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멘 탐험가
샤론 이즈빈
세상 모든 음악을 기타 한 대로 연주하다
미국의 클래식 기타계는 샤론 이즈빈(1956~)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타 세계에서는 여성으로, 음악 세계에서는 기타리스트로 고군분투했다”는 그의 말은 기타리스트로서 걸어온 선구적인 길을 시사하는 듯 하다. 기타 레퍼토리를 넓히는 것은 더 많은 청중과 만날 수 있는 길 중 하나였다. 존 코릴리아노(1938~), 크리스토퍼 라우스(1949~2019), 탄둔(1957~) 등 동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에게 꾸준히 기타곡을 위촉했다. 이렇게 초연한 작품만 80곡이 넘는다. 줄리아드 음악원에 기타 학과를 설립한 인물도 이즈빈이다. 1989년부터 현재까지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전 미국 대통령 오바마 부부의 초청으로 2009년 백악관에서 연주회를 갖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유서 깊은 미국의 공연예술잡지 ‘뮤지컬 아메리카(Musical America)’가 선정한 ‘올해의 기악 연주자’에 기타리스트 최초로 이름을 올렸다.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태어난 이즈빈은 9세부터 기타를 연주했다. 14세에 미네소타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그는 예일대에서 수학했고, 스페인과 남미의 기타 대가 안드레스 세고비아(1893~1987)와 알리리오 디아스(1923~2016)를 사사했다. 강렬하고기교 넘치는 연주로 독일 ARD 콩쿠르에 입상한 첫 기타리스트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주요 음반사와30여 장의 앨범을 발매했으며, 여러 차례 그래미상(2001·2002·2010·2018)을 받았다. 이즈빈의 디스코그라피는 바로크(바흐 기타 작품집:류트 모음곡/Erato)➊부터 남미 음악(‘Jouney to the Amazon’/Warner Classics)➋과 현대음악(크리스토퍼 라우스의 ‘Concert de Gaudi’ 외/Warner Classics)➌을 아우르는 폭넓은 음악 세계를 자랑한다. 지난 5월에는 두 개의 신보를 동시에 발매했다. 기타 초연작품집인‘Affinity’(ZOHO Music)➍는 다섯 작곡가가 이즈빈을 위해 쓴 기타곡을 녹음했다. 쿠바 작곡가 레오 브라우어, 중국과 스페인 문화에서영감을 받은 탄둔, 크리스 브루벡(1952~)의 재즈풍 곡까지 장르와 문화권을 망라한다. ‘Strings for peace’(ZOHO Music)➎는 인도의 민속 현악기인 사로드 연주자 암자드 알리 칸(1945~)이 이즈빈과의 합주를 위해 쓴 곡으로 채워졌다. 클래식 기타 한 대로 세상의 모든 음악을 연주하는 샤론 이즈빈과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클래식 기타로 남미와 아프리카, 아시아 대륙을 넘나든다. 미국에서 태어나 서양 중심의 클래식 음악계에서 활동했는데, 언제부터 제3세계 음악에 관심을 두었나. 예일대 학생 시절부터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에 끌렸다. 기타는 참 다재다능한 악기다. 남미 음악부터 재즈·포크·록·월드뮤직에 다 잘 어울린다. 그중 몇 가지가 이번 앨범 ‘Affinity’에 수록됐다. 수록곡 중 세 작품이 세계 최초로 녹음됐다. 크리스 브루벡의 기타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안토니오 라우로가 작곡하고 콜린 다빈이 편곡한 왈츠 3번 ‘나탈리아’, 탄둔의 ‘Seven Desires for Guitar’이다. 각 곡을 간략히 설명한다면. 