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김은성, 모두가 즐거울 음악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5월 17일 9:00 오전

ONTEMPORARY COMPOSER 8

작곡가 김은성

 

모두가 즐거울 음악

KIM

EUN-SUNG

작곡가 김은성

음악의 토대는

소리에 대한 관심

김은성(1984~)은 서울대와 바이마르 음대에서 공부했으며, 현재 독일에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다. 그는 콩쿠르에서 뛰어난 성과를 얻었다. 멘델스존 독일 음악대학 콩쿠르 1위, 바이마르 작곡 콩쿠르와 종교개혁 기념 작곡 콩쿠르 1위 없는 2위, 창악회 작곡 콩쿠르 우수상을 받았다. 요제프 요하임 작곡 콩쿠르에서는 1위와 함께 실내악 콩쿠르 지정곡으로 선정되었다. 또한 2015년 튀링겐 작곡상을 받았고, 비텐 현대 실내악 음악제에 선정되어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그의 작품이 이렇게 주목받은 건 음악의 근본이 되는 ‘소리‘에 대한 연구가 바탕에 있기 때문이다.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어렸을 때 동네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 태권도나 미술, 영어학원보다 더 재밌더라. 광양이라는 소도시에서 자라서 음악을 시작하는 데에 어려움이 많았다. 지역에 딱 한 분, 작곡과 지휘를 전공한 분이 계셨다. 그분에게 작곡 기초에 대한 공부를 배웠다.

어린 시절에 피아노와 바이올린, 성악 등 다양한 음악 공부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또래 남자아이들은 축구부나 컴퓨터부에 들어갈 때 나는 합창부를 원했다. 고학년이 될수록 피아노 학원에 남학생은 나뿐이었다. 바이올린과 성악을 배운 것도 내가 원해서다. 부모님께서는 적당한 시기에 음악을 접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계속 재미있어하는 나를 보며 당황하셨다.

부모님을 설득하면서까지 음대를 가고자 했던 원동력은?

화성학 문제를 푸는 것이 너무 즐거웠다. 답이 무수히 많은 수학 문제를 푸는 것 같았다.

서울대 졸업 후 독일의 바이마르 음대로 유학을 떠난 특별한 이유는 무엇인가?

학부를 졸업했지만 어떻게 곡을 써야 할지 전혀 몰랐다. 마침 친구가 독일로 유학을 간다고 하기에 “그럼 같이 가자!”고 같은 날 비행기를 탔다. 바이마르 음대로 결정한 이유는 유도원 선배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다. 고등학생 때에 청음과 대위법을 가르쳐 준 유도원 선배는 당시 막 바이마르 음대를 막 졸업한 터였다. 미하엘 옵스트(1955~) 교수의 강점과 도시의 장점을 듣고는 그 학교를 택했다.

그간 여러 스승을 만났다. 먼저 서울대에서 만난 정태봉(1952~) 교수에겐 어떠한 가르침을 받았는지?

작품을 쓰기 전 계획 단계에서의 레슨을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곡보다는 스케치를 보고 싶어 하셨으며,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왜 그렇게 썼는지에 대해 물으셨다. 당시 나는 늘 횡설수설이었다. 선생님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여러 작품을 많이 듣고 다양한 악보를 읽으려고 노력하던 시기였다.

바이마르 음대에서는 좀 더 발전된 성과를 얻었나?

미하엘 옵스트 교수는 작곡에 있어서 기술적인 문제들을 쉽게 풀어주었다. 어떻게 하면 20분 길이의 곡을 쓸 수 있는지, 여러 음계가 한꺼번에 나올 때 수직적인 화성들을 어떻게 컨트롤해야 하는지 등 내가 질문하면 척척박사처럼 답했다. 정태봉 교수의 가르침과는 다른 부분에서 균형이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다.

박영희(1945~), 도시오 호소카와(1955~), 진은숙(1961~), 이자벨 문드리(1963~) 등 명작곡가들에게도 마스터클래스를 받았다.

