의 예다.
좋은 연주자를 선정하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흔히 좋은 연주자를 ‘유명한 연주자’로 오해한다. 매체를 통해 알려진 것과 실제 연주자의 모습은 다르다. 직접 들어보고 찾아보는 관심이 중요하다.
이번 축제를 즐기는 ‘꿀팁’이 있다면.
예를 들어, 피아니스트 박종해는 출연하는 모든 프로그램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피아노 소나타 32번, 교향곡 9번 포핸즈, 첼로 소나타 5번을 연주하는 것이다. 출연 아티스트와 작품 사이 흥미로운 연결고리를 찾아보는 것도 축제를 즐기는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박창수(1964~)는 서울대 음대를 졸업한 이후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로서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펼쳐왔다. 2002년부터 더하우스콘서트를 개최하고 있으며, 이듬해부터 10여 년간 무성영화에 즉흥 연주를 입히는 작업으로 서울아트시네마·전주국제영화제·세네프 영화제 등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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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락 페스티벌
7월 3~25일 국립극장
예술감독 유경화 인터뷰
유경화라는 전환점
BTS 멤버 슈가가 발표한 신곡 ‘대취타’가 세계적으로 화제다. 한쪽에서는 국악의 르네상스를 섣부르게 예단하기도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국악계의 노력이 대중문화에 힘입어 이제야 빛을 보았다고 한다. 순혈주의를 넘어서는 지속적인 협업 작업으로 국악이 세계음악시장 속에서 성장을 이뤄냈다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전통음악의 성장 키워드는 단연 ‘융합’이고, 그 중심에는 올해로 11년째를 맞는 국립극장의 여우락(樂) 페스티벌(이하 여우락)이 있다.
한국 전통음악과 타 장르와의 협업에서 선두를 달려온 여우락이 4대 예술감독으로 유경화를 맞이했다. 그를 보노라면 ‘길은, 가면 뒤에 있다’라는 황지우 시의 한 문장이 떠오른다. 대표적인 타악기 주자이자 독보적인 철현금 연주자, 월드뮤직 앙상블 이도의 대표, 서울시청소년국악단 전 예술감독,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등. 다양한 직책이 시사하듯이 전방위적 예술가로 전성기를 구가하는 그에게 이번 여우락 페스티벌의 관전 포인트부터 음악 인생에 대한 속 깊은 얘기를 들어보았다.
융합의 DNA
여우락의 예술감독으로 내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참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내 음악적 지향과 여우락의 지향점은 ‘융합’이라는 교집합을 갖는다. 융합은 기본적으로 자기가 가진 DNA 중 허술하거나 부족한 부분을 다른 문화 유전자와 만나 보완하는 것이다. 여우락의 컬래버레이션적인 특성은 전통음악이 시대적 보편성을 얻는 데 일조한다. 이는 내가 국악을 처음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줄기차게 견지해 온 화두이자 문제의식과도 상통한다.
여우락의 예술감독으로서 임하는 특별한 태도가 있는가?
예술감독으로 해야 할 역할을 키우고, 연주가의역할은 상대적으로 제한하려고 한다. 내가 직접 서는 무대는 폐막 공연(7.24·25, ‘그레이트 크로스’) 하나다. 나의 모든 에너지를 페스티벌 무대를 책임지는 총괄 기획과 연출에 쏟고자 한다.
몇몇 공연은 유경화 고유한 색깔이 유난히 돋보인다.
