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NG ARTIST
스무 살, 연착륙 성공!
뮤지컬 배우 문은수
아역을 넘어 다음 종착지로
문은수, 올해 스무 살을 맞은 이 뮤지컬 배우는 인생의 딱 절반만큼 무대에 섰다. 10세에 뮤지컬 ‘애니’(2011)의 주인공으로 데뷔했고, 이후 ‘헤어스프레이’(2012) ‘보니앤클라이드’(2013) ‘마리 앙투아네트’(2014)로 차례로 무대에 올랐다. 매년 관객에게 눈도장을 찍은 셈이다. 아니, 잊힐 틈을 주지 않았다.
동국대학교 연극학부 새내기가 된 그는 요즘 매일 캠퍼스가 아닌 공연장으로 등교한다. 졸업을 앞둔 고등학생의 성장기를 그린 뮤지컬 ‘제이미’(7.4~9.11/LG아트센터)에서 프리티 역으로 열연 중이다. 2017년 영국에서 초연된 ‘제이미’는 웨스트엔드에서 인기를 끌면서, 영화로도 제작됐다. 아시아에서 공연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히잡을 쓴 무슬림 소녀 프리티는 드래그 퀸을 꿈꾸는 소년 제이미에게 용기를 준다. “넌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답다”며 뾰족한 시선에 제이미가 자신을 잃지 않도록 응원한다. 그리고 그건 이 작품이 배우 문은수에게 건네는 응원이기도 했다.
아역배우, 그다음 관문을 잘 넘을 수 있을까 자신도 확신하지 못할 때 ‘제이미’를 만났다. ‘아역’이라는 두 글자를 뗀, 완연한 배우로서 맡는 첫 작품. 문은수의 말에 따르면 앞으로 두고두고 기억될 버팀목, 운명과도 같단다.
무대 위 노래라는 연료
노래 부르기를 좋아해 동요 대회에 나가던 아이. 대상을 탄 적도 있지만 가수가 꿈은 아니었다. 노래와 춤, 연기를 한 번에 할 수 있는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알게 됐을 때, 눈이 번쩍 뜨였다. 공연장 로비에서 길을 헤매는 문은수를 보며, 어쩌면 객석보다 무대가 더 익숙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 부르기를 워낙 좋아해서 초등학생 때 성악을 배우기도 했어요. 그런데 재미없더라고요. 6개월 만에 그만뒀죠. 뮤지컬은 서울시뮤지컬단의 어린이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 경험했는데, 참 매력적이었어요. 그때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했죠. 오디션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어요.”
문은수는 처음 봤던 오디션에서 “바로 탈락했다”며 웃었다. 다음, 그다음도 마찬가지. “이번에도 떨어지면 다른 길 알아보라”는 어머니의 냉철한 평가에 오기가 생겼고, 끝내 합격 통보를 받아냈다. ‘애니’(2011) 속 고아 소녀들 중 한 명인 줄로 알았는데, 덜컥 주인공 역할이 주어졌다.
“처음부터 큰 역할을 맡으니 감사한 한편, 부담도 느꼈어요. 저를 왜 뽑았는지 궁금했는데 그냥 순수해서 뽑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정말 하고 싶은 작품에서 떨어졌을 땐 펑펑 울기도 했어요. 그래도 예전보다는 주위의 평가에 훨씬 무뎌진 것 같아요. ‘그래, 내가 어떻게 다 붙어. 다른 작품이 있겠지’ 하면서요. 오디션도, 공연도 누군가에게 평가받는 자리잖아요. 최대한 즐기려고 노력해요. 안 그러면 관객이 바로 알아차린다고 (조)권 오빠가 많이 조언해줘요. 다행히 즐겨지더라고요.”
현재 뮤지컬 ‘제이미’에서 네 명의 제이미(렌·신주협·조권·MJ)와 합을 맞추고 있는 문은수. 극 중 동갑내기라는 설정인데, 많게는 그와 열두 살까지 차이가 난다. 연기하기 어렵지 않은지 물으니 “동갑 맞아요, 띠동갑”이라고 천진하게 말한다. 모두와 다 안무를 맞춰보기엔 아무래도 시간이 부족한 것 같아, 틈날 때마다 제이미 역 배우들을 찾아가 연습을 청한다고. 모범생에 조용해 보이지만, 당차고 씩씩한 프리티와 문은수는 많은 부분 닮아 보였다.
