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을 이어준 하나의 이름

첼리스트 세쿠 카네 메이슨 가족 이야기

산타에게 선물 받고 싶은 음반? 카네 메이슨 가족의 마음이 모인 첫 번째 음반이다

올해 추석 풍경은 예년과 사뭇 달랐다. 고속도로와 휴게소는 한산했고, 온라인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인사를 전하거나 성묘를 드리는 등 낯선 모습이 이어졌다. 소중하기에 멀리해야 했다. 한국의 가족들은 그렇게 겨울의 시작을 맞았다. 해외 곳곳으로 연주 여행을 떠나는 게 일상인 음악가에게는 조금 다른 이야기다. 대부분의 연주가 취소되면서 그들은 도리어 가족이 모여 있는 집으로 돌아가게 됐다.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기 전까지 세계 곳곳에서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던 첼리스트 세쿠 카네 메이슨(이하 세쿠) 역시 오랜만에 집을 찾았다. 곧 영국 중부도시 노팅엄의 ‘카네 메이슨 하우스’는 북적북적해졌다. 세쿠를 포함한 아홉 명의 가족이 한데 모인 덕이다.
2018년 영국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의 결혼식, 이른바 ‘로열 웨딩’에서 축주를 맡아 전 세계에 그 이름을 각인시킨 세쿠는 일곱 남매 중 셋째다. 그의 오누이들도 보통 집을 떠나있는 시간이 많다. 모두 공연과 학업으로 영국과 유럽 전역을 다니는 음악가인 까닭이다.
카네 메이슨가(家)의 맏이는 24세 아이사타(피아노)다. 올해 클라라 슈만의 작품들로 이뤄진 데뷔음반 ‘로망스’(Decca)를 발매해 ‘오푸스클라식 어워드’ 올해의 신인음악가로 선정됐고, 지난 11월 BBC 프롬스 무대에 선 라이징 스타다. 22세인 둘째 브라이마 카네 메이슨(바이올린)은 아이사타, 세쿠와 함께 ‘카네 메이슨 트리오’로 활동하며 이름을 알리고 있다. 브라이마와 함께 런던 왕립음악원에 재학 중인 20세 콘야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모두 수준급으로 연주해 여러 콩쿠르에서 수상한 바 있다. 각각 18세, 15세인 제네바(피아노·첼로)와 아미나타(바이올린·피아노)는 현재 왕립음악원 주니어 아카데미에 다닌다. 열한 살 막내인 마리아투는 첼로와 피아노를 연주한다. 특히 첼로에서 수준급의 실력을 보이고 있는데, “세쿠를 뛰어넘는 실력을 보여주겠다”며 귀여운 포부를 밝힌 적 있다. 일곱 남매는 이미 영국의 유명인사다. ‘브리튼스 갓 탤런트’ BBC1 ‘이매진’ BBC ‘스트릭틀리’ 등 여러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앙상블 공연을 펼쳐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냈다.
이번엔 가족의 이름이 새겨진 첫 번째 음반을 발매했다. ‘카네 메이슨 하우스’에 흐르던 음악들을 담은 ‘동물의 사육제’(Decca)다.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가 중심에 놓여 있고,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차이콥스키 ‘호두까기 인형’ 모음곡이나 에릭 휘태커의 ‘Sea Murmurs’ 등이 이어진다. 음악과 함께 아름다운 동화 낭독도 수록됐다. 일곱 남매의 동심이 넘치도록 담긴 이 음반은 크리스마스를 더욱 기다리게 만든다. 이제, 세쿠와 그의 가족 이야기를 시작한다.

코로나19로 5년 만에 온 가족이 모였다. 노팅엄의 ‘카네 메이슨 하우스’는 이야기꽃과 음악이 피어나 시끌벅적했다고.  가족들과 모여 많은 시간을 함께할 수 있었다. 여느 집처럼 앞마당에 모여 축구를 했다. 공이 경계선을 넘었는지 아닌지 말싸움도 자주 오갔다. 아직 키가 작은 열한 살 막내 마리아투는 언니, 오빠들이 지나갈 때마다 자기 머리를 민다고 불만을 토로하더라.(웃음)
다 같이 합주할 기회도 많았겠다.  음악에는 진지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로 임한다. SNS에 즉흥적으로 연주한 영상을 공유하며 전 세계의 청중과 소통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음반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음악을 향한 우리의 열정을 모아 이 어려운 시기에 위안을 전하고 싶었다. 이동제한령도 긍정적으로 보려고 했다. 음반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몇 달이나 오롯이 얻었으니 말이다.
가족의 이름으로 발매하는 첫 번째 음반이다. 특별히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  온 가족이 프로코피예프의 ‘피터와 늑대’를 들으며 자랐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여러 동물과 인물을 각기 다른 악기로 표현하는 것에 모두 깊은 흥미를 보였다. ‘동물의 사육제’ 역시 같은 아이디어를 훌륭하게 구현한 작품이다. 나는 아직도 ‘피터와 늑대’를 들으면 가슴이 벅차고, 상상력이 충만해지는 경험을 한다. 이 음반이 많은 어린이에게 그런 반응을 불러일으키길 바랐다.
음악에 동시·동화 구연을 덧붙인 이유는 무엇인가.  음악과 이야기의 결합으로 아이들에게 더욱 특별한 인상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동물의 사육제’에는 동화 작가 마이클 모퍼고(1943~)에게 의뢰한 열다섯 수의 시를 연결했다. 음악에 등장하는 각각의 동물을 묘사해 더욱 풍성한 감상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동시에, 고민해볼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거북(Tortoise)’을 묘사하는 시에서는 정신없이 빠르게 돌아가는 삶의 속도를 돌아보게 한다. ‘동물의 사육제’ 트랙이 모두 끝나면, 모퍼고의 동화 ‘할아버지와 크리스마스’가 흘러나온다. 여기에는 차이콥스키 ‘호두까기 인형’ 모음곡이나 에릭 휘태커의 ‘Sea Murmurs’처럼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을 엮었다. 음악에 맞추어 시를 창조하고, 동화에 맞추어 음악을 선정하는 작업 과정이 아주 흥미로웠다.

