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바로크, 다시 피다
3월의 봄, 바로크 음악을 재조명하는 공연들
우선, 당신에게 던지는 질문 하나. ‘바로크’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화려하고 우아한 궁정과 귀족들, 고풍스러운 장식, 혹은 마음을 평안하게, 더 멀리는 경건하게까지 해주는 듯한 선율들. 바흐와 헨델, 비발디와 사계…. 하지만 방심하면 안 된다. 같은 가지에서 피어났지만, 이 봄에 다시 돋을 새싹은 당신이 지난해에 본 그 이파리가 아니다. 바로크 음악은 같은 자리에서, 다르게 피어나고 있다. 2018년 여름, 이탈리아 풀리아 지방에서 열린 발레 디트리아(Valle D’ltria) 페스티벌에서는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에 프레디 머큐리 분장의 성악가가 무대에 올랐다. 젊은 연출가 조르조 상가티(1981~)는 ‘바로크(Baroque)’를 ‘바-록(Ba-rock)’으로 재해석해 오페라 속 기독교인과 터키인의 투쟁을 대중가수와 터키인의 대립으로 그렸다. 포마드 헤어에 콧수염을 단 ‘리날도’에게서는 익숙한 바로크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보다 2년 앞서 독일에서는 라모의 ‘우아한 인도의 나라들’의 작품이 가진 이국적 배경을 통해 이민자들의 이동과 사라지지 않는 국경의 문제를 환기한다. 더 이상 ‘그 시대의 무엇’으로 머물러 있지 않은 바로크 음악은 현실과 교차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미학의 탄생에 위치한다. 다시, 당신에게 던지는 질문 둘. 위와 같은 공연을 관람한다면, ‘바로크 공연을 보았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두 공연 모두 음악의 재연에는 충실했다. ‘음, 바로크 음악을 연주하긴 했는데, 바로크 느낌은 아니고….’ 그렇다면 그간 우리가 향유한 것은 바로크 ‘음악’인가, 아니면 바로크적인 ‘이미지’인가. 이번엔, 당신이 던질 것 같은 예상 질문 하나. 굳이 재해석한 바로크 음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 이제 그 답을 해줄 세 예술가를 만나볼 시간이다. 가까운 3월, 새로운 이파리로서의 바로크 음악을 제대로 조명하고 있는 이들이다.
글 허서현 기자
Ⅰ. 바로크는 현재 진행형이다 | 클라리네티스트 조성호 Ⅱ. 바로크는 혁신이다 | 피아니스트 안종도 Ⅲ. 바로크는 확장이다 | 하프시코디스트 조성연
바로크는 현재 진행형이다
클라리네티스트 조성호
바로크 음악 작곡가들이 클라리넷을 위해 남긴 작품은 찾기 어렵다. 18세기 초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인 클라리넷 개량 작업이 이루어진 탓이다. 오히려 이 지점이, 조성호에겐 바로크 음악에 대한 갈망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바로크 작곡가 비발디(1678~1741), 그리고 초기 고전주의 작곡가 요한 슈타미츠(1717~1757)와 카를 슈타미츠(1745~1801)의 협주곡으로만 구성된 공연을 계획했다.
실제로 비발디가 클라리넷을 위해 남긴 협주곡은 없다. 이번에 연주될 비발디의 작품은 어떻게 선정됐나. 클라리네티스트 마틴 프뢰스트가 2020년 비발디의 기존 오페라 아리아에서 모티브를 얻고, 협주곡으로 새롭게 편곡하며 음반 ‘Vivaldi’를 발매했다(Sony). 그도 나처럼 바로크 레퍼토리에 갈증을 느낀 것 아닐까. 음반을 접했을 때, 깊이 감명받았고 늘 연주하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한국에서 이 작품은 이번이 초연이다.
사실 우리에게 익숙한 건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이 최선이다. 슈타미츠 부자의 협주곡을 선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 모차르트의 것이 실질적으로 연주되는 것 중 가장 고전에 가깝다. 모차르트 활동 시기에는 클라리넷이 독주용으로 개량이 이루어졌고, 이를 활용해 곡을 남겨준 모차르트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이다. 슈타미츠 부자의 협주곡은 클라리넷을 대표하는 협주곡에 속하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연주에서 활용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모차르트와 활동 시기가 비슷하면서도 50년 이상 차이가 난다. 비슷한 시기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고전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였기에 음악에도 큰 차이가 있다. 모차르트의 곡처럼 연주의 효과도 크게 없고 청중에겐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감수하고서라도 이 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클래식함’을 꼭 소개하고 싶었다.