“어둠을 뚫는 스포트라이트”
“무대에서 이렇게 춤을 많이 춰본 것도, 연기와 노래를 이렇게 많이 해본 것도 처음이에요. 솔직히 아역부터 해왔는데도, 뮤지컬을 처음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첫 공연을 앞둔 전날 밤엔 눈물이 났어요. 벅차고 좋아서요. ‘제이미’ 오디션 공고를 보고 꼭 하고 싶었거든요. 오디션 자유곡으로 뮤지컬 ‘레드북’의 넘버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을 준비해갔어요. 세상의 편견에 맞서겠다는 가사의 노래인데, ‘제이미’의 주제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서요. 나는 나 자체로 소중하고 아름답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작품에 관해 물으니, 문은수의 목소리가 높고 빨라진다. 기다렸다는 듯 자기 생각을 줄줄 말한다. 들어보니, 철저히 작품과 캐릭터를 연구하는 학구파다. 작품의 소재인 드래그 퀸을 공부하고자 대학교 수업에서 레포트를 쓰기도 했다. 드래그 퀸은 단순한 여장이 아니라, 또 다른 나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임을 알았다고. 누구보다 내면이 단단한 프리티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영화 ‘원더’(2017)를 참고했다. 제이미보다 더 어리고, 약자인 주인공 소년에게 힘이 되어주는 가족과 친구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라는 작품의 메시지, 서로를 보듬으며 성장하는 제이미와 프리티의 관계에 관해 말하던 문은수의 눈에 갑작스레 눈물이 고였다. “제이미는 내게 정말 소중하다”면서. 무엇이 그리 힘들었던 걸까. 매년 꾸준히 작품을 하던 그에게 15~17세에 있었던 3년의 공백기에 관해 물었다.
성장해온 문은수의 출연작 4(사진 위로부터)
“애매한 나이대라서 오디션이 잘 안 떠요. 18세가 아역으로서는 막바지예요. 남자애들은 변성기가 와서 도중에 하차하는 것도 봤어요. 그렇게 상처받을 바엔, 실력을 키우는 시기로 보내자고 생각했죠. 학교생활도 열심히 하고, 레슨을 받으면서 갈고닦았어요. 그래도 내가 아역배우에서 성인 배우로 잘 넘어갈 수 있을지 두려움을 떨치기는 어려웠죠. 현실적인 꿈을 꾸라는 조언도 들었고요. 그렇지만 어려서부터 제 꿈은 쭉 뮤지컬 배우인 걸요.”
이제 막 새로운 활주로에 선 문은수에게 앞으로의 꿈을 물었다.
“지금은 제이미의 엄마 역할인 최정원 선생님과 엄마와 딸로 만나고 싶어요, 뮤지컬 ‘맘마미아’에서요. 그동안 기회가 없었던 소극장 뮤지컬도 해보고 싶고요. 관객과 더 가까이 만날 수 있고, 연기적으로도 배울 게 많을 것 같아요. 일단, 무엇이든 시켜만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웃음)” 글 박서정 기자 사진 황필주(studio 79)
interview | 뮤지컬 아역배우 세계를 말하다
뮤지컬 음악감독
김문정
어른들의 욕심에 상처 입지 않도록
뮤지컬 ‘모차르트!’ ‘명성황후’ ‘서편제’ 등 아역배우가 등장하는 다수의 작품에 참여했다. 많은 아역배우를 곁에서 지켜봤을 텐데. 무대 위 배우라는 직업은 성인도 감당키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아역배우는 연습이라는 굴레 안에서 성인 배우들과 교감을 나눈다. 그래서인지 어른들 틈바구니에서 금방 커버리는 것 같다.
아역배우를 둘러싼 공연예술 업계의 변화가 있다면. ‘샤프롱’이라고 아역배우가 안전하게 활동하도록 돕고 관리하는 전문 스태프 제도를 도입하는 등 체계적으로 변했다. 이들이 아역의 대본과 악보를 숙지해 아이들에게 설명해주기도 한다.
아이들이 행복하게 뮤지컬을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가끔 오디션장에서 본인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 채 부모 손에 이끌려온 아이들을 보기도 한다. 어렵게 오디션을 통과하더라도 내성적인 성향으로 힘들어하는 아이들도 있다. 배우라는 직군의 화려한 면만 쫓는 어른들의 욕심이 낳은 안타까운 사례다. 자녀의 성향과 의사를 먼저 파악하고, 배우에 도전할 기회를 주는 것이 어떨까.
