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이 추천하는 장르별 공연 MUST GO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0년 11월 30일 9:00 오전

대구국제실내악페스티벌

11월 28일~12월 6일 대구콘서트하우스

국내 실내악 ‘판’을 이끌어가고 있는 젊은 앙상블들을 한자리에서 만난다.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는 일주일간 모든 시대의 실내악 작품을 아우르는 ‘대구국제실내악페스티벌’을 개최한다. 축제의 첫 무대는 지휘자 겸 작곡가 최재혁이 이끄는 앙상블 블랭크(11.28)가 장식한다. 그간 음악 이외 분야 예술가

와 협업하며 새롭고 신선한 관점을 제시해 온 이들이기에 더욱 주목해볼 만하다. 창단 1년 6개월만에 세계 최고 권위의 런던 위그모어 홀 현악 4중주 콩쿠르에서 우승한 에스메 콰르텟(11.29)도 대구 시민을 만난다.

첼로의 그윽한 소리로 꽉 찬 무대가 궁금하다면 아더 첼로 콰르텟(11.30)을 만나보자. 클래식 음악과 탱고, 영화음악 등의 여러 작품을 첼로 네 대의 편성으로 편곡해 선보이며 색다른 색채와 감성을 전달하는 팀이다. 국내 실내악계 새로운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아벨 콰르텟(12.1)의 무대도 놓칠 수 없는 기회다. 이번 축제의 마지막 무대는 대구 월드오케스트라 시리즈를 통해 결성된 WOS 비르투오소챔버가 꾸민다. 이외에도 지역 아티스트들을 조명하는 여러 무대를 통해 실내악의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킹스 스피치

11월 28일~2월 7일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

연극 ‘킹스 스피치’(데이비드 세이들러 작)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말을 더듬었지만, 백 년이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도 영국

에서 가장 사랑받는 왕으로 기억되는 버티. 그는 자신의 위치에 맞는 책임을 다하기 위해 용기를 내어 한계를 극복했다. 그런 버티 옆에는 그를 왕족이 아닌 평범한 인간으로 바라봐 준 언어치료사 라이오넬이 있었다. 계층을 뛰어넘는 둘의 우정은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버티 역에는 섬세한 분석으로 캐릭터를 소화하는 박정복과 조성윤 배우가 함께한다. 버티의 조력자 라이오넬은 검증된 연기력을 지닌 배우 서현철과 박윤희가 선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젠틀맨스 가이드’ ‘시라노’ 등 내로라하는 작품에 참여한 김동연 연출가와 연극 ‘프라이드’ ‘킬 미 나우’ 등 해외 라이선스 연극들의 성공적인 각색을 이끈 지이선 작가가 제작진으로 참여한다.

 

제주국제실내악페스티벌

12월 1~4일 제주아트센터 외

올해 3회를 맞은 제주국제실내악페스티벌은 코로나19로 지친 제주도민에 희망과 위안을 전하기 위해 공연장 문을 활짝 연다. 관람을 원하는 누구나 무료로 객석을 찾을 수 있다. 또한, 제주도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예술가를 초청해 지역문화계가 활기를 되찾을 수 있도록 앞장선다. 앙상블 ‘데어토니카’와 ‘앙상블 콘테’, 제주 출신의 첼리스트 부윤정 등이 다채로운 무대로 관객을 맞을 준비 중이다. 세종목관챔버앙상블과 부산챔버뮤직소사이어티 등 국내 여러 단체도 축제에 힘을 싣고자 바다를 건넌다. 예술의전당 사장을 역임한 피아니스트 김용배는 해설을 곁들인 공연으로 관객과의 적극적인 소통에 나설 예정이다. 이 밖에도 피아니스트 계명선, 첼리스트 이강호, 호르니스트 이석준 등이 함께 실내악의 매력을 전한다.

