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다 칼로, 영원히. 끊임없이 재창조되는 한 여인의 삶과 예술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2년 3월 14일 9: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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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 영원히. 끊임없이 재창조되는 한 여인의 삶과 예술

오는 3월 뮤지컬 ‘프리다’ 초연에 이어 콘서트도 열린다

그럼에도, ‘인생이여 만세!’ 소아마비, 교통사고, 33회의 수술, 남편의 외도, 3번의 유산, 이혼, 신체 절단, 자살 시도까지.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1907~1954)는 굴곡진 인생을 살았다. 자신의 삶을 사랑한 그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도 예술로 승화시켰다. 척추가 내려앉는 와중에도 천을 매달아 턱을 괴고, 쇠로 만든 코르셋을 입은 채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던 프리다 칼로.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한 그를 누군가는 혁명가로, 누군가는 화가로 기억한다.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프리다 칼로의 다양한 면모를 여러 작품으로 만나본다

글 박서정 기자 사진 EMK엔터테인먼트·도서출판 비엠케이

화려한 쇼와 하이힐, 그리고 프리다!

 

뮤지컬 ‘프리다’

 

작·연출가 추정화 & 작곡가·음악감독 허수현

뮤지컬 ‘프리다’는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의 ‘인생 마지막 쇼’라는 콘셉트와 형식이 독특한 작품이다. 대본과 연출을 맡은 추정화는 “프리다 칼로에게 세레머니 같은 최고의 쇼를 만들어주고 싶었다”라고 설명한다. 그리하여 생애 마지막 순간, ‘더 라스트 나이트 쇼’에 출연한 프리다는 의족 대신 하이힐을 신고 신나게 춤추며 노래한다. 비운의 화가를 이렇게 묘사해도 되느냐고? 추정화의 생각은 좀 다르다. 고통조차 웃으며 감내한 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화려한 밴드 음악에 중남미 음악 특유의 가벼운 리듬은 경쾌함을 더한다. ‘프리다’의 음악을 책임진 허수현과 연출가 추정화는 뮤지컬 ‘루드윅’ ‘블루레인’ ‘스모크’를 연달아 성공시키며 창작뮤지컬계 명콤비로 자리 잡았다. 서로의 작업에 대해 치열하게 논쟁하고 솔직하게 평하는 것이 시너지의 비결이라고. “말을 많이 해서 이젠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이”라는 이들에게 ‘프리다’의 작업기를 자세히 들어보았다.

‘프리다’는 제14·15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2020·2021)에서 트라이아웃 공연으로 선보였고 이제 초연을 앞두고 있다.프리다 칼로를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을 구상한 계기는.

허수현 그녀의 마지막 작품 ‘삶이여 영원하라’(1954)를 보고 감동했다. 핏빛 수박에 새긴 ‘인생 만세(viva la vida)’가 내 마음속 깊이 새겨졌다. 프리다 칼로의 인생은 쉽지 않았다. 외과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17세에 겪은 교통사고로 인해서 꿈을 접어야만 했다. 절망에 빠져서 허우적거릴 만도 한데 그러지 않았다. 움직일 수 있는 오른손 하나로 거울을 보며 자화상을 그렸다. 포기를 모르는 사람, 그만두지 않고 다른 길을 모색하는 사람! 그런 멋진 사람의 이야기를 뮤지컬로 만들어서 모두에게 희망과 환희를 전하고 싶었다.

실존 인물에 대한 작품을 만드는 건 까다로운 작업이다.

추정화 사실적인 극은 처음부터 염두에 두지 않았다. 프리다 칼로를 좋아하고 잘 아는 사람은 싫어할지도 모르지만, 내 이야기에서는 그녀가 행복하기를 바랐다. 나는 그녀에게 하이힐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아픈 발로는 아마 평생 구두를 신지 못했을 테니까. 그런 프리다가 하이힐을 신고 신나게 춤추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쇼’ 형식의 뮤지컬이라는 아이디어도 여기에서 시작됐다.

허수현 프리다 칼로가 멕시코 출신이다 보니, 중남미 쪽 음악을 많이 듣고 뉘앙스를 접목하려 했다. 지역적 색채가 느껴지는 음악이 극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하는 게 관건이었다. 밝은 곡을 예로 들면 플라멩코·삼바·탱고 등 다양한 리듬을 통해 프리다 칼로가 고통을 이겨내는 과정을 그렸다.

하이힐을 신은 프리다가 등장하는 쇼! 그 쇼에 대해 말해보자.

추정화 프리다 칼로는 실제로 평행우주설을 믿었고, 또 다른 세계에 자신이 완벽한 모습으로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런 그녀의 생각을 녹여내고 싶었다. ‘더 라스트 나이트 쇼’에 출연한 프리다는 지나온 삶을 돌이켜보며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한다. 쇼의 크루가 프리다의 기억 속 인물을 연기한다.