작품이 작곡된 당시보다 후반기에 개량된 악기로 연주한다. 그 차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가. 내가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비발디와 슈타미츠 부자가 지금의 클라리넷을 볼 수 있다면 무엇을 했을까’이다. 그들이 본 클라리넷은 키도 거의 없는, 아직 나무밖에 없어 리코더에 가까웠던 악기였으니까. 현대의 기술적 완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비발디가 알고 있던 18세기 클라리넷 소리에 최대한 가깝게 다가가고 싶다. 그 시대의 음악이 가진 특유의 절제된 아름다움에 대한 고증과 현시대를 살아가는 연주자의 생각이 교차할 때 나오는 시너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재 도쿄필 종신수석으로 활동 중인 만큼, 협연 레퍼토리에 대한 폭넓은 해석도 기대된다. 연간 100회 이상의 연주를 소화하며, 음악적으로 한층 더 넓고, 성숙해졌다. 만약 브람스 클라리넷 소나타를 연주한다고 가정해보면, 그의 모든 관현악곡을 다뤄본 연주자가 가지는 이해도는 당연히 차이날 수밖에 없다. 관객에게도 이번 공연이 한 사람의 협연자가 아닌 무대 전체에 시선이 맞춰지길 바란다. 협연자와 오케스트라, 18세기 음악과 21세기 연주자가 한데 어우러짐을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사진 목프로덕션
조성호(1985~)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 후 독일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대학에서 벤젤 푹스 사사로 디플롬과 마스터과정을 수료했다. 한국에서 목관 5중주 뷔에르 앙상블 리더 등 다양한 실내악 무대에 서며, 2017년부터 도쿄 필하모닉 수석으로 활동 중이다.
Performance information
조성호의 콘체르토 플러스 3월 31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조성호(클라리넷)/콜레기움 무지쿰 서울 카를 슈타미츠 클라리넷 협주곡 3번 외
‘비발디 : 오페라 아리아에 의한 클라리넷 협주곡’ 마틴 프뢰스트(클라리넷)/콘체르토 쾰른 2020년 발매된 클라리네티스트 마틴 프뢰스트의 음반. 안드레아스 N. 타르크만이 편곡을 맡아 비발디의 아리아를 기반으로 클라리넷 협주곡을 썼다. 총 6곡이 수록되어 있으며, 3월 공연에서는 그중 1번 ‘산탄젤로’·2번 ‘불사조’가 연주된다.
바로크는 혁신이다
피아니스트 안종도
장 필리프 라모(1683~1764)가 작곡가이면서 동시에 대표적인 바로크 음악 이론가로 남게 된 것은 그의 진취적 음악 행보의 결과다. 그의 저서 ‘화성론’은 현대 화성법 발전의 토대가 되었지만, 발표 당시 화성에 대한 수직적 사고방식은 논란의 대상이기도 했다. 이탈리아 음악이 지배적인 시절, 그는 오페라에 프랑스적 요소를 확대했다. 기악 작품으로는 동시대 쿠프랭의 것과 비교했을 적에도 극적 표현 범위가 넓다. 라모의 행보는 오페라에는 글루크로 이어지는 개혁을, 기악에는 J.S. 바흐 등에게 영향을 남긴다. 300여 년 전 라모의 음악이 가졌던 이 뜨거운 창조적 에너지를 표현하기 위해, 안종도가 집어 든 것은 프랑스 라신의 희곡 ‘페드르’다.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을 바탕으로 17세기 후반 개작된 작품이다. 아테네의 왕비인 페드르가 가진 양아들 히폴리투스에 대한 ‘금기적 사랑’이 그 내용이다. 프랑스 극작가 클레망 카마르-메르시에와 함께 안종도가 한 번 더 새롭게 각색한 ‘연극이 있는 피아노 리사이틀-페드르’는 한 사람이 가진 순수한 감정이 왜 사회상에 따라 욕망 혹은 비난거리로 비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라모의 음악은, 주인공의 감정을 대변한다. 이 과정에서 바로크는 이미지의 편견을 벗고, 우리 삶에 입체적으로 살아있는 요소가 될 수 있을까.
라모의 작품으로 음악극을 만들게 된 계기는. 라모의 음악을 평소 내 머릿속에 늘 들어있다고 표현할 정도로 좋아한다. 라모와 동시대 인물인 라신의 ‘페드르’를 읽고, 바로크 음악이 작곡된 시기에 이런 터부적 이야기가 통용되었다는 것에 놀랐다. 바로크 시대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의미를 벗어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신의 텍스트를 통해, 프랑스 음악이 가진 감상의 한계를 넘어서고 싶었다.
