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ET THE ARTIST 11
피아니스트 손열음”
플루티스트 최나경이 만난 세계의 음악인 ⑪ 피아니스트 손열음 그녀의 반전 매력!
오래전에 보았던 메조소프라노 조이스 디도나토의 인터뷰가 문득 떠올랐다. 그녀와 같은 연령대의 메조소프라노 체칠리아 바르톨리가 데뷔를 정말 일찍 했던지라 늘 한참 위의 선배인 것처럼 느껴졌더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손열음을 생각하면 딱 그랬다. 그녀의 당찬 행보는 초등학생이었을 때부터 대한민국을 시끌시끌하게 했고, 그때부터 내 머릿속에 있는 손열음은 늘 엄청나게 거대한, 그야말로 대선배 같은 존재였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영상으로 난생처음 만나게 된 손열음은 나더러 되레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순간 “맞다, 내가 나이가 좀 더 많지”, 새삼 깨닫는다. 어색한 호칭에 적응할 겨를도 채 없이 그녀와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녀의 오랜 팬이다 보니 으레 개인적인 질문도 많았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손열음의 반전 매력에 깔깔 웃어대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그리고 인간적인 손열음을 조금씩 알아가며 마음 한 켠이 훈훈해지던 시간이었다. (인터뷰 영상은 QR코드 참조)
한국에서 다시 격리하고 있다. 워낙 혼자 연습하는 시간이 많은 음악가에게 격리가 삶의 큰 변화는 아닐 것 같다. 그렇다. 본래 거의 안 나가는 성격이다 보니 얼마 전까지는 격리에 대해 큰 불편이나 불만이 없었다. 그런데 지난주 자가격리 앱에서 오류가 나서 자리를 벗어났다며 전화가 와서 조금 억울하다. 또 스마트폰을 만지지 않고 한참을 있다 보면 움직임이 없다고 다시 경고가 뜬다. 뭔가 감시를 받는다는 느낌이 썩 좋지는 않다(웃음).
보통 때처럼 며칠마다 다른 도시를 다니지 않고 이렇게 한 곳에 2주씩 있게 되면 일상의 루틴이 생길 듯도 한데. 지금까지 이틀 이상 같은 시간표대로 살아본 날이 없었던 것 같다. 기상과 취침 시간이 매일 달랐는데 격리를 하면서부터는 점점 늦어져서 아침 7~8시에 잠자리에 들게 되는 날도 늘었다.
여러 나라로 투어를 다니며 연주를 소화할 때 힘든 점이 있다면? 잠도 잘 자는 편이고 음식도 가리지 않는다. 불편함이 하나 있다면 가는 곳마다 피아노가 바뀐다는 점이다. 좋은 홀임에도 불구하고 최상의 상태의 피아노가 갖추어진 곳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어렸을 때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점점 악기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짐에 따라 그 부분이 힘들어졌다. 표현하고 싶은 소리가 많은데 그 소리가 쉽게 나지 않을 때 그렇다. 작게 연주하는 것에 더 신경을 쓰는 편인데 그런 피아니시모가 쉽게 되지 않는 피아노일 때 종종 곤욕을 치른다.
음악 속에서 걸어온 길
어린 나이부터 많은 것을 이루어 내던 손열음의 유년기가 궁금하다. 인생에서 가장 많이, 그리고 꾸준히 연습했던 시간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규칙적으로 연습했다. 그래서 지겨웠던 기억도 물론 있고. 하지만 서울이 아닌 지방(원주)에 살아서인지 친구들 간에 경쟁적인 분위기도 없었고 잘 어울려 논 기억도 많다.
한국에서만 교육을 받고도 해외의 굵직한 콩쿠르에서 좋은 성과를 내 굉장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인데(웃음). 어쩌다 국내에서만 배우고 해외 콩쿠르에서 입상한 첫 세대가 되었다. 당시에 외국어가 유창한 것도 아니었고 성격도 활달하지 않아서 그냥 혼자 조용히 있다가 무대에 올라가 피아노만 치고 돌아왔다.
그렇게 피아노만 치고 무대를 내려오면 상을 휩쓸었다(웃음)! 사실 떨어진 콩쿠르도 많았다. 하지만 떨어지면 마음 편하게 나머지 콩쿠르를 모두 구경할 수 있어서 더 즐거웠던 것 같다. 워낙 음악 듣는 것을 좋아했는데, 콩쿠르에 참가한 많은 연주자의 무대를 라이브로 감상할 수 있었다. 공짜로 좋은 음악회를 보는 기분이었다고 할까.
오랫동안 독일에서 살고 있는데, 이제 독일이 집 같은지 혹은 아직도 외국 같은지.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하고 만 20세에 독일로 유학을 갔으니 꽤 늦게 외국에 간 편이다. 그때부터 쭉 하노버에서 살고 있지만 연주여행이 잦은 탓에 그곳에 산다고 말하기가 민망할 때가 많다.
한국과 독일의 음악적 차이점이 있었나? 하노버에서 나를 가르쳐주신 아리에 바르디(1937~) 교수님께 정말 많이 배웠다. 첫 일 년 동안은 그분의 가르침이 너무 좋아서 거의 황홀경에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매 레슨이 충격적이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충격적이었을까. 유학을 가면서 ‘어떻게’ 보다는 ‘무엇을’ 하느냐를 연구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하는 것은 원래 있는 텍스트를 ‘해석’하는 예술인데, 그 해석을 왜 그렇게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을 찾을 수 있는 연주를 하고 싶었고, 그 부분을 해결해주는 교수님을 만나서 너무나 행복했다.