이러한 액자식 구성을 음악적으로는 어떻게 풀어냈는지 궁금하다.

허수현 프리다의 인생 이야기와 쇼적인 색깔을 하나의 곡에 넣으려면 너무 슬프기만 해서도, 기쁘기만 해서도 안 됐다. 두 감정이 자연스레 교차하도록 곡을 구성했다. 장조와 단조를 오가는 첫 곡은 프리다 칼로의 기쁨과 슬픔을 복선으로 깔면서 관객의 호기심을 유발한다. 결혼식 장면에서는 파이프 오르간을 사용해 성스럽고 거룩한 예식을 표현했으며, 유산하는 과정에서는 호흡 소리를 구음으로 넣어 아픔을 전달했다. 또한 여성 4중창이 풍성하게 들리도록 음역과 화성 진행을 결정했다. 워낙 드라마가 강하다 보니 선율적인 부분에서 음폭도 넓게 썼다. 배우들한테는 조금 미안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뮤지컬 ‘프리다’에서 가장 중요한 넘버를 하나씩 꼽는다면?

허수현 앞서 말한 첫 곡 ‘La vi da’이다. 약 10분 길이의 곡으로, 인물을 소개하고 이 작품이 어떻게 흐를 것인지 암시한다. 뮤지컬의 전체적인 곡 흐름과 선율 구조가 이 곡 안에 다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추정화 ‘코르셋’은 프리다 칼로가 바로 서기위해 의지했던 코르셋과 목발을 오히려 고통에 당당히 맞서기 위한 도구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어둠을 딛고 일어선 그녀의 면모를 담아낸다.

화가 프리다에 매료되어 공연장에 오는 관객도 있을 테다. 프리다의 그림과 그림 그리는 모습은 어떻게 연출되나?

추정화 가장 고민한 부분이다. 무대 위에서 진짜로 그림을 그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프리다는 그림을 그릴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무너지는 육체를 붙들고 그림을 그렸을까? 그 장면이 ‘자화상’이란 곡에 담겨있다. 프리다의 생각이 내레이션으로 나오고, 그녀 스스로 붓이 되어 무대를 누빈다.

프리다가 사랑한 남편 디에고 리베라를 연기하는 크루까지, 전원을 여성 배우로 캐스팅한 이유가 있나?

추정화 판타지 속에서라면 프리다 칼로의 천사들이 그녀와 함께 극을 이끌어가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더 ‘프리다’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멋지잖나? 아름답고 강한 여성 4명이 무대 위를 누비는 것. 최정원과 김소향이 프리다를 연기한다. 프리다 역을 캐스팅할 때 일순위로 둔 것은? 추정화 힘든 역할이 될 것이 뻔하기에 일단 체력이 튼튼하길 바랐다. 그리고 나이가 좀 있기를 바랐다. 인생의 굴곡을 경험한 배우 말이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연기는 정말 찐하지 않나. 최정원 배우는 첫 리딩부터 이미 프리다 그 자체였다. 솔직하고. 열정적이고, 삶에 있어서 끝없이 긍정적이다. 한편 처음부터 프리다 역으로 생각한 배우는 김소향이다. 언젠가 뉴욕에서 김소향이 활동하는 모습을 건너다본 적이 있다. 지치지도 않는지 두꺼운 바인더를 들고 매일같이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떨어져도 굴하지 않는 열정적인 모습이 정말 존경스러웠고, 그런 그를 떠올리며 이 작품의 대본을 썼다.

마지막으로, 프리다 칼로가 앞에 있다면 전하고 싶은 한마디는.

허수현 당신이 있어 이 작품이 나왔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 한참 모자란 후배가 존경하는 예술가 선배를 그린 작품에 누가 되지 않도록 곡을 쓰고 싶었다. 추정화 제가 감히 당신을 극으로 담아내려고 한다. 기꺼이 고통을 이겨낸 당신의 삶이 모두에게 희망을 줄 거라고 믿는다. 그런 극을 만들어보겠다. 고통을 넘어 환희를 보여준 당신의 ‘Viva la Vida’를.

