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2월 8일 9: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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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방미인 八方美人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

러시아 피아니즘의 다양한 색채와 채색

©Shin-Joong Kim

 

 

 

 

 

 

 

 

 

 

 

 

 

 

 

 

 

©Shin-Joong Kim

 

2020년 11월 3일,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 시리즈 마지막 무대에 오른 이지윤(바이올린)과 일리야 라쉬코프스키. 이날의 무대는 출중한 실력이 뒷받침된다면, 아무리 난해한 곡도 충분히 전달력 있게 다가온다는 감상을 남겼다. 시간이 흘러 2021년 1월 7일, 같은 장소에서 다시 일리야의 연주를 만났다. 올해의 상주음악가가 된 김한(클라리넷)과 함께한 금호아트홀 신년음악회였다. 하나의 시리즈를 여닫는 중요한 순간마다 일리야가 있었고, 그는 최고의 연주로 무대에 시너지를 일으켰다.

많은 연주자에게 피아니스트는 중요한 존재다. 무대의 완성도를 위해, 레퍼토리의 다양성을 위해 그들은 피아니스트와 함께 무대에 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어떤 피아니스트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 무대는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다. 일리야의 연주는 이러한 무대들에서 피아니스트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반주자’가 아닌 반드시 ‘피아니스트’라는 이름으로 불러야 할 이유를 말해준달까.
2월 한 달만 해도 그의 달력은 공연과 리허설로 가득하다. 독주회와 듀오 리사이틀까지, 모두 다섯 번의 무대가 기다리고 있다. 지금, 가장 바쁜 피아니스트로 살고 있는 일리야 라쉬코프스키(1984~)와 전화로 만났다.

 

 

 

24/7, 음악 안에 살다
“아침에 눈을 떠서 잠들 때까지 거의 연습만 하는 것 같습니다. 많은 레퍼토리를 익히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최근에는 현대곡을 많이 다루고 있는데요, 곡을 익히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긴 하지만, 덕분에 고전·낭만 시대의 곡을 익히는 데는 훨씬 수월해졌습니다.(웃음)”
현악·관악·성악 등 각기 다른 특색의 악기와 모두 좋은 호흡을 보여주는 피아니스트는 흔치 않다. 대개는 한 악기, 혹은 한 연주자에 집중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일리야는 ‘성실’한 ‘만능’ 연주자로 통한다. 악기와 장르를 불문하고 많은 연주자가 그와 함께 연주하길 원하는 이유다. 지난해 박혜상(소프라노), 백주영(바이올린), 리처드 용재 오닐(비올라), 김한(클라리넷) 등과 함께 무대에 오른 그는 오는 2월, 송지원(바이올린), 박유신·김민지·이호찬(첼로)과 함께 듀오 무대를 꾸민다.
“어떤 악기와 함께하느냐에 따라 곡에 접근하는 방식이나 연주자를 대하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그중 관악과 성악은 비슷한 부분이 많은데요, 입으로 직접 숨을 내뱉어 소리를 내기 때문이죠. 반면, 현악 연주자의 호흡은 주로 손을 통해 이뤄지고요. 듀오 중에선 첼로와 함께하는 연주가 가장 어렵습니다. 음역대가 낮아서 소리의 밸런스를 맞추기가 쉽지 않죠. 하지만, 연주의 난이도를 결정하는 것은 ‘악기’보다 ‘연주자’인 것 같습니다. 같은 곡도 누구와 연주하느냐에 따라 쉽기도, 어렵기도 하거든요.”
러시아 태생의 일리야는 독주자로서도 탄탄한 길을 걸어왔다. 하마마쓰 콩쿠르 1위(2012)를 비롯해 롱티보 콩쿠르·루빈스타인 콩쿠르·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등에 상위 입상했다. 게르기예프/마린스키 오케스트라를 포함해 세계 주요 오케스트라와 협연 무대도 이어가고 있다. 2008년부터 차이콥스키·스크랴빈·쇼팽·무소륵스키 등을 담은 다섯 장의 음반 또한 그의 음악적 기량을 보여준다. 그는 노보시비르스크 음악원, 하노버 음대, 파리 에콜 노르말에서 메리 레벤존, 블라디미르 크라이네프, 마리안 리비키를 사사했다. 배움의 배경이 된 다양한 문화는 그가 러시아 피아니즘을 바탕으로 어떤 색채와도 잘 어우러질 수 있게 했다.
“러시아와 독일, 프랑스에서 공부를 이어가며 연주 자체보다는 정신적·문화적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 나라의 언어로 즐기는 오페라는 물론, 각 나라의 레퍼토리를 더욱 상세히 익힐 수 있었죠. 특히 하노버에서 사사한 크라이네프 교수님은 러시아 태생의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인데요, 그분의 연주를 직접 듣고 배울 수 있었던 것이 큰 행운으로 느껴집니다.”