평창대관령음악제(7.28~8.7)의 음악감독으로서 참신하고 흥미진진한 프로그램을 매년 올리고 있는데. 이번 음악제의 주제는 ‘산’이다. 한국어로는 ‘Mountain’을 의미하는 ‘산’이고 영어로는 ‘Alive’라고 적었다. 삶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시기를 살고 있기에, 그 주제와 관련한 공연들을 올릴 예정이다. 올 초까지만 해도 코로나가 진정되지 않을 것 같아 불안했지만 다행히 상황이 나아지고 있어서 예정대로 축제를 진행할 수 있을 듯하다. (평창대관령음악제 QR코드 참조)
항상 주제와 곡들이 서로 긴밀히 연결되며 감동의 깊이를 더한다. 언제 영감을 받는지? 쉬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럴 때 좋은 영감과 생각이 떠오를 때가 많다.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2015)가 출간된 다음날 책을 다 읽었던 팬이다. 다음 출판될 책을 그때부터 기다리고 있다. 그 책은 ‘중앙선데이’에 연재한 글을 모아 출판한 것이었다. 앞으로도 그렇게 글이 쌓이면 책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잘 모르겠다.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일부러 찾아서 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럼 아쉽지만 책은 좀 더 기다리기로 해야겠다. 대신 7월 말에 새로운 음반(Onyx)이 나온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작곡가 니콜라이 카푸스틴(1937~2020)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오랫동안 지병을 앓다가 작년에 타계했다. 올해 7월이 그의 서거 1주년이라서 그를 기리기 위해 녹음했다. 카푸스틴의 소나타 2번 Op.54, 8개의 에튀드 Op.40, 변주곡 Op.41, 소나티나, 그리고 그의 마지막 작품인 ‘The Moon Rainbow’ Op.161 등을 수록했다.
무대 뒤의 손열음
나 같은 경우엔 무대에서 내려오면 ‘허당’이라 친구들이 답답하다 못해 화가 난다는 정도다. 똑똑한 이미지의 손열음도 그런 면이 있을지 물어보고 싶었다. 엄청나다. 예를 들자면, 10과 100, 1,000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어렸을 때도 내가 가진 손가락의 수를 넘어가면 계산을 잘 못했다.
아차! ‘술’을 잘 못한다는 이야기로 잘못 듣고 잠시 헷갈렸다!(웃음) 그리고 방향감각도 없다. 예전에는 화장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머리를 꾸밀 때 고데기 잡는 각도를 몰라서 항상 포기했다.
화장 이야기가 나와서 생각난 일화가 있다. 몇 년 전 어느 공항에서 한 행인이 나에게 인사를 하면서 “손열음 씨도 공항에서 뵌 적이 있는데 그분은 민낯인데도 피부가 도자기 같았다”고 말해주었다! 와, 정말 그렇게 말씀하신 분이 있었다니(박장대소)!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감사하다고 해야 하나. 요새는 점점 화장을 안 하고 다니는 편이다. 비결을 굳이 찾자면 어머니가 피부가 좋으시다.
깊은 수면을 하는 편인가? 자는 것을 좋아한다(웃음). 매일의 수면시간은 불규칙하긴 하지만, 한번 자면 죽어도 모를 만큼 푹 잔다. 그러면서도 일어나야 하는 시간이 되면 알람 없이도 저절로 일어난다.
손열음의 혈액형과 별자리가 궁금하다. 나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이 다 맞추는데 혈액형은 O형이다. 별자리는 황소자리.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K클래식 열풍, 그 중심에 손열음이 있다. 앞으로 바라보는 K클래식의 전망은? 예전보다 관객이 클래식 음악 공연을 편한 마음으로 즐기는 것 같아 기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클래식 음악 공연은 정해진 관객층의 것이었는데, 요즘은 더 많은 사람이 쉽게 발걸음하고 있는 것 같다. 젊은 관객층이 줄어들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이전에 많이 있었지만 현재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다.
다가오는 공연 중 가장 기대되는 공연이 있다면? 요즘은 공연이 취소되지 않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다. 2021/22 시즌부터는 유럽에서도 공연들이 재개되어서 정말 기다려진다.
글 최나경
동양인 최초, 여성 최초로 빈 심포니의 플루트 수석 을 역임하고, 현재 오스트리아에 거주하며 솔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유튜브 채널 ‘Jasmine Choi 최나경’에서 연주·인터뷰 영상, 플루트 전공자들을 위한 영상으로 팬들과 소통하고 있으며, 지난해 9월부터 월간객석 ‘Meet the Artist’ 시리즈를 통해 글과 영상으로 세계 음악인들을 소개하고 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1986~)은 초등학교 5학년이던 1997년 영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최연소 2위 입상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이듬해 금호문화재단(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이 영재 발굴 및 지원 프로그램으로 시작한 금호영재콘서트에 첫 주자로 발탁되면서 음악계에 데뷔하였다. 이후 루빈스타인, 반 클라이번,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차례로 입상하였고, ‘중앙선데이’에 5년간 기고해 온 칼럼들을 모아 2015년 첫 에세이집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를 출간하기도 했다. 다양한 연주 투어 중에도 고향인 강원도 원주 그리고 서울 예술의전당의 홍보대사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2018년부터는 평창대관령음악제의 음악감독으로 임명되어 의미 있는 주제와 참신한 프로그램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