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ORT_글 박서정 기자 사진 김소라·출판사 1도씨·아르코예술기록원
기록을 남기는 예술
예술가·기획자·연구자의 손끝에 남은 공연
“전시회가 끝나면 모두 불태워버리겠다”
무대미술가 이병복(1927~2017)의 이 짧은 선언에 2006년에 국내 공연계가 발칵 뒤집힌 적이 있었다. 이병복은 한국의 얼과 멋이 담긴 색과 재료로 국내 무대미술 분야를 개척했다는 평을 받았던 인물. 그런 그가 40년간 만든 연극 소품과 의상을 태우는 것은 한국 연극사의 한 조각을 영영 잃는 일이었다. 그 이유가 허탈했다. 사후에 무대미술품을 보관할 장소도 없거니와, 제대로 관리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놔두면 사라지는 예술 현장을 보존하는 작업, 즉 공연예술 아카이브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한 시점이다.
부랴부랴 공연예술을 남기기 위한 움직임이 일었다. 가시적 성과로 공연예술이 머물 집이 생겼다. 2009년 공연예술박물관이 국립극장 산하에 설립된 것. 이곳은 1950년 개관 이래 국립극장에서 제작된 연극·무용·창극·오페라·판소리 등 여러 장르의 공연예술자료를 수집해 보존 중이다. 1979년 개원한 아르코예술기록원은 2010년 국가적인 규모의 예술기록관리 전문기관을 표방하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분리, 독립했다. 2014년 재통합되었으나, 공연예술 아카이브를 위한 전문기관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다. 김현옥 학예연구사는 “아카이브는 결과물 그 자체보다 생성된 맥락을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최근엔 1960~ 90년대 공연예술 심의대본을 공개하는 등 한국 근현대 예술사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와 기획 컬렉션도 활발히 선보이고 있다.
그 후로 10여 년. ‘기록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절박한 당위에서 출발한 공연예술 아카이브는 이제 더 유연해지고 다양해졌다. 소품·의상·대본·팸플릿·포스터·티켓 등 공연예술의 산물을 넘어, 창작과정을 살피는 데까지 범주를 넓혔다. 아카이빙은 더 이상 기관과 전문가의 영역에만 머물지도 않는다. 예술가부터 기획자에 이르기까지 여러 개인의 움직임이 나타나는 추세다.
예술가·기획자·연구자의 아카이브
지난 3월 타악 연주자 김소라는 작품 기록집 ‘비가 올 징조’를 발간했다. 장구 독주를 위한 동명의 자작곡으로 세계무대를 누빈 7년의 기록을 담았다. 스스로 “전통예술 음악인을 위한 지침서이자 안내서”라고 소개한다.
문화예술 기획자이자 공연예술 출판사 ‘1도씨’를 운영하는 허영균 대표는 2015년부터 공연의 창작과정을 쫓는 ‘1도씨 추적선’ 시리즈를 직접 편집하고 꾸준히 출간하고 있다. 지금 공연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배우이자 소리꾼 조아라·연출가 이경성·안무가 공영선·소리꾼 이희문이 해당 시리즈의 저자로 참여했다.
이들이 만든 아카이브 목적과 타깃은 조금씩 달랐으나, 공연예술을 기록하는 행위가 더욱 활발해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각자의 분야에서 공연을 기록하는 예술가와 기획자, 연구자를 만나 공연예술 아카이브의 생태계를 알아보았다.
김소라 전통음악의 활동 범위가 좁고, 특히 그 안에서 타악을 통한 창작공연은 공연기회가 한정적이다. 스스로 무대를 찾아야만 했다. 연주자로서 활동 범위를 넓혀가는 과정에서 겪은 시행착오를 예술가이자 프로듀서의 시선으로 담아냈다.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음악인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허영균 관객이 될 독자를 상상하면서 책을 만든다. 생각보다 공연예술을 경험할 기회가 흔치 않다. 공연이 닿지 않는 곳에서 공연을 말할 방법으로 책을 떠올렸다. ‘1도씨 추적선’은 공연의 현장성을 ‘복원’하려 하기보다, 예술가가 이 이야기를 탄생시키기 위해 거쳐온 ‘과정’을 역추적해서 기록하고 기억한다.