당신이 밤을 건너올 때

12월 3~20일 백성희장민호극장

연극 ‘당신이 밤을 건너올 때’(유혜율 작)는 국립극단의 신작 발굴 프로젝트 ‘희곡우체통’에 선정된 두 번째 작품이다. 주인공 형진은 시민단체 부대표로 일하고 있다. 사회운동에 참여하며 대학 시절을 보낸 형진이지만 이젠 고리타분한 기성세대가 됐다. 대학 동기 윤기의 기일을 맞아 친구들과 함께 술자리를 갖게 된 형진은 사회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부딪치는 자신을 자책한다. 이름 없이 사그라진 친구의 죽음, 생활의 뒤편에 묻어버린 아내의 꿈, 한때는 거창했던 나의 신념. 잃어버린 것들을 뒤돌아보느라 우린 또 무엇을 놓치고 있을지. 치열하게 살고 있는 현재의 나에게 안부를 묻는 시간이 될 것이다. 누구에게나 혼란스럽기만 한 세상을 담담하게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이은준 연출을 만나 묵직한 질문으로 완성된다.

 

 

서울국제안무페스티벌 (SCF)

12월 5~10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코로나의 여파가 계속되는 가운데 공연예술을 이어가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다. 사단법인 한국현대무용진흥회(이사장 육완순)가 개최하는 서울국제안무페스티벌은 올해 ‘안티(anti) 코로나19’를 표방하며, 모든 공연을 온라인으로 진행한다. 이 단체는 한국 안무가의 해외 진출을 위한 발판을 마련한다. 1991년 프랑스의 바뇰레 안무가 대회에 참가할 한국 안무가를 발굴하기 위해 시작된 이래 세계 유명 페스티벌과 연계하고, 해외예술위원들과 협력 관계를 맺어왔다. 이번 온라인 개최는 그 명맥을 이어가는 동시에, 확장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SCF는 공모 시 무용 작품의 장르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오직 ‘컨템포러리 춤’을 대상으로 한다. ‘자유’와 ‘창조’는 단체가 추구하는 본질적인 가치다. 덕분에 많은 재능있는 젊은 무용수가 서울국제안무페스티벌을 통해 세계 유명 페스티벌에 진출했다.
올해는 12월 5일부터 3일간 관객과 만난다. 매회 무대에서 5~6명 안무가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출발선을 끊는 작품은 권재헌의 ‘Empty’. 안무가 권재헌은 한양대를 졸업하고, 2017년 코리아국제현대무용콩쿠르에서 대상을 받았다. 그는 차갑고 뜨거워서 발화하고 증발해버린 모습을 그린다. 안무의 내일이 궁금하다면, 접속해보자.

 

 

김선욱 피아노 독주회&KBS교향악단

12월 8일(독주)·14일(지휘·협연)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

12월은 김선욱과 베토벤의 달이 될 전망이다. 올 초부터 미뤄진 전곡 베토벤 피아노 독주회

와 KBS교향악단과의 협연이 잇달아 열린다. 베토벤에 대한 그의 애정은 각별하다. 꾸준히 베토벤을 연구했으며, 피아노 협주곡 전곡(2009), 피아노 소나타 전곡(2012~2013) 연주에도 도전했다.
피아노 독주회(12.8)에서는 베토벤의 ‘안단테 파보리’와 3대 후기 피아노 소나타 30·31·32번을 연주한다. 김선욱은 “베토벤은 자신과 자신의 음악에 모든 열정과 노력을 처절할 정도로 다한 사람”이라며, “진심이 담긴 음악이 후기 소나타에서 더 짙게 표현된다”고 레퍼토리에 관해 설명했다.
KBS교향악단과의 연주회(12.14)는 김선욱의 공식적인 지휘 데뷔 무대다. 지휘와 협연을 동시에 선보일 예정이다. 프로그램은 베토벤 ‘에그몬트’ 서곡,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2번, 브람스 교향곡 2번으로 구성됐다. 피아니스트로 익숙하지만, 영국 왕립음악원에서 지휘 석사과정을 마쳤고, 2015년 본머스 심포니에서 지휘봉을 잡기도 했다. 새로운 음악적 도전을 펼치는, 지휘자 김선욱을 만날 기회다.

