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NDUCTOR
지휘자 사샤 괴첼
리더의 조건 지휘자 사샤 괴첼 서울에서 통영을 잇는 음악
햇살 가득한 지중해의 낙원, 터키. 사샤 괴첼은 2008년, 터키를 방문하고 그곳의 뜨거움에 매료됐다. 날씨 이야기가 아니다. 괴첼이 반한 건, 음악가들이 품고 있던 마음이었다.
그해 괴첼은 보루산 이스탄불 필하모닉을 만났다. 첫 만남의 순간에 악단의 잠재성을 발견했다. 그리고 상임지휘자로 이들과 함께할 것을 결심했다. 악단과의 출항을 알리는 기자간담회에서는 자신 있게 선언했다. “몇 년 내 세계적인 단체로 성장하게 될 것”이라고.
사샤 괴첼이 상임지휘자로 재직한 10여 년에 걸쳐, 보루산 이스탄불 필하모닉(이하 이스탄불 필)은 그의 약속처럼 엄청난 성장을 이뤘다. 빈 무지크페어아인, 빈 콘체르트하우스,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바우, 파리 샹젤리제 극장 등 클래식 음악 중심부에 진입하고,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BBC 프롬스, 홍콩아트페스티벌 등에 초청됐다. 2010년부터는 음반 작업에도 박차를 가했는데, 그 기세를 알아본 도이치 그라모폰이 합류해 최근 발매된 세 장 음반의 배급을 맡았다.
‘우연한 만남’을 ‘세기의 발견’으로 이끈 사샤 괴첼이 내한한다. 3월 25일에 KBS교향악단과 예술의전당에 오르고, 4월 4일에 통영국제음악제의 폐막을 장식한다. 한국 관객과의 첫 만남을 앞둔 그의 목소리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새로운 인연이, 한반도에 또 하나의 꽃으로 피어날지 기대감이 높아진다.
세계 공연계가 침체기를 맞았지만, 당신의 분주한 일상엔 변함이 없었던 것 같다. 위기는 곧 기회다. 지난 시간을 반추하고, 재평가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할 기회. 작년 가을부터 새로운 온라인 콘텐츠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는 나의 독립적인 디지털 미디어 플랫폼인 ‘비엔나 아트 네트워크(The Vienna Art Network)’★의 출시로 이어졌다. 오스트리아 쇤브룬 궁으로 떠나는 음악 역사 기행을 콘셉트로 한 영상물 등을 독점적으로 선보인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이스탄불 필이 디지털 TV 채널을 개설하는 데에도 도움을 주었다.
신보 준비로도 바빴을 것 같다. 올해 탄생 100주년인 피아졸라의 음악을 담은 ‘피아졸라 스토리스(Piazzolla Stories)’(Warner Classics)가 지난 2월 말에 발매됐다. 피아졸라의 음악은 내 인생에서 늘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특히, 클래식 음악과 이외 음악이 결합하는 방법을 보여줬다. 이번 리코딩 제안에 망설임 없이 ‘Yes’라고 답했다. 몬테카를로 필하모닉, 트럼피터 뤼시엔느 르노댕 바리(1999~)와 함께한 이번 작업은 피아졸라의 음악은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고, 지역과 세대, 문화를 거슬러 모든 사람을 연결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했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10여 년간 상임지휘자로 함께해온 이스탄불 필에 대해 듣고 싶다. 먼저 터키의 음악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터키 음악계의 특징은 다양성이다. 각 도시의 고유한 문화유산이 그곳 예술의 동력이 되는데, 그 유산은 무려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이스탄불 필의 상임지휘자를 결심한 계기가 있었을 것 같은데. 많은 이들이 음악에 삶을 바치는 열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들에게 ‘프로 음악가’는 직업이 아니라 그들이 선택한 삶의 방식에 가까웠다. 이들이 품은 가능성에 믿음이 생긴 순간이다.
악단을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시키겠다는 목표를 제시했고, 실현했다. 이를 이루기 위한 전략은 무엇이었나. 음악감독이라면 세 가지 요소를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악단의 강점과 약점을 판단하는 ‘분석력’. 예술적 발전에 관한 ‘명확한 비전’. 관객과 음악가, 그리고 행정팀 사이에 ‘단단한 다리를 놓는 능력’이 그것이다.
이스탄불 필과 함께 ‘레스피기·힌데미트·슈미트’(Onyx/2010)를 시작으로 7장의 음반을 발매했다. 악단의 예술적 발전을 위한 실천이었던 것인가. 오케스트라의 성장에 있어서, 리코딩은 필수적이다. 또 악단의 개개인은 모든 업무 과정에 걸쳐 중요한 존재로 인식될 때 성장한다. 그래서 나는 녹음 과정 중 전 단원이 스튜디오 리스닝룸에 자리할 수 있도록 했다. 60여 명이 몰려 들어가니 엔지니어링 팀원들이 당황하기도 했다.(웃음) 하지만 하나 되어 만드는 소리를 듣고 의견을 나누는 과정을 통해 개별 단원들도, 앙상블도, 음반도 발전했다.