‘할아버지와 크리스마스’는 막내 마리아투가 읽던 동화라고 들었다. 음반에 끌어들여 온 것을 보니 이야기가 일곱 남매 모두를 매료시켰나 보다.  아름답고 뜻깊은 이야기를 담고 있더라. 동화의 주인공 미아는 매해 크리스마스에 할아버지로부터 애정이 듬뿍 담긴 편지를 받는다. 할아버지는 집 앞마당에서 개구리나 벌레를 발견하고 씨앗을 심던 옛이야기를 들려주며, 오늘날에는 이러한 자연의 생명들이 위기에 처해 있음을 전한다.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고자 하는 할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이 모두에게 전달되는 것만 같다.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다양한 곡들을 선정한 과정도 궁금하다. 일곱 남매가 모두 모여 모퍼고의 동화를 여러 차례 읽으면서 곡들을 떠올렸다. 그중 이야기의 방향과 맞아떨어지면서도 음반의 풍성함을 더해줄 것들로 추렸다. 예를 들어 ‘호두까기 인형’에는 크리스마스의 마법을 연상시키는 요소들이 잘 녹아 있다. 버르토크의 듀오 Sz98은 특유의 유머를 간직하고 있다. 내 유머 감각과도 잘 맞아 떨어지는 곡이다. 밥 말리의 ‘Redemption Song’은 음반을 매듭짓는 마지막 곡으로, 제네바가 제안해 넣었다. 온 가족이 어렸을 때부터 들어 온 곡이라 직접 즉흥적 요소를 가미하며 편곡해 더욱 특별하다.

음악의 집

일곱 남매가 모이면 집 안이 음악 소리로 가득 차겠다. 마침 어머니인 카디아투 카네 메이슨이 최근 출간한 책의 이름도 ‘음악의 집 – 카네 메이슨 양육하기’(House of Music – Raising the Kanneh Masons/2020)다. 읽어보았는가?
물론이다. 내가 모르고 있던 우리 가족의 역사를 알게 돼 의미 있었다. 부모님의 어린 시절이나, 두 분이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등의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다. 나 자신의 유년시절을 다른 이의 관점에서 읽는 것 역시 특별한 경험이었다. 다소 기묘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웃음)
일곱 남매가 함께 음악을 했다. 서로 위안과 격려를 주고받으며 큰 힘이 되었을 것 같다. 주변 모든 사람이 악기를 배우고, 연습하고, 연주하는 환경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우리는 언제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를 격려해 주었다. 무엇보다도 이 일을 하면서 혼자라고 느낀 적이 없었다. 내가 어디에 있든지 항상 가족의 일원이라고 느끼게 해주는 소속감이 무척 소중하다. 세계 각지에서 솔로로 활동하면서 여러 경험을 했지만, 역시 가족들과 함께 연주할 때 가장 행복하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아이사타, 브라이마와 카네 메이슨 트리오로도 활동하고 있다. 가족들 모두와 함께 연주하는 것과 피아노 트리오로 연주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 일곱 남매가 함께하는 앙상블은 하나 혹은 두 대의 피아노, 세 명의 바이올린, 경우에 따라서는 세 명의 첼로 연주자로 구성된다. 그런데 이런 편성을 위한 곡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모두가 창의적으로 편곡에 임해야 하는데, 이 과정이 정말 재밌다. 피아노 트리오에서는 이미 훌륭한 레퍼토리가 가득해서 하이든부터 모차르트, 베토벤은 물론 라흐마니노프, 쇼스타코비치, 차이콥스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들을 즐겨 연주한다.
카네 메이슨 트리오의 최근 활동은 무엇이었나.  얼마 전, 사무엘 콜리지 테일러의 ‘딥 리버(Deep River)’를 편곡해 녹음했다. 12월에는 런던 킹스플레이스 무대에 설 예정이라 다들 열심히 준비 중이다.
카네 메이슨 가족의 꿈과 이번 크리스마스 계획에 대해 공유해달라. 가족들 모두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 각자의 목표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공통된 목표라면 객석의 관객들과 음악을 나누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닐까. 이번 크리스마스는 모두 노팅엄에 있는 집에 모여 함께 보낼 계획이다. 무척 기다려진다.
글 박찬미 기자 사진 유니버설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