박영희 선생은 독일의 한 음악회에서 처음 뵀다. 우연히 옆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연세가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듣는 집중력이 대단하시더라. 반짝 지나가는 음악보다는 롱런할 수 있는 음악을 위해 공부하라고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진은숙 선생의 마스터클래스는 마치 족집게 과외 같았다. 부족한 부분을 정확히 집어주시고 방향성도 잡아주셨다. 이자벨 문드리의 음악은 철학적 혹은 사회적인 사고로부터 출발한다. 음악 외적인 사고를 음악화할 때에 자칫 촌스러울 수 있는데, 마스터클래스를 통해서 시행착오를 줄이는 법을 배웠다. 도시오 호소카와의 마스터클래스는 따뜻했던 기억이 난다. 아이디어를 음악으로 발전시킬 때 필요한 정교한 세공에 대해 알게 됐다.

현재 독일에서 거주하고 있는데, 주로 어떠한 활동을 하는가?

바이마르 작곡가 협회에서 간간이 위촉을 받아서 곡을 쓰고 발표했다. 또한 한국의 공모사업에도 지원해 한국을 오가면서 생활하고 있다. 현재는 코로나 때문에 모든 것이 미확정 상태이다.

한국 작곡가가 유럽에서 활동하면서 느끼는 정체성은 없는지?

예술을 바라보는 관점은 환경의 영향이 크다. 어디서 공부했고 어디서 살며 어떤 곡을 듣는지에 따라 음악이 많이 변한다. 한국에서 연주되는 곡들을 보면 내가 주로 듣고 공부한 음악들과 많은 차이가 있다. 지금 나의 음악을 계속 이어 나가기 좋은 환경은 독일이라고 생각한다.

독일은 문화적으로 매력적인 나라이다.

베를린에는 세 개의 오페라 극장이 있어 매 시즌마다 다양한 오페라를 접할 수 있다. 현대음악을 즐길 수 있는 기회도 풍성하다. 여러 음악적 인프라를 즐길 수 있는 것도 독일 거주의 큰 장점이다.

 

청중이 즐거운 음악을 쓰기 위하여

곡을 쓸 때 제스처가 특징적이고 소리가 분명하다. 이러한 스타일이 끊임없이 반복되어 한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작품을 관통하는 작곡 원리가 궁금한데.

3중주 이상의 편성에서 리듬을 쓸 때 완성된 리듬을 만들어 놓고, 이 리듬들을 계층별로 혹은 악기별로 나누어 다양한 소리를 입히는 과정을 거친다. 그러면 시시각각 여러 소리의 조합들이 만들어지고 긴장감도 생긴다. 다양한 소리를 하나의 틀 안에 담으면 효과적이다. 한편 음향은 계속 공부해야 하는 부분이다. 공부하지 않으면 쓰던 것만 쓰게 되고 결국은 ‘돌려막기’로 인해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다.

소리 자체에 대한 연구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는 것 같다. 작품들은 구조적인 설계에 의해 구축된 건축과도 비슷하다. 그런데 최근에는 ‘느낌’이라는 비구상적인 접근이 눈에 띈다.

소리 자체에 대한 관심이 나의 토대인 건 확실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롱런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을 계속하고 있다. 작곡을 시작할 때에 곡을 아우를 수 있는 무엇, 즉 철학적 사고나 예술적 개념이 있으면 확실히 중심이 더 잡히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음악적 상상력이 더 펼쳐질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래서 소리에서 출발하기 이전에 철학서도 뒤적여 보고 음악 외 예술에도 관심을 가지려 노력하고 있다. 그래도 느낌과 직관은 작곡에 있어서 분명 중요하다.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작곡을 해도 마지막에 직관을 가지고 다듬으면 훨씬 좋은 곡이 탄생한다고 생각한다.

즉흥연주와 즉흥작곡의 중요성도 지속적으로 언급해왔는데.