김현옥 아카이브는 기본적으로 연구를 위한 것이다. 원로예술가의 기증자료 중에는 유년기 시절의 일기, 서신, 통지표 등도 있다. 한 예술가의 생애 연구에도 필요하지만, 인접 학문에서도 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지금 우리가 생산하는 근현대 자료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아직 부족한데, 이러한 자료를 활용한 연구가 쌓여 결국 근현대문화사, 예술사가 되는 거다. 2000년대 이전과 달리 다양한 채널을 통해 자료를 접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연구자가 발을 디디게 하려면 우리 기록원만의 특화된 자료가 필요하다.
동시대 공연예술 아카이브는 훗날 지금의 공연예술계를 면밀히 살필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예술기록원은 2014년 한국 최초의 전문 무대미술가라 불리는 원우전(1895~1970)의 무대스케치 원본 54점을 발굴, 수집했다. 대부분 스케치만 있고 공연명이나 시기·장소를 가늠할 수 있는 메모가 거의 없는 상태였다. 한국연극학회와 공동연구조사를 벌였지만, 여전히 미궁으로 남은 자료가 더 많다. 당대 예술 현장을 참고할 만한 기록이 거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예술 현장에 대한 증거이자 증언
최근 서울문화재단은 우수공연예술작품기록 지원사업을 신설했다. 앞서 언급한 김소라 작품집은 해당 사업에 선정되어 출간됐다.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예술인·단체의 레퍼토리를 기록하고, 작품 철학을 공유”하는 것이 사업의 목적이다. 김옥란 연극평론가는 “그간 연극계에 공연 자체에 천착한 아카이브는 없다시피 했다. 때문에 연극사가 연출가론, 혹은 작가론에 치우친 경향이 있다”라며, 사업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김현옥 아카이브는 결과물 그 자체보다 생성된 맥락을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예술가의 수기나 연습 과정에서 나온 제작일지·회의록·서신 등은 예술계를 더 적극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기록물이다. 공연예술분야는 그간 프로그램·포스터·공연영상 정도만 아카이빙 해왔는데, 이는 매우 단편적인 기록이다.
허영균 공연예술 자료라는 것이 그 당시의 티켓이나 몇 번째 버전인지 확인할 길이 없는 대본, 몇 개 남은 소품들 뿐이다. 기록이라기보단 현장 ‘증거’에 가깝다. 이러한 정적인 기록과 유연한 기록은 같이 있어야 상호보완된다.
현장의 예술가들도 기록의 욕구를 느낀다. 단체를 오래 지속하거나 꾸준한 레퍼토리가 있는 경우, 그것을 하나의 결과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은 더욱 강해진다. 무대 위에서 한순간 존재했다가, 잊히는 공연예술의 본성 때문이다.
허영균 함께 작업한 예술가들은 아카이브를 공연에 버금가는 2차 창작물로 여긴다. 책의 저자를 ‘1도씨 편집부’가 아닌, 예술가로 두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조아라(‘어쩔 수가 없어’ ‘목욕합시다’)는 기록을 중요하게 인식한다. 책으로 만들지 않은 작품도 꼼꼼히 기록하는 편이다. 이희문(‘깊은舍廊사랑 디렉토리’)은 공연 ‘깊은舍廊사랑’ 시리즈를 마무리하며, 경기민요에 대한 정확한 발언이 문서로 남아있지 않다는 데 책임 의식을 느꼈다. 이경성(‘연극의 연습’)은 크리에이티브 VaQi(바키)의 작업 방식을 통해 당시 연극계의 새로운 이슈였던 공동창작 방법론을 거론했다.
기록은 특권일까
이러한 기록 행위의 산물은 예술가에게 실용적이고 유용하다. 김소라는 2018년 세계월드뮤직엑스포(WOMEX)에 초청받기 전만 해도, 인터넷에 ‘WOMEX’를 검색하면 기사 한 줄이 안 나왔다고 한다. 타악으로 세계 최대의 월드뮤직 행사에 오른 것이 국악 분야에서 큰 성취임에도, 국악계 내에서도 정보 공유가 잘 이뤄지지 않았다.