그렇다면 라모의 음악이 가지고 있다는 진짜 매력은 무엇인가.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은 감정의 환희. 바로크 음악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사람의 감정을 위한 음악이라고 느낀다. 끝없는 상상력이 담겨 있고, 이번에 연극 작업을 하면서 이 감상에 더 자신감을 얻었다.
공연은 어떤 형태로 진행되는가. 라신의 ‘페드르’를 현대적 언어로 각색한 모노드라마에 라모의 하프시코드 모음곡집 중 ‘프렐류드’ ‘암탉’ ‘이집트 여인’ 등이 결합한 음악극이다. 배우 한 명이 연기하고, 내가 피아노를 연주한다. 한국 공연에서는 자막(조만수 번역)을 띄울 예정이다.
원래 극음악으로 쓰인 작품들은 아니다. 원래 라모의 하프시코드 작품 일부는, 오페라를 위해 쓰인 경우가 많다. 그만큼 드라마틱한 힘이 가득한 작품이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용도의 가능성이 이미 열려 있기에 극 형식에 잘 맞는다.
구체적으로 어떤 작업 과정을 거쳤는지 궁금하다. 먼저, 내가 영감을 받은 라모의 음악을 작가에게 보내고, 작가는 본인이 상상하는 8개의 에피소드를 보냈다. 이 과정을 거쳐 연주 목록과 시놉시스를 정했다. 두 번째로는 음악의 프레이즈와 텍스트를 세밀하게 조정했다. 프레이즈가 8개면, 문장도 8개가 되도록 텍스트를 수정했고, 음악의 악상에 따라 중요한 단어의 위치를 조절했다. 하루에 열 시간씩, 꼬박 2주일이 걸렸다.
작업의 과정을 들어보니, 독일 가곡의 형태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슈만의 가곡을 무척 좋아한다. 이 작업을 시작하게 된 잠재적 원인이기도 하다. 음악과 텍스트가 만나면서 생기는 무한한 시너지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이러한 형태는 오늘날 시도해도, 여전히 새롭고 독창적인 표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연극이라는 장르와의 협업에 어려운 점은 없었나. 처음에는 막막하기도 했고,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해 어렵기도 했다. 음악의 모든 요소를 언어로 설명해주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곧 도구만 다를 뿐, 감정의 근원과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가 같다는 것을 알았다. 똑같이 배고픔을 느껴 밥을 먹지만 누군가는 젓가락을, 누군가는 포크를 사용하는 것과 같다. 처음에는 머리로만 이해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가 같은 숨 안에 있구나’라고 느끼는 순간에 자주 도달했다.
독일에서 공연 프로덕션(Studio Philip An)을 설립하고, 이어 슈베르트·슈만 등의 작품으로 협업을 통한 3부작을 만들 예정이다. 클래식 음악의 협업에 힘을 쏟는 이유는. 첫째는 고전에 대한 존경이다. 고전을 통해 이해할 수 있는 현대의 이슈가 있다고 생각하고, 이것이 고전이 역사를 통과해 살아남아 있는 이유다. 고전 음악에 덧대진 이미지 외에 당대 작곡가들이 작품을 내놓기까지 그들이 속한 사회에서 어떤 도전을 했으며, 그 의의가 무엇인지 돌아보고 싶다. 그 힘을 믿기에, 장르의 협업으로 고전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싶은 것이다. 두 번째로는 아티스트로서 새로운 것에 대한 예술적 갈망이다. 후기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의 카메라타 모임에서 시와 음악의 결합에 도전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오페라라는 형식은 없었을 것이다. 지금 정립된 공연의 형태, 예를 들어 독주회의 모양이나 오케스트라의 공연 형태 등은 이미 1900년대 초반 또는 20세기 초반에 정립된 것이다. 공연의 형식은 변할 것이고, 나는 우리 시대에 아직 정립되지 않은 형식에 도전해보고 싶다.