모든 무대를 정성 들여 올리지만, 나의 역사와 음악적 색깔이 직접적으로 투영된 공연은 동해안별신굿 보존회가 선보이는 ‘오소오소 돌아오소’(7.5)이다. 9시간에 걸쳐 오귀굿을 올릴 예정이다. 동해안 굿은 내 음악세계의 원천인 두드림과 굿음악을 가장 잘 보여주는 콘텐츠이다. 김영택 명인과 나의 스승이셨던 김정희 선생을 위한 오귀굿을 하려고 한다. 나아가 지금 코로나19로 인해 유명을 달리한 모든 이들의 넋을 달래는 굿이기도 하다. ‘마스터 앤 마스터’(7.15·16)는 내 전공인 타악 세계가 반영된 것이다. 판소리 연행에서 고법이 주인공이 되는 음악회는 드물다. 이번에 다재다능한 고법을 구사하는 고수들이 주인공이 되고, 그 위에 소리가 얹어지는 형태의 음악회를 시도한다. 거기에 젊은 여성 고수들을 등장 시켜 ‘고법의 진채선’이 나오는 자리가 되길 기대하고 있다. 판소리가 남성 소리꾼의 전유물이었던 금기를 깨고 진채선(1842~?)이 최초의 여성 소리꾼이 되어 20세기 여류 판소리 명창들의 생태계를 가능하게 한 것처럼. 마지막으로 힙합 가수 타이거JK, 뮤직비디오 감독 조풍연과 함께 협업을 이루는 온라인 폐막 공연(7.24·25)을 들 수 있
다. 몇십만 명이 함께 우리 음악에 접속할 수 있는 온라인 생중계 형태이다. 현장성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영상미디어의 장점을 활용하여 섬세하게 전달하고자 한다.
영혼의 소리
타악과 철현금, 굿과 프리뮤직(즉흥 연주로 이뤄지는 재즈 음악의 한 장르) 등은 오늘의 유경화를 만든 중요한 요소이다. 어떤 과정과 계기를 통해 다양한 음악적 스펙트럼을 갖게 되었는가?
내 영혼을 뒤흔든 몇 번의 전환점이 있었고 그때마다 나를 이끌어준 스승들이 있었다. 네 살부터 고전무용학원에 다니면서 전통음악의 리듬에 자연스럽게 입문했다. 그곳에서 토막 연기·검무·장구춤·여성국극의 노래나 민요를 두루 접했다. 이후 현대무용을 배우며 내 안에 있던 창의력과 상상력의 빗장을 열었다. 현대예술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무용을 전공하지 않고 국립국악고등학교에 진학해서 거문고를 전공했다.
무용학원에서 녹음된 반주만 듣다가 바로 앞에서 들리는 거문고 소리에 내 영혼이 울렸다. 나는 모르는 건 알 때까지 물어보고 배워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거문고를 배울 수 있다는 학교를 찾아 들어간 곳이 국립국악고였다. 당시 김용배 선생님께 사물놀이를 배우면서 내 음악은 거문고에서 타악으로 확장됐다.
거문고에서 타악과 철현금으로 넘어온 계기가 궁금하다.
우연히 대학 시절에 접한 강릉 단오굿은 한마디로 ‘문화 충격’이었다. 나름 리듬과 채보에 자신이 있었는데, 첫 박이 안 잡혔다. 예의 지적 호기심이 발동했다. 당시에 굿음악은 무당과 화랭이(굿을 할 수 있는 동해안별신굿의 악사)들에게 배우는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서는 내가 무당이 되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개의치 않았다.(웃음) 철현금과의 만남은 임동식 명인의 고음반에서 비롯됐다. 거문고 외에 처음 듣는 악기소리가 철현금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임경주 명인을 찾아가고 김영철류 철현금 산조 가락을 채보해 연습했다.
단순히 악기만 바꾼 것이 아니라 연주와 작곡을 결합하고 프리뮤직과 월드뮤직으로 자신의 음악을 확장시킨 ‘포스트-산조’ 세대의 대표 주자라 생각한다.
여기에는 스승들과의 만남이 연관된다. 즉흥연주의 대가 강태환 선생님의 음악에서 전통음악의 즉흥 어법과는 또 다른 차원의 자유로움을 느꼈다. 융합에 대한 원리와 방법, 대상에 대한 해답을 얻은 것은 인도에서였다. 우연히 참석한 인도의 월드뮤직 컨퍼런스에서 인도 북부의 타블라 거장 드뷔앙 바킬을 만났다. 그의 제안에 40대의 나이에 한국 활동을 다 내려놓고, 인도에서 음악을 공부했다.