김소라 좋은 음악을 하는 연주자가 방법을 몰라서 해외에 진출하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당사자로서 기록을 남기기로 한 이유다. 나 역시 예전에 김덕수 자서전을 보면서 해외 진출의 꿈을 키웠으니까. 어느 극장에서 공연했는지 간단하게라도 남겨둔 기록을 보고, 해외에 많은 무대와 연주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전까지는 카네기홀이나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같은 유명 극장밖에 몰랐고, 거기에 못 서면 가망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전통연희 분야의 정보 부족은 국내 공연예술 아카이브 수집망에 뚫려있는 구멍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현재 가장 조직적이고 안정적으로 공연예술 자료를 수집하는 곳은 공연예술박물관이다. 그러나 소장자료의 장르별 비율을 보면, 총 22만여 점의 자료 중 전통연희는 2천여 점으로 1%에 불과하다. 높은 비율은 차지하는 장르는 무용(30%), 음악극(27%), 연극(21%) 순이다. 장르에 따라 ‘아카이브 소외’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국립극장 전속예술단체(국립창극단·국립무용단·국립국악관현악단)의 자료를 우선 수집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기록원은 공연영상 제작사업과 원로 예술인을 대상으로 한 ‘한국 근·현대 예술사 구술채록’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작년엔 작곡가 강석희(1934~2020)의 자료를 대거 수집했다. 육필 악보부터 녹음본, 지금은 걸출한 작곡가가 된 진은숙(1961~)과 주고받은 서신 등 무수하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유병은 아르코예술기록원 과장은 “살아계실 때 자료를 수집했고, 1차 정리를 끝냈다. 이제 연구를 앞두고 있다. 최초의 전자음악 작곡가 정도로만 알려져 있는데, 남겨진 기록을 보면 1970~80년대 국제 음악 교류의 증인이라고 할 정도다”라고 전했다. 그러나 현장 최전선에서 일어나는 일까지 기록의 손이 닿지는 못한다.
김현옥 무엇을 수집할 것인지 우선순위를 정할 때 예술사적 가치, 중요성, 희귀성도 중요한데 인력과 예산이 부족하다 보니 시급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아카이브 컬렉션을 만든다는 건 맥락 정보를 파악하는 게 절반 이상이다. 문헌에서 찾을 수 없는 정보가 많기 때문에 예술가가 돌아가신 뒤에 하려면 어려움이 많다.
아카이브도 개성이다
그렇다면 동등하게 모든 공연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합당할까? 이는 또 다른 문제다. 국제퍼포먼스학회(PSi) 창립자 페기 펠란은 “공연을 복제의 경제학 속으로 밀어 넣으려는 시도는 공연의 존재론적 약속을 위반하고 축소하는 것이다. 공연은 소멸을 통해서 완성된다”라는 말을 남겼다.
허영균 예술가들이 선택할 문제다. 동시대에 탄생한 모든 예술을 기록해야 한다고 하는 건 폭력일 수 있다. 사라지길 원하는 작업도 있다. 공연을 망쳐서 기록을 남기고 싶지 않다는 의견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실제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문예진흥기금사업으로 창작되는 공연을 아카이브하려는 계획을 내부적으로 논의해왔다. 아카이브에 있어 독립성과 자율성이 지켜져야 한다는 원칙하에 예술가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하도록 방향을 틀었다. 기록원은 함께 만들어가는 동시대 아카이브를 위해 시범적으로 ‘공연예술 중장기 창작지원사업’(2019~2021)에 선정된 단체를 대상으로 한 설명회를 진행했다.
김현옥 아카이브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 대본·악보·영상·프로그램북 등과 같은 일반적인 선택지와 예술가가 직접 자유롭게 ‘중요한 기록물’을 추가할 수 있도록 했다. 그들만의 질서와 방식으로 생산한 기록물이 기록원으로 이관될 수 있게끔 홍보할 예정이다.
오늘날 공연예술이 다양해지는 만큼, 아카이브의 양태도 다양해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백 개의 공연이 있다면, 백 개의 아카이브가 있을 수 있다. 그 자신이 문화예술기획자이자 출판편집자로서 허영균은 신선한 관점을 제시한다.