아역 출신으로 꾸준히 성장하는 뮤지컬 배우의 공통점이 있다면. 실제로 성인 못지않게 끼가 넘치고, 하고자 하는 의지가 결연한 아이들이 있다. 그런 아이들이 결국 어린 시절의 추억에 그치지 않고, 아역 경험을 발판삼아 배우의 길로 진지하게 나아간다. 정석적인 사례로 아역배우 시절 함께 작품을 했던 뮤지컬 배우 이수빈(1996~), 탕준상(2003~) 등이 떠오른다.
그러나 이들의 성장을 대중매체를 통해 접할 뿐, 뮤지컬 무대에서는 볼 수 없었다. 일반적으로 공연계는 키와 덩치가 작은 아이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성인 배우와 차별화되는 외양은 뮤지컬 아역배우에게 요구되는 조건 중 하나다. 그러니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는 이상, 성인이 되기 전까지 활동이 멈춰버린다.
청소년 때 발생하는 공백기를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 그동안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아이들이기 때문에 이 잠복기를 견디지 못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청소년기에 교육받아야 할 사회적인 양식을 잘 쌓는 시기로 활용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뮤지컬 아역배우를 위한 조언. 다른 놀잇거리처럼, 뮤지컬 또한 무대 위의 재미있는 놀이다. 무대를 조금 특별한 놀이터라고 생각하고 즐기자. 즐기다 보면, 우리가 잊히지 않는 순간이 올 것이다.
서울시뮤지컬단 단장
한진섭
결국, 어떻게 잘 다루어 끌고 가느냐의 문제다
아역배우가 출연하는 작품의 매력은. 다양한 세대가 공감할 수 있다는 점. 가족 단위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다.
서울시뮤지컬단은 뮤지컬 ‘애니’ ‘사운드 오브 뮤직’ ‘오즈의 마법사’ 등 아역배우가 등장하는 작품을 정기적으로 제작하고 있다. 아역배우가 출연하는 작품은 과거 ‘어린이극’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 수준이 상향 평준화됐다. ‘어린이’ 나아가 ‘가족’ 뮤지컬로 구분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그냥 똑같이 뮤지컬이다.
아역배우에게 특별히 요구되는 자질이 있나. 무대는 냉정하다. 성인 배우에게 요구하는 것과 별 다를 바 없다. 객석의 평가 잣대는 아역배우나 성인 배우에게나 똑같다.
기억에 남는 오디션 현장은. 한번은 대기실이 수군수군하길래 가봤더니, 같은 오디션 지원자끼리 사인을 받고 있더라. ‘빌리 엘리어트’나 ‘마틸다’ 같은 작품에서 주역을 맡았던 아이는 아역배우들 사이에서도 스타인 것이다. 워낙 무대를 동경하는 아이들이니 그런 현상이 있더라.
아역배우가 참여하는 작품을 연출하며 어려운 점은. 학교에 다니기 때문에 연습 시간이 제한적이고, 집중력 면에서 성인 배우와 확실히 차이가 나기는 한다. 다만 개중에도 끼와 인내력이 뛰어난 아이가 있다. 결국, 어떻게 잘 다뤄서 끌고 가느냐의 문제다.
작품에 들어가기 전, 단원들에게 특별히 주의를 당부하기도 한다고. 아역배우는 작품에 필요한 배역이기 전에, 아이들이다. 공공기관으로서 서울시뮤지컬단은 예술을 통해 아이들을 전인적으로 교육할 책임이 있다. 또한 귀엽다고 함부로 쓰다듬거나 부적절한 언어를 사용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서울시뮤지컬단은 ‘서울우리동네프로젝트’를 통해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예술교육에도 힘쓰고 있다. 단원들이 각 지역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청소년 뮤지컬단의 강사로 파견된다. 아이들과 4월부터 연습을 시작해 12월쯤 창작뮤지컬을 발표한다. 참여하는 단원들이 과정은 힘들어도,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청소년 배우를 위한 작품을 제작할 계획은 없나. 고민 중이다. 대체로 아역배우의 나이대는 초등학교 4학년에서 중학교 2학년 정도로 국한된다. 청소년들이 에너지를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뮤지컬 활동은 몸으로 움직이고, 실제로 부딪히고, 혼자만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어울림으로써 배울 수 있는 것이 많다.
뮤지컬 아역배우를 위한 조언. 어린이지만, 아역배우에게는 반드시 해내겠다는 절실함이 필요하다. 끈기를 갖고 꾸준히 해내겠다는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글 박서정 기자 사진 세종문화회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