인터뷰 중 유경화의 중요한 전환점 곳곳에 ‘우연히’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제도권에서 경원시하던 굿을 배우기 위해 혼자 강릉으로 간 것도, 철현금이라는 이미 사장되다시피 한 악기를 부활시킨 것도, 생면부지의 인도에 가서 새로운 융합을 탐색한 것도 우연히 듣고, 보고, 만난 사건에서 시작됐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흘려보내는 우연을 유경화는 자신의 인생을 걸고 필연으로 바꾸었다. 유경화가 말하는 ‘새로운 것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오래된 것에 싫증 내지 않으며, 스스로에게 당당하며 확장적인’ 바로 그 덕목이야말로 그가 선장이 되어 이끌어 갈 여우락을 새롭게 적중시키는 힘이 될 것이다. 어디 여우락뿐이랴. 누가 알겠는가, 10년 후 그가 또 어떤 우연 속에 전환점을 만들고 그만큼 우리 음악계는 더 큰 풍요를 누릴지.
글 이소영(음악평론가) 사진 국립극장
유경화(1967~)는 철현금·거문고·타악기를 섭렵하여 새로운 국악의 장을 열어가고 있다. 서울시청소년국악단 단장을 맡았다. 현재 월드뮤직 앙상블 이도 예술감독으로 활동 중이며,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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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대표 헬가 라블 슈타들러 인터뷰
헬가 라블 슈타들러(1948~)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태생이다. 법학 박사로 저널리즘과 정치학을 함께 공부했다. 신문 ‘디 프레세’와 ‘디 보켄프레세’에서 경제 및 국내 정치 전문 기자로 활동했으며, 빈의 일간지 ‘큐리어’에 편집 칼럼을 쓴 최초의 여성 기자다. 잘츠부르크 상공 회의소의 첫 여성 부사장으로 시작해 회장 겸 재무 고문을 역임했고, 1995년 1월부터 현재까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축제 개최를 결정하기까지의 과정이 순탄치 않았을 텐데.
3월 16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오스트리아 연방 정부가 봉쇄령을 내렸다. 이로 인해 부활절 축제가 취소됐고, 이사회에서는 여름 축제 개최에 대한 결정을 5월 30일로 연기했다.
그동안 모든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마련됐나?
물론 대중과 예술가, 그리고 직원의 건강을 해치지 않으면서 예술적·경제적으로 의미 있는 축제를 개최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물론 전면 취소라는 최악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5월 15일, 정부가 6월부터 문화행사 규정을 점차 완화할 것이라고 발표했고, 해당 주최자가 적절한 방안을 제시한다면, 8월에는 최대 천 명의 관중을 동반한 이벤트를 열 수 있게 됐다. 열흘 후 이러한 요건이 규정에 명시되었고, 이에 따라 5월 25일, 잘츠부르크 축제를 개최하기로 했다.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고 개최를 결정한 것인지 궁금하다. 지금 이 시기에 ‘페스티벌 개최’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위기를 이겨내기 위한 프로젝트로 시작됐다. 유럽 전역이 폐허로 변했던 1914~1918년, 군주제가 사라지고 제국이 무너졌으며, 수백만 명의 사람이 죽었다. 페스티벌을 창설한 연출가 막스 라인하르트와 시인 휴고 폰 호프만슈탈, 작곡가 R. 슈트라우스, 지휘자 프란츠 스콜크, 무대 디자이너 알프레드 롤러는 이 축제를 통해 전쟁의 혼란 속에서 질서를 찾고자 했다. 나 또한 예술을 일상생활을 위한 단순한 장식이 아닌 삶의 의미로 보기 때문에 이러한 축제의 정신에 따라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싶었다.
프로그램이나 기획에 있어 변화된 부분이 있다면?