작곡가도 악기와 오선지로 손을 자주 풀어줘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작곡가의 독창성을 확립하는 단초 역할을 할 수 있다. 즉흥연주나 즉흥작곡을 활용한 곡은 ‘비욘드 더 바운더리(Beyond the boundary)’ 시리즈로 계속해서 이어갈 예정이다. 결국 음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재미’이다. 청각적 유희이든 사유적 유희이든 청중이 즐거웠으면 좋겠다. 곡의 메시지가 전달되어도 재미가 없으면 다시 연주되기 힘들다.

즉흥작곡을 시도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학습한 방식으로부터 벗어나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과거에는 누가 봐도 잘 썼다고 할 만한 곡을 쓰고 싶었다. 잘 정돈된 곡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은 정형화된 스타일에서 탈피해 조금 다르게 쓰고 싶다. 곡이 좀 이상한데 기억에 남는 곡이라고나 할까? 혹은 들을 때는 별로였는데 프로그램 노트를 읽으면 한 번 더 들어보고 싶은 그런 곡을 쓰고 싶다.

2019년에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프로그램을 이수하면서 국악기를 처음으로 다뤘다.

현대음악에서 전통악기의 역할이 분명하고 자연스러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이런 차에 연구비 지원을 통해 대금을 배우고 악기에 대한 궁금증을 시원하게 해소할 수 있었다. 당시 작업했던 ‘그랭이’는 정악대금과 산조대금을 모두 사용해 보고 싶은 욕심으로 접근했다. 산조대금의 조율체계 때문에 플레이트벨, 타이 공과 같은 타악기도 썼고, 미분음정을 활용한 섹션도 중간에 추가했다. 한 곡에 많은 내용을 넣었지만 그간 배운 것들을 다 사용해 보고 싶었다.

한국의 전통악기를 위한 작품을 쓰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가?

‘그랭이’를 쓸 때 여러 국악인에게 자문을 구했는데, 논리보다는 전통, 자료보다는 구전이라는 대답을 들을 때마다 조금 답답했던 기억이 있다. 또한 12율명을 서양음악의 12음체계와 오선보로 이해하려고 노력했는데, 한문과 정간보로 접근하니 오히려 쉽게 이해되는 경험을 했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이렇게 바뀌는 데에 3~4달이 걸렸다. 산조대금으로 6도 이상 하행하는 글리산도가 자연스럽게 되는 것도 굉장히 놀라운 일이었다. 서양 목관악기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전통악기는 미분음 연주가 자연스럽다. 어쩌면 전통악기가 현대음악에 굉장히 적합할 수 있다.

앞으로 전통악기를 위한 작품을 계속 쓸 계획인지?

시작일 뿐, 기회가 있다면 계속 쓰고 싶다. 하지만 전통악기를 위한 작곡에 대해 한국적 정체성을 확립한다는 생각과는 거리를 두고 싶다. 2019년 도나우에싱엔 페스티벌에서는 레트로 열풍과 맞물려서인지 조성 혹은 3화음을 활용한 곡들이 꽤 많았다. 하지만 음악은 굉장히 새로웠다. 소리의 재료에 대해서는 항상 열려 있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CCM 활동도 보인다.

2008년부터 꾸준히 아이들을 위한 기독교 동요를 쓰고 있다. 성가곡도 몇 곡 써놓은 작품이 있다.

 

현대작곡가의 치열한 고민

올해 한 인터뷰에서 ‘작곡이 즐겁지 않고 피하고 싶을 때가 많다’고 언급했다.

점점 이상은 높아지는데 내 곡에서 실제 들리는 소리와는 괴리가 크다. 괴리를 줄이려면 돌파해야 한다. 인내하고 탐구하는 자세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우회적으로 말하면 조금 더 멋진 곡을 쓰고 싶은 욕망이 큰 듯하다. 작곡을 처음 시작하고 30%가 나올 때까지는 힘이 많이 든다. 결과물은 없는데 시간은 가고 머릿속은 복잡하기 때문이다. 과정은 힘들지만 재미를 느끼니 계속하는 것이다.