한국에 뿌릴 씨앗
첫 내한을 앞두고 있다. 한국에서의 공연은 처음이라 무척 설렌다! 한국은 언제나 내 ‘위시리스트’에 있었고, 그간 몇 차례 초청도 받았지만 스케줄이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한국의 음악가들과는 인연이 있었나. 음대 재학시절부터 한국 친구들을 사귀었고, 그들과 연주도 했다. 그중 사라 장, 선우예권, 김봄소리 등이 있었고, 최근에는 소프라노 황수미, 테너 박종민과 빈 슈타츠오퍼에서 공연했다. 한국의 음악가들은 정직하고, 음악에 접근하는 방식이 진실하다. 이들을 친구와 동료라고 소개할 수 있다는 건, 특권이다.
이번에 KBS교향악단(3.25)과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4.4), 짧은 시간 안에 다른 두 악단과 호흡해야 한다. 효과적으로 최고의 결과물을 내기 위한 노하우가 있나? 모든 오케스트라는 살아 있다. 이를 이해하고 접근해야 한다. 악단의 음악가들과 숨 쉬는 법을 배우고, 그들의 심장박동과 나란히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그러면 그들의 영혼을 찾는 순간이 온다. 마법 같은 음악이 시작되는 때다. 나머지는 사운드와 아티큘레이션, 음악적 개념을 해석하는 데 있어 최고의 퀄리티를 낼 수 있도록 열심히 연습하는 것이다. 지휘는 한 악기를 연주하는 것과 같은, 예술의 한 형식이다.
KBS교향악단을 위해 선곡한 작품이 특히 기대된다. 브루흐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협연 손민수·문지영)은 본래 오르간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이었는데 이러한 배경지식이 감상에 효과적이라고 보나? 오랫동안 편곡자로서 훈련받아 왔다. 석사 과정 중에는 오르간을 위한 작품을 풀편성 오케스트라로 옮기는 작업을 했다. 이로부터 깨달은 것은, 좋은 편곡 버전은 원곡의 틀에서 벗어나 전연 새로운 것을 듣는 경험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무소륵스키와 라벨의 ‘전람회의 그림’이 그러한 것처럼.
바그너 ‘지크프리트’ 중 2막 ‘숲의 속삭임’과 R.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 모음곡으로 그간 오페라계에서 쌓은 노련미도 보여주리라 기대된다. 빈 슈타츠오퍼에서 전막을 올린 적 있는 ‘장미의 기사’의 모음곡 버전은 네 개의 주요 파트로 구성된다. 오프닝-‘장미’의 제시-마지막 트리오-왈츠. 그 사이사이에 오페라의 주요 멜로디와 프레이즈가 등장해 주요 파트를 연결 짓는다.
통영에서 선보일 두 작품은 대비된 듯 보인다. 낭랑한 에너지가 가득한 베토벤 교향곡 8번으로 시작해, 모차르트 ‘레퀴엠’으로 막을 내리는 전개에서 우리는 무엇을 들을 수 있을까. 삶의 기쁨과 정신적인 믿음! 매일의 일상에 적용한다면, 사랑과 감사로 가득한 삶을 살게 할 두 가지 요소다. 또, 두 작품은 세월의 흐름에도 변하지 않은 예술의 가치를 품고 있다. 이를 통해 팬데믹의 위기에 더없이 필요한, 완전성과 결속의 가치를 전하고 싶다.
이번 방문을 계기로 한국과의 인연도 오래 이어지길 바란다. 남은 한 해는 어떻게 보낼 예정인가. 곧 한국에 다시 들어올 수 있으면 좋겠다. 올해 콘세르트헤바우를 비롯해 소피아, 이스탄불, 도쿄, 빈, 파리 등의 공연장에 설 예정이고, ‘돈 조반니’의 새 프로덕션을 올릴 계획이다. 물론 코로나19의 추세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건강하게 서로 삶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나누는 것 아니겠는가!
글 박찬미 기자 사진 KBS교향악단
kbs교향악단 제764회 정기연주회
3월 2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사샤 괴첼/KBS교향악단(협연 손민수·문지영)
바그너 ‘지크프리트’ 중 ‘숲의 속삭임’, 브루흐 두 대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R. 슈트라우스 ‘장미의 기사’ 모음곡 외
통영국제음악제 폐막공연
4월 4일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
사샤 괴첼/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협연 임선혜· 김선정·파벨 콜가틴·박종민)
베토벤 교향곡 8번, 모차르트 레퀴엠 d단조
DISCOGRAPHY
레스피기·힌데미트·슈미트
사샤 괴첼/보루산 이스탄불 필하모닉
Onyx ONYX4048
레스피기 ‘벨키스, 셰바의 여왕’, 힌데미트 ‘베버 주제에 의한 교향적 변용’ 외
림스키코르사코프 ‘셰에라자드’
사샤 괴첼/보루산 이스탄불 필하모닉
Onyx ONYX4124
림스키코르사코프 ‘셰에라자드’, 발라키레프 ‘이슬라메이’, 이폴리토프이바노프 ‘코카서스의 풍경’ 외
바흐·슈니트케
사샤 괴첼/데보라·사라 넴타누(바이올린·비올라)/파리 체임버 오케스트라
Naive V5383
바흐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바이올린 협주곡 2번, 슈니트케 콘체르토 그로소 3번 외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
사샤 괴첼/바딤 레핀·다니엘 호프(바이올린)/보루산 이스탄불 필하모닉
Onyx ONYX4188
마크앤서니 터니지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