바로크 공연의 동반자
극작가 클레망 카마르-메르시에
“안종도 프로덕션(Studio Philip An)의 ‘페드르’ 제안을 받았을 때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작품에 임했다. 피아노와 사람의 음성 사이에서 오가는 형태는 매우 드물고 흥분되는 예술적 기회였다. 내가 창작한 극본에서 ‘페드르’가 자신의 마음에 의문을 품거나, 억압을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랐다. 또한 여배우가 페드르라는 인물에서 한 발짝 물러나, 이 허구 인물의 운명에 대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형식을 썼다. 예를 들어 마지막에 이르러 ‘페드르의 자살’처럼, 이야기의 흐름은 같지만, 원작이 죽으며 도덕성을 회복하는 의미라면 우리는 그 죽음이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인지 물음을 던진다. 무엇보다 배우의 목소리도 마치 하나의 악기처럼, 피아노와 하나 되어 조화를 이루는 것이 연출에서 가장 중요했다.”
배우 라파엘 부샤르
“안종도로부터 연락을 받은 시기는 ‘페드르’ 연극을 1년 넘게 공연하고 있을 때였다. 오랫동안 이 시구절을 표현하면서, 이 상황을 현대적으로 표현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해왔다. 동시대적 언어로 표현할 수 있어 흥미진진했고, 문학·음악·연극의 융합은 완전히 새로웠다. 모든 것이 실험적이면서 매혹적이었다. 극에서 페드르는 유일한 대화자로 인물의 독백을 표현한다. 음악은 그사이를 가로지르고, 감정을 앞서가기도 한다. 안종도가 연주한 음악은 내게 즉각적인 감동을 주었다. 내가 연주를 밀어내기도 하고, 음악이 질투에 눈먼 나를 숨 못 쉴 지경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이 심장 박동을 관객과 함께 느끼고 싶다.”
안종도(1986~) 롱 티보 피아노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를 차지하며 유럽 무대에 데뷔했다. 런던 심포니·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상트페테르부르크 심포니 등과 협연했으며, 아트센터 인천에서 마티네 콘서트 진행, 2021 교향악축제에서 하이든의 하프시코드 협주곡을 연주하며 주목받았다.
Performance information
연극이 있는 피아노 리사이틀-페드르 3월 25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장 필리프 라모(음악)/클레망 메르시에·장 라신(극본)/ 안종도(피아노·연출)/라파엘 부샤르(모노 드라마)
바로크는 확장이다
하프시코디스트 조성연
협주곡을 의미하는 ‘콘체르탄토(Concerto)’의 어원은 라틴어 ‘콘체르타레(Concertare)’다. ‘협력’과 ‘경쟁’의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이 단어는 독주 악기와 오케스트라가 서로 대조되며 바로크 시대에 지금의 협주곡 형식으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대조는 바로크 시대의 주요한 예술 사조 중 하나다. 조성연이 앞둔 공연은 이 바로크의 예술 사조 한 부분을 음악 밖까지 확장했다. 하프시코드 두 대의 연주에 두 무용수가 듀오를 이뤄 춤을 선보인다. 음악과 무용의 감각적 대조, ‘바로크’와 ‘현대’라는 시대적 대조, 그리고 각각의 예술가가 가진 표현의 대조까지 중첩된 대조의 이미지로 강렬한 메시지를 가지게 됐다.
장르의 협업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예술은 항상 시대를 반영한다. 바로크 음악에도 당대의 철학이 녹아들어 있듯, 지금의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가 ‘시각화’와 ‘융복합’이다. 글로 읽고 접하던 많은 것들이 영상으로 대체됐고, 독립된 분야들이 결합해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내가 연주하는 바로크 음악이 결합할 수 있는 다른 예술에 관심을 두게 됐다.
여러 예술 장르 중 현대무용을 택한 이유는. 청각 예술인 음악의 ‘시각화’를 계획했을 때 가장 이상적인 형태였다. 바로크와 현대무용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크 음악은 하나의 큰 틀에서 즉흥과 통주저음, 꾸밈음 등의 기법이 자유롭게 적용된다. 현대무용도 무용이라는 하나의 틀 속에 자신의 영감을 몸으로 자유롭게 표현한다고 느꼈다.
음악과 무용의 대조뿐만 아니라, 한 장르의 두 예술가가 듀오로 표현 스타일의 대조를 이룬다는 점도 흥미롭다. 함께 하프시코드를 연주하는 마르친 스비아트키에비치는 오래전부터 음악적으로 인간적으로도 교류하는 좋은 동료다. 우리는 같은 스승(자크 오그)을 사사해 같은 곳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전혀 다른 음악을 구사한다. 내가 정격연주의 극단을 추구한다면, 마르친은 정격연주에 틀을 두고 재즈 음악을 방불케 하는 자유로움을 추구한다. 기본적인 역사주의 연주(Historically Performance) 위에 드러나는 개성의 대조가 그동안 관객에게 좋은 반응을 얻어왔다. 내년에는 모차르트의 듀오 작품을 연주한 음반도 출시를 앞두고 있다.