클래식 음악과 재즈 음악에서 모두 활약 중인 브루벡의 협주곡은 이번 음반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그의 아버지이자 재즈계의 전설 데이브 브루벡(1920~2012)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다. 베네수엘라 작곡가 라우로의 왈츠, 중국 작곡가 탄둔의 작품에는 각 나라의 문화적 유산이 녹아있다. 초연곡을 모은 ‘Affinity(친연성)’라는 앨범 제목이 독특하다. 서로 다른 음악적 장르와 스타일을 묶어낼 앨범 제목이 필요했다. 평소 내가 과학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있던 브루벡이 지금의 제목을 제안했다. 친연성은 두 개체 사이의 끌림이나 잘 맞는 성질을 뜻하는 용어다. 세계의 음악을 하나로 모으기에도 적합한 제목이었다. 과학에 관한 흥미는 화학공학자였던 부모님의 영향인가? 어린 시절 모형 로켓 만들기에 푹 빠졌었다. 미네소타 대학에 교수로 계셨던 아버지는 기타 연습을 해야만 보상으로 모형 로켓을 발사할 수 있게 하셨다. 로켓에 벌레와 메뚜기를 넣어 우주로 쏘아 올리겠다고온갖 애를 썼다. 그 에너지를 열네 살 무렵부터 클래식 기타에 전부 쏟아 넣었다. 여가 중에는 명상 수련을 한다고 들었다. 인도의 사로드 연주자 암자드 알리 칸이 작곡한 ‘Strings for peace’는 그러한 관심사가 반영된 것인가? 몸과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곡이 인상적이다. 암자드 알리 칸과는 십 년 넘게 우정을 이어온 사이다. 2018년 11월 어느 날, 그가 우리를 위해 작곡한 아름다운 곡을 메일로 보내왔다. 예정된 두 달간의 인도 투어 공연을 마치고, 녹음을 시작했다. 그의두 아들 아마안과 아얀도 사로드 연주자로 참여했다. 그때만 해도 전 세계가 전염병으로 고통받고, 치유의 음악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필요해질 줄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당신의 음반은 그 분야의 가장 뛰어난 전문가와 함께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예컨대 ‘바흐 기타 작품집: 류트 모음곡’을 위한 악보는 바로크 음악학자이자 건반 주자 로잘린 튜렉(1913~2003)이 편곡을 맡았고, 당신이 운지법을 적었다. 음악적으로 가장 깊은 교감을 주고받았던 작업을 꼽는다면. 이건 마치 부모에게 가장 좋아하는 아이를 고르라는 질문과도 같다! 하나만 고르기는 어렵다. 다만 코릴리아노에게 위촉한 기타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은 청중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이다. 가장 이국적인협업은 브라질의 퍼커셔니스트이자 작곡가 티아고 드 멜로(1933~2013)와 이뤄졌다. 아마존에서 자란 그는 맥(중남미와 서남아시아에 서식하는 돼지 비슷하게 생긴 동물)의 발톱, 거대 거북이의 껍질, 말린 고치 껍질 같은 특이한 재료로 악기를 직접 만들곤 했다. 우리는 20년 가까이 함께 공연했는데, 한번은그와 브라질에서 야생원숭이를 껴안아보기도 했다. 최근 눈여겨보는 젊은 작곡가가 있나? 미시 마졸리(1980~)의 작품을 즐겨 듣는다. 미국 출신의 재능있는 젊은 작곡가다. 몇 년 안에 나를 위한 협주곡을 작곡할 예정이다. 아직도 도전하고 싶은 분야가 남아있는지. 40여 개국을 연주 여행하며 겪었던 놀라운 경험을 책으로 써보면 어떨까. 코릴리아노와 갈라파고스에서 수천 마리의 이구아나 사이를 하이킹하고, 우주비행사 크리스 해드필드와 우주왕복선 시뮬레이터를 작동하고, 캐나다의 음악 축제에서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가르치고, 9·11 기념관에서 4만 명의 유족과 생존자를 위한 공연을 했으니 말이다. 내년에도 코로나로 연주회가 취소된다면, 정말 책을 쓸 시간이 생길지도모르겠다.
글 박서정 기자 사진 Genevieve Spielberg 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