Performance information
뮤지컬 ‘프리다’ 3월 1일~5월 29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최정원·김소향(프리다 역)/전수미·리사(레플레하 역)/임정희·정영아(데스티노 역)/최서연·허혜진·황우림(메모리아 역)/추정화(극작·작사·연출)/허수현(작곡·음악감독)/김병진(안무) 외 프리다 칼로를 만나는 여러 방법!
책과 영화, 콘서트 속 프리다 칼로

프리다 칼로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책 ‘프리다 칼로, 내 영혼의 일기’ 프리다 칼로 저 | 안진옥 역 | 비엠케이

흔히 프리다 칼로를 초현실주의 화가로 분류한다. 무의식, 꿈, 상징을 표현한 화풍 때문이다. 정작 프리다는 “나는 내 현실을 그린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의 가장 내밀한 현실이 이 일기장에 담겨있다. 프리다가 살던 집 욕실에서 발견된 것으로 37세이던 1944년부터 생을 마감한 1954년까지의 기록이다. 자신을 괴롭힌 신체적 고통, 사랑과 배신, 임신과 유산에 관한 글과 그림이 주를 이룬다. 인간으로서 프리다뿐 아니라, 화가로서 그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단서도 풍부하다. 그의 회화는 아스테카 문명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일기에는 죽음의 신 ‘솔로틀’을 비롯하여 태양과 달을 의미하는 아스테카의 상징이 자주 등장한다. 일기 후반부로 갈수록 그림의 정교함은 떨어진다. 프리다의 건강이 날로 악화하여 진통제 없이는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유언과도 같은 마지막 글에서 프리다는 자신을 돌봐준 의료진과 병원 관계자에게 감사를 표하고는, 이렇게 일기를 마무리한다. ‘나의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결코 돌아오지 않기를- 프리다.’

여성 감독이 바라본 프리다 칼로

영화 ‘프리다’(2002) 줄리 테이머(연출)/살마 아예크(프리다 칼로 역)/ 앨프리드 몰리나(디에고 리베라 역) 외

프리다 칼로의 삶을 다룬 전기적 영화다. 영화다운 리얼리즘에 무대적인 상상력을 더한 건 감독 줄리 테이머(1952~)의 솜씨다. 테이머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극화한 뮤지컬 ‘라이온킹’의 연출가로, 이 작품으로 1997년 여성 최초로 토니상 연출상을 받았다. 예술가에게 성별은 중요치 않다고 여기는 여성 예술가 중 한 명이지만, 영화 ‘프리다’를 만들고 나서 만큼은 “이 영화는 여성 감독이 만드는 게 중요했다”라고 언급했다. 페미니즘의 상징이 된 프리다 칼로를 구체화하는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살아생전 프리다의 마음을 상상하여 그림의 탄생 배경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것만큼, 주연을 맡은 여성 배우의 나신을 어떻게 촬영할 것인지가 중요했다. 영화에는 정사 장면 외에도 사고로 전신을 다친 프리다가 나체로 수술을 받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이때 카메라의 시선은 여성의 몸을 성적으로 훑지 않는다. 자화상을 즐겨 그린 프리다의 그림에서처럼, 감독은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지 않고 주체로서 자신의 심리를 표현하도록 연출한다. 예를 들어 의사가 프리다의 몸을 조이던 석고 몸통을 잘라내는 장면에 대해 감독은 이렇게 설명했다. “나비가 풀려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해방되었고 이때 벌거벗은 몸은 순수함의 이미지다. 결코 성적인 것이 아니다.”

프리다 칼로의 삶을 음악으로 듣다 콘서트 ‘프리다 칼로, 자클린 뒤 프레를 만나다’ 3월 27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어떤 예술가는 존재 자체로 메시지가 된다. 메시지는 그의 삶에서 나온다. 화가 프리다 칼로와 첼리스트 자클린 뒤 프레(1945~1987)의 삶에서 여러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무너져가는 육체를 붙잡고 예술에 매진했다는 것,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배우자로부터 영감을 얻지만 이내 큰 상처를 입었다는 것, 그리고 비운에 굴하지 않고 꿋꿋이 노력한 것이다. 고난을 극복한 두 예술가의 삶과 예술을 음악으로 짚어보는 렉처콘서트가 열린다. 이번 공연에서는 멕시코의 색채를 가득 품은 프리다 칼로의 작품과 함께 정열적인 탱고 음악을 고상지(반도네온)의 연주로, 자클린 뒤 프레를 세계적인 첼리스트로 우뚝 서게 한 클래식 음악은 이상은(첼로)의 연주로 만나본다. 여기에 미술과 음악을 하나로 아우르는 전원경의 쉽고 재미있는 해설이 더해진다. 억압과 관습을 거부하며 자신만의 예술을 펼쳐낸 두 명의 예술가 ‘프리다 칼로’와 ‘자클린 뒤 프레’를 통해 위로와 힘을 얻는 특별한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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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현 ©EMK엔터테인먼트
추정화 ©EMK엔터테인먼트

김소향(프리다)
최서연(메모리아)
리사(레플레하)
임정희(데스티노)
최정원(프리다)
허혜진(메모리아)
전수미(레플레하)
황우림(메모리아)
정영아(데스티노)
프리다 칼로 ‘삶이여 영원하라’(1954)
뮤지컬 ‘프리다’ 뮤직비디오

©도서출판 비엠케이
줄리 테이머
©스톰프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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