오늘날 현대음악은 청취자가 드물고, 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미미하다. 심지어 새로운 작품을 발표하는 것조차 어렵다. 이러한 현실에서도 현대음악을 하는 의미, 현대음악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현실이 그러하다면, 현실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현대음악은 현대에 작곡되고 있는 클래식 음악이다. 현대음악을 부정하는 것은 역사의 부정이 아닌가? 현대음악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역사 안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변화한 음악이기 때문이다.

현대음악의 청취자가 적은 것은 현대음악이 연주되는 기회가 적어서다.

올해 교향악축제에서도 현대 창작곡은 단 한 곡뿐이더라(최수열/부산시향이 4월 9일에 김택수의 ‘짠!!’을 연주했다). 국내에 많은 교향악단이 있지만 정기연주회에 현대음악을 올리는 경우는 드물다. 한국에는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이 많다. 한 시간이 넘는 말러의 교향곡, 세 시간이 넘는 바그너의 오페라에 객석이 꽉 차는 것을 보면 놀랍다. 이러한 청중이 현대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것이 아쉽다. 국가가 전적으로 지원하는 현대음악 앙상블이 없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이는 무수히 많은 현대 실내악곡이 지속적으로 연주될 여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속적인 위촉이 없는 것도 안타까울 듯하다.

그저 지원사업의 일환일 뿐이다. 오히려 연주를 해주면 작곡가들이 고맙게 생각한다. 작품 사용료, 악보 대여료를 요구하는 것은 무례하다고 여겨지기까지 한다. 현대음악의 잘못이라기보다는 현실의 잘못이다. 현실 개선이 필수적이다.

글 송주호(음악 칼럼니스트)

집필과 해설, 공연기획 등 다양한 접점으로 우리시대 음악으로서의 클래식을 나누고 있다. 서울시향 ‘콘미공’ 진행자, 화음챔버오케스트라 자문위원, 현대음악앙상블 소리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있다

 

 

 


공연정보

Concert of Risonanze Erranti

2021년 중 | 발표곡 distant hocket (2021)

Via Nova Ensemble

2022년 중 | 발표곡 신작 예정 (2022)


김은성을 더 알고 싶다면!

composereunsung.wordpress.com


음반 소개

Modern Percussion

수록곡 Beyond the boundary –

Chorale from far away for 4 snare drums (2016)

림스 타악기 앙상블(Lim’s Percussion Ensemble)이 연주했던 프로그램 중 한국 작곡가들의 작품으로만 구성한 음반이다. 작곡가 김은성, 조우성, 최주진, 김민표의 타악기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이 돋보이고, 김은성의 작품이 그중 일부로 들어가 있다.

 

Thüringer Kompositionspreis

수록곡 Grumbach for Orchestra (2016)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역대 튀링겐 작곡상 수상자들의 위촉작품을 수록한 음반이다.

 

 

주요 작품 리스트

  • 플루트와 대금을 위한 협주곡 ‘그랭이’ (2019)*

길이 16분 | 편성 관현악

  • Cold Stream for Orchestra (2016)

길이 16분 | 편성 관현악

  • Hybrid Sound Interaction (2018)

길이 10분 | 편성 플루트, 기타

  • Im Innersten (2017)

길이 10분 | 편성 큰 앙상블

  • Beyond the boundary – Chorale from far away (2016)

길이 12분 | 편성 네 개의 스네어드럼

  • mobile Elemente (2012~13)**

길이 12분 | 편성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플루트와 대금을 위한 협주곡 ‘그랭이’*

‘그랭이’는 선조들이 사용한 얇은 대나무로 만든 집게 모양의 연장이다. 그랭이로 자연석 그대로의 모양을 나무 기둥에 옮긴 것처럼, 김은성도 플루트와 대금의 어법을 그대로 한 작품에 녹였다.

 

 

 

mobile Elemente**

아홉 가지의 음악적 매개변수(단장·고저·명암·음·소음·휴지)를 통해 소리들을 나누고, 이 요소들은 여러 부분에서 다양하게 결합, 변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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