 

한국에 울리는 로맨틱 소나타
일리야는 현재 성신여대 음대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하노버에서 함께 수학했던 피아니스트 정재원(성신여대 교수)과의 인연으로 성신여대에 몸담게 됐다”고 한다. 사실 한국과의 첫 인연은 더 이전인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우승을 거머쥔 홍콩 콩쿠르의 부상으로 아시아 투어를 했고, 그중 한 곳이 서울이었다. 본격적으로 한국 무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2013년부터. 작곡가 류재준의 초청으로 서울국제음악제 등 매해 한국을 찾아 연주했다. 성신여대 학생들과 만나온 것은 2017년 3월부터다.
“처음 교수 자리를 제안받고 많이 고민했습니다. 인생의 아주 큰 변화이니까요. 하지만 한편으론 그동안 아시아 지역과 계속 인연이 닿았던 것 같습니다. 아내도 일본 사람이고. 홍콩·하마마쓰 콩쿠르 우승을 통해 아시아권에서의 무대도 계속 이어졌거든요. 코로나를 겪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클래식 음악을 공부하는 데 한국보다 더 좋은 환경을 갖춘 곳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일리야는 러시아와 프랑스, 그리고 동유럽 작곡가의 레퍼토리에 자신감을 보인다. 20~21세기 근현대 음악도 그에겐 그리 어렵지 않다. 오는 27일, 4년 만에 갖는 독주회 ‘로맨틱 소나타’도 그의 강점으로 채웠다. 쇼팽의 소나타 3번과 마주르카 op.24, 포레의 녹턴 13번, 그리고 류재준의 소나타를 세계 초연한다.
“모두 제가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류재준의 소나타는 아직 알아가는 중이지만, 이미 ‘걸작’처럼 느껴집니다. 그와는 벌써 8년 지기 친구이고, 그간 클라리넷 소나타, 피아노 협주곡 등 그의 작품을 꾸준히 연주해왔습니다. 이제는 특별히 이야기 나누지 않아도 그가 원하는 음악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일리야의 24시간은 음악만이 끊임없이 재생된다. 음악을 듣고, 연습하고, 생각하고, 다시 그 음악 안에서 영감을 얻는다. 그야말로 ‘음악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랄까.

글 이미라 기자 사진 오푸스

 

공연정보
일리야 라쉬코프스키 독주회
2월 27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포레 녹턴 13번, 류재준 피아노 소나타(세계초연),
쇼팽 마주르카 op.24·소나타 3번
듀오 리사이틀(바이올린 송지원)
2월 2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허잔하오·첸강 바이올린 협주곡 ‘나비 연인’, 그리그 소나타 2번,
윤이상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가사’, 버르토크 소나타 2번
듀오 리사이틀(첼로 박유신)
2월 9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미야스콥스키 소나타 1번, 보로딘 소나타 b단조, 라흐마니노프 소나타 op.19 외
듀오 리사이틀(첼로 김민지)
2월 25일 오후 8시 금호아트홀 연세
패르트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형제들’, 히나스테라 첼로 소나타 op.49 외
듀오 리사이틀(첼로 이호찬)
2월 28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
멘델스존 소나타 2번, 라흐마니노프 소나타 g단조 외


음반

 

 

스크랴빈 피아노 소나타 전곡
NAR NARD-5053/4 (2CD·2016)

 

 

 

 

쇼팽 에튀드 전곡
Victor Entertainment VICC-60869 (2013)

 

 

 

차이콥스키 ‘사계’
NAXOS 6524944 (2008)
‘사계’, 소나타 op.80

 

 


 

일리야 라쉬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 소나타 2번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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