 

 

 

리트플레이

겨울 나그네

12월 11·12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는 독일어로 된 24개의 가곡이다. 1시간 30분 길이의 작품이 다원적 형태의 공연으로 재탄생했다. ‘리트플레이’라는 장르는 ‘독일가곡(리트)’을 가지고 ‘논다(플레이)’는 의미를 지닌다. 작년 초연된 리트플레이 ‘겨울 나그네’는 연극배우 유인촌의 연출, 그리고 바리톤 김동준과 피아니스트 노성희의 음악이 밀도 높게 짜여 들어가 큰 호평을 받았다. 올해 공연에서 역시 이들의 호흡을 만나볼 수 있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는 사랑의 상처로 절망한 누군가가 비탄에 찬 모습으로 눈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는 모습을 그린다.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외로운 현대인의 모습과 닮아있다. 이번 공연은 원작에 충실한 해석을 바탕으로 현대에도 공감할 수 있는 구성을 도입했다.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것만이 아니다. 청중을 ‘겨울 나그네’의 일부가 되게 한다. 곡마다 성악가와 피아니스트, 연기자들이 앙상블을 이룬다. 무대는 마치 패션쇼 런웨이처럼 객석이 양 사이드에 펼쳐지고, 출연진들은 무대 정면과 객석 사이를 오가며 연기와 연주를 펼친다.

 

 

 

2020 남북문화예술포럼 & 콘서트

12월 11일 오후 2시 온라인 생중계(포럼)
12월 27일 오후 3시 통영국제음악당 블랙박스(콘서트)

스테이지원이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하는 ‘남북문화예술교류포럼 & 콘서트’가 개최된다. 남북 간의 활발한 문화예술교류를 기대하며 북한의 문화예술에 대해 알아보고, 또 남북 간 음악 교류 동향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교류 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이다. 작년 12월 22일 베를린 멘델스존 하우스에서 가진 첫 번째 포럼에 이어지는 시간으로, 남북 음악의 차이를 역사적으로 인식하고 현주소를 이해하기 위해 마련된 민간 주도 포럼이라는 점에 의미가 있다.
11일 포럼의 주제는 ‘남북 간 음악 교류, 과거와 미래’이다. 장용철(안양대 교수, 전 윤이상평화재단 상임이사)의 발표로 ‘남북 간 음악 교류 동향과 시사점’에 대해 짚어보고, 이경분(한국학중앙연구원), 전영선(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이 각각 ‘윤이상의 음악과 평화’와 ‘코로나 위기 속 남북 교류의 방향성과 문화예술계 역할’에 대해 발표한다. 북한 출신의 피아니스트 황상혁은 ‘남북 간 음악 교류를 바라보는 북한의 시각’에 대해 발표하고, 토론과 질의응답을 이어갈 예정이다.
통영국제음악당에서 개최되는 공연(27일)은 월북 작곡가를 비롯해 정치적 이데올로기 속에 잊힌 작곡가의 작품에 초점을 맞춘다. 김순남, 이건우, 윤이상의 작품들을 서예리(소프라노), 김계희·이유진(바이올린), 윤소희(비올라), 이상은(첼로)이 연주한다. 특히 서예리는 음악을 통한 남북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 이번 공연에 출연료를 받지 않고 참여하며, 이를 위해 해외 활동을 접고 국내에 임시 귀국했다.

 

 

국립창극단 송년판소리

안숙선 흥부가 & 빛축제 ‘빛의 여정’

12월 19일 오후 3시 국립극장 하늘극장(흥부가)
16~20일 문화광장(빛축제)