허영균 언뜻 책은 평면적이고, 역동성이 부족해 보인다. 그러나 책만큼 ‘시간성’과 ‘공간성’을 동시에 가진 매체도 드물다. 마치 극장처럼 책의 표지, 내지의 장수·크기·면은 각각 공간을 구분하는 장치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공연이 1부와 2부로 흘러가듯, 책은 편집을 어떻게 하느냐로 그 흐름을 ‘연출’할 수 있다. 나는 공연을 만드는 것과 같은 감각으로 책을 만든다.
김현옥 개개인이 각자의 개성을 살린 아카이브를 많이 했으면 좋겠다. 국가지정기록물로 지정된 ‘조선의 마지막 무동’으로 불리는 ‘김천흥(1909~2007) 컬렉션’은 국가 주도가 아니라 무용연구자들이 오랜 시간 연구하면서 체계를 만들어 완성했기에 더 전문적이고, 무용사적으로도 매우 가치가 높다.
김소라 국악계에서 자신의 책을 내는 건 명인 정도 되어야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나 역시 그런 부담을 느꼈다. 그래서 개인적인 감상을 실은 에세이보다는 기록집의 형태를 취했다.
앞으로의 공연예술 아카이브
현재 활발히 생성되는 공연예술 아카이브를 언제 누구와 어떻게 만나게 할 것인가, 즉 활용에 대한 고민은 이제 이다음 단계에서 풀어야 할 과제다. 일례로 시각예술 분야에서는 아카이브를 활용한 전시가 활발히 열리고 있다. 한편으론 활용도가 곧 성과의 지표로 이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영구한 기록’을 뜻하는 어원처럼, “아카이브는 시간이 가게끔 기다려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김현옥 기록원은 그간 입수 순이나 유형별로 자료를 등록, 관리해오다 자료의 특성에 따라 큐레이션한 컬렉션 위주로 바꾼 것이 불과 몇 년 전이다. 활용에 대한 부분을 고려한 변화다. 그렇다고 얼마나 활용되느냐, 대중의 관심을 끄느냐가 평가의 척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무용가 최승희(1911 ~1967)의 포스터 한 장이 공개됐을 때 관심도가 높을 수 있다. 그러나 덜 유명한 예술가의 자료라고 해서 사료적 가치가 낮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모든 자료가 씨줄 날줄처럼 엮여서 전체 퍼즐을 완성한다.
허영균 코로나 시대에 사람들은 영상 기록 방식을 사용해 공연을 치러야 했다. 의도야 어떻든 기록하는 연습이 잘된 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공연예술 기록을 읽는 문화도 생겨야 하지 않나 싶다. 공연을 보고 돌아서서 끝나는 게 아니라,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고, 읽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 좋겠다.
국내 아카이브에 대한 필요성이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 온 지금. 현장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반성과 이를 토대로 한 기획, 이를 확장하는 여러 지원사업과 기관의 움직임이 대두되고 있다. 한 예로 국립국악원은 2016년에 아카이브의 현황과 미래를 살펴보는 포럼 ‘국립국악원-디지털 시대, 공연예술 아카이브의 역할과 가치 창조’를 가졌고, 이를 토대로 담론의 장을 만든 바 있다. 그것도 벌써 5년 전의 일이다. 그 사이에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남산예술극장은 물리적 공간을 잃었지만, 그들이 구축한 연극의 역사는 ‘남산 예술센터 디지털 아카이브’(nsac.or.kr)로 들어가 우리의 연극사에 자리 잡았다.
이러한 과정과 더불어 그간 나열만 되던 기록의 방식과 달리, 색다른 관계망을 구축하여 하나의 검색어가 여러 정보와 연결되는 미래적 아카이브도 나오고 있다. 앞서 만나본 허영균 ‘1도씨’ 대표는 이러한 디지털 아카이브 시스템을 활용한 역사 정보 자체가 전시의 콘텐츠가 될 수 있음을, 전시 ‘입체열람전: 시맨틱 데이터로 본 1970년대 삼일로 창고극장’(2019.12.17~2020.1.5)을 통해 보여주기도 했다.
이번 기사는 예술가·기획자·학예연구사를 취재하여 이러한 담론의 장을 형성하기 위한 목적하에 진행되었다. 앞으로 아카이브의 미래를 위해서는 기존의 현황과 제도를 다시 돌아보고, 관계자들을 모아 나아갈 길을 살피는 장이 더욱 부지런히 이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