하프시코드 듀오 연주는 자주 만나볼 수 있는 공연의 형태는 아니다. 철학에서 일컫는 인과율처럼, 모든 현상에는 이유가 있다. 하프시코드가 생겨난 초기에는 성악이나 춤을 보조하는 용도였지만, 걸출한 하프시코드 제작자 루커스 가족으로 인해 독주 악기로 들어도 아름답고 매력적인 악기로 급부상했다. 하프시코드 듀오 연주의 등장에는 경제적 여유가 뒷받침한다. 당시 동인도회사 등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네덜란드는, 왕국은 물론 가정에서도 비싼 하프시코드를 소유한 사람이 늘었다. 악기의 발전은 작곡가들이 많은 수의 하프시코드 독주곡을 작곡할 수 있도록 했고. 늘어난 보급은 두 대를 동시에 놓고 연주하는 작품의 수를 많아지게 했다.
이번 공연에서 연주될 작품들은 두 대의 하프시코드를 위해 남겨진 작품들인가. 대부분 두 대의 하프시코드나 건반악기를 위한 곡이거나, 한 대의 악기에 두 명이 함께 연주하는 연탄곡이다. 보케리니의 ‘판당고’는 기타와 현악 4중주를 위한 곡이었으나 편곡을 했다. 두 대의 하프시코드가 가진 다양한 매력을 위해 정통 협주곡 기법의 작품부터 푸가까지 전혀 다른 특징의 작품들로 구성했다.
무용과의 협업 과정은 어땠나. 연주 작품은 편하게 선정하고, 무용가 서일영에게 공유했다. 그의 표현 능력을 워낙 믿고 있어서 가능했다. 서일영의 춤을 처음 보았을 때 느낀 감탄이 지금도 생생하다. 모든 장르의 음악을 자신의 영감으로 표현하는 한계 없는 상상력에 놀랐고, 인간의 몸이 표현하는 자유롭고 섬세한 움직임이 바로크 음악과도 꼭 닮아 있었다. 바로크 음악이 가진 영감이 어떻게 시각화될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무대를 만들고 있다. 함께 하는 무용가 정지혜는 대조의 콘셉트를 확장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한다. 마르친과 나의 연주 스타일이 대조를 이루면서 효과를 내는 것처럼, 두 무용수의 춤이 무척 다르면서도 맥을 같이한다. 두 대조의 어우러짐이 가져올 결과물이 궁금하다.
바로크 음악이 가진 강점은 무엇인가. 과학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인간다움’에 대한 메시지가 깊게 와 닿는 시대다. 바로크 음악이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분야다. 가공되지 않은 자연의 재료는 인간의 음성에 가까운 편안한 소리를 내며, 말하는 방식에 가까운 연주법과 멜로디가 공감을 끌어낸다. 자연스러움에 대한 현대인의 결핍을 인간적인 매력으로 채워줄 수 있다. 바로크 음악이 가진 보편성과 여백의 미, 아름다움이 더 많은 청중에게 사랑받길 바란다. 사진 메이지프로덕션
바로크 공연의 동반자
안무가 서일영
“바로크 음악 공연에 현대 무용가로서 오르게 된 것은 처음이다. 하지만 어떤 음악, 혹은 소리를 만나게 되어도 나 스스로 체화된 춤이 나오는 것에는 확신이 있었다. 특정 시대의 음악으로 분류하는 것이 큰 의미는 없다. 첫날, 협업이 가능하도록 인연을 닿게 해준 윤대영 대표(메이지프로덕션)를 통해 조성연과 만나 바로크 음악이 가진 특징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 대조를 통해 전달하는 메시지가 크게 다가왔고, 함께 듀오를 이룰 무용가 정지혜와 나의 대조가 표현해낼 것에 집중하게 됐다.”
조성연(1978~) 연세대·네덜란드 헤이그 왕립 음악원을 졸업 후, 유럽· 미국 등지에서 활동하고 있다. 벨기에와 일본에서 음반을 발매했으며 현재 연세대 교회음악과 교수, 대전 바로크 음악제·연세 바로크 뮤직 페스티벌·아니마코르디 음악 감독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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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싱 바로크 3월 5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조성연·마르친 스비아트키에비치(하프시코드)/ 서일영·정지혜(무용) 요한 루트비히 크렙스 하프시코드 협주곡 a단조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