대명창 안숙선이 만정제 ‘흥부가’로 송년판소리 무대를 장식한다. 2010년부터 해마다 완창판소리의 본향인 국립극장의 주인공으로 올라 송년무대를 장식해온 안숙선 명창은 스승 만정 김소희가 남긴 만정제 ‘흥부가’를 후배 소리꾼들과 한 무대에서 나누어 부르는 분창(分唱) 형식으로 선보인다. ‘흥부가’는 가난하고 착한 흥부와 부자이면서 욕심 많은 놀부의 이야기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에게 사랑받는 판소리이다. 안 명창은 국립창극단 정미정·김미나·김준수 단원과 소리꾼 박애리가 함께 하며, 김청만과 조용수가 함께 한다. 그뿐만 아니라 판소리를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유영대의 해설이 곁들여지기도 한다.
이번 공연은 제1회 국립극장 빛축제 ‘빛의 여정’ 기간에 오른다. ‘빛의 여정’은 70주년을 맞은 국립극장이 추억의 시간과 새로운 도약을빛으로 표현하는 축제로 12월 16일부터 20일까지 오후 5시부터 10시까지 국립극장 문화광장에서 진행된다. 19일 판소리 한바탕을 가슴에 담고 하늘극장 밖으로 나와 보자. 그리고 국립극장 문화광장에서 펼쳐지는 빛과 함께 ‘밝아올 2021년’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해보자. ‘빛의 여정’은 빛의 길, 빛의 씨악, 치유와 희망의 숲길, 나비와 은하수 등의 테마로 진행된다.

고영열 콘서트

천변만화(千變萬化)

12월 19·20일 코엑스 오디토리움

고영열은 2015년 데뷔 무대에서 피아노로 혼자서 창자와 고수 역할을 해내며 ‘피아노 병창’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켰다. 이후 전통 판소리의 영역을 넓혀나가던 그는 2020년 JTBC ‘팬텀싱어3’에 출연해 널리 이름을 알렸다. 지난 11월 9일에는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구성된 4인조 보컬 그룹 ‘라비던스’로 신곡 ‘고맙습니다’를 발표했다.
베이스 톤에 테너 음역을 갖추고 애절한 판소리 창법을 구사하는 그의 소리는 가히 ‘천변만화(千變萬化)’라 이를 만한데 이번 공연에서는 이를 제목으로 붙여 고영열이 지닌 여러 겹의 매력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국악·캐롤·대중가요·팝·재즈 등 매 무대를 다르게 꾸밈으로써, 변화무쌍한 매력을 전할 예정이다. 또한 국악·가요·크로스오버 음악 등 장르를 오가며 인연을 맺은 여러 음악 동료들이 게스트로 출연해 풍성함을 더한다.

 

트라이보울 재즈 페스티벌

12월 24·25일 송도 트라이보울

매년 인천의 여름밤을 밝히던 트라이보울 재즈 페스티벌이 이번에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수놓는다. 축제는 재즈를 테마로 한 아트마켓, 나이트마켓, 현장에서 깜짝 선물까지 받아볼 수 있는 이벤트 존 등 다채로운 부대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인천 시민에게 큰 사랑을 받아왔다. 12월 24·25일 양일간 열리는 이번 행사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의 음악 공연과 더불어 전시, 워크숍 등으로 꾸며진다. 자세한 라인업 및 타임테이블 등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tribowl.kr
예술공간 트라이보울은 인천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공간으로 인천시민을 위한 다양한 공연, 전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자유로운 곡면을 특징으로 하는 트라이보울은 외벽을 활용해 미디어아트를 선보이거나, 내부 원형극장의 독특한 음향으로 음악을 조형함으로써 연주자와 관객 모두에게 색다른 감상을 전하고 있다.

 

사무엘 윤의 오페라 클라이맥스

12월 27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이 5년 만에 ‘사무엘 윤의 오페라 클라이맥스’라는 제목으로 국내 무대를 선보인다. 베르디 ‘아틸라’, 도니체티 ‘사랑의 묘약’, 구노 ‘파우스트’의 하이라이트로 꾸민 이번 무대에는 소프라노 서선영, 테너 강요셉, 바리톤 김주택이 함께한다. 공연은 베르디의 오페라 ‘아틸라’로 문을 연다. 사무엘 윤과 김주택, 서선영이 각각 아틸라, 에치오, 오다벨라로 분해 노래한다. 도니체티의 ‘사랑의 묘약’에서는 강요셉과 함께 낭만적 정서를 전한다. 구노의 ‘파우스트’로 채우는 2부에서는 작품의 주요 아리아인 ‘황금송아지 앞에서는 모두 엎드린다’ ‘정결한 집’ ‘보라! 거울 속의 내 얼굴’ ‘출발을 앞두고’ 등을 만나볼 수 있다. 보다 안전한 공연을 위해 이번 공연은 피아노 반주로만 진행된다. 피아니스트로는 이탈리아 토리노 극장에서 한국인 최초 마에스트로 콜라보라토레(오페라코치)로 활동 중인 김정운이 함께할 예정이다.