44일(7.18~8.30)간 16개의 공간에서 222개의 공연을 선보이는 것에서 30일간(8.1~30) 8개의 공간에서 107개의 공연을 선보이는 것으로 축소됐다. 5개의 프로덕션에는 R. 슈트라우스 ‘엘렉트라’, 모차르트 ‘코지 판 투테’, 호프만 ‘예더만’과 함께 노벨문학상 수상자 페터 한트케의 ‘즈데넥 아다메츠’와, 밀로 라우 ‘애브리우먼’이 초연될 예정이다. 53개의 공연은 대축제극장과 잘츠부르크 대학 교회에서 열린다. 축제의 시작부터 중요한 역할을 해온 빈 필하모닉은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올해에도 오페라와 콘서트의 분위기를 잡는다. 공연장에서도 변화가 필요했다. 모차르테움 그레이트 홀은 제외됐고, 카메라타 잘츠부르크와 마티네, 체임버 공연들은 모차르트 하우스에서 열린다. 이고르 레빗의 베토벤 사이클 또한 모차르트 하우스와 대축제극장에서 개최된다. 모든 공연은 인터미션 없이 진행된다.
주목할 만한 주요 공연은 무엇인지 소개해 달라.
R. 슈트라우스 ‘엘렉트라’로 올해 축제의 문을 연다. 프란츠 뵐저 뫼스트가 빈 필을 이끌고, 크리슈토프 바를리코프스키가 연출을 맡았다. 올해 100주년을 기념해 준비 중이었던 모차르트의 두 오페라 ‘돈 조반니’와 ‘마술피리’는 내년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중요한 기념일에 모차르트가 빠질 순 없지 않나! 마르쿠스 힌터호이저와 크리스토프 로이 감독의 멋진 아이디어로 새롭게 탄생한 ‘코지 판 투테’를 만나볼 수 있다. 더욱이 요아나 말비츠(1986~)가 이 무대를 통해 축제에 데뷔한다. 페스티벌 역사상 오페라를 지휘한 첫 여성 지휘자라는 의미 또한 더해진다. 오케스트라 공연에는 넬손스와 무티, 틸레만, 두다멜이 포디움에 서고, 메조소프라노 엘리나 가랑차 피아니스트 예브게니 키신이 협연자로 오른다. 축제 전반에 베토벤의 작품이 연주될 예정이며, 특히 이고르 레빗이 8회의 무대에 걸쳐 32개의 소나타 전곡을 연주한다.
관객과 연주자들의 안전을 위해 마련한 대응책이 있다면.
연방 정부가 규정한 모든 조치를 철저히 준수할 것이며, 더 나아가 코로나 시대에 걸맞은 기준을 세울 것이다. 의사, 바이러스 학자, 역학자 및 위생사로 구성된 최고 수준의 자문위원회와 조율 중이다. 현재까지 논의된 기준으로는 공연 중 좌석 외 모든 공간에서 마스크 의무 착용, 중간 휴식 및 공연장 내 이벤트 금지, 행사 규모 축소 등이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이번에 선보이지 못한 아이디어가 있을 텐데.
오페라와 100주년 기념 기획 공연을 포함해 올해 올리지 못한 모든 프로덕션은 2021년에 선보일 예정이다.
국제적인 행사인 만큼 국내 수요뿐 아니라, 해외 관객 유치도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일 텐데.
이미 오래전부터 페스티벌 영상을 송출해 왔다. 덕분에 전 세계 수많은 클래식 음악팬들이 매년 축제와 함께할 수 있었고. 지난해에는 클래식 음악 공연 스트리밍 사이트 ‘메디치 TV’ ‘takt1’ ‘MyFidelio’에서 각각 여러 프로덕션을 스트리밍했으며, 올해도 현장을 직접 찾을 수 없는 팬들을 위해 이를 계속 확대해나갈 것이다.
글 이미라 기자 사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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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페넥 페스티벌 예술감독 루돌프 부흐빈더 & 대표 필리프 슈타인 인터뷰
루돌프 부흐빈더(1946~)는 2007년부터 그레페넥 페스티벌 예술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피아니스트로서 최근 빈 필과 협연한 브람스 협주곡 음반을 포함해 100여 장의 앨범을 발매했다. 하이든, 모차르트 피아노 작품 전곡을 녹음했으며,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로 50여 회의 소나타 전곡 사이클과 세 차례의 소나타 전곡 음반 발매로 독보적인 발자취를 남겼다. 올해 축제에서도 빈 필과 함께 베토벤 협주곡 2·3번을 연주한다.