Book

아이를 업고 “레디고”를 외친 여인

영화감독 박남옥을 책과 공연으로 만나다

“고려 영화사가 미도파 앞 큰 건물 안에 있었고, 충무로에는 영화사가 하나도 없었다”는 그 시절, 한국전쟁이 막 끝난 1954년 6월 박남옥(1923~2017)은 아이를 둘러업고 스태프에게 손수 밥을 차려가며 영화 ‘미망인’(1955)을 만들었다.
오로지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투사처럼 분투했던 박남옥의 뜻을 기리기 위한 후배 영화인들의 노력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그가 ‘최초의 한국 여성 영화감독’으로 기억되기까지는 서울여성영화제의 역할이 컸다. 한국영상자료원에 보관되어 있던 ‘미망인’을 1997년 첫 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해 널리 알린 것이다. 전 한국영상자료원장 조선희는 박남옥에 대해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50년의 한국 현대사를 투포환 선수답게 거침없이 가로지르며 질주하는 씩씩하고 도전적이고 재능 있는 한 여성”이라는 말을 남겼다.
일제 치하에서 광복을 맞고, 한반도가 둘로 나뉘고, 전쟁으로 혼란한 시기를 살아가면서도 박남옥은 삶을 사랑하기 위해 애쓴 사람이었다. 학생 때 투포환 선수로, 부모의 뜻에 따라 신문 기자로 지내면서도 영화에 대한 애정을 놓는 법이 없었다. 또한 그는 삶이 주는 기쁨과 슬픔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기록한 사람이기도 했다. 이는 여든을 즈음하여 쓰고, 그의 타계 이후 출판된 자서전 ‘박남옥-한국 첫 여성 영화감독’(2017/마음산책)을 통해 살필 수 있다. 그는 1999년부터 2002년까지 3년에 걸쳐 손으로 꾹꾹 눌러가며 지난 삶을 회고했다. 어린 시절을 보낸 경상북도 하양과 영화감독의 꿈을 품고 드나든 광희동, 그의 유일한 영화 ‘미망인’(1955)을 촬영한 부산, 마지막 여생을 보낸 미국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나씩 꺼낸다. 한순간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았던 그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삶에 대해 애착을 갖는 일의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책의 마지막에서 박남옥은 이렇게 서술한다.
“사람들은 늙으면 “빨리 죽고 싶다. 집안사람들에 폐 끼치지 않게” 말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거짓말이다. 나는 하루라도 더 살고 싶다. 붉은악마들이 세계 축구 4강에 가는 것을 보아서가 아니고 내가 할 일이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아서다. 하나 있는 딸이 건강하게 살아가는가 지켜보고 싶고, 우리나라 여성 영화인들이 좋은 작품을 만들고 세계로 진출하는 것도 보고 싶다.”
2020년 12월, 그가 국립극장 무대에 오른다. 국립극장 전속단체(국립창극단·국립무용단·국립국악관현악단)의 9년 만의 합동 공연인 ‘명색이 아프레걸’(12.23~2021.1.24./달오름극장)을 통해서다. 작품은 영화 ‘미망인’의 제작 과정을 그리며, 일본에서 온 촬영기사 김영준과 함께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는 내용을 담았다.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작품으로 호흡을 맞춰온 연출가 김광보와 작가 고연옥이 이번 공연을 위해 다시 뭉쳤다. 극본을 쓴 고연옥은 “박남옥은 온몸으로 시대를 뚫고 나온 여성이자, 예술가다. 그의 삶을 통해 전후의 혼란과 분열 속에서도 우리가 끌어올린 정신과 가치가 무엇인지 돌아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작품의 메시지를 전했다. 작곡은 음악극·발레·오페라를 오가며 폭넓은 활동을 펼치고 있는 나실인이 맡았다. 박남옥이라는 인물의 매력을 표현한 가사 전달에 집중할 예정이다.
글 박서정 기자 사진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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