필리프 슈타인(1968~)은 2018년부터 그레페넥 대표로 활동 중이다. 빈과 함부르크에서 음악학과 음악교육·경영을 공부했다. 빈 콘체르트하우스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 후 독일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축제에서 드라마투르그를 관리했다. 2011~2017년까지 엘프필하모니 총괄 예술감독의 개인 컨설턴트로 일하며 음악교육 프로그램과 ‘그레이티스트 히트’ 페스티벌을 프로그래밍하고, 디지털화 업무를 담당했다.
코로나19의 여파에도 불구하고 페스티벌 개최(8.12~9.6)를 결정했는데.
슈타인 문화적
환경은 지속되어야 한다. 특히 이런 어려운 시기에 음악은 우리를 모아주는 가장 아름다운 형태일 것이다.
부흐빈더 9만 평 이상의 면적, 노천극장 ‘구름탑(Wolkenturm)’까지. 안전한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갖췄다. 그레페넥이 아니고서 누가 이것을 해낼 수 있겠는가?
국가간 이동 제한 등 여러 가지 제한으로 인해, 프로그램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 같다.
부흐빈더 여행 제한으로 인해 올해는 오스트리아 음악가들을 중심으로 완전히 새로운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기존에 함께하기로 했던 몇몇 솔리스트들도 참여하기로 했고. 메인 프로그램은 오스트리아의 빈 필하모닉, 빈 심포니, 빈 방송교향악단, 그리고 톤퀸스틀러 오케스트라가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 뵐저 뫼스트, 마린 알솝과 함께 한다.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와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 피아니스트 알리스 사라 오트, 바이올리니스트 엠마누엘 체크나보리안의 초청무대도 준비되어 있다.
슈타인 부흐빈더의 무대도 만날 수 있다!
기획 혹은 진행 방식에 있어서도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슈타인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새로운 계획을 세워야 했지만, 모두가 힘을 합쳐 수준 높은 프로그램을 발표하게 되어 자랑스럽다. 모든 프로그램 기획에 있어서는 레퍼토리에 자유를 주면서도 안전을 염두에 뒀다. 모든 공연은 휴식 없이 야외에서 진행되며, 합창 공연은 하지 않는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많은 이들이 공연장에 대한 그리움을 호소하고 있다. 페스티벌 개최 확정 이후, 관객의 반응은 어떠한가?
슈타인 축제 개최를 발표한 이후 많은 축하와 함께 긍정적인 반응들이 쏟아지고 있다. 문화의 단절 가운데 피어난 희망같달까. 관객 반응도 좋다. 현재 이전 프로그램에 대한 티켓판매와 관련해 환불처리를 진행 중이며, 이후 새로운 프로그램에 대한 티켓 판매를 시작할 예정이다.
관객과 연주자의 안전을 위한 방안은 마련되었나?
슈타인 기존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안전책을 마련했다. 아티스트와 관객, 직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둘 것이다. 가장 중요한 핵심은 ‘거리 유지’에 있다. 기존 2,500명에서 1,250명으로 관객수 제한을 두고, 입장에 있어서도 철저한 관리를 진행할 것이다. 무대 뒤 백스테이지에도 충분한 면적을 확보하고, 연주자 그룹 사이사이에 특수 아크릴 수지로 만든 안전벽을 설치할 예정이다.
앞으로 페스티벌이 나아갈 방향은 어디인가.
부흐빈더 올해는 프로그램이 대체되는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앞으로 선보일 다양한 계획이 마련되어 있다. 2021년 프로그램 또한 확정할 예정이고.
슈타인 전 세계의 젊은 음악도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또한 더욱 확장해가려 한다. 젊은 전문 연주자들로 구성된 그라페넥 아카데미의 오케스트라 역시 내년부터 다시 페스티벌에서 리허설과 공연을 선보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페스티벌에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슈타인 우리는 가능한 많은 음악팬들이 그라페넥 페스티벌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오스트리아 방송협회(ORF)와 함께 TV와 라디오 중계로 몇몇 공연을 선정해 선보이는 것은 물론, 국경 너머의 많은 사람들이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스트리밍하는 방법을 마련 중이다.
글 이미라 기자 사진 그레페넥 페스티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